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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에필로그]
루펜시아 공작을 비롯한 중앙 귀족들을 지하 감옥에 구금한 지 나흘째 되던 날, 혈서가 발견되었다. 루이와 로렌스, 두 왕자를 암살하기 위해서 모의한 혈서였다. 감옥에 갇혀있던 공작은 이 소식을 전해들은 직후, 자신의 모든 죄를 시인했다.
조금 더 부인하며 버틸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신의 죄를 순순히 시인한 것은 루이의 자비심에 조금이라도 기대어 보고자 함에 있었다. 물론 그 자비심이 공작의 목숨을 살려주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가문만큼은 달랐다. 이번 일로 많은 피해를 입겠지만, 가문원의 목숨만큼은 건질 수 있을지도 몰랐다.
루이는 이런 그의 기대를 받아주었다. 루펜시아 공작가가 소유하고 있던 영지의 일부를 왕의 직할령으로 바꾸고, 벌금을 내리는 것으로 그친 것이다. 공작은 그것에 무척이나 감사해했다. 하지만 이런 공작보다도 기뻐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엘리자베스 여왕이었다. 비록 루펜시아 공작이 이번 암살 미수 사건의 주동자라고는 하지만 그 동안 자신의 안위를 보살펴준 외척이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그 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이 틀림없었다. 루이 또한 이런 엘리자베스의 마음을 짐작하고 있었기에 공작에게 기꺼이 자비를 베풀어 준 것이었다.
그러나 루펜시아 공작과 함께 지하 감옥에 갇혀있던 다른 중앙 귀족들은 이런 루이의 자비를 받지 못 했다. 아니, 애당초 기대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다. 이들은 루펜시아 공작과 함께 두 왕자의 암살을 시도했을 뿐만이 아니라, 그 동안 밀튼과 휴안. 두 왕자가 서로 다투도록 배후에서 부추기기까지 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왕이 제대로 국정을 살피지 못 하는 동안 권력을 잡아 자신들의 배를 부풀리기까지 했다. 혼란스런 시기를 틈타서 권력을 향유하고 만끽했던 이들에겐 자비란 필요 없는 것이었다.
이제 그만 대가를 치룰 때였다.
루펜시아 공작과 중앙 귀족들은 시내 중심가 밀로렌 광장에서 처형되었다. 한 명도 빠짐없이, 모조리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로서 루이를 위협할만한 귀족은 단 한명도 남지 않게 되었다. 물론 처형된 중앙 귀족들의 가문원들이 반기를 들고 일어서긴 했다.
그들의 심정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여기서 반기를 들지 않으면, 자신들 또한 수도로 압송되어 처형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헛된 저항에 불과했다. 이들 모두 아르페 평원에서 있었던 루이와 밀튼의 전투로 소유하고 있던 병사를 대부분 상실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쿤을 앞세운 루이의 군대를 맞상대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실제로 반기를 드는 족족 한 달도 채 되지 못 해서 제압당했다. 루이는 사로잡은 귀족들의 영지와 재산을 모조리 압수한 뒤에 그들을 국가 소속의 노예로 만들었다. 이들은 남은 평생을 노예로 살아야 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식들에게도 노예의 신분을 물려주어야 될 것이다.
이처럼 모든 것을 정리한 루이는 이듬해 봄에 엘리자베스 여왕과의 결혼식을 진행했다. 두 사람의 결혼식은 하폰의 수도, 팔칸에서 거행되었다. 하멜른에 머물고 있었던 루시아와 비비안 그리고 휴안도 팔칸으로 돌아와, 두 사람의 결혼식을 축하해주었다. 물론 전 약혼녀였던 비비안이 서운해 하는 기색을 내비쳐 보이긴 했지만, 이는 엘리자베스가 직접 나사서 비비안과 루이의 결혼을 주선해줌으로서 간단히 무마할 수 있었다.
