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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
그로부터 나흘 뒤, 엘리자베스 공주의 왕위 계승식이 팔칸에서 거행되었다.
공주의 머리 위에 왕관을 올려주는 역할은 재상 직위에 올라 있는 필롭스 공작이 맡게 되었다. 본래 예법대로라면 상왕이 자신의 왕관을 신왕에게 물려주어야 되었지만, 현 왕은 지금 병환으로 자리에 누워있는 상태였다.
더욱이 의식조차 불투명해서, 오늘 내일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러다보니 귀족 회의 거쳐, 재상인 필롭스 공작이 계승식을 주도하기로 결정이 된 것이었다. 물론 간간히 엘리자베스 공주의 외척인 루펜시아 공작이 주도해야 된다는 이야기가 나오긴 했다.
그러나 루펜시아 공작은 이는 예법에 맞지 않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소문대로 청렴하기 그지없는 행동이었다.
허나 루이는 결코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히르메와 로렌스가 자신에게 거짓을 말할 까닭이 없거니와 경계심을 푸는 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고 난 뒤에 풀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여하튼 루이는 계승식이 진행되기 전에 병상에 누워있는 자신의 아버지, 하폰의 국왕을 찾아갔다.
왕의 침실에선 코끝을 찌르는 고약한 약재 냄새가 가득 풍기고 있었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국왕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하고 있는 의원들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가 있었다. 심지어 왕의 머리맡에는 신관들이 두고 간 것으로 보이는 신물들이 한 가득 놓여있었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 루이는 이윽고 왕의 앞에 섰다.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가 아슬롯으로 하여금 랄프 산맥 밑자락에 땅을 얻을 수 있도록 허락을 구해달라고 요청했을 때였다.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분명 정정했던 아버지였다. 그러나 고작 2년 사이에 이렇게 병상에 드러누운 채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처지로 변해버렸다.
아버지의 앙상하게 마른 몸을 보니, 루이의 가슴 한켠이 시큰거려왔다.
새삼 아버지가 아슬롯을 얼마나 아꼈는지를 깨달을 수가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미운 마음도 있었다. 아슬롯만 당신의 자식이었냐고 묻고 싶었다. 나 또한 당신의 자신이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당신이 정신만 제대로 차리고 있었다면 왕국이 이런 파국까지 치닫지는 않았을 거라고 말이다.
허나 루이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있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 일평생 자신에게 정이라곤 한 톨도 주지 않았던 아버지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워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아버지이지 않은가? 루이는 입을 꾹 다물고서 조용히 아버지를 내려다보았다.
쌕쌕, 힘겹게 숨을 내쉬는 소리가 루이의 귓가를 울렸다.
“…….”
그렇게 얼마간 아버지를 바라보았을까? 불현듯 국왕의 눈꺼풀이 흔들렸다. 눈썹이 파르르 떠는 것이 무척이나 힘겨워 보였다. 눈을 뜨기도 힘들 정도로 건강이 안 좋다는 걸까? 루이는 그 모습에 다급히 의원을 부르려했다. 하지만 미처 루이가 입을 열기도 전에 국왕이 작은 기침과 함께 무어라 중얼거렸다.
너무나도 작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태도는 마치 큰 소리로 울부짖는 것만 같았다.
“미……. 다. 난…….”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루이는 가만히 국왕을 행동을 지켜보다가 이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내가……. 미안하구나.”
순간 루이의 심정이 복잡해져왔다.
카샤의 가루를 처음 발견했을 때, 어미 노예의 부탁으로 어린 노예까지 사들였을 때, 랄프 산맥의 몬스터들을 막아내었을 때……. 그 감정들과는 다소 다른 감정이었다.
아버지는 대체 누구에게 이토록 필사적으로 사죄하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끝끝내 국왕은 누구에게 사과하는 것인지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저 계속 사죄만 하다가 다시금 잠에 들었다.
마치 잠꼬대를 한 것처럼 말이다.
루이는 자신의 뺨에 닿는 아버지의 숨결을 느끼며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무엇이 그리도 죄스러우신 겁니까, 아버지?’
어쩌면 자신 때문에 왕국이 이런 파국으로 치닫게 된 것에 대한 사죄를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루이가 멋대로 생각해서……. 조금 과장되게 이야기해서……. 루이를 포함한 모든 자식들에게 사과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는 왕으로선 최고였을지 몰라도, 아버지로서는 최악이었으니 말이다.
아니, 작금에 다다라서는 왕으로서도 최악이었다.
‘……당신이 쓰러지지만 않았더라면, 이 비극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아슬롯의 죽음 직후, 새로이 왕세자를 책봉해주기만 했다면 왕자의 전쟁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렇기에 루이는 방금 전, 아버지가 한 사과를 자신과 다른 자식들에게 하는 사과라고 믿고 싶었다.
그것이 설령 삐뚤어진 믿음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병상에 누워있는 아버지를 한동안 내려다보던 루이는 이윽고 몸을 돌렸다. 이제 곧 있으면 엘리자베스 공주의 왕위 계승식이 진행되기 때문이었다. 복잡한 마음을 애써 떨쳐낸 루이는 국왕의 침소를 벗어났다.
이 때, 루이의 귓가에 아버지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맴돌았다. 미안하다. 루이는 그 말소리를 천천히 곱씹으며 한 발 내딛었다. 그러자 묘하게 가슴 한켠의 응어리가 풀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도 참 실없는 녀석이로구나.’
