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폰 전기-147화 (147/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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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

새벽에 잠든 루이는 해가 중천에 떠오른 정오에야 일어날 수 있었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참 무사태평한 인간이 아닐 수 없었다. 몸을 일으킨 루이는 저도 모르게 실없이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침대에서 내려와 창밖을 내다보니, 부산하게 돌아다니고 있는 시종 시녀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행사가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큰 행사는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귀족들의 유흥을 위한 자잘한 행사에 불과했다.

사실 까놓고 말하자면, 왕과 귀족들의 친목을 다지는 다과회 정도라고 생각하면 옳았다. 단지 그 규모가 일반적인 다과회에 비해서 지나치게 클 뿐이었다.

창문을 열고 크게 숨을 들이켜자, 약간 서늘한 공기가 폐부를 가득 채웠다. 딱 좋았다. 예감이 좋았다. 루이는 방 안에 비치되어 있는 종을 흔들어서 시녀를 불렀다. 가신들과 함께 점식 식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식사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제 있었던 연회에서 루펜시아 공작에게 장미궁으로 초대받았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분명 다들 긴장할 것이다. 특히나 그 중에서도 아벨과 쿤, 테온의 긴장감은 다른 이들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다.

이 셋은 루이와 마찬가지로 장미궁 안으로 들어서게 될 테니 말이다.

무려 목숨이 걸린 일이었다. 어지간히 간담이 큰 사람이 아니고서야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루이 또한 마음 같아선 자기 대신에 대리인을 내세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가 귀족들이 눈치를 채고서 계획을 뒤로 미루기라도 한다면 여간 곤란해지는 게 아니었다. 그러니 기회를 잡았을 때, 확실하게 잡을 필요성이 있었다.

하물며 루이는 아벨과 쿤을 믿었다. 물론 오르가를 위시한 열다섯 명의 다크 엘프도 말이다.

차분히 숨을 고른 루이는 여전히 잠에 취해 있는 세람을 깨운 뒤에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 안에는 이미 가신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루이는 상석에 앉은 뒤에 루펜시아 공작의 초대를 받았음을 알려주었다. 그러자 루이의 예상대로 다들 하나 같이 굳은 얼굴을 했다. 오필리아는 무언가 말하고 싶어 하는 얼굴로 루이를 애절하게 쳐다보았다.

새끼 고양이도 울고 갈 만큼 애절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루이는 그것을 애써 외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필리아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미안하구나, 오필리아.’

자신을 걱정해주는 오필리아가 기특하기는 했지만, 그것에 신경을 써줄 여유가 없었다. 루이는 마음을 다잡은 뒤에 일찍이 상의한대로 계획을 진행시켰다.

일단 가장 먼저 장미궁으로 향한 것은 오르가였다.

장미궁으로 암살자가 올지, 방화범이 올지, 무장 병사들이 올진 알 수 없었지만 먼저 가서 잠복해 있는다고 해서 하등 손해 볼 건 없었다. 물론 지금 이 시간이 한창 해가 높이 떠올라있는 정오이긴 했지만, 다크 엘프들의 잠행술은 낮이라고 해서 들킬 만큼 수준 낮은 게 아니었다.

실제로 그들은 밀튼의 진채에 숨어들어, 무수히 많은 귀족들을 암살했었다. 밤낮 가릴 것 없이 말이다. 그러니 다크 엘프의 능력에 대해서 새삼 의구심을 가질 필요성이 없었다.

여하튼 오르가에 관한 건,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이 다음이 문제였다.

귀족들의 눈에 거슬릴 만큼 많은 수의 병사들을 운용할 수는 없었기에 아자젤과 오필리아는 미리 뽑아둔 소수의 병력만 이끌고서 장미궁 근처에 대기해야 되었다. 만약에 정말로 습격이 시작된다면 곧바로 장미궁 안으로 들이닥쳐야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필립 남작은 다른 귀족들과 함께 중앙 귀족들을 습격할 준비를 할 것이다.

분명 일이 시작된다면 큰 혼란이 발생할 것이다. 그리고 그 혼란을 틈타서 도망치려하는 중앙 귀족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루이는 그것을 용납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필립 남작도 그것을 잘 알았기에 중앙 귀족들이 알아차리지 못 하도록 은밀하게 준비를 했다. 그리고 이처럼 준비를 마쳤을 때쯤, 해가 뉘엿뉘엿 저물기 시작했다.

슬슬 시간이 된 것이다.

