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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가 된 세계에서-63화 (63/163)

00063 [엘퀴네스의 부탁] =========================

엘퀴네스가 건네준 쪽지에 적힌 곳으로 오자, 물냉면파의 건물과 아주 똑같이 생긴 건물이 위치하고 있었다. 대문만 ‘불족발파’라고 적혀 있지 않았으면, 내가 지금 되돌아온 게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똑같았다.

“빨리 끝내고 가자. 이제 진짜로 피곤하다.”

오늘 퇴원했는데, 갑작스럽게 여자들을 만난 것부터 엘퀴네스까지 만나고, 이제는 이름도 모를 깡패를 돕게 생겼다.

나는 불족발파 건물 안으로 들어가며 계속 중얼거렸다.

“어차피 뻔 하겠지. 불족발파의 두목은 엘퀴네스랑 똑같이 정령왕일거고. 조직 이름을 보아하니 불의 정령왕, 이프리트 아니겠어? 거기다가 생긴 건 당연히 우락부락한 불곰일 거고.”

그 때 조용히 있던 마더가 생각났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아! 이프리트님 하니까 생각나는데... 옛날에 이프리트님이랑 엘퀴네스님이랑 결혼하셨던 사이라 들었어요. 지금은 서로 싸운 뒤, 이혼했지만요.]

‘응? 잠시만.......’

나는 마더의 말을 듣고서 정보를 하나 수정해야함을 깨달았다.

‘결혼을 했다고?’

그렇다면 남자끼리 결혼했을 리는 없으니, 적어도 이프리트는 여성체라는 것 아닌가.

‘그래봤자... 여자 불곰이겠지.’

정령왕이라는 환상이 엘퀴네스 덕분에 와장창 깨진 나는 절대 기대를 하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계단을 올라가 5층으로 향했고, 똑같은 것은 건물뿐만이 아니었는지. 불족발파의 건물 안에도 다른 사람들은 안 보였다.

나는 그대로 한숨을 한 번 푹 내쉬며, 5층에 있는 문을 열고 젖혔다. 혹시 모르니 문을 여는 동시에 몸을 피하는 것도 잊지 않고 말이다.

화르륵!-

“미친...!”

역시나 이번에도 내가 문을 열자마자 불이 뿜어져 나왔고, 미리 몸을 피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살아있는 채로 화장을 치를 뻔 했다.

‘시발, 빌어먹을 정령왕 새끼들... 이제는 못 참는다.’

속으로 욕지거리를 중얼거리며 나는 안으로 들어갔고, 진짜 정령왕한테 한소리 해야겠다 생각하는데... 이프리트를 마주하는 순간, 그러한 생각이 쏙 들어갔다.

“.......”

방 안에 있던 것은 여자 불곰이 아니었다. 아니, 이 때까지 내가 만나봤던 어떤 여자들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자신과 꼭 닮은 여자 아이를 안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딱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저 여자가 이프리트라는 것을. 왜냐하면... 인간은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샤샤의 붉은 머리카락과는 비교가 안 되는 활활 불타는 것만 같은 붉은 머리카락. 눈동자 안에는 작게 불들이 일렁거리고 있었는데, 그게 무섭다기보다는 신기하고 아름다웠다. 자연이 눈 안에 담겨 있는 것만 같았다.

몸매도 장난 아니었다. 은미랑 비슷하거나 더 큰 가슴을 가지고 있으면서 허리는 개미허리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얇았다. 인간이 저런 몸매를 가졌다가는 가슴 무게 때문에 허리가 부러질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얼굴은 그냥 보는 순간 말이 안 나올 정도로 예뻤다. 몸매는 풍만하면서 얼굴은 작았고, 그 작은 얼굴에 조막만한 입술, 오뚝한 코...동그란 눈동자까지. 뭐 하나, 사람의 탄성을 자아내지 않는 부분이 없었다.

내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마더도 똑같은 마음을 느꼈는지 중얼거렸다.

[...이프리트님이 이런 미녀일 거라고는 예상 못 했어요.]

마더의 중얼거림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초절정 미녀... 이프리트가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런... 미안하게 됐어. 갑작스럽게 누가 들어오려고 해서 그런지... 우리 애가 좀 놀랐거든.”

그렇게 말하며 자신이 껴안고 있는 여자 아이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는 이프리트. 그러자 여자 아이가 훽 하고 고개를 돌리더니, 이내 빼에엑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으앙! 으아아아앙!!”