물론 여왕이 직접 나서서 자신의 부군이 첩을 들일 수 있도록 주선해준다는 것은 무척이나 이례적인 일이긴 했다. 하지만 아주 경우가 없는 일인 것은 아니었다. 여성 쪽이 불임일 경우, 종종 첩을 권유하기도 하니 말이다. 물론 엘리자베스는 이에 해당되지 않지만, 루이의 전 약혼녀에 대한 배려라고 한다면 충분히 설명이 가능했다. 더욱이 전 약혼녀가 자신의 자매이자, 공주인 비비안이었다. 미묘한 일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격에 맞지 않는다고는 보기 어려웠다.
덕분에 루이는 엘리자베스와 혼인 한 뒤에 왕성에서 따로 한 번 더 비비안과 결혼식을 치렀다. 물론 엘리자베스와 결혼했을 때와는 다르게 백성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어 축복을 받진 못 했지만, 비비안은 그저 루이와 결혼을 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행복한 모양인지 입가에서 웃음기를 지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모두가 만족할만한 결혼식이라고 할 수 있었다. 루이는 이처럼 두 누이와 혼인을 한 뒤에 테온과 상의하여 국가 개혁을 차근차근 진행시켰다. 테온은 곧바로 귀족 계급을 철폐한 뒤에 투표를 통해서 관리자를 뽑는 것이 아닌 왕이 지정한 관리를 파견하여 영지를 관리하는 형식을 취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테온은 밀튼에 의해서 아카데미에서 쫓겨난 이후에도 꾸준히 이 개혁에 대해서 고민해왔었던 모양이었다. 또한 하루아침에 개혁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고 말이다.
테온은 루이를 도와, 나라의 개혁을 꾸준히 진행했다. 하지만 모든 게 순탄치는 않았다. 하폰과 인접해 있는 국가, 루렌고스에서 로스 백작령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클레임을 걸어온 것이다. 이는 로스 백작이 자신의 작위를 지키고자, 루렌고스에 도움을 구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마침 루렌고스에는 로스 백작의 인척이 작위를 가진 상태로 머물고 있었으니 말이다.
명목상 루렌고스의 요구는 적법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요구를 순순히 들어주었다가는 하폰이란 나라가 사지 분열된 채로 찢겨져 나갈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루이는 루렌고스의 요구를 거절했다. 그러자 루렌고스에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선전포고와 동시에 12만의 군대를 하폰으로 보냈다.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루이는 아벨을 총사령관으로 삼아 10만의 군대를 출병시켰다. 비록 루렌고스에서 보낸 병력보다 2만이나 적은 숫자이긴 했지만, 신식 병기인 화승총과 대포로 무장한 루이의 군대에게 있어서 그 정도 차이는 별 것도 아니었다. 하물며 선봉에 선 것은 쿤이었다.
하폰의 10만과 루렌고스의 12만은 로스 백작령을 가로지르는 대평원에서 맞붙었다. 서로 거추장스러운 대화는 필요 없었다. 먼저 움직인 것은 루렌고스 쪽이었다. 뿔나팔 소리와 함께 루렌고스의 보병들이 수십 겹의 횡렬 대형을 이루어 진격을 시작했다. 상대의 전술은 다수의 보병을 전면으로 내보내, 수적인 우위를 바탕으로 백병전을 건다는 지극히 정석적인 전술이었다. 실제로도 2만 정도의 차이면 분명 유효한 전술이었다.
더욱이 이 와중에 기사단과 중갑 기병을 운용하여 좌우 측면을 타격한다면, 상대방의 진형은 금세 붕괴될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이 모두, 상대방에게 접근했을 때에만 유효한 방법이었다.
루렌고스의 군대가 진격을 시작한 순간, 150문의 대포가 동시에 불을 뿜었다. 쾅쾅, 울리는 포성과 함께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쏘아져 나간 포탄이 창과 방패를 들고서 전진해 오던 루렌고스 보병들의 몸을 짓뭉개거나, 팔다리를 날려 뒷열의 병사들에게 공포를 심어주었다.
