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나가 된 세계에서-124화 (124/163)

00124 [온천 여행에서] =========================

“시이...! 역시 겨울에는 온천이다. 시이...”

“시싯, 인정할 수밖에 없다. 시시싯!”

그곳에는 인간과는 달리 군데군데 갈라진 피부가 잘 보이는 리자드맨 세 마리가 알몸으로 어깨에 수건을 올린 채 서로를 향해 혀를 내밀며 즐겁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탈의실 구석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한숨을 내쉬었다.

‘와, 진짜 식겁했네.’

입구에 들어오자마자 보인 게 할아버지의 알몸도, 그렇다고 중년 아저씨의 알몸도 아닌 리자드맨 셋의 알몸이라니. 자칫 잘못하면 비명을 지르는 실례를 저지를 뻔했다.

‘아씨, 근데 저 녀석들도 들어가는 건가.’

나는 옷을 벗으면서도 힐끔힐끔 리자드맨 쪽을 바라봤다. 씻고 나온 것이 아니라, 이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 리저드맨을 보니 갑자기 온천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질 것만 같았다.

“시이~ 들어가자.”

“시싯!”

그러나 리자드맨들조차 웃으며 들어가는 온천을 떠올리자 또 마음이 바뀐다. 나중에 다시 온다고 해서 다른 몬스터가 없다고 장담할 수도 없는 법.

나는 결국 갈팡질팡 하다가 어느새 옷을 다 벗고 온천에 들어갈 준비를 끝마치고 있었다. 들어가기 전 보이는 거울 앞에 서서 살짝 복근에 힘을 준 나는. ‘음, 이 정도면 꽤 괜찮은 거 아닐까?’ 하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다음으로는 몸무게를 재보니 73.1kg이라는 나름 나쁘지 않은 몸무게가 나왔다.

그리고 기대하던 온천에 들어가기 위해 미닫이문을 드르륵-하고 여는 순간, 나는 물보라와 함께 저 멀리 하늘로 날아가는 리자드맨 셋을 멍하니 쳐다봐야만 했다.

콰아앙!-

“이 빌어먹을 도마뱀 새끼들이 어디를 감히 들어오려는 거야!!”

“시싯?!”

동시에 물보라 너머로 왠지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몸이 저절로 석고상이라도 된 것 마냥 굳어버렸다.

쏴아아!-

하늘로 치솟았던 물보라가 가라앉으며 목소리의 정체가 누군지 드러났다.

마치 광활한 바다를 보는 것만 같은 푸른빛 머리카락과 눈동자, 유명한 조각사가 깎아 만든 것만 같은 완벽한 근육질 몸매, 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떨릴 정도로 확실하게 느껴지는 ‘왕’의 위압감.

비유하자면 두 발로 걸어 다니는 불곰을 연상시킬 수 있는 물의 정령왕, ‘엘퀴네스’였다.

나는 ‘여기 왜 엘퀴네스가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이미 반사적으로 등을 돌리고 있었다.

‘도망쳐야 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엘퀴네스의 눈에 띄어서 좋을 일은 절대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카운터에 가서 수영복을 빌려 혼욕이나 하러 가야겠다 생각하는데 뒤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나를 붙잡았다.

“거기 멈춰.”

“.........!”

엘퀴네스가 말 한마디만을 내뱉었을 뿐인데 홀드 마법이라도 걸린 것처럼 몸이 굳어버렸다.

“흐음...너 인마, 뒷모습이 뭔가 낯이 익다?”

“...그럴 리가요.”

식은땀을 주르륵 흘리며 일부러 목소리를 바꿔 대답했지만 이런 걸로 엘퀴네스를 속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당장 일로 온다. 실시.”

“실시!”

첨벙!-

엘퀴네스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나는 재빨리 몸을 던져서 온천 안으로 몸을 담갔다.

“크으...”

갑작스럽게 들어가서 뜨거운 온천물에 이대로 녹아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느낌도 들었지만, 그건 잠시. 따뜻하면서도 좋은 향이 흘러나오는 것이 피로가 싸악 풀리는 것만 같았다.

동시에 들어온 온천의 뒤는 뻥~하고 뚫려있었는데 너머로 보이는 산 풍경에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차갑기 그지없는 겨울바람도 오히려 온천에 들어와 있다는 보람을 느끼게 해줘서 더욱 기분이 좋았다.

