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7 [복수는 침대에서.] =========================
나는 아무리 일주일 동안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는 하나, 김은미를 떠올리고 긴장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일까... 약속 했던 시간보다 거의 한 시간은 일찍 나와 버렸다. 나는 대충 아무데나 걸터앉은 뒤, 김은미를 기다리는 동안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일을 짧게나마 되새겼다.
‘그건 정말 미친 짓이었지.’
루엘과 거의 일주일 내내 클럽들을 돌아다니며, 여자들을 건드렸었다. 인큐버스들의 왕이자, 잘 생긴 루엘의 덕분에 무리 없이 여자들과 하룻밤을 가질 수 있었고, 내 상태 창에는 무려 8명이라는 여자가 노예로 등록되어 있었다.
나는 그 중에서 노예로 만들었던 여자, 차혜련의 정보를 확인해봤다.
《노예》
[이름: 차혜련]
[종족 : 인간]
[보유 능력 : 가슴을 커지게 만드는 능력 Lv 1]
[다음 레벨까지 필요 경험치 : 3 EXP]
[종속 상태 : 52%]
[현재 하고 있는 생각 : 뭐지... 주인님? 지우 오빠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어... 내가 왜 이러는 걸까... 주인님? 지우 오빠? 으, 왜 이러는 거지?]
멀리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클럽에서 맨 처음 만났던 여성인 혜련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뒤로 한 번도 따로 만나고 최면술을 사용하지 않아서 일까, 100퍼센트였던 그녀의 종속 상태가 어느새 50퍼센트까지 내려가 있었다. 거기다가 호칭에 대해 혼동하는 걸로 보아, 최면이 점점 풀리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 한 번 최면술로 노예를 만들면 무조건 그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가 걸었던 최면의 효력이 약해지는 게 분명했다. 물론 좀 더 강력한 최면을 걸었다면 저 종속 상태가 거의 떨어지지 않게 할 수 있었겠지만, 나에게 있어 이번에 만났던 여자들 중 쓸 만한 여자는 아무도 없었다.
가슴을 커지게 만드는 능력 따위를 어디다 쓰란 말인가. 내가 여자로 성전환 수술을 할 것도 아니었는데, 차혜련이 가진 능력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사용자님, 약은 제대로 챙겼어요?]
“어, 당연하지.”
나는 마더의 물음에 주머니에 들어 있는 자그마한 알약 두 개를 만지작거렸다. 하나는 애나한테서 받은 [정력 폭발제]였다. 서큐버스의 마력이 들어가 있는 이 약을 먹으면 하루 동안이지만, 성기 크기부터 정력, 사정까지 도달하는 시간, 정액 양까지 단 번에 늘어난다고 했다.
‘문제는 부작용이지.’
한 번에 많은 정기를 끌어올리는 약이기에 삼 일 정도는 발기 부전이 될 거라고, 애나가 나한테 말해줬었다. 또 그 허전한기 그지없는 발기부전의 느낌을 삼일 동안이나 겪어야 한다 생각하면 오금이 저린다. 그러나 오늘 완벽하게 이기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했다.
또 다른 하나는 루엘이 건네 준 [몽환약]이였다. 아무리 내가 일주일 동안 노력을 했다고는 하나, 은미에게 최면을 걸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루엘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당당히 나보고 도구의 도움을 받으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이 몽환약의 효과는 여성을 흥분하게 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최면을 걸기 쉽게 의식이 몽롱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이것만 있으면 간접적인 최면말고도, 단숨에 직접적인 최면이 가능할 거라고 루엘이 말해줬었다.
‘원래 최면술에는 도구가 필수라고.......’
나는 그렇게 스스로 변명했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만약 내가 가진 능력이 최면술이라는 이(異)능력이 아니었다면 보통 최면을 걸기 위해서는 엄청난 준비가 필요했다.
약부터 시작해서 상대방의 의식을 잠재우기 위한 도구까지. 그러나 그러한 것을 나는 ‘신이 내려준 능력’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시한 채, 강제로 최면을 걸고 있는 것이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인간들에게 주어진 이능력 중에 나처럼 이치를 무시하는 능력이 있을 게 분명하다.
마지막으로는 시스템의 재확인이었다.
이때까지 신경 쓰지 않고 있어서 몰랐는데, 내 능력은 최면술M이었다. 상태창의 보유 능력에는 그저 최면술이라고만 나와 있지만, 내가 노예라는 창을 얻을 때 분명 마더는 말했다.
[최면술M으로 인해 차혜련이 ‘노예’로 등록됩니다.]
...라고 말이다. 그것은 절대 내 최면술만의 능력이 아니었다. 마더의 능력이었다. 문제는 마더 또한 이러한 능력이 있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마, 내가 깨닫지 못 하면 마더도 그 능력이 개방될 때까지 모르는 그런 구조인 것 같다.
‘좀 더 내 능력에 대해 깊게 파고들 필요가 있겠어.’
신이 70억 명 중, 유일하게 나한테만 업그레이드 해준 능력이었다. 이때까지 깊게 생각 안 했던 게 더 바보 같은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나는 이번 일이 끝나면, 내 능력에 대해 좀 더 생각해봐야함을 고려했다.
그 때 내가 입은 패딩 주머니가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자그마한 선글라스를 낀 다람쥐가 모습을 드러냈다.
찌익!!-
다람쥐가 선글라스를 집어던지며 내 가슴을 툭툭 쳤다. 마치 오늘만큼은 열심히 하라는 것만 같은 다람쥐의 격려였다.
“짜식이... 사람 뭉클하게 하고 있어....”
[으음, 마더가 봤을 때는 그냥 오늘도 넌 망했어. 호구 새끼야... 라고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말이죠.]
뭣이?!
