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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가 된 세계에서-46화 (46/163)

00046 [치료술사, 하예진] =========================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시스템 음성이 울렸다.

[랜덤 아이템 상자 1회 뽑기 무료 이용권이 3개 주어졌습니다.]

[사용은 마더를 통해 사용해주세요.]

사람이란, 원래 도박을 할 수 있는 이용권이 주어지면 당장이라도 쓰고 싶은 법. 그러나 아쉽게도 여기는 나만 있는 자취방이 아닌, 다른 사람들도 함께 쓰는 병실이었다. 지금 당장 아이템을 뽑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참았다.

대신 나중에 예진을 어떻게 교육시킬지 좀 더 자세히 구상해봤다.

‘SM은 처음인데 말이지.’

도구 쪽은 루엘에게 알아서 준비해달라 했으니, 믿음직스러운 친우는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걱정되는 건, 은미가 예진을 납치하는 과정이었다. 신체 강화능력자를 치료술 능력자가 이길 수는 없겠지만, 어떻게 들키지 않고 납치할지가 걱정되었다.

‘...은미가 알아서 하겠지.’

어차피 내가 걱정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나는 은미한테 연락이 올 때까지 시간만 때우면 되는 것이다.

“흐아암~.”

어제까지만 해도 붙어 있던 루룬과 은미가 없으니 뭔가 허전하다. 결국 할 게 없는 나는 누운 상태에서 팔만 이리저리 움직여보다가, 결국 조심스럽게 텔레비전을 켰다. 때마침 아침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제 전국적으로 일어난 몬스터들의 폭동에 관하여 소식을 전달해드리겠습니다. 각지에 있는 능력자들과 또 다른 이종족들에 의해 조기 진압이 가능해. 그리 큰 피해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유에 대해서는 밝혀진 것이 없으므로, 조사를 계속 진행 중에 있습니다. 당분간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조심해주시기 바라겠습니다.]

“역시 뉴스로 보도되는구나.”

그 뒤로 흘러나온 뉴스는 평범했다. 날씨부터 시작해서, 요즘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가, 또는 올마스터나 권제, 또는 드래곤 로드 같은 절대자들의 생활은 어떤가 하는 쓸데없는 소리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텔레비전을 껐다.

어느새 병실 안에서 잠을 자고 있던 사람들은 전부 다 깨어나 있었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네요.”

“그러게요.”

“..........”

막상 뭐라도 얘기해야할 것만 같아 인사를 했는데, 더 뻘쭘하다.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다행히 이 적막을 간호사들이 아침 식사를 들고 와 깨뜨려주었다.

간호사들은 하나씩 식판을 나눠주며 말했다.

“꼭 다 드실 필요는 없으신데, 그래도 웬만해서는 챙겨 드세요.”

“네.”

나는 대답을 하면서 간호사를 슬쩍 살폈다. 야동을 볼 때는 예쁜 배우들이 간호사복을 입고 있어서 꼴릿꼴릿했는데, 여기 간호사들은 그런 게 없다. 오히려 간호사가 아니라 혹시 운동을 하는 사람인지 의심될 정도로 몸이 좋았다.

‘하나도 안 꼴려.’

누가 병원가면 간호사 보는 맛으로 산다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자식을 만나면 바로 면상에 주먹을 꽂아 줄 테다. 그리 생각한 나는 식판에 올라와 있는 희멀건 콩나물국을 숟가락으로 한 입 떠먹었다.

“후르릅. 웁?!”

마치 콩나물이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은 맛이 느껴진다. 아니, 진짜로 그냥 물에다가 콩나물을 넣기만 한 것 같은 맛이다. 자극적인 조미료에 엄청나게 익숙해진 내 입맛에는 안 맞았다. 급히 간호사들이 나가기 전에 한 명을 불렀다.

“저기요!”

“응? 왜 그러시죠?”

혹시 문제라도 있을까, 말단으로 보이는 간호사 한 명이 다른 선배들을 내보내고 나에게 다가왔다. 재빨리 눈치를 보며 말했다.

“저기... 제가 갑자기 배가 아파서 도저히 못 먹겠거든요. 혹시 이대로 가져가주실 수 있나요?”

“에휴, 알았어요.”

