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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가 된 세계에서-32화 (32/163)

00032 [동물놀이공원 데이트] =========================

나는 누구랑 갈지 열심히 고민을 하는 중이었다. 만약 클럽에서 여자들이랑 뒹굴지만 않았다면 이렇게 고민할 정도로, 아는 여자가 많지 않았겠지만, 지금 내 전화번호부에는 여자 번호만 스무 개가 넘었다. 나는 전화번호부에 적힌 이름들을 보며 생각했다.

‘차혜련, 이미라...근데 굳이 내가 얘네들이랑 가야하나?’

힐링이 필요해서 놀이공원에 가는 건데, 거의 원나잇 섹스파트너나 다름없는 여자들이랑 가야하는 걸까. 물론 남자 혼자가면 살짝 부끄럽기는 한데.......

[마, 마더가 있잖아요... 그냥 이대로 가는 게 어때요? 사용자님. 헤헤.]

마더가 묘하게 들뜬 목소리로 말하자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요즘 들어 마더한테도 신세 많이 졌는데....”

내가 그냥 이대로 마더랑 함께한다 생각하고 혼자가기로 마음먹는 순간이었다. 옆집의 문이 열리며 푸른 머리의 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루룬은 문밖으로 나오다 나를 보더니 화들짝 놀라며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지우 씨... 좋은 아침.”

“...좋은 아침이네요.”

난 내가 느낀 그대로를 말했다. 아침부터 루룬과 마주하니 가슴이 설렜다. 그녀는 이때까지 내가 만났던 여자들과는 전혀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보기 드문 푸른색 머리카락이라는 것도 모자라, 정령족이라 그런지 그녀의 분위기는 너무나도 신비로웠다. 특히 추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가을에나 입을 법한 두껍지 않은 캐주얼 복장을 하고 있으니, 더더욱 눈에 쏙 들어왔다.

“.......”

루룬은 이 어색한 분위기에 입을 다문 채, 멈추더니 얼굴을 살짝 붉히며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워 보여서 나는 나도 모르게 손에 쥐어진 동물원 무료입장권을 꽉 쥐며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오늘 시간되시나요?”

내 물음에 루룬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녀의 대답에 기뻐하고 있는데, 동시에 마더의 눈물 섞인 목소리가 내 귓가에 들렸다.

[...사용자님은 바보에요.]

‘아...맞다!’

순간 아차...했지만, 이미 늦었다. 마더는 그 뒤로 삐졌는지, 갑자기 입을 다물었고, 나는 조금 찜찜하긴 하지만 결국 루룬과 동물원으로 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더에게는 미안하지만, 오늘은 루룬이 너무 예뻐 보였다.

“자, 그럼 이제 출발 할까요? 헤헤.”

루룬은 나와 동물놀이공원으로 가는 게 기대되는지 즐겁게 한 바퀴 돌면서 출발을 외쳤고, 그런 루룬을 보며 나는 패딩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으며 물었다.

“그런데 어디 가시려고 한 거 아니었어요?”

움찔!-

내가 이 질문을 하는 순간. 잠시지만 루룬의 몸이 흠칫하며 떨렸고, 이내 그녀는 어색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말을 돌렸다. 그녀의 입에서 마치 호두까기 인형이 말하는 것만 같은 딱딱한 말이 흘러나왔다.

“네, 네에? 그, 그럴 리가요. 그냥... 산책하려고 했었던 걸요.”

“...그렇군요.”

너무 대놓고 수상해서 더 이상 물어보지도 못 하겠다. 어차피 별 일 아니라는 생각에 나는 다시 걸음을 옮기며 루룬에 대한 정보를 떠올렸다.

마더에게 듣기로 루룬은 정령족. 정령왕과 다른 존재에 의해서 태어난 특별한 딸이라고 했다. 가지고 있는 능력 레벨은 5정도로 추정.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했고, 물의 정령족인 그녀는 수비와 치료술에 특화되어 있다 했으나, 공격들도 얕볼 수 없다고 했다.

거기다 정령왕의 가호와 정령들의 수호까지 받고 있으니, 그야말로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존재들 중, 검제(劍帝) 다음으로 최강인 여자.

과연... 내가 그녀에게 최면을 걸 수는 있는 걸까.

‘것보다 괜히 루룬을 노예로 만들었다가... 정령왕의 분노를 사는 건 아니겠지?’

“풉...!”

그러나 이내 나는 피식 웃었다. 내가 무슨 이 세상의 주인공도 아니고, 살면서 한 번 보기 힘들다는 정령왕을 만날 리가 없지 않는가. 전부 개꿈에 불과한 상상이었다.

“앗, 왜, 왜 웃으신 거예요? 호, 혹시 저 이상한가요?”

루룬은 내가 갑자기 자신을 빤히 바라보다 웃음을 터뜨리자 자신의 옷이 이상하거나, 뭐라도 묻은 줄 알고 우왕좌왕하더니 이내 얼굴을 붉히며 나에게 물어왔다. 정말 귀여울 수밖에 없는 여인이다. 이런 여자와 지금 데이트를 하고 있다니 믿기지 않는다.

나는 다시 한 번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 문득 떠오른 게 있어서요. 그나저나 루룬. 그렇게 얇게 입으면 안 춥나요?”