루이는 긴장된 마음을 추린 뒤에 아벨과 쿤 그리고 테온을 데리고서 장미궁으로 향했다.

“왔구나, 루이.”

장미궁 앞에는 로렌스가 먼저 와있었다. 그는 긴장된 기색이 가득한 얼굴로 루이를 반겼다. 손끝이 덜덜 떨고 있는 게 훤히 보였다. 도망치지 않은 게 용할 정도였다. 루이는 이런 형을 안심시켜주기 위해서, 아무런 말없이 손을 잡아주었다.

로렌스는 자신의 손을 감싸는 따스한 온기를 느끼고는 그제야 안심했다. 동시에 그제야 주변 사물이 뚜렷하게 보였다. 신기하게도 울렁거리던 속이 금세 진정되었다. 어쩐지 막내가 자신과 같은 인간이 아닌 신처럼 느껴졌다.

신기한 일이었다.

“넌 떨리지 않는 것이냐?”

“저도 떨립니다.”

루이는 희미하게 웃으며 솔직하게 대답했다. 떨리지 않을 리가 없었다.

아무리 꾸준히 단련을 했다지만, 루이의 나이는 여전히 어렸다. 평생 검 한번 잡아보지 못 한 성인이라면 모를까, 잘 훈련된 병사를 상대하기엔 다소 벅찼다. 이런 상태에서 조금만 어긋나면 그대로 모든 게 끝이었다.

하지만 루이는 아벨과 쿤을 믿었다. 두 사람이라면 충분히 자신을 지켜주고도 남았다. 더욱이 테온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라도 루이를 지켜주겠노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처럼 충직한 이들을 놔두고서 불안감에 떠는 것도 참 우스운 일이었다.

차분히 숨을 고른 루이는 로렌스의 손을 놓아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걱정은 들지 않습니다.”

이러한 루이의 태도에 로렌스는 막내가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범인으로선 감히 가질 수 없는 대범함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루이의 곁에 서있는 가신들의 모습을 보니, 또 한 편으로는 이해가 되었다.

다들 하나 같이 강직한 자들이었다. 또한 루이를 무척이나 위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로렌스는 그것이 참 부러우면서도 고마웠다. 루이를 이다지도 위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었으니 말이다.

한동안 루이와 그 가신들을 번갈아보던 로렌스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막내인 루이가 이토록 의젓하게 나오는데, 형인 자신이 벌벌 떨고 있어선 체면이 도저히 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가자구나.”

“알겠습니다.”

로렌스가 앞장서서 장미궁 안으로 들어섰다.

장미궁은 예전부터 귀한 손님을 접객하는 용도로 쓰였기 때문에 다른 궁들과는 그 구조가 판이하게 달랐다. 궁 안으로 향하는 복도만 해도 그러했다. 기둥 기둥마다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는 예술품들이 세워져 있었으며, 좌우로는 붉은색 장미로 만개해있는 정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매분 매초,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허나 마냥 즐기기엔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루이는 마른침을 삼켰다. 과연 루펜시아 공작이 어떻게 나올까? 음식에 독이 뿌려져 있을 때를 대비해서 해독약도 챙겨왔다. 물론 완전히 해독시켜주지는 못 할 테지만, 어느 정도 중화시켜서 시간을 벌어줄 것이다. 하지만 루이가 생각하기에 루펜시아 공작은 독약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독약은 너무 뻔한 수법인데다가, 음식에 손만 데지 않는다면 통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루이가 먼저 먹어보라며 루펜시아 공작에게 권유하기만 해도, 도리어 곤란해지는 건 공작이었다.

그러니 십중팔구 독은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가능성이 있는 거라고 한다면 술을 잔뜩 먹여서 취하게 만든 뒤에 화재로 깔끔하게 태워버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통할 가능성이 극히 낮았다. 앞서 설명한대로 마시지만 않으면 그만이었으니 말이다.

그럼 남은 건, 하나뿐이었다.

루이가 여기까지 생각할 무렵 갑자기 낌새가 이상해졌다. 루이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앞서 걸어가던 로렌스도 무언가 불온한 느낌을 받은 모양인지, 살짝 상기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아벨과 쿤, 테온. 세 사람이 두 왕자를 보호하듯이 삼면에 섰다. 그리고 약간 적막감이 감도는 와중에 뭔가가 날카로운 파공음을 내며 날아왔다. 그것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아벨이었다.

