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9 [아이템 상점 업데이트] =========================
백화점 1층에는 의외로 손님들이 별로 없었다. 직원들만이 여기저기 서있는 모습과 한산한 복도가 휑하니 보였다. 나는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마더에게 물었다.
“몇 층으로 갈까?”
[잠시만요. 앗, 엘리베이터 옆에 층수별로 무엇을 파는지 적혀 있네요. 으음, 5층이에요. 5층!]
마더의 말에 나는 5층에서 무엇을 파는지 확인해보고는 살짝 감동받고 말았다.
《F5 - 남성패션/남성정장/트랜디 캐주얼/셔츠/넥타이/가방 》
그제야 마더가 왜 입지도 못 하고, 구경도 제대로 하기 힘든 백화점에 오자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마더는 지금 ‘내 옷’을 구매하러 온 것이다. 물론 돈은 내 돈이 나가겠지만, 그런 것 따위 전혀 상관없었다.
돈 따위는 아무런 걱정도, 생각도 들지 않을 정도로... 마더의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띵!-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며 문이 열렸다.
“가자.”
[네에! 사용자님!]
나는 내색하지 않으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마더에게는 5층에 가서 놀란 척을 해주며, 고맙다고 인사할 생각이었다. 내가 5층 버튼을 누른 뒤,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이었다. 저 멀리 거대한 덩치의 오크 한 마리가 소리치며 다가왔다.
“취익, 인간. 나도 탄다. 취익.”
[그냥 닫아버려요. 냄새 나는 오크랑 같이 타고 싶지 않은 걸요.]
그러나 이미 나는 반사적으로 열림 버튼을 눌러버렸고, 그 틈을 타, 오크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왔다. 사람이었다면 13명까지도 수용 가능한 엘리베이터가 단번에 반 이상 꽉 차버렸다.
‘냄새가 심하다.’
마더의 말대로 오크의 몸에서는 땀냄새와 이상한 악취 같은 게 풍기고 있었다.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엘프, 또는 루룬이나 슈르카와 같이 인간에 가까운 이종족들이 있기도 하지만 역시... 오크 같은 어울리기 힘든 이종족들도 있는 법이다.
내가 봤을 때 오크란... 그냥 걸어 다니면서 말할 수 있는 돼지였다. 마더는 공유하고 있는 내 감각을 통해 오크의 냄새를 맡았는지, 버럭하고 역정을 냈다.
[에이, 냄새나는 녀석들 같으니라고... 오크는 사실 능력 레벨만 따지면 그리 높은 애들도 아니에요. 번식력이 높고, 멍청하다 보니까 다수의 전투에서 강할 뿐이지. 사용자님이 마음만 드시면 이 오크한테 당장 최면술을 걸어서 쫒아내는 것도 가능하다고요.]
나는 그런 마더에게 조용히 말했다.
‘됐어. 내가 먼저 내릴 거고, 굳이 이런 데에 쓰고 싶지도 않아. 내 최면술은 여성 전용(?)이라고.’
[...역시 사용자님은 쓰레기에요. 마더는 그런 사용자님도 좋지만요.]
내가 마더와 시덥잖은 얘기를 나누며 5층에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내 눈에 문득. 오크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빨간 물약 하나가 보였다. 어디선가 많이 본 모양이랑 색깔이다. 한 때 온라인게임에서 유명했던 단풍이야기 온라인에 나오는 아이템이랑 똑같았다.
‘HP포션인가? 풉.’
요즘 들어 익숙해진 시스템 때문에 나는 나도 모르게 그리 생각하며 웃음을 참았다. 그리고 이내 관심을 껐다. 그냥 돼지가 좋아하는 음료수라 생각했다. 오크가 가려고 하는 층은 10층이었다.
《F10 - OO시네마 》
순간 나는 참았던 웃음을 터뜨릴 뻔 했다.
‘오크도 영화를 보려는 걸까.’
오크가 오크들이 나오는 목걸이의 제왕 같은 영화를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생각을 하다보니 벌써 5층에 도착했다.
[띠링! 5층, 남성 패션몰입니다.]
“내릴게요.”
“취익, 알았다.”
나는 오크를 지나쳐 5층에 내렸고, 그제야 숨을 깊게 내쉬며 향긋한 백화점 공기를 들이마셨다.
