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폰 전기-145화 (145/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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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

대성당 안을 거의 다 둘러볼 쯤, 로렌스가 찾아왔다. 그 곁에는 히르메가 함께 하고 있었다. 제아무리 폐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히르메라고 하더라도, 이처럼 중요한 행사 자리까지 불참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셨습니까?”

루이가 두 사람을 반겨주자, 로렌스가 보일 듯 반듯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대답했다.

“내가 좀 늦은 모양이로구나.”

“아닙니다, 시간에 딱 맞춰서 오셨습니다.”

그 말대로 왕위 계승식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로렌스도 그것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히르메는 좀처럼 진정하지 못 하고 있었다. 얼굴색이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그걸 본 루이는 재빨리 히르메 쪽으로 다가가 입을 열었다.

“괜찮으십니까, 누님?”

“미, 미안……. 속이 별로 안 좋아.”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탓에 속이 울렁이는 모양이었다. 이에 루이는 히르메를 진정시켜줄 생각에서 누이의 손을 꼬옥 붙잡아주었다. 그리고는 똑바로 시선을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크게 숨을 들이켜 보시겠습니까? 네, 잘 하셨습니다. 이제 천천히 내쉬세요. 천천히……. 너무 급하게 내쉴 필요는 없습니다.”

이러한 루이의 말에 히르메는 크게 숨을 들이키곤 천천히 내쉬었다. 이것을 몇 차례 반복하자, 울렁거리던 속이 점차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히르메는 놀라움을 표시하며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고마워, 루이. 덕분에 많이 좋아졌어.”

“좋아졌다니 다행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루이는 천천히 히르메의 손을 놓아주었다. 동시에 누이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화장기가 거의 없는 깨끗한 얼굴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지나치게 하얀 피부가 병약하단 느낌마저 들게 만들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히르메와 잘 어울렸다. 또한 누이가 입고 있는 연한 녹색이 감도는 드레스 또한 사랑스러웠다. 겹겹이 접혀있는 치마가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확실히 히르메 또한 왕가의 공주란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루이가 히르메의 모습을 살펴보고 있을 때, 오르간 소리가 들려왔다. 마침내 계승식이 거행되려는 것이었다. 귀족들의 대화 소리가 술렁거렸던 대성당 안이 일순 고요해졌다. 재상이 가장 먼저 나타나, 왕위 계승식이 거행될 것을 알려왔다.

귀족들은 자세를 바로 잡고, 신왕을 기다렸다. 루이 또한 로렌스, 히르메와 함께 자리를 바로 고쳤다. 어쩐지 긴장이 되기까지 했다. 루이는 엘리자베스 공주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렇게 얼마간 기다리자, 오르간 소리에 맞춰 화려하게 차려입은 엘리자베스 공주가 중앙의 길을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모습이 루이의 눈에 들어왔다.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한걸음, 한걸음 당당히 내딛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에서 감히 눈을 뗄 수 없었다. 새하얀 드레스가 그녀를 더더욱 빛내고 있었다. 재상이 있는 쪽으로 다가가는 엘리자베스를 보며 루이를 생각했다. 이보다 더 완벽한 여왕은 없다고. 루이는 저도 모르게, 엘리자베스가 다스리는 하폰 왕국의 미래를 상상하고 말았다.

눈이 부시게 빛이 났다.

허나 이루어질 수 없는 상상이었다.

‘헛된 망상이다.’

루이는 속으로 되뇌며 엘리자베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누이는 어느새 재상 앞에 서있었다. 무릎을 꿇고, 맹세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재상 또한 엘리자베스 공주가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폐하께 여쭙겠습니다. 폐하께서는 하폰의 영토를 수호하시고, 왕국을 평안히 통치하겠습니까?”

“영토를 수호하고, 왕국을 평안히 통치하겠습니다.”

“국왕 폐하로부터 나오는 모든 권력을 법과 공정함 그리고 자비로움으로 행사하시겠습니까?”

“모든 권력을 법과 공정함 그리고 자비로움으로 행사하겠습니다.”

“하폰 가의 장녀, 폰트리온 엘리자베스 하폰이 아닌 하폰의 여왕으로 왕국을 통치할 것을 엄숙히 서약하시겠습니까?”

“이름을 버리고, 하폰의 여왕으로서 왕국을 통치할 것을 서약하겠습니다.”

엘리자베스의 말에는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었다. 누이는 벌써부터 여왕이 된 듯이 싶었다. 루이는 한동안 숨을 쉬지 못 했다. 이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하나 같이 시선을 떼어내지 못 하고 있었다.

“이로서 하폰 가의 장녀, 폰트리온 엘리자베스 하폰을 하폰의 여왕으로 임명하나이다! 오래도록 통치하소서!”

