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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가 된 세계에서-4화 (4/163)

00004 [최면술을 얻다.] =========================

나는 다람쥐에게 재빨리 최면술을 사용했다.

“너는 이제 잠이 든다.”

찍찍?-

내 말에 다람쥐가 무슨 개소리하냐며 도망쳤고, 익숙한 시스템 음성이 내 귓가를 울렸다.

[최면술에 실패하셨습니다.]

나는 계속 해서 똑같은 소리만 하는 시스템, ‘마더’에게 물었다.

“야... 이거 성공하기는 하냐?”

몇 시간을 뛰어 다녀 다람쥐와 눈을 마주치기까지 그 생고생을 했는데, 막상 최면술을 사용하면 실패한다. 이게 말이나 되는 걸까.

내 물음에 앓는 소리를 내는 마더.

[끄응, 이럴 리가 없는데...... 이건 전부 사용자님께서 정신력이 낮기 때문이라고요.]

뭣이?! 네가 내 순두부 같은 마음에 상처를 내는구나.

어쨌든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다람쥐한테도 안 되면 도대체 누구한테 최면술을 쓰라는 거야. 앙?! 지나가는 할아버지도 날 지팡이로 때리고 가겠다!”

[에이, 몇 번이나 시도했다고 벌써 포기하시는 거에요. 보세요. 계속 사용하니까 경험치도 올랐잖아요!]

그러냐?

마더의 말에 나는 레벨업을 위한 경험치를 확인해봤다.

[다음 레벨까지 필요 경험치 : 99EXP]

정말 오르긴 올랐군. 그 수치가 너무 쥐꼬리만 해서 감흥도 안 온다는 게 문제지만. 그 때 무언가 고민하고 있던 마더가 다른 방법을 제안해왔다.

[사용자님. 너무 그렇게 직접적인 최면 말고 조금 돌려서 최면을 걸어보세요. 바로 잠이 든다... 라던지 너는 내 명령을 듣게 된다... 같은 건 아무리 생각해도 사용자님의 힘으로는 안 될 것 같아요.]

“후우, 알았어.”

나는 한숨을 쉬며 마더의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아침 일찍 산에 올라왔는데, 얼마나 뛰어다녔는지 벌써 배도 고파오고, 아르바이트 갈 시간도 다가오고 있었다. 이번에 안 되면 그냥 집에서 공생하고 있는 바퀴벌레한테나 시험해봐야겠다 생각하며 나는 다시 산속을 뛰어 다녔다.

“헉헉, 시발. 다람쥐 새끼들.”

산속의 우사인볼트라고도 불리는 다람쥐들답게 나를 보자마자 대부분이 도망친다. 하지만 우사인볼트가 있으면 느릿한 잠만보도 있는 법. 나는 결국 도망치지 않는 다람쥐 한 마리를 발견했다.

약간 토실토실하게 볼을 부풀린 채 여유롭게 도토리를 까먹고 있는 다람쥐는 그대로 나를 반찬삼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젠 다람쥐한테도 무시당하네.’

나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천천히 다람쥐와 눈을 마주쳐가며 입을 열었다.

“너는 갑자기 몸이 무거워 질 거야.”

찍?-

이번에도 뭔 개소리냐고 찍찍거리는 다람쥐. 그러나 이번에는 최면술에 실패했다는 마더의 목소리가 안 들렸기에 나는 자신감을 갖고 최면술을 연이어 사용했다.

“무거워진 몸 때문에 넌 이제 움직이기 싫어질 거야.”

찍찍!-

뭐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찍찍거리니 열 받는군. 아직까지 도망치지 않는 걸로 보아 통하고 있는 거겠지.

“움직이지 않으니 이제 잠이 오네? 술술 잠이 올 거야. 그리고 잠이 들겠지.”

찌이...-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나뭇가지 위에서 도토리를 까먹던 다람쥐의 눈꺼풀이 천천히 감기기 시작했다. 동시에 내 귓가에 이때까지 듣지 못 했던 새로운 말이 들렸다.

[최면술에 성공하셨습니다.]

[첫 성공으로 인한 보너스 경험치 : 5EXP]

[다음 레벨까지 필요 경험치 : 93EXP]

그러나 나는 마더의 목소리를 신경 쓰는 것보다 갑자기 잠들어 나무에서부터 떨어지는 다람쥐를 받는 게 더 급했다. 나는 급하게 땅을 박차 몸을 날려 다람쥐를 받아냈다.

스스슷!-

거친 흙과 자잘한 돌멩이들이 내 하복부 전체를 긁는 것을 느끼며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래도 내가 몸을 날린 덕분일까, 다람쥐는 무사했다. 최면술이 확실히 먹힌 듯 나무에서 떨어지면서도 다람쥐는 눈을 뜨지 않고 새근새근 잘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절로 웃음이 지어지며 가슴속에서부터 소리가 튀어나왔다.

“으아아!! 드디어 통했다아!!”

내가 잠든 다람쥐를 하늘 위로 들어 올리며 소리치고 있는데, 뒤에서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가 통했는데?”

나는 급하게 몸을 돌렸다가 깜짝 놀랐다. 그곳에는 어제랑 똑같이 트레이닝복을 입은 옆집 누나인, 지혜가 땀을 흘리며 제자리 뛰기를 하고 있었다.

