0134 / 0158 ----------------------------------------------
[예지]
프리지아 남작의 진형은 완전히 붕괴되었다.
루이가 오백의 기사단을 이끌고서 프리지아 남작의 진채를 급습하는 것과 동시에 하멜른의 성문에서 수백에 달하는 이종족 무리가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하멜른의 성벽을 오르던 적들은 갑작스레 나타난 몬스터들의 공격에 속절없이 당하며 사방에 피를 뿌려야만 했다.
지휘관들은 전의를 잃고 항복했고, 남은 병사들은 혼비백산하며 사방팔방 도망쳤다.
이 때, 단지 몇몇의 지휘관들만이 프리지아 남작을 찾아서 피신시키려고 했다.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합니다!”
“남작님, 어서 가셔야합니다!”
이러한 지휘관들의 말에 프리지아 남작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서 말머리를 돌려 도주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걸 루이가 얌전히 보고만 있을 리가 없었다. 루이는 등에 메고 있던 총을 꺼내든 뒤에 일회용 분의 화약과 납알을 총구에 밀어 넣었다.
그 후, 불을 당긴 화승에 용두를 물린 다음에 프리지아 남작이 타고 있는 말을 향해 겨누었다. 물론 프리지아 남작을 직접 겨냥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없는 사이를 틈타서 승냥이마냥 하멜른을 점령하려 했던 자를 간단히 죽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루이는 이를 바득 갈며 방아쇠를 당겼다.
탕!
고막이 먹먹해지는 소리와 함께 총구에서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루이가 프리지아 남작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지휘관 하나가 재빨리 몸을 날려 대신 맞고는 말에서 고꾸라져 떨어졌다.
“…….”
“…….”
동시에 프리지아 남작과 루이의 눈이 서로 마주쳤다. 남작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루이를 바라보았고, 루이는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프리지아 남작을 쏘아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두 사람은 다시금 자기 할 일을 했다.
남작은 서둘러 이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서 채찍으로 말을 때렸고, 루이는 남작을 맞추기 위해서 두 번째 납알을 총구에 굴려 넣었다. 원래는 다짐대로 쑤셔 넣어야 했지만 지금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냥 통에 담긴 화약을 붓고 납알을 넣고 툭툭 쳐서 저절로 내려가게 한 다음에 다시 화약접시에 고운 화약을 붓고 용두에 물린 화승을 후 불어 불꽃이 드러나게 한 다음 프리지아 남작을 향해 겨누었다.
탕!
루이가 쏜 납환이 이번에는 정확히 프리지아 남작의 말머리에 적중했다. 남작이 탄 말은 구슬픈 울음소리와 함께 앞으로 고꾸라지더니, 이내 타고 있던 제 주인을 땅바닥에 형편없이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아자젤이 이끄는 기사들이 프리지아 남작의 주변에 있던 지휘관들을 창으로 찔러 죽였다. 마치 몰이사냥을 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루이는 희뿌연 연기를 내고 있는 총을 도로 등에 맨 뒤에 천천히 말을 몰아 프리지아 남작 쪽으로 다가갔다.
사방이 비명 소리와 가득 차있음에도 불구하고 다그닥 다그닥 거리는 말발굽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루이는 고개를 치켜들며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는 프리지아 남작을 내려다보았다.
‘프리지아 남작.’
프리지아 남작이 이만의 병력을 이끌고서 하멜른으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을 유스테스 백작으로부터 전해 들었을 때, 얼마나 깜짝 놀랐던가? 마음이 급한 나머지 루이는 앞뒤 가리지 않고서 겨우 오백의 기사들만 이끌고 여기까지 달려왔다.
지금도 그 때마다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빌어먹을 놈.’
와락 눈살을 찌푸린 루이는 허리춤에 매달려있는 검을 뽑아들었다. 스르릉 소리가 매끄럽게 울려 퍼졌다. 동시에 프리지아 남작이 엉금엉금 기며 도망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이 어찌나 필사적이던지, 실소가 터져 나올 정도였다.
“일어서라, 남작.”
루이의 말에 순간 프리지아 남작의 행동이 우뚝 멈추었다. 그는 천천히 루이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이윽고 몸을 납작 엎드리며 고개를 조아렸다.
“와, 왕자님……! 살려주십시오! 모, 몸값이라면 얼마든지 지불하겠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지만, 살겠다는 의지만큼은 충만했다. 이 얼마나 비굴하고 비겁한 자라는 말인가? 구역질이 치밀어오를 정도였다. 그야말로 현 시대의 귀족들의 표본이라 불러도 될 자였다.
욕지기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낀 루이는 아자젤을 향해 명령했다.
“일으켜 세워라.”
이러한 루이의 말에 아자젤이 근처에 있던 기사들과 함께 프리지아 남작의 양 팔을 붙잡아 일으켰다. 그러자 남작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계집애마냥 빽빽 소리를 지르며 발버둥질 쳤다. 그러나 한평생 거친 일이라곤 조금도 해보지 않은 그가 다부진 기사들의 힘을 뿌리쳐낼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왕자님! 왕자님! 잘 못 했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노예가 되라고 한다면 노예가 되겠습니다!”
죽는 순간까지 시끄러운 자였다. 슬쩍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오줌까지 지린 그의 추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 헛웃음을 터트린 루이는 검을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네 놈의 충성 따윈 필요 없다.”
