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폰 전기-135화 (135/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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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비비안]

새벽이 가까워지는 시간, 몸을 뒤척이던 루이는 목 안이 바짝 마르는 것을 느끼고는 몸을 일으켰다.

머릿속이 윙윙 울리는 것이 흡사 벌이라도 들어있는 것만 같았다.

불쑥 현기증이 밀려오는 것을 느낀 루이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숨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그렇게 3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어지간히도 마셨군.’

이토록 난리법석을 떨어 본 것이 도대체 얼마만인지 기억조차 제대로 나지 않았다. 그 정도로 오늘 하루만큼은 웃고 떠들고 춤추고 마음껏 술에 취했으니 말이다.

쓰게 웃음을 터트린 루이는 슬쩍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러자 새끈새끈 숨을 내쉬며 자신의 양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두 명의 누이가 눈에 들어왔다.

비비안과 루시아.

원래대로라면 성 안에서 안락한 삶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어야 될 공주님들이었지만 괜히 루이, 자신 때문에 험한 일을 겪게 되었다. 게다가 자칫 잘 못 했으면 몹쓸 꼴을 당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루이는 안타까운 마음에서 손을 뻗어 두 사람의 뺨을 어루만져주었다. 잔뜩 술을 마신 모양인지, 붉게 상기되어 있는 뺨에선 미약한 열기가 치밀고 있었다. 루이는 손끝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을 한동안 만끽하다가 이윽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 후 창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굳게 닫힌 창문 너머로 거리의 떠들썩함이 여실히 들려왔다. 새벽에 가까운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들 흥에 취해있었다. 슬쩍 창밖을 내다보니, 아자젤과 쿤, 램지가 서로 주량 대결을 하듯이 술을 들이마시고 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뒤쪽에 술통이 잔뜩 쌓여있는 걸 보니, 마셔도 엄청 마셔댄 모양이었다.

아놀드는 이 순간만큼은 돈 걱정이 들지 않는 모양인지, 뻘겋게 물든 얼굴로 낄낄대며 웃고 있었다. 그 옆에 앉아있는 레베카도 별반 다를 바가 없어보였다. 그녀 또한 잔뜩 취한 듯이 실없이 웃음을 터트리며 아놀드의 몸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행복해보였다.

아니, 이건 비단 두 사람 뿐만이 아니었다. 루이의 눈에 보이는 모든 이들이 하나 같이 행복해보였다. 이 얼마나 멋진 광경이란 말인가? 루이는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문득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려보았다.

‘랄프 산맥의 몬스터들이 도와줄 줄이야…….’

전혀 생각지도 못 한 일이었다. 하지만 암컷 중요시 여기는 몬스터들의 성정을 떠올려본다면 전혀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몬스터들에게 있어서 암컷이란 단순히 여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종족의 보존.

물론 이 측면에서 따지자면 수컷 또한 중요하다. 수컷 없이는 임신을 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종족을 보존하고, 더 나아가 번식을 시키기 위해서는 다수의 암컷이 필요했다. 그에 반해서 수컷은 단 한 마리만 있으면 충분했다.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암컷의 가치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인간도 마찬가지였다. 단적인 예로서 노예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남성 노예에 비해서 여성 노예의 값이 더 비싸니 말이다.

“루루, 뭐해?”

불쑥 뒤쪽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루이가 고개를 돌리자, 비비안이 생긋 눈웃음을 흘리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비비안의 몸을 덮고 있던 이불이 아래로 떨어지자, 성숙한 여인의 매혹적인 굴곡이 여실히 드러났다.

확실히 비비안은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이전의 삶에선 그저 먼발치에서만 봐야 되는 존재였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마주보고 있으니 새삼 그것이 실감되었다. 더욱이 그녀는 루이, 자신의 약혼녀였다. 사실 과분하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비비안은 그런 것 따윈 상관없다는 듯이 사뿐사뿐 걸어와 루이의 몸을 포옥 끌어안았다.

“……안 졸려?”

마치 어리광을 부리듯이 물음을 던지는 비비안의 태도에 루이는 자그맣게 웃음을 터트리며 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달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이 나는 금색 머리카락이 더없이 부드러웠다.

“먼저 주무세요.”

“같이 자고 싶어.”

비비안은 그렇게 말하면서 좀 더 세게 루이의 몸을 끌어안았다. 소년의 팔에 자신의 가슴이 닿고 있었지만, 비비안은 신경 쓰지 않았다. 물론 상대가 루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어림도 없었지만 루이니까 괜찮았다.

루이는 자신의 몸을 꼭 끌어안고 있는 비비안을 한번 쳐다보더니 낮게 웃으며 창밖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비비안도 그런 루이를 따라 창 밖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시끌벅적하게 떠들며 술을 마시고 있는 영지민들의 모습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비비안 누님이 구한 사람들입니다.”

그 때, 루이가 속삭이듯 말했다. 이에 비비안이 고개를 들자, 루이는 마치 어린 아이를 칭찬해주듯이 대견하단 표정을 지어보이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직은 비비안과 비슷한 키를 가진 루이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루이가 그녀보다 훨씬 더 커보였다.

“내가 구한 사람들?”

“그렇습니다. 누님이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기 때문에 하멜른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겁니다. 물론 루시아도요.”

루이는 침대 위에 누워있는 루시아를 한번 쳐다보았다가 이윽고 고개를 돌려 비비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비비안은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는 저 눈동자가 그렇게 섹시해 보일 수가 없었다. 미소년은 언제나 누나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법이었다. 하물며 콩깍지가 단단히 씐 상태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비비안은 잠시 멍하니 루이를 마주보다가 이윽고 시선을 아래로 내리며 입을 열었다

“내가 정말로 도움이 된 걸까?”