오로지 백병전을 위해, 밀집된 대형으로 전진해오던 병사들에겐 너무나도 끔찍한 재앙이었다. 고통에 찬 끔찍한 비명과 함께 겁에 질린 고함이 사방에 울려 퍼졌다. 더불어 전진 또한 자연스럽게 느려졌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루렌고스의 지휘관들이 큰 소리로 병사들을 다그쳐보지만, 그 때마다 날아온 아벨의 화살에 의해서 목줄기가 꿰뚫려 죽고 말았다.
하지만 이처럼 혼란스런 와중에도 기사단과 중갑 기병들은 하폰의 진형을 붕괴시키기 위해서 달려들었다. 그 모습이 흡사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과도 같았다. 그 모습을 본 화승총병들이 일사분란하게 자세를 잡았다.
매일 같이 훈련받던 것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맨 선두 열은 무릎 쏴 자세로, 뒷열은 서서 쏴 자세로 자리를 잡은 뒤에 사격을 개시했다. 그러자 총성과 함께 선두에서 달려오고 있던 적 기사단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몇몇은 운이 좋게도 갑옷에 총알이 박혀서 낙마하는 것으로 그쳤지만, 그 운도 뒤따라오고 있던 중갑 기병들과 충돌하거나 짓밟히는 것으로 사그라졌다.
이처럼 기사단이 쓰러지자, 다음은 중갑 기병들이었다. 사격이 끝난 총병은 재빨리 뒷열로 빠져서 재장전을 하고, 뒷열에서 대기하고 있던 총병들은 앞으로 나와서 사격을 개시했다. 빠르게 이루어지는 3교대 연발 화승총 사격 전술에 루렌고스의 중갑 기병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되었다.
루렌고스 군은 말 그대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정면에서 달려들었던 보병대는 쉼 없이 쏟아지는 포격에 전열이 완전히 붕괴되었고, 좌우측에서 돌격했던 기사단과 중갑 기병은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봐야만 되었다. 하지만 이건 아직 시작에 불과했다. 루렌고스 군이 전열을 채 가다듬기도 전에 쿤이 이끄는 중갑 보병이 역습을 한 것이다.
백병전을 벌이기도 전에 포탄 세례를 받아, 막대한 피해와 더불어 사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져 있던 루렌고스 군은 하폰의 역습에 반항 한번 제대로 하지 못 하고 순식간에 무너져 나갔다. 몇몇 기사들이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서 용감히 쿤에게 달려들어 보았지만, 그 때마다 목이 잘려져 나가는 건 루렌고스의 기사들뿐이었다.
쿤의 무위와 용맹은 루렌고스 군에게 공포를 심어주었다. 두려움에 질린 적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고, 그런 적들은 하폰의 중갑 보병들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손쉬운 사냥감이었다. 아군은 적들이 뒤돌아 도망치기가 무섭게, 창칼에 찔려 죽거나 사로잡혔다. 루렌고스의 10만 군세는 첫 충돌이란 말이 무색하도록 한순간에 증발해버렸다.
전장에 남은 거라곤 고통에 울부짖는 부상자와 공포에 질린 채 도망치고 있는 탈영병들뿐이었다. 물론 전열을 가다듬는다면 절반 정도는 건져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걸 가만히 두고 볼 아벨이 아니었다. 아벨은 신호탄을 하늘 위로 쏘아 올렸다. 그러자 우측으로 크게 원을 그리며 돌고 있던 아자젤의 중갑 기병대가 신호를 보고는 루렌고스 군을 향해 달려들었다.
“와아아아아!!”
