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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
비록 로렌스 왕자를 설득하는데 실패하기는 했지만, 귀족들은 여기서 낙담하지 않고 이번에는 엘리자베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리 왕위 계승권이 남성 우선이라고는 하지만 여성이라고 해서 왕위에 오르지 못 하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하폰 왕국을 다스렸던 역대 왕들 중에서도 여왕이 세 차례나 등장했었다. 더구나 엘리자베스 공주라고 하면 귀족, 백성 할 것 없이 모두에게 두루 사랑을 받는 공주였다.
이런 그녀가 왕위에 오른다고 해서 반감을 가질 이는 아무도 없었다.
“엘리자베스 공주라면 문제없을 겁니다.”
“루펜시아 공작님께도 한번 말해봅시다. 공주의 외척이니 분명 압력을 가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아주 좋은 생각입니다. 바로 그리 합시다!”
방향이 잡히자, 그 뒤로부터는 일사천리였다. 귀족들을 엘리자베스 공주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값비싼 장신구와 드레스들을 준비하는 한 편 루펜시아 공작에게 연락을 취해 그의 협조를 구했다.
공작은 이런 중앙 귀족들의 요청을 기꺼이 들어주었다. 루펜시아 공작의 입장에선 하등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조카가 왕위에 올라, 하폰의 여왕이 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다른 이가 왕위에 오르는 것보다 훨씬 나은 일이었다.
그리고 이처럼 루펜시아 공작의 협조까지 순조롭게 받아낸 귀족들은 곧바로 엘리자베스 공주를 찾아갔다.
“정당하게 왕위에 올라, 왕국을 위협하고 있는 불한당을 벌해주십시오.”
“왕국은 지금 엘리자베스 공주님의 통치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공주님이야 말로 정당한 왕의 후계자이십니다.”
하나 같이 듣기 좋은 말들뿐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진의가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을 원하고 있는 것인지 꿰뚫어보고 있는 엘리자베스는 이런 귀족들의 달콤한 속삭임에 결코 넘어가지 않았다.
‘이전에는 밀튼과 휴안을 서로 부추겨 싸우게 만들더니, 이번에는 나를 부추겨 루이와 싸우도록 만들려고 하고 있구나.’
물론 밀튼과 휴안의 경우에는 딱히 귀족들이 부추기지 않더라도, 애초부터 사이가 틀어질 대로 틀어져 있던 형제였기에 어찌 보면 서로 왕위를 두고서 다투게 된 것이 필연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루이와 엘리자베스는 그렇지 않았다.
두 사람은 오누이로서 사이가 좋은 편이었다. 특히 루이는 엘리자베스의 현명함에 존경을 종종 표시했고, 엘리자베스는 그런 루이를 사랑스런 막내로 대해주었다. 또한 엘리자베스는 루이에게 고마운 마음도 품고 있기도 했는데, 그 계기는 바로 아슬롯이 사망할 당시였다.
그 날, 자신만큼이나 아슬롯의 죽음을 슬퍼해주던 루이를 어찌 미워할 수 있다는 말인가? 오히려 이만큼이나 슬퍼해주는 형제가 있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고마움을 느꼈던 그녀였다.
더욱이 그녀에게 있어서 루이는 어디까지나 사랑스러운 막내 동생이었다.
칼부림을 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하물며 엘리자베스에게 있어서, 형제자매가 서로에게 칼을 겨눈다는 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왕위에 오르는 이는 이미 명백히 결정되었다. 그러니 그대들도 이만 고개를 숙여 진정으로 옳은 왕을 받아 모셔야 하지 않겠는가?”
말은 완곡하게 되어 있었지만, 실상은 이제 그만 그 빳빳한 목을 꺾고 루이의 앞에 무릎을 꿇으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걸 귀족들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리가 만무했다.
“진정으로 옳은 왕이라니요? 당치도 않은 소리입니다, 엘리자베스 공주님.”
“그렇습니다, 공주님. 지금 이 수도로 쳐들어오고 있는 역당들은 이 왕국이 오랫동안 지켜온 전통을 무너트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 행태가 실로 역모죄에 해당되옵니다.”
엘리자베스의 말에 모든 귀족들이 일제히 분기하여 아우성쳤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여기서 자신이 밀릴 까닭이 하등 없었기 때문이었다. 애당초 여기서 자신이 왕위에 오르지 않겠노라고 단언만 하더라도 귀족들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실제로 로렌스가 그리 하여, 귀족들이 단념하지 않았던가? 이러한 생각에서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뜻을 결코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그녀의 태도에 귀족들은 잠시 수군거리더니, 이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공주님께서 이리도 뜻이 완고하시니, 일단 루펜시아 공작과 한번 이야기를 나누어 보심이 어떻겠습니까?”