다만 옆에 엘퀴네스만 없었다면 말이다.

“좋냐?”

“...좋습니다.”

“그래, 나도 온천은 좋아한다.”

“..........”

의외로 평화롭게 끝나는 건가... 나는 방금 날아간 리자드맨처럼 쫓겨나는 게 아닌가...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데 엘퀴네스의 입에서 내 심장을 쫄깃하게 하는 단어가 나왔다.

“그런데 말이야...설마 아니겠지만. 내 딸, 루룬이랑 같이 여행 온 건 아니겠지?”

“...쿨럭!”

순간 피라도 나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크게 기침을 한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양 손으로 내 입을 막았다.

두근두근-

심장이 미칠 듯이 뛰면서 온천 안에 있어서 흐르는 땀인지, 아니면 목숨의 위기를 감지하고 흘러내리는 식은땀이지 구분이 안 되는 물방울을 송골송골 맺으며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선택은 딱 두 가지 뿐이었다.

-미친 척 시치미를 뗀 뒤에 루룬을 숨긴다.

-당당히 루룬과 여행을 왔다고 하고, 엘퀴네스에게 루룬을 달라한다.

문제는 이 두 가지 중 어떠한 선택을 해도 결말은 ‘죽음’밖에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다. 거짓말을 했다가 들키면 죽을 것이고, 루룬과 여행을 왔다고 해놓고는 다른 여자들이 바글바글 거리는 모습을 보이면 그것도 결국 죽음으로 이어질 게 분명했다.

‘솔직하게 말하자.’

그렇다고 해서 거짓말은 할 수 없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킨 뒤에 말했다.

“루, 루룬을 포함한 다른 여자들과 함께 여행을 왔습니다.”

“...그래?”

“윽?!...응?”

한 대 맞을 것 정도는 각오하고 있던 나는 이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엘퀴네스를 보며 눈을 살짝 떴다.

그곳에는 나와 루룬 앞에서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던 미소를 짓고 있는 엘퀴네스가 조용히 눈을 감은 채 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나 또한 눈을 감으며 온천을 즐기려는데 엘퀴네스가 돌연, 입을 열었다.

“훗, 루룬도... 벌써 그런 때가 되어 버렸나.”

“엘퀴네스님?”

“어이, 쭉정이.”

“넵.”

“내 딸, 상처 입히거나 울리면 죽는다.”

“..........”

뭔가 뭉클할 정도로 딸을 아끼는 아빠의 마음이 느껴지는 엘퀴네스의 갑작스런 말에 나는 순간 대답을 하는 걸 잊고 말았다.

“대답 안 해? 뒈지고 싶어?”

“아닙니다! 행복하게 해주겠습니다!”

“그래...”

할 말은 그게 끝이라는 듯 금세 눈을 감는 엘퀴네스다. 그리고 그런 그의 옆에는 자그마한 일본어로 ‘사케’라고 적힌 술병들이 나란히 나뒹굴고 있었는데 그 숫자가 스무 병을 넘어갔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왜 엘퀴네스가 오늘따라 얌전하고, 갑자기 저런 말을 내뱉었는지 깨달았다.

‘이 새끼... 취했네.’

술이 정말 약하면서 소주를 병적으로 좋아하는 이프리트는 물론이고, 지난 번 맥주를 꿀꺽꿀꺽 마셔대는 미네르바까지, 거기다 이제는 엘퀴네스까지 술을 좋아한다는 것이 확정되었다.

‘그럼 땅의 정령왕인, 트로웰도 술꾼인걸까?’

나도 모르게 든 생각에 피식, 웃은 나는 조용히 수건을 머리 위에 올린 채 온천을 즐겼다.

*

온천에 몸을 담군지 얼마 정도가 지났을까... 슬슬 현기증이 난다 싶은 느낌에 힐끔 옆을 바라보니 기분 좋게 잠을 자고 있는 엘퀴네스가 보였다.

‘술 마시고 온천에서 자면 죽는다는 말이 있던데...’