“후, 살겠군.”
[진짜 개인적으로 몬스터들을 무조건 싫어하는 건 아닌데요. 이 자식들은 좀 씻고 다녔으면 좋겠다고요. 방금 오크도 보셨죠? 겨울에 입은 거라고는 동물 가죽을 그냥 뒤집어 쓴 거. 거기다가... 빌어먹을 새끼들이 여자만 보면 발정해서는 성기를 벌떡 세운단 말이에요. 마더는 정말 몬스터들은 좋아할 수가 없는 거 같아요.]
“별 수 없잖아. 에브리원 평화협정의 대상에는 몬스터들도 포함되어 있는 걸. 물론 아닌 녀석들도 약간 있기야 하지만.”
오크가 멍청하기는 하나, 지성이 없는 것도 아니고, 무차별적으로 싸우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쉽게 흥분하고, 싸움이 자주 일어나는 녀석들인 것고 사실이다.
“그래도... 오크가 백화점에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네. 역시 난 이 미친 세상에 익숙해지는 건 글러먹었다니까.”
나는 그리 중얼거리며 머릿속에서 방금 보았던 오크를 지워버렸다. 이종족이나 몬스터를 보는 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고, 오크 따위에 관심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여긴 왜 온 거야?”
나는 짐짓 모르는 척을 했다. 그러자 마더는 부끄러운 듯 수줍게 말을 더듬었다.
[헤, 헤헤... 아시면서...... 사, 사용자님 옷이 너무 없잖아요. 그래서.......]
역시 내 생각이 맞았던 것 같다. 나는 마음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마워. 마더.”
[아까도 말해놓고는.......]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니까.”
[...빠, 빨리 둘러보러나 가요! 부, 부끄럽단 말이에요.]
“그래.”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별로 자주 와봤던 곳이 아니기에 어디서 무슨 옷을 파는지 감을 잡기 힘들어, 그냥 천천히 돌아다녔다. 만약 혼자였다면 이러한 상황이 매우 뻘줌했을지도 모르겠으나, 다행히 나에게는 마더가 있었다.
[으음, 저 옷도 괜찮아 보이는데... 아앗! 아직 가지 마세요. 전부 다 돌아본 뒤에 결정할 거란 말이에요.]
“알았어.”
마더는 정말로 5층 전체를 한 바퀴 돌고 나서야, 결정을 내렸다. 그녀가 처음으로 가기로 한 곳은 ‘노트페이스’의 로고가 그려진 겨울 패딩을 주로 판매하는 곳이었다.
[역시 평소에 사용자님께서 패딩만 입고 다니셔서 그런지, 패딩이 제일인 것 같아요.]
“그래?”
사실 나도 패딩 하나 정도는 새로 살까...하고 생각했는데, 마더랑 마음이 통했나보다. 옷들이 전열되어 있는 것을 보고, 여유롭게 구경을 하려 했는데 백화점 여성 직원이 다가오며 나에게 인사했다.
“어머, 안녕하세요. 어떤 옷을 찾으시나요?”
옛날부터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과도할 정도로 환한 영업용 스마일을 하는 여자를 보며 나는 괜히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옛날부터 이런 건 괜히 부담스러워 좋아하지 않았다.
“패딩을 하다 새로 사려고 하는데... 잠시 구경 좀 하고 말씀드려도 될까요?”
보통 이렇게 말하면 물러나기 마련인데, 오늘 손님이 없어서인가, 아니면 나를 호구로 보고 꼭 비싼 옷을 팔아먹어야겠다 생각했는지 여자 직원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나에게 몸을 들이대며 계속 달라붙었다.
“히잉, 그런 소리 마시고요. 제가 천천히 보여드릴게요. 네? 어때요?”
여자는 팔을 뻗어 나한테 팔짱을 끼며 맹맹한 콧소리를 내었고, 순간 여자의 가슴이 살짝이지만 내 팔에 물컹하고 닿았다. 이런 육탄 공격을 해가면서까지 나한테 옷을 팔아넘기고 싶은 걸까. 만약 내가 루엘과 함께 여자들과 찐한 시간들을 보내지 않았다면 이런 점원의 공격에 당황해서 홀라당 넘어갔을지도 모르나, 지금 나는 달랐다.
나는 팔을 강하게 빼내면서 싸늘한 목소리로 짜증을 냈다.
