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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가 된 세계에서-62화 (62/163)

00062 [엘퀴네스의 부탁] =========================

일단 먼저 다른 여자들을 돌려보낸 뒤, 루룬의 안내로 걸어서 도착한 곳은 의외로 내 자취방에서 그리 먼 곳이 아니었다. 아니, 사실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걸어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가깝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떡하니 대문에 물냉면파라고 적혀 있는 5층 건물을 보며 나는 결심했다.

‘이사 가자.’

몰랐으면 모를까, 이렇게 가까운 곳에 엘퀴네스가 있었음을 깨닫자 당장이라도 이때까지 먹었던 라면들이 전부 역류할 것만 같은 느낌이다.

“들어가요. 지우 씨.”

“네.”

나는 루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계단을 올라가면서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이사는 최대한 여기서 멀리 있는 곳으로 가야겠다.’

솔직히 반 장난 식으로 다 같이 살자는 말을 꺼냈었는데, 이렇게 된 이상 루룬까지 데리고 큰 집을 장만해야겠다는 마음이 진짜로 들었다. 그러나 이사를 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 있었다.

‘돈이 좀 필요하겠는데?’

물론 아직 수중에는 약간의 목돈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 돈으로 다섯 명이 함께 사는 집을 구하는 것은 무리였다.

‘뭐, 정 안 되면 아이템 몇 개 팔면 되지.’

이미 일주일간 매일매일 뽑은 아이템들이 내 아공간에 쌓여있었다. 이 중에서 대충 몇 개만 팔더라도, 너끈히 대저택을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나는 건물 안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건물 안은 의외로 한적하고 넓었다. 지난번에 보았던 검은 양복의 사나이들을 떠올리면, 북적거릴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우리는 5층까지 올라와, 하나의 문 앞에 나란히 섰다. 루룬이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에요. 이 안에 아빠가 있을 거예요.”

“으으... 들어가야겠죠?”

나는 정말 들어가기 싫은 마음에 루룬에게 주저하며 물었고, 내 물음에 루룬은 냉정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여기까지 왔잖아요. 용기를 내요. 지우 씨.”

“...후우, 그 양반 얼굴을 보면 아마 있던 용기도 쏙 들어갈 것 같아서 그래요.”

나는 솔직한 심정을 말하며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끼이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는 동시에 문 사이로 물줄기 몇 개가 나를 향해 날아왔다. 참고로... 가벼운 물줄기에 불과한데, 저걸 맞으면 최소한 ‘즉사’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심장이 잠깐이지만 멈출 정도로 죽음이란 것이 느껴졌거든.

그러나 다행인 것은 내 옆에 루룬이 있었다는 것.

“정말... 부른 사람이 이런 짓을 하면 어떻게 해요!”

루룬이 짜증을 내며 물줄기를 향해 손을 휘젓자, 그대로 나를 향해 날아오던 물줄기가 파앗-하고 흩어졌다. 역시 정령족...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동시에 정말로 듣기 싫었던 남자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들렸다.

“흥, 왔구나. 꼬맹이.”

목소리의 끝에는 여전히 빌어먹을 정도로 무섭게 생긴 엘퀴네스가 담배를 푹푹 펴대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눈은 마치 ‘이 빌어먹을 말미잘 같은 새끼가 감히 내 귀여운 딸과 함께 왔단 말이야?!’라고 말하는 듯 했다.

‘아니, 대체 저 모습 어디를 봐서 정령왕이라는 거야?! 그냥 뒷골목 깡패왕이구만!’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고 나는 공손히 입을 열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부르셨다고 해서 왔습니다. 하하하.”

엘퀴네스 앞에 있으니, 자연스럽게 군대에서 배웠던 ‘다나까’말투가 튀어나온다. 관등성명을 안 내뱉은 게 용할 지경.

내 인사에 엘퀴네스가 재떨이에 가래를 뱉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카악!! 퉤! 어이, 꼬맹이. 내가 지금 당장이라도 묵사발로 만들고 싶은 널 왜 불렀는지 알아?”

그걸 알면 제가 여기까지 찾아왔을까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뭐?! 몰라?! 모른다고 하면 인생 쉽게 풀릴 것 같아?!”

내 대답에 엘퀴네스가 인상을 팍 찌푸리며, 책상을 내려쳤다.

콰앙! 콰지직!-

단숨에 딱딱해 보이는 책상에 금이 가더니, 반으로 쪼개지며 재떨이와 책상 위에 있던 장식품들을 떨어뜨렸다.

딱 봐도 화났음을 보이는 태도에 내 다리가 다 후들거렸다. 이런 상황에서 나를 구해주는 것은 역시 루룬밖에 없었다.

“아빠! 지금 그게 다른 사람한테 부탁하는 태도에요?!”

“...딸아, 내가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느냐. 아빠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끼어들지 말라고.”

부모로서 엘퀴네스가 짐짓 엄하게 루룬을 꾸짖었지만, 루룬은 눈썹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크게 소리치며 대들었다.

“그런 거 몰라요!! 당장 지우 씨를 왜 불렀는지나 말해달란 말이에요!!”

“쯧, 애가 크더니 버릇만 안 좋아졌군. 생긴 건 엄마를 닮아서... 성격은 나를 닮아가지고는 쯧쯧.”

