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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가 된 세계에서-33화 (33/163)

00033 [동물놀이공원 데이트] =========================

내가 자기 말을 못 알아듣자, 아예 내 옆머리를 집어 뜯기 시작하는 빌어먹을 다람쥐 새끼. 저 조막만한 손에 어디 그런 힘이 있는지, 다람쥐가 손을 휘저을 때마다 내 머리카락들이 한 움큼씩 뽑혀나간다.

찌익!! 찌이이익!!-

“아아악---!! 이 미친 다람쥐가 하늘같은 주인을 대머리로 만들려고 하는 구나!!”

이 놈을 이대로 동물원에다 팔아버리는 게 좋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루룬이 이 상황이 웃겼는지 피식 웃고는, 한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제가 보기에는 저쪽으로 가달라고 하는 거 같은데요?”

[마더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뭣이? 나만 못 알아들었던 건가. 나는 내 머리를 집어 뜯고 있는 다람쥐를 양손으로 겨우 붙잡은 채, 발광하고 있는 녀석에 물었다.

“그런 거냐? 다람쥐야.”

찌익! 찌익!-

내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 아니, 이 새끼도 내 말을 알아듣는데... 왜 나는 다람쥐의 말을 못 알아듣는 거지?

어쨌든 나는 다람쥐가 지랄발광을 하면서 가리키는 방향으로 루룬과 함께 걸어갔다. 그러자. 동물원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은 전부 여기로 모인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인원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사람 더럽게 많네요.]

말 좀 곱게 쓰렴. 마더야. 더럽게 많네가 뭐니. 그나저나... 진짜 빌어먹게도 많네.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지, 뒷모습만을 보고 있으니 거대 개미들이 줄지어 서있는 것처럼 보인다. 저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려면 목숨을 걸어야 할 것만 같았기에, 나는 지체 없이 몸을 돌렸다. 겨울에 땀 흘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다른 데로 가죠.”

그러자 다시 지랄발광을 시작하는 다람쥐.

찌이이이익!! 찌이이익!!-

“......내가 꼭 저 미친 인간해일을 뚫고 가야만 하는 거냐?”

만약 주인을 생각하는 다람쥐였다면 내 물음에 고개를 가로로 젓고 나를 위로해주었겠지만, 내 다람쥐는 주인을 개호구로 생각하는 놈이기에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찍찍!-

“빨리 가라는 거 같아요.”

[마더도 그렇게 들렸어요.]

“.............”

그래, 가자. 인생 뭐 있냐.

나는 결국 루룬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 말한 뒤, 숨을 꽉 들이쉬고 몸에 힘을 꽉 주었다. 거짓말이 아니라, 저 인간해일 사이에 잘못 끼이면 은미가 질을 있는 힘껏 쪼이듯이 내가 단숨에 납작한 빈대떡이 될 수도 있었다.

“가, 간다!!”

이게 뭐라고... 소리까지 질러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인간해일들을 뚫기 시작했다.

“죄, 죄송합니다.”

“아악!! 어떤 새끼야!!”

“......죄송합니다.”

“꺄악!! 누가 내 엉덩이 만졌어!!”

“...저 아니거든요!! 결백합니다!!”

나는 아마 평생 태어나서 이렇게 사과를 많이 한 적은 없을 거라 생각하며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나서야, 겨우 맨 앞줄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그나마 인간해일을 빠져나오자 상쾌한 겨울바람이 내 땀을 식혀주기 시작했다.

“헉헉, 시발... 내 인생 이렇게 보람차지 않았던 일도 없는 거 같군.”

다람쥐를 위해 희생하는 주인이라니. 세상에 어떤 주인이 이렇게까지 해준단 말인가. 이 정도면 감사의 인사 정도는 한마디 들어야했다.

나는 다람쥐가 도망칠 수 없게 두 손으로 꽉 붙잡고 눈을 마주치며 최면술을 사용했다.

“감사하다고 인사해. 이 새끼야.”

[최면술에 성공하셨습니다.]

