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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가 된 세계에서-11화 (11/163)

00011 [조우] =========================

“뭘 봐... 어?”

상대가 저런 반응을 보인다면 자신도 똑같은 반응을 하고 싶은 게 진리. 사실 실제로도 놀랐다.

“어? 그 때 그 엘프님?”

나는 아직도 그 때 그녀가 나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엘프는 진짜 초절정으로 예뻤으니까. 남자라면 기억하기 싫더라도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누굴 게임 직업 부르듯이 부르는 거야. 이 빌어먹을 인간님아.”

입담 하나만큼은 여전하군. 그래도 예쁘니까 용서해주자. 그런데 지혜 누나랑 사귀었던 탓일까, 눈앞에 있는 엘프가 진짜 예쁜 것만큼은 인정하겠는데... 그 때만큼 가슴이 미친 듯이 뛰지는 않았다.

사랑이란 것을 알아버린 탓인지, 아니면 갑작스런 이별에 내가 고자가 되어버린 걸지도.... 잠시만, 헉! 시발. 그러면 나 좆 된 거잖아.

[정말......사용자님. 정신 좀 차리세요.]

나는 하마터면 엘프가 보고 있는 앞에서 그대로 좌절해 주저앉을 뻔 한 것을 겨우 마더의 도움으로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내 엘프에게 말했다.

“물건 이리 주세요. 계산해드릴게요.”

이러한 내 태도에 엘프가 물건을 하나, 둘 올리며 피식 웃었다. 나는 그 순간 정말 잠깐이지만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었다. 와, 웃으니까 더 예쁘네. 아니, 신이라는 작자가 어떻게 저런 예술 작품을 만들어낸 거지. 정말이지... 굿 잡입니다. 신님.

“오, 지난번이랑 다르네? 그 때는 내 얼굴을 보고 멍하게, 가만히 있어놓고는 말이야.”

“.......”

지난 번 일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나.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엘프를 눈앞에 두어도 그리 가슴이 콩닥콩닥 뛰지 않았다. 그녀가 발가벗고 내 앞에서 스트립 댄스를 추면서 내 성기를 빨아주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나는 괜히 멋있어 보이려고 어디서 들어본 소리를 내뱉었다.

“사람은 언제나 변하는 법이죠.”

“......그래? 그렇지. 인간이란...... 그런 동물이었지. 고마워. 그걸 다시 기억하게 해줘서. 쌩큐. 인간.”

내 말에 엘프는 잠시 표정을 굳히더니 이내 아까보다 더 활짝 웃으며 내 볼을 살짝 쓰다듬어 주고 갔다. 나는 그녀가 그런 행동을 할 거라 도저히 예상을 못 했기에 순간 심장이 멎는 것만 같은 착각을 느꼈다.

두근!-

‘미, 미친. 이 쓰레기 같은 놈.’

나랑 똑같은 생각을 했는지 마더도 나를 욕했다.

[이익! 사용자님은 예쁜 여자면 다 좋은 거 에요? 그런 거 에요? 사귀던 여자랑 헤어 진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헤벌쭉 하는지... 흥! 마더는 실망이에요. 대실망이에요!]

야... 너무 그러지마. 나도 나한테 실망했단 말이야.

다행히 엘프 뒤로는 천천히 손님들이 빠지기 시작해, 그나마 편안히 아르바이트를 끝낼 수 있었고, 나는 다시 싸구려 패딩을 걸치며 집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오늘은 손님이 많아서인지 남는 음식이 없었고, 그렇기에 나는 두 손 전부를 주머니에 넣은 채 걸어가고 있었다.

거기다 내 가슴 주머니에 자고 있던 다람쥐는 어느새 깼는지 다시 얼굴을 드러내며 도토리를 까먹기 시작했다. 잘도 먹는군. 자고, 먹고, 자고, 먹고...네가 아주 상팔자로구나.

찍!-

[밤하늘이 예쁘네요.]

“그러게.”

나와, 마더. 그리고 다람쥐까지... 우리 셋은 나란히 퇴근길을 걸어가며 반짝거리는 밤하늘을 감상했다. 내가 입김을 내뿜을 때마다 밤하늘에 서리가 꼈고, 그것이 더욱 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것만 같았다.

찌익!-

떼구르르르!-

그 때 다람쥐가 잘 먹고 있던 도토리를 땅에다 떨어뜨렸고, 나를 향해 주워달라는지 손을 마구 휘저으며 찍찍거렸다.

