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폰 전기-146화 (146/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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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

연회는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먹고 노는데 이골이 난 귀족들답게 지친 기색이 하나 보이지 않았다.

삼삼오오 모여서 친목을 다지거나, 서로 눈이 맞은 남녀가 어디론가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질펀한 유흥이었다. 허나 이것에 익숙지 않은 로렌스와 히르메는 무척이나 피곤해보였다.

특히나 로렌스는 다음 날, 귀족들에게 살해당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탓에 얼굴에 근심이 짙게 깔려있었다.

루이는 그런 형이 걱정 되어, 히르메와 함께 먼저 궁으로 돌려보냈다.

이 자리를 지키는 건, 루이 하나만으로도 충분했으니 말이다. 물론 루이 또한 두 오누이와 함께 궁으로 돌아가 쉬고 싶었다. 하지만 루이는 로렌스나 히르메와는 다르게 후작이란 직위를 지니고 있었다.

괜히 자신까지 자리를 비워서 오해를 사고 싶진 않았다. 하물며 이 자리엔 중앙 귀족들뿐만이 아니라 지방 귀족들과 외국의 사신들까지 함께 하고 있었다. 그러니 구태여 눈에 띄는 행동을 할 필요는 없었다.

여하튼 이런 루이의 배려에 로렌스와 히르메는 무척이나 고마워해하며 자신의 궁으로 돌아갔다. 두 오누이에게 있어서 여러 사람들로 북적이는 연회장은 독과도 같았으니 말이다.

루이는 연회장을 벗어나는 형과 누이를 배웅해주고는 다시금 연회장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지방 귀족들에게 루이의 곁으로 다가와, 로렌스와 히르메를 챙겨주는 루이의 우애를 칭송해주었다.

이 기회에 루이에게 잘 보여서 한 밑천 잡아보려는 심보였다. 일단 그들이 보기엔 루이는 더없이 좋은 먹잇감이었으니 말이다.

반면에 중앙 귀족들은 적당히 거리를 두고 있었다. 적의를 내비쳐보이지도, 그렇다고 해서 호의를 표시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곧 죽을 인물이란 것이었다. 물론 속사정을 몰랐다면, 그저 무관심이라고만 생각했을 것이다.

루이는 저 멀리서 수군거리고 있는 중앙 귀족들을 한번 힐끔 보고는 이윽고 시선을 거두었다. 저쪽에서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이쪽에서도 신경을 써줄 까닭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루이는 자신의 주변에 모여든 지방 귀족들과 적당히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렇게 연회가 막바지에 달했을 무렵, 엘리자베스 여왕이 루이를 호출했다.

루이는 지방 귀족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에 시종을 따라 첫째 누이가 기다리고 있는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종의 안내를 받아 방 안으로 들어서자, 소파 등받이에 편히 등을 기댄 채로 쉬고 있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이 보였다.

“많이 피곤하신 모양입니다, 누님.”

이런 루이의 말에 곱게 감겨있던 눈이 천천히 떠졌다.

방금 막 잠에서 깬 탓에 눈빛이 더없이 나른해보였다. 엘리자베스는 살짝 몸을 일으킨 뒤에 오른손으로 자신의 옆자리를 두드렸다. 여기에 앉으라는 것이었다. 루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윽고 누이가 가리킨 옆자리에 앉았다.

일단 여왕 폐하의 명령이지 않은가? 들어주어야함이 마땅히 옳다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이처럼 루이가 옆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엘리자베스가 소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어왔다.

기분 좋은 향기가 났다. 누이는 아무런 말도 없이 다시금 눈을 감았다. 루이 또한 누이를 따라서 눈을 감았다. 방 안은 조용하기 짝이 없었다. 떠들썩하기 그지없던 연회장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마치 다른 세계에 온 듯했다.

엘리자베스는 아무런 말도 없이 루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다가, 슬그머니 손을 뻗어 막내의 손을 붙잡았다.

“고마워, 루이. 나를 믿어줘서.”

첫째 누이는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루이가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하지는 않을까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시내 중심가의 대성당에서 왕위 계승식을 치렀을 때도 그러했다.

그녀는 대성당 안으로 들어섬과 동시에 루이부터 찾았다. 그리고 2층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루이를 본 순간, 이루 말 할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다.

