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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
“누가 사주한 것이지?”
루이가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을 받은 적 대장은 침으로 걸쭉해진 핏물을 땅바닥에 퉷 하고 뱉으며 되물었다.
“내가 알려줄 것 같소?”
드문드문 빠진 이빨을 드러내며 히죽거리는 꼴이 영 보기 좋지 않았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자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녀석이 순순히 실토해줄 거라곤 처음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다.
“얼마를 받고 이 일을 꾸민 것이냐? 내가 그 금액의 두 배를 얹어주마.”
“부질없는 짓이오, 후작. 어차피 여기서 다 죽을 테니까.”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는 모양이었다. 또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돈 때문에 루이를 죽이려고 한 것은 아닌 듯이 싶었다. 돈이 목적이었으면, 최소한 망설이는 기색을 보여주었을테니 말이다.
아마도 어딘가의 망나니 같은 귀족이 루펜시아 공작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자신의 아들 혹은 사생아에게 가문을 위해 희생할 것을 강요하여 보낸 것일 게 틀림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눈앞의 사내가 조금은 측은해졌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결국 마지막에 선택을 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이 자였으니 말이다.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었다.
루이는 좀 더 정보를 캐내고자, 짐짓 놀란 척을 하며 물었다.
“여기서 다 죽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적 대장은 숨길 일도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곧 있으면 폭발이 일어날 것이오. 장미궁을 통째로 날려버릴만큼 거대한 폭발이 일어날 테니 기대해도 좋을 거요, 후작.”
냉소적으로 웃는 그의 태도가 소름끼칠 정도로 싸늘했다. 여기서 모두가 화마에 휩싸여 죽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태도였다. 허나 이런 그의 믿음은 곧 깨어질 것이다.
루이는 오르가를 불렀다. 폭발물을 제대로 처리했는지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오르가, 이 자들이 묻어둔 폭발물을 어떻게 했지?”
“모두 호수에 던졌다.”
오르가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반면에 적 대장은 도무지 믿기 어렵단 표정을 지어보이며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중간에 발악하듯이 ‘거짓말 치지 마라!’라고 소리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게 거짓말인지, 아닌지는 곧 있으면 알게 될 일이었다.
루이는 폭발이 일어나기까지 기다리며 적 대장의 안색을 살펴보았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시간이 지날수록 창백해지는 그의 얼굴을 엿 볼 수 있었다.
폭발 계획까지 루이의 손에 파훼된 셈이었다.
루이는 적 대장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것에 맞춰, 탕! 하고 총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놀란 새들이 푸드덕 날아올랐다. 사방에서 와아아아! 하고 병사들의 함성이 울렸다. 그리고 뒤이어 병장기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스레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 의심 많은 루펜시아 공작은 장미궁 밖에도 병사들을 잔뜩 대기시켜둔 모양이었다. 정말이지 질리지도 않는다.
혀를 내두른 루이는 적 대장을 포함한 세 명의 병사만 살려두고, 나머지는 모조리 죽였다. 사로잡은 열다섯 명을 모두 데려가기엔 거추장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루이는 다크 엘프들로 하여금 포로들을 어깨에 들쳐 메도록 한 뒤에 정원을 급히 빠져나갔다.
“왕자를 찾아라! 반드시 죽여야만 한다!”
악에 받친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적들의 얼굴에는 하나 같이 독기가 잔뜩 서려있었다. 반드시 두 왕자를 죽이고 말겠다는 태도였다. 이해하지 못 할 것도 없었다. 만약에 여기서 이들이 두 왕자를 죽이는데 실패한다면, 가문에 큰 화가 미칠 테니 말이다.
하지만 오필리아와 아자젤이 이끄는 병사들은 고르고 고른 정예병이었다. 하물며 화승총까지 소지하고 있었다. 적들이 기세 좋게 달려들라치면 총구에서 불길이 치솟아, 어김없이 적들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설혹 운이 좋아, 가까이 접근한다고 하더라도 아자젤과 그 휘하 기사들을 상대하기엔 그 힘이 턱없이 모자랐다.
주변을 한번 둘러보니, 남은 적병들은 이제 겨우 서른 명 정도 밖에 없었다.
무얼 하던 간에 저들에겐 승산이 없었다.