힘찬 함성과 함께 중갑 기병대가 루렌고스 군의 후방을 덮치자, 적들은 겁에 질린 양떼처럼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몇몇 창병들이 창대를 높이 세워들고서 기병대를 막아보려 했지만, 제대로 전열조차 갖춰지지 않은 창병대가 중갑을 두르고 있는 기병대를 막을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저 맛난 먹잇감에 불과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루렌고스 군은 자신들이 전쟁에서 패했음을 인정하고 퇴각하기 시작했다. 아벨은 패주하는 적들을 쫓아, 그대로 하폰 국경 밖까지 내몰았다. 이 때, 살아서 루렌고스로 돌아간 적들의 숫자는 고작 3만 밖에 되지 않았다.
하폰의 대승이었다.
루렌고스는 로스 백작령에 대한 권리를 깔끔히 포기하고, 손을 떼어내었다. 그리고 로스 백작은 수도로 압송되어, 모든 재산과 영지 그리고 작위를 빼앗기고 국외로 추방되었다. 이제 그는 하폰은 물론이고 고향땅으로 평생 돌아오지 못 할 것이다. 물론 그의 가문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처럼 하폰이 루렌고스와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자, 주변 나라에서 하폰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달라졌다. 이전에는 호시탐탐 하폰의 이권을 노리는 승냥이와 같았다면, 지금은 어떻게든 하폰이 보유하고 있는 신식 무기를 얻고 싶어서 안달이 나있다고 할 수 있었다. 다들 앞다투어 하폰으로 사절단을 보냈다. 이에 루이는 그들을 기꺼이 받아주었다. 개혁을 하고 있는 와중에 주변 국가와 척을 지어봐야 하등 도움이 되는 게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이 문제에 대해선 테온과 아놀드가 알아서 잘 해주었다. 두 사람은 서로 협력하여, 무수히 많은 국가가 우호 관계를 쌓는데 주력했다. 그 결과 하폰은 거의 모든 나라와 우호 관계를 맺는, 무척이나 놀라운 성과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개혁 직후, 혼란스러웠던 국내 정세는 빠르게 안정되어 갔으며 귀족 계급은 몰락했다. 대신에 그 자리를 빠르게 시민들이 채워나갔다. 귀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높은 자리를 꿰차고 있었던 무능력한 이들은 시민들의 손에 의해서 끌어내려지고, 그 자리를 유능한 시민들이 차지했다.
계몽이 이루어진 것이다.
하폰은 높아진 시민 의식에 발맞춰 중앙집권 국가로서 본격적으로 변해 나아갔다. 더불어 하폰을 다스리고 있던 엘리자베스 여왕이 회임을 이유로 루이에게 왕의 직위를 넘겨주었다.
“폐하께 여쭙겠습니다. 폐하께서는 하폰의 영토를 수호하시고, 왕국을 평안히 통치하겠습니까?”
“영토를 수호하고, 왕국을 평안히 통치하겠습니다.”
“국왕 폐하로부터 나오는 모든 권력을 법과 공정함 그리고 자비로움으로 행사하시겠습니까?”
“모든 권력을 법과 공정함 그리고 자비로움으로 행사하겠습니다.”
“하폰 가의 다섯 번째 아들, 이켈리아 루이 하폰이 아닌 하폰의 왕으로서 왕국을 통치할 것을 엄숙히 서약하시겠습니까?”
“이름을 버리고, 하폰의 왕으로서 왕국을 통치할 것을 서약하겠습니다.”
루이는 엄숙히 서약하며, 엘리자베스가 씌워주는 왕관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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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폰 전기, 완결.
정말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소설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쓰는 동안, 머리 싸매고 쓰느라 고생이 많았지만 이렇게 완결을 내고나니 후련하기도 하네요. 물론 아직 떡밥을 회수하지 못 한 오르가와 루시아 이야기가 남아있으니, 외전 형식으로 풀어낼 생각입니다.
외전 형식으로 아벨, 오르가, 루시아 이야기나 나올 겁니다.
남은 편수도 재밌게 감상해주세요.
그리고 여기까지 읽어주신 독자님들, 정말로 감사합니다.
우젤랑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