화르륵!-

문제는 저 여자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갑자기 여자 아이의 주위에 불이 피어올라 방안을 채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열기가 무시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었다. 순식간에 내 이마에서 땀이 주르륵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에구구, 울지마렴. 헤스티아.”

이프리트가 재빨리 여자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달래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더욱 크게 울음을 터뜨리는 헤스티아.

“으아아앙!! 으앙!!!”

빠직!-

그러자 결국 참다 못 한 이프리트가 폭발했다. 불의 정령들 중에 욱하는 성격들이 많다고 하더니 진짜인 것 같았다.

“하?! 엄마가 울지 말랬잖아! 이 빌어먹을 아기야!!”

콰앙!-

쨍그랑!-

이프리트가 화를 내자 방금까지 멀쩡하던 창문들이 폭발을 일으키더니 단숨에 와장창 깨졌고, 그제야 헤스티아가 울음을 멈췄다.

그 모습을 보며 나와 마더는 작게 중얼거렸다.

“왠지 잘못 걸린 것 같다.”

[이번에 새로 자식을 낳으셨나 본데... 딱 보니 저 아기도 장난 아닐 것 같네요.]

이렇듯, 내가 땀과 식은땀을 동시에 흘리고 있는데, 아기를 달랜 이프리트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근데 넌 누구야? 다른 조직 사람?”

그걸 이제야 묻는 건가...하고 생각하지만, 정령왕이란 존재를 인간의 잣대로 생각해서는 안 되기에 나는 재빨리 엘퀴네스의 이름을 팔았다.

“물냉면파의 엘퀴네스님이 보내셔서 왔어요.”

신기한 것은 눈앞에 있는 이프리트도 똑같은 정령왕인데... 여성체라 그럴까, 아니면 미녀여서 그런걸까. 말이 편하게 나온다는 것이다.

“으음, 엘퀴네스가 널 보냈다고? 이상하네... 난 분명 물의 정령족을 보내 달라 했던 거 같은데...”

“.......”

이프리트의 말을 듣는 순간, 단숨에 내가 엘퀴네스에게 한 방 먹었음을 깨달았다. 이 빌어먹을 물의 정령왕은 자기 딸을 보내기 싫으니까 나를 보낸 것이다.

이프리트는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뭐, 됐어. 어쨌든 엘퀴네스가 보냈다면 너도 뭔가 있다는 거겠지. 미안한데, 오래 얘기 나눌 시간이 없거든? 내가 지금 좀 많이 피곤해. 여기 내 품에 있는 애 보이지? 이번에 낳은 애인데... 이름은 헤스티아. 이제 1살이라서 조금 애가 말썽을 많이 부려. 그래도 귀엽지? 후후.”

“아... 네. 귀엽네요.”

언제 잠들었는지, 새근새근 소리를 내고 있는 아기의 머리를 쓰다듬는 이프리트를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프리트의 몸매와 얼굴밖에 눈에 안 들어왔다.

“어쨌든 얘가 조금 내 힘을 강하게 이어받은 탓에 지금 우리 조직이 조금 난리야. 헤스티아가 우리 조직 애들의 힘을 너무 많이 빨아댔거든. 심지어 지금도 내 힘을 어마무시한 속도로 빨아들이는 중이야. 역시 내가 다음 시대 정령왕으로 생각하고 있는 아이라 그런 걸까.”

거기까지 말한 이프리트는 한 번 숨을 고른 뒤에 다시 말을 이어갔다.

“후우, 어쨌든 시간 아까우니까 짧게 결론만 말해줄게. 네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이 아기. 헤스티아를 하루 동안 돌봐주는 거야. 내가 잠시 힘을 회복하고 돌아올 때까지만 말이지. 어때? 쉽지?”

“...그러네요.”

나는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그렇다하고 있지만 당연 쉬울 리가 없었다. 방금 아기가 울음을 터뜨리기만 했는데, 피어오르던 화염을 떠올리면 자칫 잘못하면 오늘이 내 제삿날일 수도 있었다. 이게 전부 엘퀴네스가 노린 거라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뒷목을 부여잡고 고혈압으로 쓰러질 것만 같다.

“그럼 부탁할게. 아, 물론 나중에 갔다 오면 후훗, 이 몸이 상상도 할 수 없는 보상을 줄 테니까 너무 안 좋게만 생각하지 말아줘. 그럼 간다.”

“네, 알겠습니다.”

엘퀴네스와 달리 나에게 보상을 준다고 약속하는 이프리트를 보자, 나는 조금 마음이 풀리는 걸 느꼈다.

‘역시 엘퀴네스만 개자식이었군.’