찌익!! 찍찍!! 찍!!-

새끼, 하도 찍찍거리니까. 다람쥐인지 생쥐인지 구별이 안 가네. 그러나 나는 이 다람쥐한테 이상하게 정이가고,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약해졌다. 결국 백기를 들어올린 것은 나였고, 나는 투덜거리며 도토리를 줍기 위해 허리를 굽혔다.

“그래, 그래. 에휴... 이 몸께서 특별히 도토리를 줍기 위해 고개를 숙여드립니다요.”

그렇게 도토리를 주우려는 순간이었다. 내 머리 위를 무언가 스쳐지나가는 소리가 나더니 거짓말처럼 내 패딩의 모자가 잘려나갔다.

스팟!-

털썩!-

“.......”

나는 도토리를 줍기 위해 허리를 숙였던 자세 그대로 잘려 바닥에 떨어진 내 패딩 모자를 바라보았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몸이 안 움직여졌다. 침도 삼킬 수 없는 긴장감이 내 몸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그런 내 귓가에 아까 들었던 엘프의 목소리가 들렸다.

“헤에, 그걸 피했네? 혹시 너도 ‘그쪽’사람? 아니면...... 우연인가?”

“..........”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천천히 고개를 들 수 있었고, 내 눈에 보인 것은 마치 판타지 게임에서나 볼 수 있을 가죽 갑옷을 걸치고, 한 손에는 날카로운 검, 아마 레이피어라고 불리는 물건을 들고서, 전봇대 위에 고양이마냥 서있는 엘프를 발견할 수 있었다.

‘뭐야, 코, 코스프레라도 한 건가.’

너무 당황해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달빛에 반짝이는 레이피어. 멀리서도 느껴지는 검의 예리함에 나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사용자님! 도망치세요! 엘프는... 능력 레벨로 따지면 적어도 레벨4라고요! 사용자님의 최면은 전혀 먹이지 않을 거에요!]

“시발......말이 쉽지.”

그래 말은 쉽다. 날 마치 토끼마냥 여유롭게 바라보고 있는 저 엘프에게서 도망치라고? 그게 가능한 일일까. 차라리 얘기를 해보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저,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거죠?”

내가 뭘 했다고!

속으로는 소리쳤지만, 겉으로는 공손하게 물어봤다. 보이지 않은 검도, 실제 검도... 들고 있는 쪽은 바로 상대방이었다.

내 물음에 엘프는 웃음을 흘리기 시작하더니, 친절하게도 이유를 설명해줬다.

“그러네...... 네가 잊고 있었던 사실을 떠올리게 해줘서 말이야. 너무 고맙더라고. 하하하!! 고마워서... 미쳐버릴 것 같았어. 거기다가 너... 이제 날 보고 발정 안 하더라? 이상하단 말이야. 3개월 전만 해도 내 얼굴을 보고 바지를 부풀리던 인간 새끼가 갑자기 변했다? 기분이 나빠지더라고. 혹시 다른 엘프라도 따먹었니? 푸, 푸하하! 그럴 리가 없나?”

“미.......”

나는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생각하던 말을 내뱉을 뻔 했다. 미친년. 아니, 미친 엘프같으니라고. 그딴 이유로 지금 골목 한 가운데서 사람을 죽이려고 한단 말인가. 그러나 상대는 진심인 것 같았다.

“흐응, 시간 끌면...... 조금 곤란하거든. 이제 슬슬 죽여줄게.”

“너, 너는 몸이 굳을 거야!”

이판사판이라는 생각에 최면술을 사용해봤지만 역시 들려오는 소리는 기대했던 대로였다.

[최면술에 실패하셨습니다.]

[사용자님!! 도망쳐요!!!!!]

실패했다는 소리와 함께 목이 찢어져라 외치는 마더의 목소리까지.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등을 돌리려 했으나 그것보다 엘프가 움직이는 게 훨씬 빨랐다. 정말... 내가 보았을 때는 사라지는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전봇대 위에 있던 엘프가 움찔한다고 여기는 순간 이미 엘프는 내 눈앞에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향해 레이피어를 찔러오고 있었다.

[사용자님!!!]

마더가 안타깝게 불렀지만, 나는 순간 직감했다. 저 레이피어에 심장을 꿰뚫려 이대로 ‘죽는다’고. 그것을 직감하고 눈을 질끈 감은 내가 마지막에 했던 생각은 어처구니없게도 ‘엘프는 역시 웃을 때 정말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 목숨은 오징어보다 질겼는지, 아니면 내 직감은 역시 쓰레기였는지 나는 죽지 않았다.