뭐, 물의 정령왕이니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나는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온천에서 나갈까 하는 생각에 몸을 일으키려 했는데, 그 순간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아까 엘퀴네스에 의해 날아갔던 리자드맨 세 마리와 엘퀴네스와 비슷할 정도로 푸른 머리와 긴 푸른 수염을 가진 할아버지 한 명이 같이 들어왔다.

할아버지는 기분 좋게 엘퀴네스를 바라보더니,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옆에 있던 바가지 하나를 집어 들어 엘퀴네스의 머리를 향해 집어던졌다.

근데 그 일련의 행위의 속도와 날아가는 바가지가 내 눈에는 번쩍할 정도로 빨랐다.

콰직!-

결국 자고 있는 엘퀴네스의 머리에 부딪혀 깨지고 만 바가지. 동시에 곤히 자고 있던 엘퀴네스의 입에서 으르렁 거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앙...? 누구야.”

목소리만 들어도 눈앞에 있는 존재가 할아버지든 어린아이든 상관없이 죽여 버리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나는 재빨리 할아버지를 향해 소리쳤다.

“헉! 도망치세요!”

그러자 오히려 껄껄 웃으며 바가지 하나를 더 집어 올리며 엘퀴네스를 향해 집어던지는 할아버지다.

콰직!-

“..........”

이번에는 엘퀴네스도 손을 들어 올려 막으려 했으나, 술에 취해서인지 이미 바가지가 머리 위에 부딪혀 깨진 뒤였다. 엘퀴네스가 으드득, 이빨을 갈며 할아버지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흠칫,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뭐야, 레몬에이드 영감이었잖아.”

“이놈! 레몬에이드가 아니라 라모네이드라고 내가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느냐. 그나저나 감히 나쁜 짓도 하지 않은 리자드맨들을 온천에서 쫓아내다니, 그게 물의 정령왕으로서 할 일이더냐. 꼬맹아.”

“앙? 내가 그랬었나? 기억이 안 나서 모르겠구만 영감.”

“쯧쯧, 녀석... 이쪽 세계에 와서도 하나 변하지 않았구나.”

나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입을 떠억 벌렸다. 조폭이나 다름없는 엘퀴네스가 눈앞에 있는 할아버지한테는 얌전한 손자 마냥 있었던 것이다.

“..........”

라모네이드는 잠시 뒤에 있는 리자드맨을 보더니 헛기침을 하며 한쪽을 가리켰다.

“크흠, 너희들은 저기 있는 탕으로 들어가거라.”

“시싯, 감사하다. 레몬에이드.”

“시이잇, 은혜 잊지 않겠다. 레몬에이드.”

순간 풉, 하는 웃음이 엘퀴네스의 입에서 새어나오자 라모네이드가 얼굴을 붉히며 씩씩 거리더니 엘퀴네스와 내가 들어가 있는 온천에 몸을 담갔다.

“크흐, 역시 온천은 여기나 저기나... 똑같이 좋구나.”

“쯧, 늙은이 하는 말하는 꼬락서니하고는. 죽을 때가 다 되었나 보군.”

“뭐, 5000살을 넘긴지도 꽤 되었으니... 그럴 지도 모르지. 너야말로 태어난 지 슬 이천 년이 다 되어 가는구나. 엘퀴네스. 슬슬 다음 대 정령왕을 정할 때 아니더냐? 흐흐.”

“헹! 아직 멀었수다.”

“..........”

나는 둘의 대화를 들으며 아무 말도 못 했다. 눈앞에 있는 라모네이드는 보아하니 5천 살을 넘긴 고령자인 듯 했는데, 내가 알기로는 이렇게 오래 살 수 있는 존재는 딱 한 종족밖에 안 떠올랐다.

‘드래곤!’

살다 살다 내가 드래곤과 함께 온천욕을 하는 날이 올 줄이야.

‘그래도 이제는 나가야겠다... 머리가 어질어질해.’

아까도 나가려 했었던 나다. 나는 엘퀴네스와 라모네이드에게 공손히 인사를 한 뒤, 기분 좋았던 온천에서 나가 드르륵-하고 문을 연 뒤, 밖으로 나갔다.

지우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꾹 하고 입을 다물고 있던 엘퀴네스가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이, 영감.”

“왜 그러느냐. 물주먹 꼬맹이.”

자신을 놀려대는 라모네이드의 말에 화를 낼수도 있었으나, 엘퀴네스는 그러지 않았다.