“꿀꺽.”

왠지 어제보다 가슴이 더 커진 것만 같은 그녀를 보며 나는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녀의 이마에서부터 땀이 그녀의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는데, 그것을 보고 있으니 계속 목에 갈증이 일어났다.

거기다 제자리 뛰기를 하고 있으니 그 거대한 가슴이 위아래로 계속 출렁거렸고, 그 음란한 모습에 나는 그녀의 물음에 답해야 하는 것도 까먹은 채 멍하니 서있었다.

그런 나를 보며 지혜 누나가 결국 제자리 뛰기를 멈추며 나에게 다가왔다.

“정말...... 누나가 물었잖아. 뭐가 통했냐니까?”

“어, 어 그게.......”

누나가 가까이 다가오자 멀리서 보기만 했었던 가슴이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내 시야에 꽉 차는 거대함. 그리고 땀 때문인지 트레이닝복 안으로 보이는 새하얀 티까지. 저 안에는 브래지어가 있을 거고, 그 안에는 누나의 유방이 있겠지.

땀에 흠뻑 젖은 누나는 존재 자체가 나를 흥분시키는 살아있는 미약 같았다. 나는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끼며 계속 말을 더듬었다.

“어, 다람쥐잖아.”

그 때 지혜 누나가 내 두 손바닥 위에서 곤히 자고 있는 다람쥐를 발견했는지 소리쳤고, 이제는 아예 내 팔에 찰싹 달라붙으며 다람쥐를 만지기 시작했다.

“헤에, 신기하다. 죽은 건 아닌 거 같은데...... 안 깨어난다. 그치?”

“그, 그렇죠. 아, 아마 겨울잠이라도 자는 거 아닐까요?”

“응? 아직 가을인데?”

“하하하, 이, 일찍 자는 녀석도 있는 법이죠.”

이제는 부드러운 가슴이 내 팔에 직접적으로 닿고 있어서 인지 머리와 아랫도리에 피가 쏠리며 정신이 점점 혼미해져왔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결심했다. 최면술의 첫 대상은 무조건 이 누나로 하겠다고.

“다람쥐 너무 귀엽다. 꺄! 부드러워.”

자신의 가슴이 내 팔에 닿는 것 따위는 신경도 안 쓰이는지 계속 다람쥐를 만지고 있는 누나. 그녀는 이내 다시 운동을 해야 하는 것을 깨달았는지 아쉽다는 표정을 짓고는 나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그러나 정작 아쉬운 것은 나였다. 나는 거대한 두 개의 과일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끼며 세상이 무너지는 것만 같은 아쉬움을 느꼈다.

“헤헤, 지우야. 아르바이트 열심히 해. 누나는 다시 운동하러 갈게.”

“네, 누나. 나중에 봐요.”

“응? 그래.”

나중에 침대에서 봐요.

...라는 뒷말을 생략한 나는 아직도 곤히 잠든 다람쥐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나중에 누나한테 써볼 최면을 조금 시험해 봐도 괜찮겠지.

“너는 내가 손가락을 튕기면 깨어날 거야. 그리고 눈앞에 있는 내 명령만을 받아들이게 될 거야. 알았지?”

내 말이 끝나자마자 마더가 태클을 걸어왔다.

[아니, 그렇게 말하시면 어떻게 해요. 손가락 튕기는 게 뭔지... 자고 있는 다람쥐가 어떻게 안다고. 소리를 들려줘야죠. 소리를! 거기다가 내 명령이라니... 다람쥐가 ‘내’가 누군지 어떻게 알아요. 좀 더 자세하게 하세요.]

“..........”

세상에나. 이런 걸로 잔소리를 먹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나는 마더의 말에 다시 최면을 수정했다.

“너는 내 손가락 튕기는 소리, 그래. 이 ‘딱!’하는 소리에 깨어나고, 눈앞에 있는 존재. 남자한테 절대복종하는 거야. 이제 됐지?”

[으음, 네. 그 정도면 될 거에요.]

후우, 시스템 눈치를 봐야하는 사용자라니. 나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내가 한심하다.

나는 이내 손가락을 튕겨 소리를 냈다.

딱!-

부스스-

소리를 들은 다람쥐의 눈이 떠지더니 나만을 멍-하니 바라봤다. 나는 그런 다람쥐를 보며 최면술이 성공했음을 깨닫고 지혜누나한테 써먹어 볼 최면술을 미리 실험해봤다.

“네 이름은?”

찍찍!-

“그렇구나. 서지혜구나! 하하하!”

[......사용자님?]

나를 부르는 마더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나중에 지혜 누나가 내 앞에서 이렇게 해줄 거라 생각하니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쓰리 사이즈는?”

찍! 찍! 찍!-

“뭐? 88-53-90이라고? 크하하하하하하하!!”

[저, 정신 차리세요. 사용자님!! 그 녀석은 다람쥐라고요!!]

“크헤헤헤헤헬!!”

[사, 사용자니이임!!!!]

나는 그 날, 결국 다람쥐에게 최면술을 시험하다 아르바이트에 지각하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판소원더풀임 / 찍찍...

반딧가 / 음, 기분이 나쁘셨다면 죄송하지만...제 소설은 보통 이래서요... 그래도 최대한 줄여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람쥐 귀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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