겨우 이까짓 걸로 응어리가 풀려버리니 말이다. 루이는 쓸쓸이 자리를 떠났다. 허나 소년의 발걸음을 가볍기만 했다. 그리고 이처럼 루이가 국왕의 침소를 방문한 동안에도 왕성은 새로이 주인의 자리에 오를 이를 맞이할 준비를 하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손 놓고 게으름을 피우는 이를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늦장을 피우기로 유명한 중앙 귀족들 또한 이때만큼은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며 계승식에 차질이 없도록 준비했다. 회귀 이전, 루이가 약식으로 치렀던 계승식과는 그 규모부터가 사뭇 남달랐다.
하긴 그 당시에는 장장 5년 동안 이어진 왕자의 전쟁과 루시아의 반란으로 왕국 전체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있는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계승식을 치룰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하물며 권력 또한 귀족들이 꽉 쥐고 있는 상태였다.
이런 상태에서 귀족들이 왕의 권위를 살리기 위해서 계승식을 성대하게 치러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건 회귀 이전의 일이었다.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달랐다.
물론 북부가 이민족들에 의해서 피폐해져 있긴 했지만, 이곳 수도는 전혀 상황이 달랐다. 그 어떤 피해도 받지 않았으니, 여전히 사람들은 풍요로웠다.
성대하게 계승식이 거행될 것이며, 백성들은 과거의 왕을 잊고 새로이 왕위에 오를 엘리자베스의 이름을 큰 목소리로 외칠 것이다.
루이는 계승식이 열리는 시내 중심가의 대성당으로 향했다.
원래대로라면 왕성 중앙, 사자 홀에서 열려야 되었지만 얼마 전, 그곳에서 밀튼이 왕위 계승식을 치렀다는 이유로 모든 귀족들이 꺼려했다. 불길하단 이유에서였다. 왕위에 오른지, 세 달도 채 되지 않아서 루이의 손에 죽었으니 이런 반응도 당연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명목에 불과했다. 귀족들은 로렌스와 루이가 엘리자베스 공주의 왕위 계승식을 지켜보는 모습을 수도의 백성들이 지켜봤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런 것이 틀림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엘리자베스는 여왕이었다.
휴안과 루이는 둘째 치더라도 로렌스가 버젓이 있는데, 공주가 왕위에 오르는 것이었다.
당연히 일부 백성들이 염려의 뜻을 내비칠 수밖에 없었다. 다시금 내전에 휩싸이는 게 아니냐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 때, 왕위 계승식이 거행되는 시내 중심가의 대성당에서 로렌스가 자신의 모습을 내보인다면 그 불안감이 빠른 속도로 가라앉을 것이 틀림없었다.
중앙 귀족들이 자기 나름대로 머리를 굴렸다고 볼 수 있었다.
‘여기로군.’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대성당 안으로 들어서자, 가장 처음 아단트 여신의 모습을 형상화한 조각상이 루이의 눈에 들어왔다. 무려 3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조각상이었다. 저걸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을 들였을지 감히 짐작도 가지 않았다.
루이는 주변을 둘러보며, 잘 닦인 석재 바닥을 밟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대성당 안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로 부적이고 있었다. 1층과 2층 모두 초대받은 귀족들로 가득 차 있었다. 백성들은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단지 밖에서 성당의 종이 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계승식을 끝마친 엘리자베스가 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대성당 밖으로 나온 순간에야 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아마도 무수히 많은 백성들이 엘리자베스의 아름다운 자태에 넋을 잃고, 며칠 동안 열병을 앓아야 될 것이다. 실제로 루이 또한 첫째 누이의 모습에 한동안 넋을 잃었었으니 말이다.
쓴웃음을 터트린 루이는 2층에 자리를 잡았다.
몇몇 귀족들이 루이를 알아보고는 다가와 인사말을 건넸다. 저마다 친근하게 말을 건네곤 있었지만, 썩 기쁘진 않았다. 루이가 권력을 가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눈길 한번 주지 않았던 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이 중에는 자신을 죽이기 위해서 모략한 귀족도 섞여있을 게 틀림없었다.
루이는 피곤하단 이유로 이들을 뿌리친 뒤에 로렌스를 기다리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오랜 세월, 공을 들여 만든 걸로 보이는 예술작품들이 루이의 눈에 들어왔다. 또한 성당 높이가 80미터에 이르렀기에 그저 천장을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하물며 스테인드글라스를 관통하여 쏟아져 내려오는 햇살은 아름답다 못 해, 보는 이로 하여금 경건한 마음을 가지게 만들었다.
============================ 작품 후기 ============================
국왕에 대한 루이의 생각.
국왕의 처분.
여러가지로 생각해보았지만, 이게 가장 낫다고 생각이 되더군요.
애증관계.
울티오r 님 : 감사합니다!ㅎㅎ
나데스 님 : 힉
수천천사 님 : 엘리자베스는 미정이지만, 비비안과 루시아라면 가능하겠군요.ㅋㅋ
매실농축액2 님 : 로렌스는 아직 아내가 없는데요?
[炎風]님 : 그럼요, 왕 먹어야죠.ㅋㅋ
메르카츠 님 : 엌ㅋㅋㅋ 하긴 그렇기도 하네요.
노스아스터 님 : 네? 잘 못 들었습니다? 통조림이라니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