일방적이라고 해도 좋을 전투는 순식간에 끝났다. 적들은 끝까지 루이와 로렌스를 찾아 죽이려고 했지만, 오필리아와 아자젤이 이끄는 병사들에 의해서 그 뜻을 이루지 못 했다. 전투를 끝마친 오필리아는 뒤늦게 루이를 발견하고는 한달음에 달려와, 소년의 품에 안겼다.
오필리아는 품에 안긴 채로 늦게 와서 죄송하다고 했지만, 루이는 괜찮다는 말로 소녀를 위로해주었다.
실제로 딱히 늦은 것도 없었고 말이다.
루이는 오필리아를 충분히 달래주고는 아자젤에게 물었다.
“루펜시아 공작은 어디에 있지?”
“시룬궁입니다. 중앙 귀족들과 함께 행사에 참석했다고 합니다. 필립 남작이 전령을 보내 알려주었습니다. 주군께서 명령만 내리신다면 바로 칠 수 있습니다.”
“더 지켜볼 것도 없지. 바로 가겠다.”
루이는 병력을 추스른 뒤에 곧바로 시룬궁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왕실 근위대와 마주쳐 발목이 붙잡히긴 했지만, 루이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기보단 그들을 무력으로 제압하고는 아벨과 쿤을 앞세워 시룬궁 안으로 들어섰다.
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행사를 한참 즐기고 있던 귀족들의 고개가 일제히 문 쪽으로 향했다. 다들 하나 같이 호기심 어린 표정이었다. 그러나 문을 열고, 궁 안으로 들어온 이가 루이라는 것을 발견하고는 경악을 금치 못 했다.
특히나 그 중에서도 루펜시아 공작의 표정이 단연 압권이었다.
공작은 마치 똥이라도 씹은 것처럼 얼굴을 구기고 있었다. 루이는 그런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비웃음을 날려주었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얼굴이로군, 루펜시아 공작.”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군요.”
“시치미 떼어도 소용없소. 그대가 나와 내 형님을 죽이려 했다는 건, 이미 다 밝혀졌으니까.”
이러한 루이의 말에 엘리자베스가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게 대체 무슨 말인가? 후작을 죽이려했다니? 공작, 그게 정말인가?”
“아닙니다, 여왕 폐하. 단언컨대 저는 후작 각하를 죽이려 한 적이 없습니다. 무언가 사소한 오해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엘리자베스의 추궁에 루펜시아 공작은 기다렸다는 듯이 거짓말을 늘여놓았다.
허나 이번 일은 단순히 거짓말을 늘여놓는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실제로 이번 일의 실패는 루펜시아 공작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치명적인 것이었다. 왕족을 죽이려다 실패했다. 단순히 얼버무린다고 해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실대로 토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끝까지 잡아떼어야만 했다. 그러나 공작이 잡아뗀다고 해서, 순순히 물러나줄 루이가 아니었다.
루이는 엘리자베스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여왕 폐하, 공작이 저와 로렌스 왕자를 죽이려 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장미궁의 호수 밑을 살펴보면 루펜시아 공작이 심어둔 폭발물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또한 저는 공작이 보낸 습격자들을 사로잡기까지 했습니다.”
이리 말한 루이는 다크 엘프들에게 손짓해, 어깨에 들쳐 메고 있는 포로들을 바닥에 내려놓도록 했다. 엘리자베스의 시선이 다시금 루펜시아 공작에게 향했다. 이에 공작은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제가 그 폭발물을 심어두었다는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게다가 습격자들이 저를 모함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루펜시아 공작. 그대가 지하 밀실에서 다른 귀족들과 함께 나와 로렌스 왕자를 죽이기 위해서 모략을 짜던 걸, 히르메 공주께서 엿듣고 있었다는 걸 말이야. 히르메 공주님께서 말씀하시길 그대들끼리 혈서도 작성했다더군. 그대가 정녕 떳떳하다면 내 병사들로 하여금 여기 있는 이들의 저택을 수색하게 하더라도 상관없겠지?”
“…….”
일의 전말을 다 들은 루펜시아 공작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 했다.
더 이상 빠져 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루이가 병사들로 하여금 자신의 신변을 구금한 뒤에 저택을 뒤진다면, 혈서 정도는 금방 찾아낼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었다.
독 안에 든 쥐 신세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중앙 귀족들이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소란스런 와중에 도망칠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필립 남작과 다른 이들에 의해서 가로막히고 말았다. 중앙 귀족들은 저마다 낭패한 기색을 내비쳐 보이며 서로 은밀하게 눈빛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수군거리는 말소리도 들려왔다. 그리고 그렇게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중앙 귀족 하나가 앞으로 나와서 입을 열었다.