“도움이 되었습니다. 만약에 그 때, 누님이 루시아와 함께 도망쳤다면 하멜른은 결코 지켜낼 수 없었을 테니까요.”

“정말로 그럴까? 나는 저들처럼 직접 싸우지도 않았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내가 저들을 사지로 내몬 거잖아.”

“누님은 하멜른을 지키고 싶지 않으셨습니까?”

“아니, 지키고 싶었어. 지금도 같은 마음이야.”

“그럼 되지 않았습니까? 저들도 누님과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모두가 같은 뜻을 가지고서 하멜른을 있는 힘껏 지켜낸 겁니다. 다만 그 방식이 조금씩 달랐을 뿐입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이 일의 시작은 누님과 루시아였습니다. 만약에 그 때, 누님과 루시아가 용기를 내어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 했다면 하멜른은 프리지아 남작이 이끄는 군대에 의해서 점령되었을 겁니다.”

“정말로 그럴까?”

“비비안 누님은 자기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사람입니다.”

“나는 별로 대단하지 않아.”

“그렇지 않습니다. 누님은 그 누구보다도 아름답고, 빛이 납니다. 제가 말했지요? 고개를 들고 허리를 펴십시오. 그리고 웃으세요.”

이리 말한 루이는 비비안의 어깨를 꽉 붙잡았다.

“……누님은 충분히 사랑 받을 자격이 있는 여성입니다.”

이러한 루이의 말을 듣는 순간, 비비안의 가슴이 절로 뜨거워졌다.

마치 그 날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잿빛으로 가득했던 자신의 세상 속으로 루이가 걸어 들어와 손을 내민 날. 무채색의 세계가 조금씩 색을 얻어 밝은 빛으로 변해가는 것이었다. 반짝반짝 빛을 내던 그 광경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비비안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떴다.

세상이 또다시 달라보였다. 한순간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천천히 숨을 토해낸 비비안은 그 때, 하지 못 했던 말을 입술 밖으로 꺼냈다.

“고마워.”

그 말에 루이는 조용히 미소 지어보였다. 비비안은 그 미소를 보며 마주 웃었다. 역시 루이가 아니면 안 됐다. 루이가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 동안 루이 없이 어떻게 살았었던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루이의 곁에 있으면 없던 자존감도 생겨난다.

추하고 못 생겼던 자신을 보듬어준 유일한 사람, 그 누구도 자신에게 손을 내밀지 않던 무도회장 안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향해 손을 내밀어준 사람, 춤을 출 수 있는 용기를 준 사람, 자신을 변하게 만들어준 사람.

비비안은 한동안 루이를 바라보다가 불쑥 고개를 내밀어 소년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비록 서툰 입맞춤이었지만, 입술이 떨어진 뒤에 여운처럼 감도는 애틋한 눈빛과 어색한 수줍음이 손끝을 오싹오싹하게 만들었다.

“…….”

비비안은 자신의 입술 끝에 맴도는 짜릿함에 양 볼을 붉게 물들였다. 심장이 쿵쿵 거세게 뛰는 것이 혹여 루이의 귀에 들리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반면에 루이는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맞은편에 서있는 비비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살짝 벌어진 비비안의 입술 사이로 보이는 붉고 촉촉해 보이는 혀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솔직히 말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일단 루이도 남자였으니 말이다. 몸은 아직 어린 소년에 불과했지만, 정신은 스무 살이 훌쩍 넘은 청년이었다.

더욱이 한창 혈기 넘치는 나이에 죽은 루이였다.

잠시 비비안을 바라보던 루이는 천천히 고개를 내밀어 비비안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누이 또한 그런 루이가 싫지 않은 모양인지, 조심스럽게 양 손을 들어 올려 루이의 어깨를 꽈악 붙잡았다.

두 눈을 꼭 감고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귀여웠다. 루이는 잠시 그 모습을 즐기다가 가볍게 누이의 입술을 빨았다. 그러자 아!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비비안의 입술이 벌어졌다. 놀란 기색이 잔뜩 보였지만, 루이는 비비안을 달래기보단 과감히 누이의 입 안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흐음.”

자그마한 신음성이 새어나왔다. 루이는 자신의 귓가를 간질이는 신음성을 들으며 입 안 구석구석 희롱했다. 그리고 이윽고 혀와 혀가 서로 맞닿은 순간, 비비안의 몸이 가늘게 떨고 있는 게 느껴졌다.

루이는 그것을 통해 비비안이 키스에 서툴다는 것을 확신했다.

서툰 입맞춤을 통해서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키스도 한번 해보지 않았을 줄은 생각해도 못 했다. 루이는 기분이 서서히 고조되는 것을 느끼며 좀 더 깊이, 농밀하게 입맞춤을 했다.

============================ 작품 후기 ============================

죄송합니다, 본의 아니게 쉬게 되었습니다.

그럼 다시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완결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요!

사신 카이스 님 : 감사합니다!

쿠마백작 님 : 망할 남작이죠.ㅋㅋ

돔페리뇽 님 : 나쁜 놈 다 죽었으니 슬슬 마무리로군요

Astraya 님 : 엌ㅋㅋㅋ

흰밤 님 : 그래서 넣으려고요!

모그퐁 님 : 네, 일단 치료..음, 모그퐁 님이 생각하시는 거랑 조금 방향이 다를 지도 모릅니다.

매실농축액2 님 : 둘 다요!

센느라구 님 : 감사합니다!

qoewh 님 : 음, 둘 다 재밌게 봐주세요!ㅎㅎ

바보벌레 님 : 히익!

어린잎세 님 : 아뇨, 하폰은 원래 전개가 빨랐습니다. 컨셉을 그렇게 잡았고요.

비쥴 님 : 여,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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