정말 그랬단 말인가. 마더한테서 그런 소리를 듣고 다람쥐를 다시 바라보자, 진짜 그런 것처럼 보였다. 다람쥐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가로로 젓더니 다시 패딩 주머니로 쏘옥 하고 들어갔다.
찍? 찍~찍찍~!-
“이 새끼, 감히 하늘같은 주인님한테 그딴 망발을 해?! 당장 튀어나와. 새끼야!”
내가 갑자기 열 받아서 패딩 주머니에서 다람쥐를 꺼내려 했는데, 그 순간 내 옆에서 매력적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여자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바로 누군지 깨닫고 몸이 굳었다.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면서 과거에 있었던 일이 갑자기 클로즈업 되듯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것은... 악몽이었다.
“어라, 오랜만이네? 인간.”
“..........”
용기를 내, 힘겹게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보자, 그곳에는 인간과는 다른 길쭉한 귀를 가진 채, 코트를 걸치고 있는 ‘그 엘프’가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벌써 보름 만에 만나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대로였다.
아름다운 얼굴이었지만, 사람을 가볍게 죽이려고 했던 얼굴이었다.
“으아아악!”
나는 엘프의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정말 내가 이런 영화에서나 볼 법한 볼썽사나운 행동을 할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는데, 정말 반사적으로 일어난 행동이었다.
아직도 엘프가 나를 향해 웃으면서 레이피어를 찌르던 장면이 똑똑히 내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온 몸이 부르르 떨려오며, 마치 마비라도 한 것 마냥 몸이 안 움직여졌다.
그런 나를 보더니, 엘프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야, 너무하잖아. 이렇게 아름다운 ‘엘프’를 보고서 그런 반응이라니...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
그렇게 말하며 엘프는 나를 친절히 일으켜 세워준 것도 모자라, 옷에 묻은 먼지까지 직접 털어주었다.
“...어, 어어.”
나는 그녀의 행동에 말이 안 나와서 어버버 거렸다. 혹시 내가 저번에 봤던 건 꿈이었단 말인가. 그러나 이내 먼지를 털어주면서 내 귓가에 속삭이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 때 내가 겪었던 일이 꿈이 아니었다는 것을 다시 알 수 있었다.
“밤 길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후후훗. 나한테 안 죽으려면 말이지.”
“허억, 허억!”
나는 엘프의 살기 섞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는 것을 느끼고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왜 이 엘프가 지금 당장 나를 공격하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는 사람이 많이 돌아다니는 번화가였다.
그리고 시간도 낮이었기에, 그녀가 일부러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못 죽이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럼 수고해. 인간. 후훗.”
마지막까지도 내 어깨에 묻어 있는 먼지를 털어주며 떠나는 엘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계속 숨을 몰아쉬었다.
[사용자님... 진정하세요!]
“하아... 하아.......”
마더가 소리치고 나서야 나는 겨우 다시 의자에 걸터앉으며 진정할 수 있었다. 만약 마더가 아니었다면 진짜 그대로 비명을 지르고 이 자리에서 도망쳤을 지도 모르겠다. 그 정도로 무서웠다. 잊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 그 때는 아무렇지 않다 생각했는데, 오히려 지나고 보니 더 무섭게 내 머릿속에 박혀 있었나 보다.
“마더.”
[네, 사용자님.]
나는 조용히 마더를 불렀다. 꼴사납던 내 모습을 보았을 그녀에게...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게 토해내고 싶었다.
“무서웠어. 존나게 무서웠다고...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정도가 아니야. 얼굴을 봤을 뿐인데...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고.”
[이해해요. 사용자님은 저 빌어먹을 년한테 죽을 뻔 하셨잖아요. 이해해요. 사용자님.]
나를 위로해주기 위해 노력하는 마더의 목소리를 듣자 더욱 울컥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그런데 그거 알아? 이제는 무섭다기보다는 빌어먹도록 화가 난다는 걸? 창피하고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아. 정말 미쳐버릴 것 같다고. 그 년이 나를 비웃었어. 시발, 언제든지 자신은 나를 죽일 수 있을 것처럼 여유까지 부리면서...... 크, 크크.”
[사용자님.......]
정말이다.
그녀가 막상 사라지자 그녀를 보았을 때 느꼈던 두려움과 불안감은 전부 부끄러움과 분노로 뒤바뀌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당사자가 눈앞에 있을 때는 무서워서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더니, 막상 그 년이 나를 죽이지 않고 떠난 것을 알자.
하얗던 머리가 순식간에 붉게 물든 것 마냥 화가 나고, 오히려 내가 그 년을 피투성이로 만드는 상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상상 속에서 엘프는 나한테 당해, 쓰러져서 나한테 그대로 범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엘프는 언제든지 나를 죽일 수 있는 강자였고, 나는 그녀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 목이 날아갈지 모르는 상황인 것이다.
“으드득!”
이 끓어오르는 분노를 풀어야만 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내 분노를 풀어줄 딱 좋은 상대가 때마침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내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훽하고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는 정말로 내가 기다리던 상대였다.
“푸하핫, 뭐하냐. 조루 새끼. 용케... 도망안치고 나왔네?”
정말 딱 좋은 타이밍이다. 김은미......!
============================ 작품 후기 ============================
smone / 흐음, 제가 사이다를 만족스럽게 적을 수 있으련지...
qndyd02 / 저도 은미의 노예가 되고싶은...
로리콤MK / 흐음, 어떻게 복수해야 잘 했다는 소리를 들을까요.
아... 주인공이 너무 약하니까... 너무 이리저리 치이네요; 빨리 강하게 만들고 싶은데... 흑흑;
거기다가 엘프... 이름 있는데... 밝힐 기회가 안 나와요... 으아
*추천, 선호작, 코멘트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