내 말에 간호사는 잠시 나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이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내가 꾀병을 부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것 같았다. 괜히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도저히 저 음식들을 먹을 자신이 안 들었다.

저건 그야말로 자연 그 자체였다고. 젠장.

‘이렇게 된 거, 식당이나 가자.’

식당에 가려고 지갑을 챙기려는데 문득. 잊고 있었던 사실을 떠올렸다. 정말 재수 없는 새끼기는 하지만 이제는 미운정이 들어 도저히 버릴 수 없던 녀석.

‘내 다람쥐 어떻게 됐어.’

분명 패딩 주머니에 있었던 것까지는 기억하는데, 패딩을 입고 이리저리 굴러다녔으니, 혹시 그대로 납작한 빈대떡이 되어 버린 건 아닐지 걱정된다. 급하게 패딩 주머니를 뒤적거리자, 평소보다 살이 더욱 뒤룩뒤룩 찐 채로 곤히 잠자고 있는 다람쥐가 모습을 드러냈다.

찌이...찌이...-

손가락으로 볼을 쿡쿡 찔러보고, 패딩 주머니에 남아 있는 도토리를 가까이 대어도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 본격적으로 동면에 들어간 것 같았다. 나는 다람쥐를 침대에 조심스럽게 눕혀주며 자리에서 한 발로 일어났다.

“조금 씁쓸하긴 하네.”

인터넷으로 조사했을 때, 다람쥐를 키우는 사람들의 가장 힘든 시기가 다람쥐들이 동면에 들어갈 때라더니... 그 말이 딱 맞았다. 매일 싸움만 했어도, 이렇게 조용하기만 한 녀석을 보자 괜히 아쉬웠다.

그 뒤로 식당을 가서 간단하게 치즈돈까스를 먹고 내려온 나는, 다시 멍하니 누워 시간을 때우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환자는 정말 할 게 없었다. 구식 스마트폰으로 동물팡 같은 게임도 해봤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금방 질려 스마트폰을 내려놨다.

‘병원이 이렇게나 끔찍한 곳이었을 줄이야.’

잠시 지루함에 침대에서 몸부림치다보니 결국 나는 또 잠들고 말았다. 병원... 무서운 곳이다.

*

*

*

은미는 주인님께서 가르쳐주신 주소로 찾아가, 루엘을 찾았다. 바빠 보였지만, 거짓말처럼 주인님의 이름을 대자 바로 해결되었다.

“이런... 지우 씨의 여자셨군요. 제가 몰라봤습니다. 저는 지우 씨의 절친 이자, 인큐버스들을 이끌고 있는 루엘 파이몬이라 합니다. 반갑습니다.”

예의 바르고, 잘생긴 남자다.

은미는 그리 생각하며 이름만을 툭 내뱉었다.

“김은미.”

“후후, 은미 씨군요. 지우 씨의 쪽지는 잘 읽었습니다. SM준비라... 그 착하고 여린 지우 씨께는 조금 안 어울릴 것 같지만, 친구로서는 다양한 플레이를 해보는 것도 추천할 수밖에 없겠죠. 금방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알았어.”

루엘의 말대로 잠시 후, 잘생긴 인큐버스들이 이상하게 생긴 물건들을 잔뜩 들고 왔다. 개목걸이는 기본이고, 수갑에, 밧줄, 채찍, 촛농, 입을 벌리는 도구부터 막는 도구, 구슬들이 잔뜩 달린 바이브. 심지어 조립식 삼각목마까지. 없는 게 없는 것 같았다.

은미는 이걸 보면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여기는 호스트바인데... 그럼 설마 이걸 당하는 사람들이 전부.......’

눈앞에 있는 남자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절로 침이 꿀꺽하고 넘어갔다. 소름이 우수수 돋아, 그녀는 재빨리 도구들을 커다란 배낭 가방에 담은 뒤 그곳을 떠났다. 남자들이 밧줄에 묶여 있는 모습을 상상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음으로는 적당한 장소를 찾는 게 중요했다.

‘그 년이 비명을 질러도 아무도 눈치 채지 못 할 장소가 필요해.’

이게 제일 어려운 문제였다. 그러나 은미는 주인님의 명령을 떠올리며 힘을 냈다. 주인님이 자신을 믿고 이런 일을 맡겨주었다는 것 자체가 행복했다. 그리고 이 일을 완벽하게 해내면 오늘도 자신에게 상을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아랫부분이 근질거려왔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의 머릿속에 적당한 장소가 떠올랐다.