패딩을 껴입고 있는 나도 입김을 뿜어내며 살짝 추위를 느낄 정도인데, 루룬의 옷차림으로 돌아다녔다가는 온 몸이 얼어붙을 지도 몰랐다.

내 물음에 자신의 옷차림을 한 번 살펴보더니 루룬이 배시시 웃으며 말해줬다.

“네, 불의 정령들이나 정령족은 겨울에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인데... 물의 정령은 원래부터 땅과 바람의 정령이랑 상성이 조금 좋은 편이거든요. 그래서 겨울에 추위를 잘 안 느껴요. 저한테는 추운 겨울바람도 봄에 부는 살랑바람정도로 밖에 안 느껴지는걸요? 헤헤헤.”

귀여운 그녀의 말에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데 저 멀리 놀이공원으로 가는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는 게 보였다. 참고로 내 성격상 이런 걸 보면 절대 다음 거 타자고 설렁설렁 걸어가는 타입이 아니다.

나는 재빨리 루룬의 손을 붙잡으며 소리쳤다.

“어!! 저, 저 버스 타야 돼요! 루룬!! 달려요!!”

“꺄아! 네? 네에!!”

푸슈우웅!-

-거기! 달리지 말고, 천천히 타세요. 다른 승객들하고 부딪힙니다.

전력질주를 해서일까 무사히 버스를 탄 우리들을 안에 들어와서 숨을 몰아쉬다가 이내 아직까지도 손을 잡고 있음에 화들짝 놀라며 얼굴을 붉혔다. 루룬이 조심스럽게 손을 빼더니 홍다무가 돼서 중얼거렸다.

“...처, 처음.”

“네?”

“이, 이것도 처음...... 첫 경험.......지우 씨는 정말 제 처음을 많이 가져가는 거 같아요.”

두근!-

그녀의 말에 쿵쿵 뛰는 심장을 느끼며 나도 슬그머니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참고로 루룬은 순수한 의미로 말한 거겠지만, 내 귀로는 처음이 그녀의 처녀막을 꿰뚫어 달라는 말처럼 들렸다는 거다. 만약 지금 내가 발기부전 상태가 아니었다면, 루룬의 앞에서 바지앞섬을 부풀리는 미친 짓을 저질렀을지도 모르겠다.

[쓰레기. 변태. 마더랑 데이트하기로 해놓고는....]

그 때 마더가 살짝이지만 화가 풀렸는지 입을 열었고, 나는 루룬 몰래 작게 속삭였다.

‘미안해... 마더. 다음번에는 꼭 가고 싶은데 데려가줄게.’

[정말이죠?! 꺄아!! 알았어요. 흠흠, 특별히 사용자님이니까 용서해드리는 거라고요. 히히, 어, 어디로 가달라고 하지. 꺄아! 아! 가고 싶은 데가 너무 많아... 여기도 가고...... 저기도.......으으!!]

‘귀여운 녀석.’

나는 내 한마디에 좋아하는 마더를 느끼며 천천히 바깥 풍경을 바라봤다. 겨울에, 여자랑 같이 버스를 탄 채, 바깥을 바라보고 있다니.

‘마치... 드라마 주인공이 된 것만 같네.’

그렇게 잠깐 주인공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더니, 금세 놀이공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직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보이는 거대한 놀이기구들과 멀리서도 들리는 동물들의 울음소리에 별 거 아닌데도, 나도 애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규모가 장난 아니네요.”

“그러게요.”

루룬과 나는 입장권을 받기 위해 줄을 선채로 잠시 둘러봤는데, 루엘이 건네준 입장권의 놀이공원은 크기가 어마어마하게 컸다. 내 인생에서 제일 큰 놀이공원을 떠올리라면 당연히 네바랜드인데... 그것보다 두 배는 큰 것 같았다.

‘돌아다니다가 날 세겠군.’

내가 그리 생각하며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는데, 옆에서 루룬이 두 주먹을 꽉 쥐는 게 보였다.

“이 정도 규모면... 아싸, 괜찮겠다.”

“..........”

뭐가 괜찮은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건 모른 척 해주는 게 매너남이다. 잠시 기다렸더니 금세 우리 차례가 되었고, 우리는 손목에 놀이공원 자유이용권과 동물원 관람권까지 해서 두 개의 밴드를 달고 안으로 들어갔다.

둘 다 처음부터 놀이기구보다는 신기한 동물이 보고 싶었는지, 동물원으로 가자고 마음이 정해졌고 좌우로 갈라지는 길에서 동물원으로 가는 오른쪽 길로 걸어갔다.

그리고 동물원에 들어서자, 이때까지 조용히 도토리를 까먹고 있던 다람쥐가 내 패딩 주머니에서 튀어나오더니 내 어깨 위로 올라왔다.

찍찍!-

...뭐라는 거야.

============================ 작품 후기 ============================

은아준 / 마더도 귀요미... 루룬도 귀요미...

smone / 감사합니다^^

키바Emperor / 작은 가슴은 작은 맛이 있는 법이라고요!! 흐앙!

휘텐가르트 / 후훗, 어떻게 될지...

로리콤MK / 예, 예에?;;

* 추천, 코멘트 항상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 원고료 쿠폰...너무 감사합니다.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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