“당장 꺼지세요. 다른 사람 부르기 전에.”
내 말에 여자 직원이 당황하며 얼굴을 붉히더니 재빨리 사과를 하고 물러섰다.
“죄, 죄송해요. 실례했습니다. 천천히 둘러보세요.”
“네.”
나는 담담히 대답하면서 생각했다.
‘도대체 내가 얼마나 호구 같아 보이면 저런 짓까지 하는 걸까.’
아마 저 여자 직원은 다른 손님이 오면 이렇게까지는 안 할게 분명했다. 그저 나를 봤을 때 가슴 정도만 살짝 닿아도 당황할 것 같으니, 해본 게 분명했다. 아니면 그냥 심심해서 골려보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지.
[진짜 별꼴이야. 뭐, 저런 년이 다 있어요.]
마더도 어이가 없는지 중얼거렸다. 나는 그녀의 말에 피식 웃으며 물러나고 있는 여자 직원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갈색 스타킹에 약간 높은 하이힐. 그리고 깔끔한 검은색의 백화점 유니폼을 입고 있는 그녀는 솔직히 예뻤다.
그러고 보니 마트에서 일하던 때를 떠올리면 저 여자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는 항상 불경기니까 백화점 직원이라도 실적 남기려면 노력해야겠지... 그래도 역시 괘씸하기는 하네.’
나는 마더와 함께 천천히 패딩을 고르며 생각했다. 저 여자를 조금 골려주고 갈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그냥 갈 것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을 하고 있는데 마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음, 사용자님께는 이 하얀색보다는 저기 있는 검은색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데...고민이네요. 사용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나도 검은색이 좋아. 하얀색은 쉽게 더러워지잖아.”
[야호! 사용자님도 저랑 똑같은 생각이셨네요. 그럼 검은색으로 패딩 하나 사고, 그 다음은 스웨터랑 셔츠도 좀 보러가요.]
“그러자.”
마더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보니 여자를 골려줘야겠다는 생각이 싹 사라졌다. 만약 예전에 여자를 모르던 때였다면 최면술로 최면이라도 걸어서 강제로 섹스라도 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패딩을 골라서 여자 직원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여자 직원이 얼굴을 붉히며 다시 한 번 사과를 했다.
“저... 아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요즘 손님이 너무 없다 보니.......”
원래 용서하려고 했는데, 다시 사과를 받아서일까. 나는 기분 좋게 그녀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아뇨, 그럴 수도 있죠. 이거 계산해주세요. 아, 계산은 현금으로 할게요.”
“앗, 감사합니다. 손님!”
평화롭게 모두가 해결되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위에서 쿵! 하는 소리가 울리더니 아주 잠깐이지만 백화점이 흔들렸다.
“응?”
[뭐죠?]
“별 거 아니겠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옷을 받아 가려는데, 다시 한 번 쿵! 하고 백화점이 흔들렸다. 한 번도 아닌, 두 번 연속. 무시하고 가기에는 조금 찜찜했다.
“아냐, 됐어. 무슨 일인 줄 알고.”
그냥 능력자들끼리 시비가 붙었거나, 몬스터가 난동을 부리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험한 일이었으나, 백화점에는 기본적으로 경호를 하는 능력자들이 있는 법이다. 그들이 충분히 해결할 게 분명했다.
나는 손님으로서 백화점 이용만 하면 되는 것이다.
“다른 옷이나 보러가자.”
[네에.]
내가 패딩이 들어 있는 쇼핑백을 들고 발걸음을 옮기려는 때였다. 콰드득하고 갑자기 천장이 무너지더니, 거대한 무언가가 천장에서부터 떨어져 내렸다. 역시 위에서 무언가 싸움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 이런 상황은 불가능했다. 살면서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법.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왜 하필 내 앞 인거지?’
이게 문제일 뿐이지.
============================ 작품 후기 ============================
내코돌려줘용 / 과연?!
은아준 / 후후...
곰의판타지 / 후후후,...
휘텐가르트 / 후후후후....
retty / 후후후후후후....
제가 야유회를 갔다와서 그런지... 도저히 12시까지 못 버티겠더라고요... 예약 아이템을 살 마나도 없으니... 일찍 올리고 잠시 잤다가... 새벽에 일어나지면 글 써봐야겠어요.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