‘무법지... 그곳이라면 괜찮겠다.’

평화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이 모여 있는 곳, 항상 싸움이 끊이지 않는 그곳이라면 예진이 비명을 지르고, 도움을 요청해도 아무 상관이 없을 게 분명했다.

그 대신 무법지의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서는 싸움을 피할 수 없었다. 그곳에는 아직까지 살아남은 몬스터나 이종족, 심지어 이능력자들까지 있었으니까 말이다. 아무리 자신이 뛰어난 능력자라고 해도 자칫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주인님을 위해서 한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도시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폐허들만이 자리 잡고 있는 무법지 안으로 발을 옮긴 은미는 눈앞에 드러난 광경에 순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시체.

시체.

시체!!

시체!!!

시체!!!!!!

몬스터, 이종족, 인간... 구별 할 것 없이 온통 토막 난 시체의 천국이었다. 그곳은 이미 지옥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아니, 지옥보다 더욱 지옥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곳에 유일하게 제대로 된 육신을 유지하고 있는 자는 단 한 명이었다.

단 한 명...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검을 들어 올린 채 멍하니 서있는 여자.

은미는 등을 바라보고 있을 뿐인데,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끼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저 인물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검제(劍帝). 신하연....”

그녀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그제야 멍하니 서있던 검제가 몸을 돌렸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은미는 그대로 무릎이 후덜덜 떨리며, 절로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참을 수 없는 공포감이 그녀의 마음속 깊숙이 흘러들어왔다.

식은땀이 줄줄 흐르며, 온 몸에 오한이 들었다.

차라리 이대로 혀를 깨물고 자살하는 게 더 편할 것 같았다. 그 마음을 막아주는 것은 지우라는 주인님에 대한 충성심이었다.

“큭, 이 빌어먹을 년 같으니라고... 도대체 여기서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공포심을 이겨내기 위해 은미는 일부러 강하게 소리쳤다. 이렇게라도 소리 지르지 않으면, 아무리 주인님에 대한 마음으로 버티려고 해도, 당장 머리를 박고 자살할 것만 같았다.

은미의 물음에 검제는 피식 웃더니 검집에 검을 집어넣었다.

“...강해지려고 했을 뿐.”

그 말만을 남긴 검제는 은미가 눈을 깜빡이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모습을 감췄다. 순식간에 사라진 압박감에 숨을 몰아쉰 은미는 그대로 주저앉은 채 잠시 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다.

‘미친년.’

입으로 내뱉는 것조차 무서워...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속으로 욕하는 것 말고 없었다. 아직도 다리가 후들거려,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게 저녁이 될 때까지 은미는 그 장소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저녁이 되고 나서야 조금 긴장이 풀린 것을 느끼며, 은미는 급하게 신체 능력을 이용해 시체들을 전부 한 곳에 모아 파묻었다. 이러한 장면을 주인님께 보일 수는 없었다. 그리고 적당한 장소를 찾아낸 은미는 그곳에 도구들을 전부 내려놓은 뒤, 예진을 납치하기 위해 움직였다.

검제를 만났던, 안 만났던... 자신은 살아남았고, 살아남은 이상 그녀에게 지금 제일 우선적인 것은 ‘주인님의 명령을 이행하는 것’이었다.

============================ 작품 후기 ============================

nikumaimu / 그렇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SM은 처음인 것도 모자라, 순둥이죠...ㅎㅎ;

곰의판타지  / 핫방망이!

키바Emperor / 전 원래 얌전한 여성을 좋아합니다만... 요즘은 은미가 너무 좋아요 후후.

내코돌려줘용 / 헉헉, 일하는 중입니다.

smone / 후후... 작가는 머리가 이상하기에 스토리도 이상하죠.

마녀서윤 / 맞아요. 공공 장소에서 시끄럽게 하시는 분들 정말 싫긴 하죠. 공감! 생각해보니 예진의 행동도 의외로 통쾌하네요 후후... 하지만 역시... 말이 좀 심하긴 했죠.

휘텐가르트 / 감사합니닷!

슈메이비 / 감사해요~!!

제 머릿속에 병원 이미지는... 지루함 그 자체였던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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