이 말과 동시에 재상이 엘리자베스의 머리 위에 왕관을 올렸다. 첫째 누이의 머리 위에 황금과 보석으로 치장된 왕관이 씌워졌다. 비록 작은 관이지만, 저걸 위해서 무수히 많은 이들이 피를 흘렸다. 밀튼 또한 저것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과, 왕관을 손에 넣었으나 얼마 가지 못 해 죽고 말았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머리 위에 왕관이 씌워졌다는 것을 느끼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후, 누이가 뒤돌자 모든 귀족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간간히 ‘여왕 폐하 만세!’라던가 ‘오랫동안 통치하소서!’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루이가 생각하기에 초대 왕을 제외하고, 역대 왕들 중에 가장 축복받은 계승식이 아닐까 싶었다. 잠시간 엘리자베스를 바라보던 루이는 문득 고개를 돌려 로렌스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바짝 긴장한 얼굴로 두 주먹을 꽉 쥐고 있는 형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이 뒤에 있을 귀족들의 모략이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이에 루이는 살며시 로렌스의 손을 잡아주며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속삭여주었다.

“걱정 마십시오, 형님.”

이러한 루이의 말에 로렌스는 그제야 표정을 풀며 고개를 끄덕였다. 루이는 문득 로렌스나 히르메나, 참 다루기 쉬운 오누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긴 그러니까 루시아에게 간단히 쳐내어진 것일 것이다.

쓴웃음을 터트린 루이는 로렌스의 손을 놓아주고는 엘리자베스의 뒤를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부터는 엘리자베스가 여왕이 되었음을 온 백성들에게 알릴 차례였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여기에 엘리자베스가 온전한 여왕임을 알리기 위해선 루이와 로렌스가 반드시 참석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 사실을 다른 귀족들도 알고 있었기에 기꺼이 루이의 앞길을 비켜주었다.

덕분에 루이와 로렌스는 엘리자베스를 그 누구보다도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엘리자베스 또한 대성당 밖으로 나온 루이와 로렌스를 보곤 반가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허나 대성당을 나온 순간부터는 오롯 백성들을 위한 시간이었다. 오랜 시간 이들이 여왕의 대관식을 기다려주었으니, 응당 엘리자베스 또한 보답을 해줘야 되는 것이었다.

이것이 그녀의 첫 번째 맹세에 해당되는 것이었다.

왕국을 평안히 통치하기 위해서는 민심부터 얻어야 되니 말이다.

엘리자베스 또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금세 루이에게서 시선을 떼어낸 뒤에 거리에 몰려나와 있는 백성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와아아아아!”

누이가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백성들이 환호성을 터트렸다. 이번 여왕은 그 누구보다도 화려하고 아름다웠으며, 우아했다. 빛이 나고 있었다. 비록 거리가 떨어져 있긴 하지만 이렇게 함께 나란히 걷고 있다는 사실이 영광스러울 정도였다.

“여왕 폐하 만세!”

“영원토록 통치하소서!”

백성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엘리자베스는 힘든 기색 하나 없이 대성당에서 왕성까지 꿋꿋이 걸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왕성에 다다르자, 문을 지키고 있던 기사 둘이 문을 열어주었다. 왕성 안으로 들어서는 여왕의 첫 걸음이었다.

엘리자베스는 크게 숨을 들이켜고는 그대로 성큼 한 걸음 내딛었다. 이 이상 왕성으로 들어가지 못 하는 백성들은 뒤에서 그런 여왕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첫 걸음을 들인 순간 우레와도 같은 환호성을 터트려주었다.

백성들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루이는 문득 엘리자베스가 부러워졌다. 자신이 받지 못 했던 걸, 누이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질투심이 일어나거나 하진 않았다. 루이가 보기에도 엘리자베스는 여왕으로서 너무나도 잘 어울렸으니 말이다.

왕성 안으로 발을 들인 엘리자베스 여왕은 예정된 식순대로 연회장으로 향했다. 귀족들 또한 여왕의 뒤를 따랐다. 이젠 귀족들이 여왕께 맹세를 해야 될 차례였기 때문이었다. 이건 루이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랄프 산맥 일대를 통치하고 있는 후작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처럼 엘리자베스 여왕을 따라 연회장 안으로 들어서자, 귀족들이 미리 맞춰둔 순서에 맞춰 여왕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가장 먼저 맹세한 것은 첫째 누이의 외척인 루펜시아 공작이었다.

“루펜시아 공작 가의 가주, 다르한 칼 루펜시아가 엘리자베스 여왕 폐하께 충성을 맹세합니다.”

“그대의 충성을 받아드리겠다. 루펜시아 공작, 그대를 루펜시아 공작 가의 가주로 인정하며 필로스 반도의 영토를 지배하는 걸 허락하겠다. 그대는 필로스 반도를 법과 관습으로 다스리며, 왕국의 안전을 위해 공헌하겠는가?”

