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0 [아이템 상점 업데이트] =========================
천장을 부수면서 등장해서일까, 먼지바람 때문에 ‘거대한 무언가’에 대한 정확한 정체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확실한 것은 크기가 거의 미노타우로스 급이었다는 것이다. 일단 나는 물러서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싸울 필요는 없잖아.’
그런데 막상 도망치려니까 내 뒤에 여자 직원이 넘어진 채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게 보였다.
“이, 이게 뭐에요... 대체 어떻게.......”
패닉에 빠져 있는 여자를 보며 다른 사람들은 당황하거나, 귀찮아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오히려 나는 다르다. 패닉에 빠져 있는 여자를 다루는 것만큼 쉬운 것도 없지.
“아무 생각하지 말고 제 목소리에만 집중하세요.”
“지금 그게 무슨 소리......어, 어라.......”
내 말에 잠시 놀라던 여자의 동공이 순식간에 풀리더니,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최면술에 성공하셨습니다.]
익숙한 시스템 음성이 들리는 동시에 나는 다음 최면을 덮어씌우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이 없는 당신은 오로지 제 말에만 따르는 인형이 될 겁니다. 제 명령을 따르는 것이 당연하고, 그것이야말로 옳은 행동입니다. 그리고 제가 말하면 대답하세요.”
“네에....”
여자는 멍하니 입만을 열어 무감정한 목소리로 대답했고, 그런 여자를 보며 나는 재빨리 명령을 내렸다.
“빨리 여기서 어디로든, 달려서 도망치세요.”
“알겠습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자 직원은 벌떡 일어나더니,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다른 방향들을 보자, 다른 직원들은 이미 도망치고 있는 게 보였다.
‘나도 도망쳐볼까?’
그리 생각하며 몸을 틀려는 순간이었다. 내 뒤에서 ‘무언가’가 몸을 일으키는 것이 느껴졌다. 어떻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내 뒤에 갑자기 거대한 그림자가 생겼다는 것과 온 몸에 오싹한 오한이 드는 것으로 알았던 거 같다.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바로 몸을 날렸다. 온 몸의 감각이 죽지 않으려면 몸을 던지라고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떼구르르르!-
콰득!-
특수부대의 인물들 마냥 멋있게 피하지는 못 했으나, 급하게나마 몸을 날린 것만으로 자신을 대견하게 여기며 어떻게 된 상황인지 살폈다.
“후우, 후우.......”
-취히히힉, 취히힉!
내가 피했던 자리는 무언가의 주먹에 의해 박살이 나있었다. 그리고 괴물의 얼굴이 아까보다 더 선명하게 보였다.
초록색 피부, 날카롭게 툭 튀어나온 송곳니. 우락부락한 근육질 몸매에...... 멀리서도 맡아지는 심각한 악취까지. 단숨에 정체가 무엇인지 파악됐다. 좀 전에도 만났던 녀석이었다.
“오크잖아.”
오늘 백화점에서 오크를 또 마주칠 줄이야. 그러나 크기가 아까 만났던 오크랑은 비교가 안 되는 녀석이었다. 그래도 오크는 오크... 나는 살짝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상태를 보아하니 딱 봐도 상처를 입은 것도 모자라, 흥분에 제대로 생각도 못 하는 것 같았다.
아까 그 여자한테 최면을 걸었던 것처럼 이 자식한테도 최면을 걸면 굳이 도망칠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잘 들어. 오크 씨. 넌 지금 상처를 입어서 지쳐있는 상태야. 몸은 점점 천근만근 무거워질 거고 눈꺼풀은 돌덩어리를 단 것처럼 무거워지겠지. 그러다보면 너는 잠이 들게 될 거야.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말이야.”
만약 오크가 레벨3의 능력을 가진 몬스터였다고 해도, 지금이라면 최면술이 통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를 반긴 소리는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최면술에 실패하셨습니다.]
“뭐?”
[사용자님. 피하세요!!]
내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흘러나오는 동시에 마더의 긴박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오크는 어느새 내 최면술을 싸그리 무시한 채 나를 향해 돌진해오고 있었다.
“시발!”
나는 다시 한 번 옆으로 몸을 날리며 피했고, 오크는 내가 있던 자리를 완전 묵사발로 만들어버렸다.
“하아... 하아......왜지? 왜 최면술에 실패한 거야?”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저 상태는 내가 최면을 걸기 딱 좋은 상태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최면을 걸기 위해 만들어진 상태라고 할 수도 있었다.
[흥분이 극에 달했다기보다는 저 오크... 상태가 더욱 이상한 거 같아요. 그냥 이성을 상실한 것 같아서, 사용자님의 목소리가 안 들리는 게 분명해요.]
“하, 진짜... 미치겠네. 마더, 일단 아공간에서 타임스탑 매직스크롤이랑 그 놈의 빌어먹을 롱소드 좀 꺼내줘.”
[네.]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내 손에 롱소드가, 한 손에는 매직스크롤이 잡혔다. 어떻게 될 지도 모른다. 매직스크롤이 아까울 수도 있지만, 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것은 내 목숨이었다. 아끼다 죽어서는 똥이 되는 능력이랑 다를 게 없다.
-취히히히히힉!!