그는 놀랍도록 정교하게 검을 휘둘러 화살을 막아내었다.

“전하!”

동시에 아벨이 루이를 자신의 등 뒤로 숨겼다. 또다시 화살이 날아올 것을 대비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그의 예상대로 화살이 더 날아왔다. 저들의 행동으로 보건데, 여기서 루이와 로렌스를 죽인 뒤에 불태울 생각인 모양이었다.

참으로 대범한 행동이었다. 설마하니 루펜시아 공작이 자기 모습도 드러내지 않고 먼저 공격할 줄이야. 하지만 이것도 모든 중앙 귀족들이 루펜시아 공작을 중심으로 결탁한 탓에 가능했던 것일 것이다. 모든 귀족들이 이 모략에 동의하니, 이 일에 대해 의구심을 품을만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물론 엘리자베스 여왕이 의문을 품긴 하겠지만, 불에 타버린 두 왕자의 시신 앞에선 무의미했다.

그래도 다짜고짜 죽이려 한 것은 조금 너무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제까지 본 루펜시아 공작의 행동으로 보건데, 최소한 타협은 볼 수 있을 듯이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작은 여지마저 사라지고 말았다.

이쯤 되면 루이도 봐줄 필요가 없었다.

“오르가!”

루이가 큰 소리로 오르가를 부르자, 나무 위에 있던 무언가가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두 왕자를 향해 화살을 쏘던 병사였다.

목줄기에서 시뻘건 핏줄이 꾸역꾸역 뿜어져 나오고 있는 걸 보니, 다크 엘프에게 당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것을 시작으로 화살을 쏘고 있던 병사들이 하나둘씩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쯤 되니 적들도 당황한 듯이 싶었다. 동요한 기색이 여실히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제대로 한판 붙어볼 생각인 모양이었다.

차분히 적들의 수를 세어보니 예순 일곱 명이었다.

참 많이도 숨어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벨과 쿤은 주눅 든 기색 하나 없이 앞으로 나왔다. 두 사람 모두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도저히 수적 열세에 몰린 사람들이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적들은 그것에 기분이 상하기라도 한 모양인지, 사나운 기세를 뿜어내었다.

“왕자를 죽여라! 놓쳐선 안 된다!”

노골적으로 자신을 노리는 적들의 태도에 루이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역시 로렌스가 말한 그대로였다. 물론 새삼스러울 건 없었지만 말이다.

루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적들이 사방에서 둘러싼 채로 달려들었다. 예순 일곱이나 되니, 그 압박감이 사뭇 달랐다.

그러나 아벨과 쿤이 적들을 향해 검을 휘두른 순간, 그 압박감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영웅적인 사투라고 불러도 전혀 모자람이 없었다. 쿤을 그 특유의 패도적인 기세로 적들을 거칠게 몰아붙이고 있었고, 아벨은 적들이 루이와 로렌스에게 다가가지 못 하도록 막고 있었다.

“아악!”

“컥!”

사방에서 시뻘건 핏물과 단말마가 터져 나왔다.

예순이 훌쩍 넘어가는 적들이 고작 두 명을 감당하지 못 해서 형편없이 밀리고 있는 것이었다. 적 대장이 나서서 쿤을 막아보려 했지만, 검을 채 다섯 번도 휘둘러보기 전에 제압당하고 말았다.

이쯤 되니 도망치는 적들도 나왔다.

핏물을 뒤집어 쓴 채로 적들을 베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곤 겁에 질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개의치 않았다. 뒤에서 사태를 관망하고 있던 오르가와 다크 엘프들이 도망치는 병사들을 모조리 붙잡은 탓이었다.

결국 예순 일곱 명 중에 쉰 두 명이 죽고 열다섯 명이 붙잡혀, 루이의 앞에 놓이게 되었다.

============================ 작품 후기 ============================

회귀 이전에 쿤이 깡패였던 이유.

루이가 철가면을 괜히 무서워했던 게 아닙니다.

울티오r 님 : 항상 감사합니다!

플레이어드 님 : ...? 먼 말이세요?

나데스님 : 꼭 노력하겠습니다

활자광자 님 : 거의 다 완결났으니, 이거 쓰고 바로 매니저 쓰겠습니다~

[炎風] 님 : 엌ㅋ 알겠습니다

노스아스터 님 : 하,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메르카츠 님 :엌ㅋ 좋은 혈통ㅋㅋ

eastarea 님 : 기다려주시니 감사합니다.;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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