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방 안으로 루펜시아 공작이 들어왔다.
그 모습에 엘리자베스 공주는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얼굴색을 어둡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설마하니 자신의 외삼촌인 루펜시아 공작이 귀족들의 손을 들어주었을 리라고는 생각지 못 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루펜시아 공작은 청렴한 인물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현 국왕 또한 루펜시아 공작 가의 영애를 자신의 왕비로 맞이했던 것이고 말이다.
엘리자베스는 예상지 못 한 일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 한 채, 귀족들과 루펜시아 공작을 번갈아보았다. 그리고 이런 그녀의 태도에 귀족들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공주와 공작을 서로 대면시켰다.
“……그럼 두 분이서 편히 말씀 나누십시오.”
이 말과 동시에 귀족들은 잠시 자리를 비켜주었다. 사전에 공작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엘리자베스와 따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달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 요청대로 귀족들은 얌전히 자리를 비겨주었다.
여러 사람으로 북적였던 엘리자베스의 방 안은 이내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엘리자베스는 불편한 기색을 내비쳐 보이며 입을 열었다.
“루펜시아 공작께선 어쩐 일로 이곳에 오신 겁니까?”
“너무 딱딱하게 말씀하지 말아주십시오. 지금 이 자리엔 우리 밖에 없지 않습니까?”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어보이며 대답하는 루펜시아 공작의 태도에 엘리자베스는 마뜩찮아 하면서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지금 이 상황이 불편하다고 하더라도 루펜시아 공작은 그 동안 그녀의 편의를 봐주었던 외척이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가 공작의 말대로 이 방 안에는 두 사람 밖에 없었다.
“외삼촌께선 어쩐 일로 여기에 오신 겁니까?”
“하나 밖에 더 있겠습니까? 하나 밖에 없는 조카딸을 여왕으로 추대하기 위해서지요.”
“허나 저는 왕위에 뜻이 없습니다.”
엘리자베스는 단호히 자신의 뜻을 내비쳐보였다. 그러나 루펜시아 공작은 이 또한 예상하고 있었단 듯이 태연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뜻이 없다 하더라도 왕위는 반드시 계승하셔야 합니다. 지금 이 상황을 보십시오. 첫째 왕자인 아슬롯은 병사하였고, 둘째 왕자 밀튼은 전사하였습니다. 셋째 왕자 휴안은 왕위 계승을 포기하고 후작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넷째 왕자 로렌스까지 왕위에 뜻이 없다고 밝힌 상태입니다.”
“아직 루이가 남아있습니다.”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귀족들이 이리도 반대하고 있지 않습니까? 중앙 귀족들은 어떠한 수를 써서라도 후작을 막으려 할 것입니다. 설혹 여기서 공주님게서 왕위를 거절한다고 할 지라도요.”
“그게 무슨 뜻입니까? 설마 저를 강제로 왕위에 앉히겠다는 겁니까? 그런다고 해서 왕실 근위대가 뜻대로 움직여줄 것 같습니까?”
“강제로 앉히다니요? 저는 그럴 마음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저를 찾아오신 겁니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여기서 귀족들이 셋째 공주인 히르메를 찾아가게 된다면 틀림없이 꼭두각시가 될 테니까요. 그건 공주님을 위해서도, 가문을 위해서도……. 더 나아가 이 나라를 위해서도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
루펜시아 공작이 히르메를 언급한 순간 엘리자베스는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히르메 공주라면 귀족들의 꼬드김에 넘어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예전부터 셋째 공주인 히르메는 속내를 알 수 없는 여성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아이에게 귀족들이 붙게 된다면 이후의 상황이 어찌 될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오랫동안 평화를 누려왔던 하폰의 수도, 팔칸이 전쟁터로 변모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건 자신의 외삼촌, 루펜시아 공작이 말한 것처럼 이 나라를 위해서라도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니 차라리 공주님께서 왕위에 오르심이 어떠한가 싶습니다. 공주님께서 왕위에 오르신다면 후작 또한 납득하고 물러나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루이와 귀족들은 서로 척을 진 상태가 아닙니까?”
“사소한 오해입니다. 그 정도쯤은 공주님께서 왕위에 오르신 뒤에 중재해주시면 될 일입니다.”