심지어 자기 입으로 자기 성격이 안 좋음을 인정하는 엘퀴네스. 그리고 그런 엘퀴네스를 노려보고 있는 루룬. 마지막으로 어찌해야 할지 몰라 가시방석 위에 있는 것만 같은 나까지.

‘그냥 빨리 집에 가고 싶다.’

이런 생각이 절로 들고 있는데, 엘퀴네스가 담배를 길게 빨아들인 뒤, 드디어 본론을 꺼내들었다.

“후우~ 마음 같아서는 너 같은 녀석한테 부탁하고 싶지는 않은데 말이야. 지금 우리 물냉면파가 다른 조직이랑 전쟁 중에 있단 말이지. 그래서 꼭 해줘야 했던 일이 있었는데... 그걸 해줄 사람이 없어.”

툭툭!-

담뱃재를 대충 아무대나 털어 낸 엘퀴네스가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그러던 와중, 빌어먹을 네 녀석이 생각나더라고. 정령왕이란 말이지. 태어날 때부터 독특한 직감이란 걸 타고 나는데, 왠지 네 녀석이라면 이 일을 잘 해결해줄 거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

“그래서 그 일이 뭡니까? 이제는 슬슬 말해주시죠.”

긴 이야기를 들어주기에는 너무 지겨웠기에 내가 대놓고 물었다. 아마 이 때 내가 죽을 뻔 했다는 것을 나는 아마 평생 몰랐을 게 분명하다.

어쨌든 엘퀴네스는 내 태도에 한 번 인상을 찌푸리며, 종이 하나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툭!-

내 앞에 떨어진 종이를 줍자 엘퀴네스가 말했다.

“거기 적힌 주소로 찾아가면 ‘불족발파’라고 하나의 조직이 있을 거다. 거기의 두목이 나랑 잘 아는 사이거든. 그 녀석한테 가서 ‘물냉편파’의 엘퀴네스가 보냈다고 하면 알아서 네놈한테 일을 시켜줄 거다.”

엘퀴네스의 말에 쪽지를 확인하자, 역시 주소 하나가 적혀 있었다.

[OO광역시 OO동 OO번가.]

심지어 여기서 엄청 먼 곳이다.

갑자기 귀찮아진 내가 건들거리며 엘퀴네스에게 말했다.

“이거 꼭 제가 해야 하나요? 저 바쁜 사람입니다. 이제 곧 엘프..........”

여기까지 내가 입을 열었을 때 엘퀴네스가 조용히 주먹을 꽉 쥐며 흔드는 것이 보였고, 나는 재빨리 말을 바꿨다. 저 깡패 앞에서 건들거리다니...잠시 간이 배밖에 나왔던 게 분명하다.

“뭐라고 했냐? 꼬맹이.”

“...사실 내가 옛날부터 별명이 강부탁이었습니다. 그냥 부탁하면 거절을 못 한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죠.”

“그러면 지금 당장 거기 적힌 장소로 꺼져.”

“넵!”

나는 재빨리 대답하며 밖으로 나왔다. 루룬은 마지막까지 엘퀴네스를 한 번 노려본 뒤에 나를 따라 나왔고, 나는 문을 닫고 나서야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오늘 하루 종일 한숨만 쉬는 것 같네요.”

“죄송해요. 지우 씨... 아빠가 저렇게까지 강압적으로 나올 거라고는 생각 못 했어요.”

루룬이 정말로 미안한 듯 고개를 푹 숙이자, 내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루룬이 잘못한 게 뭐가 있겠어요. 전부 저 깡... 아니, 일단은 아직 이른 시간이니까, 이 쪽지에 적힌 곳으로 찾아가 봐야겠어요.”

나는 그렇게 말한 뒤, 루룬을 집까지 데려다 주고 지하철역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문득. 지난번에도 이렇게 지하철을 타러 왔을 때 얼핏 지혜 누나를 봤던 게 떠올랐다.

‘누나, 뭐하고 있어요...’

이제는 조금 희석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지혜 누나를 떠올리면 마음 한구석이 지끈거린다.

덜컹덜컹!-

[지금 ㅇㅇ ㅇㅇ행으로 가는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은 한 걸음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번에 나는 지혜 누나를 볼 수 없었고, 그대로 지하철을 이용해 쪽지에 적힌 장소로 무사히 도착했다.

============================ 작품 후기 ============================

이번편은 초반부분이 조금 지루하네요. ... 하지만 스토리 진행을 무난하게 보여드리기 위해 조금 지루하지만, 넣었습니다! 그대신 연참으로 빠르게 휙휙 넘기고 말겠어요!

휘텐가르트 / 루엘에게 배운 게 어장관리가 아닌, 여자 후리기 뿐이었기 때문이죠!

쉐르나 / 하으... 추천 리딩 정말 감사합니다!

은아준 / 하렘물에서 빠질 수 없죠! 그리고 원할 때마다 원하는 여자와 H씬을 적을 수 있다는 게 너무 큰 이득!

nikumaimu  / 그 편은 지금 제가 봐도 오글거리고, 보면 한숨만 나오는 편입니다. 안 보셔도 돼요.

보랏빛날개 / 진리 진리!!

운명이란... / 헐 ... 제 소설 정주행이라니... 정말 감사합니닷!!

* 추천, 코멘트, 쿠폰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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