찌익!-

최면술에 걸리자, 공손히 고개를 한 번 숙이며 소리를 내는 다람쥐. 크큭, 최면술로 받은 감사긴 하지만 어쨌든 기분은 좋군.

“그나저나 뭣 때문에 여기까지 오자고 한 거냐. 설마 여자친구?!”

내 말에 다람쥐는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고 나를 한 번 바라보더니 그대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건 분명 한숨이었다.

찌익!-

그리고는 내 뺨을 가볍게 때리고 빠져나가더니, 동물들이 있는 울타리 너머로 쏘옥하고 넘어가버렸다. 내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이러다 진짜로 다람쥐를 동물원에 풀어주게 생겼다. 그래도 미운정이라도 정이라고, 다람쥐를 놓아주고 싶지는 않았다.

“미, 미친 새끼야! 돌아와!”

내가 그리 소리쳤지만 다람쥐는 내 말을 무시한 채 쪼르르 달려가더니, 누군가의 허벅지 위에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응? 허벅지?”

나는 그제야 뭔가 이상함을 느끼며 동물들이 있는 안쪽을 천천히 살펴봤다. 그리고 왜... 여기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였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곳은 동물원의 사자들이 지내고 있는 곳이었는데, 그 사자들 사이에서 알 수 없는 여자 한 명이 느긋하게 누워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헉!”

세상에 이런 일이.

심지어 놀라운 것은 사자들이 여자가 자기 쉽게 둘러싸서 바람을 막아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현대 타잔, 레이디 버전인가.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좀 더 여자를 자세히 살펴봤다. 제일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이 추운 겨울에 허벅지가 완전히 드러나는 핫팬츠를 입고 있다는 것... 만약 내가 발기부전인 상태가 아니었다면 저 매끈한 허벅지를 보는 것만으로 부들부들 거렸을지도 모르겠다.

그 다음에 눈에 띄는 것은 그녀의 머리카락 색이었다. 루룬도 보기 드문 푸른색이지만, 여자는 더욱 보기 힘들다는 은발이었다. 태양빛에 반사가 될 정도로 빛나는 은발. 그리고 다음으로 보인 것은.......

“......뭐야. 고양이 귀랑 꼬리?!”

나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여자는 인간의 귀가 아닌, 고양이 귀가 머리 위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 처음에는 코스프레용 머리띠인줄 알았지만, 움찔거리는 걸로 보아서 저건 진짜인 것 같았다. 심지어 살랑살랑 움직이는 흰색 꼬리까지.

그 때 한창 나와 같이 구경하던 마더가 생각났다는 듯이 나에게 설명을 해줬다.

[어라, ‘묘인족’이었네요. 심지어 백발이면... 수인들 중에서는 보기 드문 강자에요. 수준으로만 따지면 루룬 엘라시움님이랑 비슷할지도 모르겠네요.]

“묘인족이라... 하긴 엘프도 있고, 정령족도 있는 세상에 고양이녀가 있다고 해서 놀라울 게 뭐가 있겠냐.”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다람쥐를 불렀다.

“야, 다람쥐야!!”

찍?-

내 부름에 고개만 까딱 들어 올렸다가 다시 여자의 허벅지에 눕는 다람쥐 새끼. 역시 저 녀석은 최면술로 강제 조교를 좀 해야 할 것 같다. 내가 다시 크게 다람쥐를 부르려 했는데, 그것보다 먼저 여자의 눈썹이 꿈틀거리더니, 천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녀가 일어나려는 모습을 보이자, 주위 사람들이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일어나려나봐!”

두근거려하며 소리치는 사람.

“나, 묘인족은 처음 봤어. 헤헤. 예쁘다. 그치?”

“응, 그러네.”

“뭐?! 어떻게 여자친구 앞에서 다른 여자가 예쁘다고 할 수 있어? 우리 헤어져.”

“......헐.”