내가 속으로 엘퀴네스를 욕하고 있을 때 이프리트가 곤히 잠든 헤스티아를 나에게 건네더니 눈앞에서 화염과 함께 모습을 감췄다.

[아마, 간이 정령계로 돌아가신 것 같아요. 정령왕들께서는 역시 중간계에 있으면 힘의 소모가 심하시니 까요. 거기다 정령족을 낳았고, 그 정령족에게 힘까지 빨리고 있었다면... 제 아무리 이프리트님이라고 해도 한계에 가까우셨겠죠.]

친절한 설명 고마워. 마더.

나는 마더에게 감사하면서, 동시에 아기가 지금 자고 있음에 감사했다.

“일단 잠시 동안은 평화롭겠.......”

내가 이리 중얼거리며 한숨 돌리려는데, 거짓말처럼 아기의 눈동자가 떠져 있는 것도 모자라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게 보였다.

“...뭐, 울지만 않으면 괜찮겠지.”

[악, 그런 말은 하면 안 된다고요! 사망 플래그가...!]

마더가 급하게 소리쳤지만, 이미 내 말을 들은 헤스티아의 눈가에 벌써부터 이슬이 살짝 맺혀가고 있었다. 참고로 이프리트니까 아기가 울음을 터뜨렸을 때 화염이 일어나도 버틸 수 있었던 거지. 내가 지금 살려면 아기를 창문 밖으로 던지는 게 더 빨랐다.

물론 그럴 수는 없으니, 다른 방법을 써야했지만 말이다.

나는 재빨리 최면술을 사용했다. 아기한테 최면술을 쓴다는 게 조금 양심에 걸렸지만, 살기 위해서는 별 수 없었다.

“너는 내 앞에서는 아주 얌전하고 얌전한 아기가 되는 거야. 눈앞에 있는 남자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말을 잘 듣는 아기가 되는 거지.”

“으...우웅.”

내 최면에 아기가 울음을 터뜨리려다가 금세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얼굴을 살짝 붉히는 것이 정말 사랑에 빠진 것 같았다.

동시에 내 귓가에 믿을 수 없는 시스템 음성들이 울려 퍼졌다.

[최면술에 성공하셨습니다.]

[반신(半伸)까지 앞으로 한 보 남은 존재에게 한 방 먹이시다니! 당신의 능력에 감탄합니다! 보너스 경험치 : 15000EXP]

[다음 레벨까지 필요 경험치 : 82900EXP]

“...미친.”

이런 아기가 반신까지 앞으로 한 보 남은 존재라면... 능력 레벨로 따지면 레벨 6에 해당하는 녀석이라고?

나는 그제야 질린 눈으로 헤스티아를 바라봤다.

헤스티아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얼굴을 붉히며 자그마한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사랑스럽기도 한데, 솔직히... 무섭기도 하다.

============================ 작품 후기 ============================

아으, 다들 이프리트를 예상해서... 눈물...

하지만 이프리트가 '유부녀'라는 것은 아무도 예상 못 했겠죠!!

헤헤헤.

헤스티아 = 화로의 신.

...하지만 저도 ㄷㅁㅊ 팬임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능력 레벨이 낮다고 해서... 높은 레벨에게 안 통하는 것은 아닙니다~ 라는 건... 이미 다 아시겠죠 ㅎㅎ.

특히 아기인 헤스티아는 지우의 최면술을 튕겨내지 못 했죠.

쉐르나 / ㅋㅋㅋ 이런.

Vagabundo / 혹시 스토리 진행하는데 까먹으시는 분 계실까봐 가끔 넣고 있죠 ㅎㅎ.

크라운빵 / 현재 동면중입니다. 찌익...

Elde / 엘퀴네스는 깡패거든요. 부탁하는데 아무것도 안 줬습니다.

휘텐가르트 / 아으... 이분들 예측력이 너무 뛰어나셔요 ㅠㅠ.

운명이란... / 크... 모두가 예상할 줄이야... 너무 뻔했군요 ㅠㅠ. 끝편까지 전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Bathin  / 작가가 좋아하는 음식...은 아니고, 일단 그냥 정해진 겁니다.

nikumaimu / ㅎㅎㅎㅎ 아직 바람이랑 땅의 정령왕은 안 나왔죠~

내코돌려줘용 / 세뇌해도 다람쥐는 도토리묵을 안 먹을 것 같아요. 찌익!!!

곰의판타지 / ㅋㅋㅋㅋㅋ 악!! 모릅니다.

섭인룡 / 빠른 댓글에 감사합니다!!

*항상 추천, 코멘트, 쿠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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