라고 말한 루이는 오른쪽 가슴을 검으로 푹 찔렀다.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이기 위해서, 천천히 도려내며 왼쪽 가슴 쪽으로 검을 움직였다. 물론 뼈 때문에 잘 움직이진 않았지만, 아아아악!! 소리를 지르며 몸을 이리저리 비트는 프리지아 남작을 보니 절로 힘이 났다.
“……구역질이 나니까.”
“끄아아악!!”
순간 우득 소리가 났다. 척추가 비틀린 모양이었다. 잘리거나 부러졌으면 했지만 아무래도 당장 루이의 힘으론 많이 부족했다. 쯧, 혀를 찬 루이는 검을 뽑은 뒤에 프리지아 남작의 목줄기에 검을 찔러 넣어주었다.
“끄으으윽……. 케윽!”
피거품이 입술 사이로 뽀글뽀글 거품을 일으키며 흘러나왔다. 그리고 곧 프리지아 남작은 눈동자를 뒤집으며 숨을 거두었다. 악연이라 한다면 악연이라 할 수 있는 것을 드디어 끝낸 것이었다. 하지만 완전히 끝난 건 아니었다.
‘나머지도 곧 쓸어주마.’
차디 찬 시선으로 프리지아 남작을 쏘아보던 루이는 이내 검을 뽑은 뒤에 뒤돌았다.
“아자젤, 남작의 목을 베어라.”
“네!”
루이의 말에 아자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 역시도 루이처럼 프리지아 남작이 군대를 이끌고서 하멜른을 공격하려 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기 때문이었다. 아자젤은 경멸 어린 시선으로 프리지아 남작을 쏘아본 뒤에 검을 어깨 높이까지 치켜들었다.
이미 죽었다는 게, 아쉽기는 했지만 상관없었다. 아자젤은 망설임 없이 남작의 목을 내리친 뒤에 땅바닥에 떨어진 머리를 주워들어 창끝에 매달았다.
그 후,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높이 치켜든 뒤에 큰 목소리로 외쳤다.
“프리지아 남작의 목이 여기에 있다!!”
혼란 속에서도 아자젤의 목소리는 뚜렷하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모든 이의 시선이 아자젤이 치켜든 창 쪽으로 향했다. 아군은 적들의 수장이 죽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환호성과 함께 사기를 고취시켰고, 적들은 자신의 수장이 죽었다는 것에 절망했다. 이제는 설령 여기서 버틴다고 하더라도 이들에겐 돌아갈 곳이 없었다.
남은 것은 루이의 자비로움에 기대는 것뿐이었다.
적병들이 하나둘씩 루이를 바라보았다. 아군들 역시 잠시 행동을 멈추고서 루이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에 루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라!”
루이의 자비로운 제안에 적들은 재빨리 무기를 버린 뒤에 무릎을 꿇고 땅바닥에 엎드렸다. 아군은 그런 적들을 제압한 뒤에 보다 크게 우렁차게 함성을 내질렀다. 사방에서 항복하란 고함성이 터져 나왔다. 성벽 근처에서 싸우던 적들도 드디어 프리지아 남작이 죽었단 소식을 접한 모양인지, 재빨리 무기를 버리고 항복했다.
물론 이걸 모르는 몬스터들은 여전히 살육을 자행하고 있었지만, 때맞춰 아놀드가 오크들을 이끄는 수장을 설득한 덕택에 더 이상 항복한 병사가 죽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아군에게도 적군에게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루이는 아자젤과 쿤에게 일러서 전장을 마저 정리하도록 한 뒤에 천천히 하멜른 쪽으로 다가섰다.
‘설마 버텨낼 줄이야.’
하멜른은 엉망이었다. 성벽에는 시체가 즐비해있었고, 사방에서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정겨웠다.
“와아아아아아아!!!!”
루이가 성문 앞에 선 순간, 모든 병사들과 영지민들이 환호성을 터트리며 소년을 반겨주었다.
비록 형형색색의 꽃잎은 없었지만, 루이의 가슴을 충분히 들뜨게 만드는 풍경이었다. 루이는 영지민들이 대견하면서도 고마웠다. 소년은 경애의 뜻에서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인 뒤에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러자 더더욱 환호성이 커졌다.
그리고 잠시 뒤, 성문 밖으로 루시아와 비비안이 뛰어나오고 있는 모습이 루이의 눈에 들어왔다. 이에 소년은 재빨리 말에서 내린 뒤에 두 누이의 몸을 꼬옥 끌어안아주었다.
“루루!”
“오라버니!”
비비안과 루시아를 품 안에 끌어안은 순간 루이는 그제야 안도감에 휩싸였다.
마침내 돌아온 것이었다.
하멜른으로.
“다들 무사해줘서 고맙다.”
이리 말한 루이는 두 누이의 이마에 입술을 맞춰주었다. 그리고 그 입맞춤을 받은 비비안과 루시아는 엉엉 울음을 터트리며 보다 루이의 품에 꼬옥 안겼다. 두 번 다시는 떨어지기 싫다는 것처럼 말이다.
루이는 이런 두 누이의 어리광을 받아주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 작품 후기 ============================
드디어 끝이 보이는군요!
나데스 님 : 엌ㅋㅋ 독자님들도 사랑입니다!
사신 카이스 님 : 네, 항상 감사합니다ㅎ
qoewh 님 : 루시아 이야기는... 흠, 일단 보고 결정하겠습니다.
매실농축액2 님 : 차기작은 판타지 배경이고, 주인공이 의사입니다. 그리고 치료를 이유로...크흠, 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