“이 일은 모두 루펜시아 공작이 계획한 일이오. 우린 상관없소!”
이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모든 귀족들이 고개를 주억였다. 루펜시아 공작을 내치기로 한 것이었다. 비록 혈서가 있긴 했지만, 루펜시아 공작의 강요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동참했다고 한다면 그 죄가 약간이나 감해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루이는 이들을 용서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애당초 이번 일을 이용해서 중앙 귀족들을 모조리 내쫓기로 결정하지 않았던가? 루이는 휘하 가신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모조리 붙잡아라!”
루이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중앙 귀족들이 병사들에 의해서 하나둘씩 붙잡히기 시작했다.
“이거 놔라! 후작,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수 있을 것 같소?”
“이것은 역모요! 당장 그만두시오!”
“여왕 폐하, 이를 두고만 보실 생각이십니까? 세상 천지를 통틀어, 후작에게 이런 권리는 없습니다!”
여기저기서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엘리자베스는 이 광경을 모두 지켜보며, 어찌 해야 될지 섣불리 판단을 내리지 못 했다. 그리고 이 와중에 왕실 근위대에 시룬궁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걸 본 중앙 귀족들은 다시금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호소했다.
“여왕 폐하, 지금 당장 왕실근위대에게 명령을 내려서 후작를 체포하셔야 합니다!”
“이는 도가 지나친 처사입니다. 여왕 폐하께선 법과 관습으로 다스리셔야 합니다!”
“이건 한낱 후작이 행사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닙니다. 오롯 폐하의 권리입니다!”
확실히 그 말대로 귀족들을 재판할 수 있는 권리는 오롯 왕에게만 있었다.
루이의 행동은 다소 과격한 행동이었다. 엘리자베스도 그것을 느끼곤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루이를 말릴 수는 없었다.
루이가 이토록 화내는 것이 이해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걸 왕으로서 그저 두고 봐도 되는 것일지……. 그것이 그녀를 망설이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처럼 엘리자베스가 망설이자, 왕실 근위대 역시도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이를 느낀 루펜시아 공작이 다급히 입을 열어 말했다.
“여왕 폐하, 지금 당장 명령을 내려 후작을 벌하셔야 합니다. 그는 지금 왕국의 근간을 무너트리려고 하고 있으며, 폐하의 존엄에 도전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는 분명 역모죄에 해당됩니다!”
공작의 외침에 엘리자베스의 고개가 루이 쪽으로 향했다. 루이 또한 그 시선을 느끼곤 첫째 누이를 마주 바라보았다. 아무런 말없이, 그저 담담히. 바라보기만 했다. 엘리자베스가 자신에게 검을 겨누지 않을 거란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회귀 이전에, 바보처럼 루시아의 손에 죽어버린 누이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런 루이의 생각대로 엘리자베스는 검 끝을 자신의 외척인 루펜시아 공작에게로 겨누었다.
“이제 그만하시오, 공작! 그대의 죄는 명백하오. 다른 귀족들 역시도 마찬가지오!”
이리 소리친 첫째 누이는 루이에게 명령을 내렸다.
“……후작, 지금 당장 이들을 지하 감옥으로 데려가시오!”
============================ 작품 후기 ============================
다음화에서 마무리 되고, 각 히로인들의 H씬이 이어질 것 같습니다.
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쓰기 힘들지만, H씬은 좀 편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간만에 쓰려니 설레기까지 하네요.ㅎㅎㅎ
나데스 님 : 나데스님도 사랑입니다!ㅎ
봉황천뢰 님 : 힘내고 있습니다!
[炎風] 님 : [炎風] 님도 사랑입니다.ㅋㅋ
eastarea 님 : 진짜 밸붕캐들이죠.ㅋㅋㅋ
메르카츠 님 : 빨간 노블의 힘을!
qoewh 님 : 엘리자베스가 짱이긴 하죠.ㅋㅋ
노스아스터 님 : 맞아욬ㅋ 사기캐 앞에선 모든 게 무력하죠
차가운 냉커피 님 : 전율을 느끼셨다니.. 정말로 감사합니다!ㅎㅎ
stevenji 님 : 이거 완결 내고, 되도록 바로 연재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