어이없이 헤어지는 커플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묘인족 여자가 완전히 깨어나는 걸 기다렸지만, 나는 달랐다. 내 정신은 오로지 저 빌어먹을 다람쥐 새끼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여자는 이미 완전히 잠에서 깼는지, 기지개를 피고 있었고... 다람쥐는 묘인족 여자에게 찍찍거렸다.

찌익~ 찍찍! 찌이이이!~ 찍찍!-

참고로 내가 봤을 때는 그냥 쥐새끼가 찍찍거리는 걸로 밖에 안 보인다. 그런데 여자는 다람쥐의 말에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대로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파팟!-

그리고 어느새 동물원 울타리 위에 가볍게 착지를 하더니 소리쳤다. 묘인족 여자의 목소리는 동물원 전체에 울려 퍼질 정도로 컸다. 안 그래도 집중되어 있던 시선이 더욱 한데 모였다.

“푸하하핫, 도대체 이 다람쥐의 주인은 누구다냥! 세상에서 제일 호구 같다고 생각되는 주인이라고 했다냥.”

‘뭣이?!’

휙!-

나는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그대로 무릎을 꿇고, 몸을 낮췄다.

“..........”

[뭐하세요. 사용자님. 빨리 말하세요. 내가 주인이라고요.]

마더의 말에 나는 미친 듯이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나섰다가는 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천하에 다시없을 호구가 되게 생겼다.

‘이렇게 된 이상... 다람쥐를 버릴 수밖에 없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미운정도 정이라고 해놓고는... 어느새 마음이 갈대마냥 변했는지 다람쥐를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건 빌어먹을 다람쥐를 너무나도 얕본 행동이었다. 이 자식은 평범한 다람쥐가 아니었다. 미친 다람쥐였다.

찍찍!-

다람쥐는 묘인족 여인에게 다시 속삭이더니, 한쪽을 가리켰다. 다람쥐의 말을 들은 묘인족이 다시 몸을 날렸고, 그녀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거짓말처럼 내 앞이었다. 묘인족 여자는 패딩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나를 보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냐냥, 냐냐냥!! 네 녀석이로구나. 푸하하핫, 냐냥!! 호구라니...너무 웃겨 죽겠다냥!! 푸하하하핫!!”

묘인족 여자의 웃음에 내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빌어먹을 다람쥐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이냐.......’

-웅성웅성

-호구?

-누구야, 누구?

동시에 모든 사람들이 세상에 다시없을 호구가 누군지 확인하려고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재빨리 다람쥐를 버리고,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다시 한 번 인간해일을 뚫고 나가자, 그곳에는 루룬이 의자에 앉은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 갔다 오셨어요?”

나긋한 어조로 나에게 물어오는 루룬을 보자 그나마 살짝 마음이 진정된다.

“네. 그런데 루룬, 일단 여기서 도망....”

어차피 다람쥐를 버린 김에 이대로 그냥 놀이공원으로 갈까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내 위로 그림자가 생겼다. 동시에 이대로 헤어지고 싶었던 여자와 다람쥐가 공중에서부터 떨어지더니, 내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콰아앙!-

얼마나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지 그녀가 땅을 밞는 순간 엄청난 소리와 함께 땅이 떨렸다. 가끔 느끼는 거지만, 하나가 된 이 세상은 미쳤다.

“후냐냥! 어디 가는 거냥! 나랑 좀 더 놀자냥!”

찌익!!-

묘인족 여자와 다람쥐가 나를 향해 입을 열었고, 나는 머리를 짚었다. 그런 상황에서 먼저 입을 연 것은 다름 아닌 루룬이었다. 루룬은 묘인족 여인을 잠시 살펴보더니, 이내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슈르카?!”

루룬의 외침에 묘인족 여자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중얼거렸다.

“후냥... 이 목소리는 루룬이다냥?”

“..........”

나는 도저히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되어 누가 설명 좀 해줬으면 했는데, 때마침 마더가 이 상황을 한마디로 정의해줬다.

[완전... 개막장 드라마.]

============================ 작품 후기 ============================

바로 다음편으로 고고~

리리플도 다음편에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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