오크는 내가 두 번이나 자신의 공격을 피해서일까, 아까보다 훨씬 화가 난 것 같았다. 나는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는 것을 느끼며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이걸... 딱 보니 저 녀석, 완전 나만 노리려는 것 같은데. 도망치기도 글렀고, 역시 저 녀석을.......’
내 눈에 그럭저럭 쓸만한 롱소드와 매직스크롤이 들어왔다. 레전드 마법인 타임스탑을 쓰면 저따위 오크의 심장에 롱소드를 박아 넣는 것 따위, 식은 죽 먹는 것보다 쉬운 일이었다. 그러지 않는 것은 역시 몬스터라도 무언가를 죽인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든다는 것.
[주위에 다른 사람들이라도 있었으면...... 사용자님의 최면술을 이용해 대신 싸우게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마더는 이미 완벽하게 도망을 완료한 주위를 보고는 아쉬운지 중얼거렸다. 그녀의 중얼거림을 들은 나는 피식 웃었다.
“훗, 어차피 그렇다고 해서 방패로 쓸 생각은 없었어. 그러면 앞으로 잠자리가 사나워질 거란 말이야.”
[그런가요... 그러면 타임스탑 마법을 사용하고 도망치는 게 어떨까요?]
“아....”
죽이지 않고, 도망치는 것도 가능했구나.
마더의 제안이 나쁘지 않다 생각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매직스크롤을 그대로 찢으려는 순간이었다. 그것보다 먼저 이때까지 기다려주던 오크가 나를 향해 달려드는 것이 더 빨랐다.
“큭!”
세 번째 공격이라 그럴까, 저 녀석의 공격이 더 매서워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사실은 벌써 내 허약한 육체가 삐걱거리는 게 제일 문제였지만 말이다. 나는 깜짝 놀라며 몸을 날렸지만, 이번만큼은 오크의 공격을 완벽히 피하지 못 했다. 오크의 주먹이 내 발을 스치듯이 건드렸다.
우득!-
그것만으로 소름끼치는 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싶더니, 발목이 그대로 꺾여 돌아가며 어마무시한 통증이 나를 덮쳤다.
“크아악! 큭! 시발!!!”
최소한 골절... 자칫 잘못하면 뼈가 가루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나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그대로 바닥에 엎어져서 신음을 흘려댔다.
“크으... 썅....”
[매직스크롤이......!]
“...하아, 좆됐네.”
나는 저 멀리 굴러간 스크롤과 롱소드를 보며 허탈한 마음에 중얼거렸다. 세상에 이런 병신 같은 경우가 일어날 줄이야. 그런데 이런 긴박한 상황이라 그럴까... 이상하게 머리가 잘 돌아간다. 나는 마더에게 재빨리 명령을 내렸다.
“마더, 저것들 아공간에 넣고 다시 소환해.”
[그, 그런 수가 있었네요. 알았어요!]
내 눈에서 저 멀리 굴러간 매직 스크롤과 롱소드가 사라지는 게 보였지만, 다음으로 그것들이 내 손에 소환되는 것보다 오크가 부상당한 나를 향해 그대로 주먹을 휘두르는 게 더 빨랐다. 순식간이다. 1초도 남짓 안 되는 시간동안 내 시야를 가득 채우는 거대한 주먹을 보며 든 생각은 의외로 절망이 아니었다.
‘내가 설마... 죽을 거 같아?’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다. 나는 절대 여기서 죽지 않을 거란 것. 엘프가 나를 덮쳤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 나는 여기서 죽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이 되었다. 내 눈앞에 오크의 주먹이 아닌 넓은 등판이 새로이 등장했다.
“아빠... 죽여.”
콰아앙!-
파팍!-
뒤에서 갑작스럽게 등장한 거구의 남자가 오크의 주먹을 자신의 어깨로 밀쳐내며 동시에 오크까지 그대로 날려 보냈다. 그리고는 그대로 날아간 오크를 향해 파괴전차마냥 돌진하며 따라갔다. 나는 내 시야에서 오크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입술을 꽉 물고 고통을 참았다.
‘설마 샤샤가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네.’
누가 올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기는 했지만, 그게 샤샤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지우... 괜찮...아?”
내 이름을 불러줄 거라고는 예상 못 했기에 나는 샤샤의 물음에 살짝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아요. 구해줘서 감사합니다. 샤샤.”
“샤샤...20살...지우...27살... 존대...노우.”
“..........”
이상한데서 사람 나이를 들먹이는 여자로군. 가슴 아프게 말이야. 그나저나 내 이름이랑 나이는 어떻게 안 거야?
============================ 작품 후기 ============================
뷜데 / 감사합니다^^!
내코돌려줘용 / 걱정 감사합니다...잠시, 네? 쉬시고 연참요?
곰의판타지 / 주인공은 별 수 없이 휘말릴 수 밖에 없죠...후후;;
nikumaimu / 음, 조금 고민은 해봐야겠어요.
은아준 / 맞습니다...후후.
휘텐가르트 / 그렇겠죠?
마더랑의 대화는 다른 사람들이 대놓고 보일 때는 잘 안 중얼거리죠. 약간 멀리 떨어져 있을 때만 중얼거리니... 이상하게 볼 수도 있지만, 그리 신경쓰지 않는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한 번 고민을 조금 해보겠습니다.
*추천, 코멘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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