채앵!-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내 앞에서 울려퍼졌고, 나는 질끈 감았던 두 눈을 천천히 떴다. 그곳에는 영화에서 튀어나왔는지 3m는 되어 보이는 남자가 팔로 엘프의 레이피어를 막아내고 있었다.

“뭐?”

엘프는 자신의 레이피어가 남자의 팔을 꿰뚫지 못 했다는 것에 놀란 건지, 아니면 나처럼 3m에 달하는 거대한 몸집에 놀란 건지 깜짝 놀라며 재빨리 물러섰다.

그 때 내 뒤에서 자그맣게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쏴.”

타앙!-

그 순간 저 빌딩너머에서 빛이 번쩍하더니, 조용하던 밤거리를 꿰뚫는 총소리가 울려 퍼졌고, 엘프는 재빨리 몸을 틀어 레이피어를 휘둘렀다. 엄청난 속도다. 저 속도를 내가 직접 눈앞에서 봤다니......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았고, 아직까지 내가 살아있다는 게 신기했다.

채애앵!-

거기다, 그것보다 놀라운 것은 엘프가 레이피어를 휘둘러, 보이지도 않는 총알을 튕겨냈다는 것이다.

“큭!”

그러나 총알이 가지고 있는 힘 자체는 전부 받아내지 못 했는지 바로 자신의 손목을 움켜쥐는 엘프. 그런 엘프를 보며 거구의 남자가 몸을 날렸다.

“쳇...!”

쿵쿵!-

달리기만 하는데 땅이 울릴 정도로 무겁고 거대한 남자가 자신을 덮치려고 하자 엘프는 그대로 혀를 차며 땅을 박차, 다시 전봇대 위로 올라가 나를 내려다봤다. 그리고는 다시 매혹적인 웃음을 흘리며 소리쳤다.

“아아, 아쉽게 됐네. 하필이면 오늘 ‘돌마스터(Doll Master)’를 만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운이 좋구나. 인간. 나는 이만 도망치도록 하겠어. 블링크(Blink).”

파팟!-

순간 엘프의 몸에서 살짝 빛이 난다 싶더니 모습을 감췄고, 이내 내 뒤에서도 붉은 머리를 가진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몸매나 얼굴을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 그녀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나에게 한마디를 내뱉더니, 거구의 남자에게 안겨 자리를 떠났기 때문이다.

“너도... 도망...치는 게 좋을... 거야. 곧... 온다... 그녀가.......아빠...쫒아. 저년...내 인형으로...만들거야.”

쿵쿵!-

여자의 명령이 떨어지자 거구의 남자는 순식간에 어느 특정 방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고, 저 멀리 빛나던 스코프도 이내 자리를 떠났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마치 꿈이라도 꾼 것만 같은 상황에 내 볼을 꼬집어보기도 했지만, 고통이 느껴지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었다. 심지어 내 싸구려 패딩의 모자가 저기 떨어져 있지 않는가.

“잠깐... 도망치라고 했지 않나?”

나는 패닉에 빠져 잠시 잊고 있었던 붉은 머리의 여자가 했던 말을 떠올렸고, 급히 자리를 뜨려고 한 순간이었다.

쿠우우웅!-

“허억!”

엘프나, 붉은 머리 여자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압박감이 내 어깨를 짓눌렀다. 순식간에 세상의 중력이 무거워진 것처럼 내 몸이 절로 무릎을 꿇으려 했고, 공기가 희박해진 것 마냥 숨이 가빠왔다.

그 때 마더가 나에게 더욱 충격적인 말을 전달해줬다.

[사용자님...... 저 여자가 바로 레벨7의 검술 재능을 보유한 사람이에요. 검제(劍帝). 신하연이라고. 현재 유일하게 반신(半神)의 경지에 이른 존재에요.]

내 인생, 참 지랄 맞다.

찍!-

그렇다고?

============================ 작품 후기 ============================

라이르나 / 쿠폰 감사합니다. 열심히 쓸게요. 마음 같아서는 연참을 마구 해주고 싶지만, 작가가 대학생이다보니... 시간 날때마다 노력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생각했던 스토리를 타기 시작하는군요. 뭐, 주인공이 강해지기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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