들어보니, 하나 같이 그럴 듯한 말들이었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자신이 직접 나선다면 충분히 온건하게 일을 해결할 수 있을 듯이 싶었다. 더욱이 자신의 곁에는 외척인 루펜시아 공작 가문이 있었다.
공작가가 자신의 배경이 되어서 든든하게 버텨만 준다면 충분히 해결해 나아갈 수가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입술을 꾹 다문채로 생각을 정리했고, 루펜시아 공작은 이런 자신의 조카가 충분히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었다. 그리고 이처럼 한참의 시간이 지나자, 생각을 정리한 엘리자베스가 입을 열었다.
“저를 도와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충성을 다 해서 도와드리겠습니다, 공주님. 거기다 이 계획에 동의한 것은 저 뿐만이 아닙니다. 평화를 원하는 다른 몇몇 중앙 귀족들 또한 저와 뜻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안심하시고 왕위에 오르시기만 하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외삼촌만 믿고 있겠습니다.”
엘리자베스나 루펜시아 공작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대화였다. 엘리자베스는 루이와 따로 싸울 필요 없이, 평화롭게 이 시국을 해쳐나갈 수 있게 된 셈이었고, 루펜시아 공작은 자신의 조카딸을 여왕으로 만듦으로서 자신의 입지를 보다 공공이 할 수 있게 된 셈이었다.
이렇듯 이해가 일치되자, 두 사람은 보다 세밀하게 계획을 논의한 뒤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귀족들을 불러 모아 뜻을 밝혔다.
“왕위에 오르겠다.”
엘리자베스의 말 한 마디에 모든 귀족들이 만족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고개를 조아렸다.
하폰의 새로운 여왕을 맞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처럼 엘리자베스가 왕위에 오르겠다는 뜻을 밝히고 나자, 귀족들은 대대적으로 왕위 계승식을 준비했다. 이는 하루라도 빨리, 왕실 근위대와 수도 방위군을 포섭하고자 함에 있었다.
물론 부가적으로 하폰의 수도, 팔칸에 거주하고 있는 백성들을 안정시키고자 하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거듭된 왕자의 전쟁과 수도로 진격해오고 있는 루이의 군대 탓에 민심이 동요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때, 루이와 사이가 좋다고 알려진 엘리자베스가 왕위에 오르게 된다면 서로 좋게 합의를 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었다.
실제로도 겉보기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물론 왕위 계승이 남성 우선으로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루이에게는 하멜른이란 영지가 존재했다. 왕실을 떠나, 수도 외곽에 자리를 잡은 루이가 구태여 사이가 좋은 엘리자베스와 왕위를 두고서 다툴 이유가 없었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백성들의 불안은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왕위 계승식 또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 작품 후기 ============================
이제 엘리자베스는 공주가 아닌 여왕이 되겠군요.
울티오r 님 : 감사합니다! 이번편도 즐독해주세요~
Zephyr0s1 님 : 우오오!
halem 님 : 안녕하세요.ㅎ
돼지띠 님 : 네, 완결은 하고 가야죠. 흑흑
Zxion 님 : 음, 어지간하면 안 쉴 겁니다. 적어도 하폰 전기에선요. 하루 2연참으로 해서 최대한 해피 엔딩으로 끝마칠 생각입니다.
시원섭섭 님 : 후후, 당연하게 아닙니까? 루시아도 행복하게 해줘야죠
노스아스터 님 : 엌ㅋㅋ 확실히 그것도 나쁘지 않긴 하죠
Lgb 님 : 자매 덮..크흠
변함없는하루 님 : 저도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다시 읽었습니다.ㅋㅋ
화이트프레페 님 : 아, 아뇨.. 비축분이 없습니다.;ㅅ;
암산 님 :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나데스 님 : 힉! 나데스님 오랜만입니다.ㅎ
14C2A58H2 님 : 에밀리가 참 귀여웠죠.ㅋㅋㅋ
Tdhed 님: 헛, 감사합니다! 제가 정신이 없어서...;ㅅ;
유령세상 님 : 감사합니다.ㅎㅎ
샤르미르 님 : 네, 정말로 오랜만입니다. 이게 몇달만인지..흑흑
[炎風] 님 : 오히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다시 뵙게 되어서 기쁩니다!
엘로아르l루l크란츠 님 : 완결 내봅시다!
eastarea 님 : 엌ㅋㅋ 그 풍문 어디서 들으신 겁니까?ㅋㅋ
dhjskak 님 : 주, 죽다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