“상황이 매우 안 좋아.”

“알고 있다.”

“미네르바한테 듣기로는 엘프 쪽도 끝나버렸다고. 이걸로 벌써 온건파 쪽에 구멍이 두 개나 생겨버렸어. 급진파들은 호시탐탐 전쟁을 일으킬 기회만 노리고 있고 말이지. 더 큰 문제는 그런 급진파에 가세하는 골빈 멍청이들이 있다는 거야.”

“클클, 그렇구나.”

라모네이드는 실실 웃으면서 엘퀴네스의 옆에 놓여 있던 사케 중 가득 차있는 병을 하나 따서 그대로 목구멍 너머로 넘겼다.

“꿀꺽...크으, 맛있구나.”

“레몬에이드 영감.”

“쯧, 라모네이드라 몇 번이나 말했거늘...왜 부르느냐.”

“트로웰이... 당신이 죽는 미래를 봤다 했어. 그로 인해 다시 세상에 혼란이 찾아온다 했고.”

흠칫-

그 순간, 시종일관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던 라모네이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러나 잠시 후, 피식 웃음을 터뜨린 라모네이드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내 나이 벌써 5729살이야. 슬슬 죽어도 이상하지 않겠지... 어떻게 죽었다고 하든? 혹시 복상사는 아니겠지? 껄껄.”

라모네이드의 장난스런 물음에 엘퀴네스는 조용히 눈을 감으며 말해줬다. 트로웰이 본 미래는 웬만해서는 빗나가지 않는다.

“...어떤 여자의 검에 심장이 찔려 죽었다고 하더라.”

엘퀴네스의 말에 라모네이드는 히죽, 웃으며 물었다.

“그 여자는 예쁘다고 하던?”

그의 물음에 엘퀴네스도 똑같이 마주 웃으며 말해줬다.

“그래, 트로웰이 말하기로는 무진장 예쁘다더라.”

둘은 그렇게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의 웃음은 리자드맨이 ‘시잇, 너무 시끄럽다. 시이잇.’ 하고 나갈 때까지 계속되었다.

============================ 작품 후기 ============================

* 00분 연재가 안 되네요... 죄송합니다 ㅠ_ㅠ... 시험에다 뭐다... 허겁지겁 쓰다보니...*

이벤트 종료입니다.

결과는 제가 공지 또는 다음편 후기에다 올려드리겠습니다. 빠르면 새벽에도 발표될지 모르겠네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대충 195명 가량의 독자분들께서 참여해주셨네요. 짝짝.

그래서 특별상 (15장) 을 5명 더 추가로 뽑기로 했습니다.

총 365 장.

과연 누가 뽑힐지... 작가도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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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첨자가 발표되었으니, 2017년 6월 15일 공지를 확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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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시험 망할 것 같은 느낌이...

끔찍하네요 ㅠ_ㅠ...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에요.

내코돌려줘용 / 아니었지요 =ㅅ= ! 도마뱀 세 마리였지요~!

휘텐가르트 / 후훗, 아니요. 그냥 평화로운 온천 여행기였어요.

은아준 / 그 정도로 자주 만나지는 않겠죠... 아마? ㅋㅋ

라우라우라우  / 왜 우시나요. 훌쩍훌쩍.

북정동낭인  / 오늘은 왜 하트가 없으신가요 ?

키바Emperor / ㅋ_ㅋ... 저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부럽기도 하죠.

니르쪼 / 흐, 진짜 망할 놈이죠. 하지만 지우는 원래 망할 놈이었어요.

fs8711 / 표현 진짜 정확하시네요 ㅋ 걸어다니는 폭탄 ㅋㅋ

0리아노0 / 그냥 쉬어가는 챕터였습니다 =ㅅ=

보랏빛날개  / 미네르바까지 GET 하면 이제 완결날 거 같은 느낌이

마녀서윤 / 아쉽지만 도마뱀 세마리였답니다

orbantez  / 신도 아직 멀었죠 =ㅅ=

최광호우 / ㅈㅂ ㄱㄱ!

아아아아그냥즐기자 / 크... 패기... 저는 외제차는 역시 무서워서 못 건들이겠어요 흐규흐규...

* 추천, 코멘트, 쿠폰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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