막내가 자신을 믿어주었다는 사실이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제가 누님을 믿지 않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루이는 조용히 엘리자베스의 손을 마주잡아주었다.

누이는 그 손을 피하지 않았다. 조용히 미소 지어 보여주었다. 둘은 한동안 이 분위기를 즐겼다. 대화는 없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편안했다. 루이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루이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다가 이내 살짝 고개를 들어 올리며 물었다.

“내 모습이 이상하진 않았니?”

“무척이나 아름다웠습니다. 모든 이들이 누님의 모습에 넋을 잃지 않았습니까? 저 역시 그랬습니다.”

루이의 칭찬에 엘리자베스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걸렸다.

누이는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나흘 전에 있었던 오찬 이후, 간만에 하는 대화여서 그런지 엘리자베스는 평소보다 많은 말을 했다.

그 모습을 이상하게 여길 법도 하건만 루이는 묵묵히 누이의 말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동안 이야기꽃을 피우던 엘리자베스는 문득 루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루이.”

“네.”

“고마워. 네가 내 곁에 있어서 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엘리자베스는 루이의 몸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비록 아슬롯은 지켜주지 못 했지만, 루이만큼은 지켜주고 싶었다. 또한 자신에게 이만큼이나 정을 주는 혈육은 루이가 유일했다. 아슬롯이 죽었을 때, 자신만큼이나 슬퍼해주었던 이는 루이 밖에 없었다.

그런 막내를 잃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가장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에게 있어서 그것은 너무나도 끔찍한 경험이었으니 말이다.

루이는 엘리자베스의 마음을 이해하곤 마주 안아주었다. 완전히 이해할 순 없었지만,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또한 엘리자베스가 형제자매를 얼마나 아끼고 있는 지도 알았다. 그렇기에 루시아의 손에 순순히 죽어준 것일 것이다.

외척인 루펜시아 공작을 끌어들여, 충분히 루시아를 쓰러트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누님이 제 곁에 있어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이리 말한 루이는 누이의 몸을 좀 더 강하게 끌어안아주었다. 엘리자베스는 소년의 품에 안긴 채로 작게 흐느꼈다. 가슴이 미어져,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흐느껴 울던 엘리자베스는 이윽고 마음을 추스르고는 루이의 품에서 벗어났다.

너무 오랫동안 막내를 잡아두고 있었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창문 너머로 햇살이 부스스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다. 서로를 위해서라도 이쯤에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편이 좋았다. 엘리자베스는 검지로 눈물을 훔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루이 또한 자리에서 일어난 뒤에 엘리자베스와 함께 방 밖으로 나갔다.

그 후, 루이가 엘리자베스를 궁까지 배웅하려 했으나, 누이는 그것을 정중히 거절했다. 도리어 자기가 루이를 궁까지 배웅해주겠다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단순히 루이의 누이가 아닌 하폰의 여왕이었다.

여왕이 후작을 궁까지 배웅한다는 건,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두 사람은 쓴 웃음을 터트리며 여기서 작별하기로 했다.

“편히 주무십시오, 누님.”

“너도, 루이.”

작별 인사를 나눈 두 사람은 각자의 궁으로 돌아갔다. 비록 몸은 피곤했지만, 발걸음은 무척이나 가벼웠다. 루이는 아침 햇살로 가득찬 복도를 지나 자신의 궁으로 돌아온 뒤에 그대로 쓰러지듯이 침대에 누웠다.

그 탓에 간밤 동안 루이를 기다리다가 잠든 세람이 깜짝 놀라선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리고는 이내 침대에 누워있는 제 주인을 발견하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그 옆자리에 몸을 눕혔다.

루이는 이런 세람의 행동에 슬쩍 웃고는 품 안에 꼬옥 끌어안고서 잠을 청했다.

============================ 작품 후기 ============================

용량 죄송합니다! 5시부터 썼는데, 무리였습니다!

eastarea 님 :ㅋㅋㅋㅋ 불이 안 붙어!

도즈 님 : 음, 그것에 관해선 여러가지로 준비했습니다. 분명 마음에 드실 겁니다.

매실농축액2 님 : 엌ㅋ 적절하군요

qoewh 님 : 죽이다니요! 설마요.

[炎風] 님 : 덮..!

Lgb 님 : 최대한 빨리 연재에 들어가겠습니다.ㅠㅠ

노스아스터  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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