“필로스 반도를 법과 관습으로 다스리겠으며, 왕국의 안전을 위해 공헌하겠습니다.”

관례상 하는 것이었기에 행사는 별다른 이견 없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처럼 루펜시아 공작이 끝나자, 루이 또한 엘리자베스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 모습에 엘리자베스는 저도 모르게 살짝 웃고 말았다.

막내의 모습이 너무나도 대견했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어엿한 사내로 보였다.

한 없이 어려 보이던 막내는 더 이상 없었다. 그 사실이 조금 아쉬우면서도, 늠름하게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루이를 보니 또 기쁘기도 했다.

“이켈리아 루이 하폰이 엘리자베스 여왕 폐하께 충성을 맹세합니다.”

“그대의 충성을 받아드리겠다. 후작, 그대를 랄프 산맥의 정당한 통치자로 인정하겠다. 그대는 랄프 산맥 일대를 법과 관습으로 다스리며, 왕국의 안전을 위해 공헌하겠는가?”

“랄프 산맥 일대를 법과 관습으로 다스리며, 왕국의 안전을 위해 공헌하겠습니다.”

이처럼 충성을 맹세한 루이는 고개를 들어올렸다. 엘리자베스는 그런 막내를 한참 바라보다가 이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로서 충성 맹세가 끝난 것이다.

루이는 다음 귀족을 위해서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음 귀족들이 차례대로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충성을 맹세했으며, 여왕은 기꺼이 그들의 충성을 모두 받아주었다.

그리고 이 모든 행사가 끝나자, 왕위 즉위를 축하하는 연회가 열렸다. 계승식만큼이나 화려했다. 아니, 이번에 왕성 중앙에서 왕위 계승식을 치루지 못 만큼 이번 연회는 더없이 사치스러웠다.

다소 부담스러울 정도였지만, 이 모든 비용을 루펜시아 공작이 지불했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물며 여왕의 외척이기도 하니, 명분도 적절했다. 사치를 즐기지 않는 엘리자베스 여왕 또한 외삼촌의 호의에 감사하며 연회를 즐겼다.

루이는 로렌스, 히르메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적당히 시간을 보냈다. 이쪽에서 먼저 귀족들에게 접근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몇몇 귀족들이 루이와 무어라 말이라도 붙여보려고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루이에게 접근한 귀족은 예상대로 루펜시아 공작이었다.

“후작 각하, 이곳에 계셨군요.”

가벼운 인사로 시작한 대화는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한 이야기, 왕국 정세에 대한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루이는 분위기를 깨지 않으며 적당히 받아쳤다. 그리고 마침내, 대화가 절정에 달했을 때, 루펜시아 공작이 루이를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후작께선 여왕 폐하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훌륭하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왕국을 평화롭게 통치하시겠지요.”

“허나 그건 결코 쉽지 않을 일일 테지요. 왕국이 많이 안정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곳곳에 위험이 산재해있으니까요. 또한 후계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후계는 너무 이른 게 아닙니까? 여왕 폐하께선 이제 막 왕위에 오르셨습니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하지만 혼인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않습니까? 또한 그 혼인으로 폐하의 지위를 보다 공고히 할 수만 있다면 굳이 뒤로 미룰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후작 각하와 로렌스 왕자님 중에 한 분이 여왕 폐하와 혼인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더 이상 백성들도 불안해하지 않을 겁니다. 또한 지방 귀족들도 이전과 같은 불온한 생각을 품지 않을 테지요.”

“과연 그렇군요.”

“더욱이 후작 각하에 대한 중앙 귀족들의 불만도 잠재울 수 있을 겁니다. 어찌 보면 여왕 폐하보단 후작 각하께 좀 더 도움이 되는 일이 되겠군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금 바로 대답을 해달라는 건 아닙니다. 벌써부터 서둘러야 될 일이 아닐뿐더러, 로렌스 왕자님의 생각도 들어봐야 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내일 밤, 장미궁에서 좀 더 이야기를 나누어 보심이 어떻겠습니까? 로렌스 왕자님까지 모신 상태에서 두 분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그는 진심으로 루이를 위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그리고 그 말에 루이는 속으로 웃음을 삼키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 작품 후기 ============================

뒤치기엔 역시 뒤치기죠!

울티오r 님 : 항상 감사합니다.

ppk12 님 : 전 맛없습니다!

플레이어드 님 : 힉

노스아스터 님 : 포위라니요! 풀어주세요!

나데스 님 : 으으, 맛 없다니까요?

매실농축액2 님 : 확실히 대성당에서 식을 올리기에 더없이 좋죠.ㅋㅋ

[炎風] 님 : 그러게요. 왜 그런 걸까요?

수천천사 님 : 수천천사님 진짜 오랜만에 뵙네요.ㅋㅋㅋ 자매덮밥은 에필 이후에 꼭 써보겠습니다.

eastarea 님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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