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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가 된 세계에서-9화 (9/163)

00009 [갑작스러운 이별] =========================

지혜 누나하고 사귄지도 벌써 3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처음 누나하고 섹스를 했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 뒤로는 성관계도 그랬지만, 솔직히 둘 다 연애가 처음이다 보니 둘이 함께 놀러다니는 게 더 즐거웠던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섹스를 안 한 건 아니지만. 주 목적이 그것이 아니었다는 거다.

세상에 이런 행복이 있다니. 이때까지 여자를 사귀지 않았던 난 천하에 다시 없을 병신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커플이 가지는 행복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내가 지금 있는 곳은 최면술 레벨이 0이었을 때 그렇게 뛰어다녔던 산속이었다. 심지어 쫒아 다니고 있는 것도 내가 제일 처음에 최면술이 성공했던 그 볼이 토실토실한 다람쥐였다.

누나가 그 때 보았던 다람쥐가 다시 보고 싶다고 나한테 소원을 빈 것이다. 당연히 그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호언장담한 나는 지금 입에서 단내가 풀풀 풍겨 나오고 있었다.

“헉헉, 이 돼지 자식. 진짜 겨울잠이라도 자러 간 건가.”

그냥 아무 다람쥐나 데려가자.

[사용자님... 정말!]

내가 그렇게 토실토실이를 찾는 것을 포기할 때쯤이었다.

찍찍!-

“아니, 이 목소리는...? 다람쥐 지혜!”

[......정말!! 다람쥐 지혜가 뭐에요. 다람쥐 지혜가! 마더는 사용자님이 점점 창피해지기 시작했어요!]

“..........”

어쨌든 왠지 소리만 들어도 내가 처음에 최면을 걸었던 다람쥐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나는 정말 심장이 터지고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자취방에서 내가 데려올 다람쥐를 목이 빠져라 기다릴 지혜 누나를 떠올리며 마지막까지 힘을 냈다.

“하악, 하악! 시발. 진짜 죽겠다.”

찍?-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나무 위에서 나를 반찬삼아 도토리를 까먹고 있는 볼이 다른 다람쥐의 세 배는 부풀어온 돼지 다람쥐 한 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다람쥐 지혜다!”

[...이제 그건 됐으니까. 최면술이나 쓰시죠. 흥!]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삐진 것 같은 마더에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 다람쥐와 나의 인연은 최면술을 쓰지 않아도 되는 끈끈한 사이로 묶여져 있다고.

나는 그렇게 믿고 최면술을 쓰지 않고, 천천히 다람쥐에게 손짓을 하며 불렀다.

“이리오렴. 다람쥐 지혜야.”

찍찍!-

내 손짓에 단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돌리고 도망치려는 돼지 새끼. 믿었던 내가 바보다. 나는 재빨리 최면술을 사용했다. 이제 능력 레벨도 1이었기에 굳이 간접적으로 돌려서 할 필요도 없었다.

“너는 몸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는다!”

[최면술에 성공하셨습니다.]

[흥!]

찍?!-

도망치려던 다람쥐가 순식간에 멈칫하더니 나무에서 떨어져 내렸고, 나는 ‘이번에도 또냐’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몸을 날렸다.

스스슷!-

“크아악! 이번에도 내 무릎이 다 까진 것처럼 아프다!”

찍찍!-

그런 나를 꼴좋다는 것처럼 비웃는 다람쥐. 몸이 굳은 주제에 잘도 웃는다.

“크, 그래도 지혜 누나가 좋아하겠지.”

나는 땀에 흠뻑 젖고,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며 다리가 후들거렸음에도 불구하고, 손에서 굳어 있는 다람쥐를 데리고 그대로 자취방을 향해 달려갔다. 누나가 기뻐할 얼굴을 떠올리며. 그러나 나를 맞이한 것은 거짓말처럼 텅 비어있는 누나의 방과... 단 하나의 종이였다.

[돌아올 때쯤이면...... 아니다. 미안해. 지우야. 누나가... 진짜 급한 일이 생겨서 너한테... 말도 못 하고... 아니야. 미안해. 그냥 누나가 다 미안해. 미...안해. 우리 헤어지자. 아니, 만나고 싶어도 이제 못 만날 거야.]

여기저기 얼룩져 있는 종이에 적힌 말이라고는 미안해가 거의 전부였다. 나는 순간 다람쥐를 내려놓고 두 손을 들어 천천히 얼굴을 쓸어내렸다. 눈물도 안 나왔다. 너무 놀라서... 그저 말이 안 나왔다.

[사용자님.......]

“잠깐만......마더. 잠깐만... 조용히 해줘.”

[..........]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누나하고 싸운 적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건 장난 식이었고... 어제만 해도 같이 알몸으로 침대에서 뒹굴고 있었는데.

“아! 내가 누나 잘 때 팔베개를 하고 있다가 빼서 그런 걸까? 하하하. 그런 거겠지? 그래서 장난치려는 건가? 아니면 팔 베게 때문에......헤어지려는.......”

[사용자님.......]

“미안해. 아니, 하....... 아무것도 아니야. 잠시만.......”

그제야 내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하고 흘러내렸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다.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진 누나한테 화가 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이게 현실인지 구별이 안 갔고, 무진장 슬펐다.

그래... 너무 슬펐다.

그 말 밖에......할 말이 없다.

[최면술이 해제됩니다.]

찍찍!-

그 때 다람쥐 지혜가 내 발을 타고 쪼르르 올라오더니 내 볼에 손을 올리며 툭툭 건드렸다. 나는 그 순간 울컥하는 마음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아무것도 없는 방에서 다람쥐를 부여잡고 소리 없는 울음을 터뜨렸다.

내 인생 처음 해봤던 사랑, 연애... 모든 것이...... 너무나도 짧은 3개월이란 시간 만에 끝이 난 순간이었다.

============================ 작품 후기 ============================

뜬금없는 편에 당황하셨을 분이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도 올리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냥 지혜와의 데이트 편을 적고 올리는 게 역시 낫지 않을까... 한편이라도 괜찮으니까 지혜하고의 보낸 시간을 적고 올리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데 이상하게 이번편이 계속 써졌습니다.

작가의 실수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고민 끝에 그냥 이번편을 올리고 이어가는 걸 선택했습니다.

*리리플은 다음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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