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7 [온천 여행에서] =========================
‘강지우?’
1년 전에 버림 받았던 오빠인 줄 알았던 지은은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흐릿했던 인물이 누군지 확실하게 보였다.
그곳에는 어제 두 번이나 거절의 뜻을 비쳤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끝까지 치근대던 남자가 복도에 기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절로 한숨이 흘러 나왔다.
‘안 그래도 피곤해 죽겠는데...’
빌어먹을 옆방에서 발정 난 짐승들 마냥 밤새 앙앙거려서 제대로 잠을 못 잤다. 그렇기에 아침 일찍 온천에라도 들어가 피로를 풀까 생각했는데, 재수 없는 인물과 딱 마주치고 말았다.
지은은 재빨리 방문을 닫으려 했으나, 그것보다는 남자가 히죽 웃으며 문고리를 붙잡는 게 더 빨랐다.
“여어, 좋은 아침이에요.”
무례한 행동임은 분명했으나 남자는 개의치 않고 익살 좋게 인사말을 내뱉었다.
“하아...”
남자의 행동에 지은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슴 안쪽에서 열불이 들끓어 올라 당장이라도 눈앞에 있는 남자의 면상을 휘갈겨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꾹 참은 뒤 작게 으름장만을 놨다. 화낼 힘도 없었던 것이다.
“당장 꺼져요. 더 이상 귀찮게 한다면 저도 용서치 않겠어요.”
“정말 앙탈도 그 정도면 수준급이네요. 너무 내빼지 말고 오늘 하루는 저희 파티와 함께 노시는 게 어떤가요?”
“하-!”
말이 안 통한다. 지은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능력, ‘발화’를 이용해 남자에게 따끔한 맛이라도 보여주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아...?”
안 그래도 나른하고 피곤했던 몸이, 잠조차 취하지 못 해서일까... 지은은 능력을 발동하려다가 입에서 헛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오며, 휘청하고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껴야했다.
그러다보니 재수 없게도 스스로 남자에게 몸을 안긴 것만 같은 그림이 만들어지고 말았다. 단숨에 정신을 차리고 남자를 밀치려 했으나, 남자는 이게 기회라는 걸 깨달았는지 오히려 힘을 꽉 준채 지은이를 껴안았다.
“하하, 이거 처음부터 이랬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자 가실까요? 지은 양.”
“이 미친놈... 빨리 안 놔?!”
발버둥을 쳐 빠져나가려 했으나 이상하게도 몸에 힘이 안 들어갔다. 문득. 이대로 남자한테 끌려가는 거 아닌가 불안해 할 때쯤 옆방의 문이 끼익- 하고 열리더니 안에서 두 명의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흐아암, 졸려라. 다녀오겠습니다.”
“주인님, 다녀올게요.”
갑작스런 둘의 등장에 남자와 지은의 움직임이 멈췄다.
두 명 다 금발이었는데, 한 명은 단발에 인간이었고, 한 명은 긴 생머리의 엘프였다. 엘프야 말할 필요도 없었고, 여자도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예뻤다.
지은을 꾀려 했던 남자가 잠시 넋을 놓을 정도로 말이다.
“에, 엘프가 이런 곳에는 왜...악!”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지은이가 남자의 발을 밞고는 재빨리 빠져나왔고, 남자는 비명을 지르면서도 팔을 뻗어 도망치려던 지은이의 머리채를 꽉 붙잡았다.
“꺄악!”
“끄으... 이 년이 정말! 좋게 대해주려 했더니 감히 이딴 짓을 해?”
남자가 좀 더 강하게 머리채를 잡아당기자 지은이의 입에서 고통에 찬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예진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이 히죽, 웃으며 남자한테 다가가더니 다짜고짜 뺨을 휘갈겼다.
짜악!-
“으악!”
얼마나 쌔게 때렸는지 남자가 비명을 크게 지르며 주저앉았다. 예진은 그런 남자를 싸늘한 눈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당장 꺼져. 쓰레기 같은 새끼야.”
만약 평범한 남자였다면 이런 예진의 말에 얼굴을 붉히며 도망쳤을 것이나, 그는 자신의 능력에 자신이 있는 능력자였다. 아까 지은이한테 사용했던 ‘나른나른하게 만드는 능력’을 이용해 눈앞에 있는 여자도 공략할까 생각 중인데 갑자기 목에서부터 한기가 느껴졌다.
살짝 눈알만 굴려 밑을 내려다보니 날카로운 레이피어가 빛을 내고 있었다.
“히익!”
“이상한 짓을 한다면 용서치 않겠어요.”
옆을 바라보자, 그곳에는 진심이라는 것을 보여주듯이 싸늘한 눈동자를 하고 있는 엘프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으으...으아악! 죄송합니다!!”
고작 여자 한 명을 따먹으려다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자 남자는 재빨리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고, 예진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지은이를 일으켜주었다.
“괜찮아요?”
“아...네, 감사합니다.”
지은이는 자신을 향해 웃어주는 예진을 멍하니 바라봤다. 예진은 그런 지은이를 보며 조용히 물었다.
“음, 제가 의사인데... 잠시 봐드려도 될까요? 피곤해 보이시네요.”
“...그, 그런! 괜찮아요!”
지은이는 이상하게 예진의 말에 심장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두근거림을 깨달아야만 했다. 눈앞의 예진은 평소에 자신이 꿈꾸던 이상의 여성이었다.
예쁘면서 당당하고, 동시에 의사라는 스마트하고 멋있는 직업까지... 지은이는 단숨에 예진이에게 반하고 말았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아침부터 온천이나 갈까 했던 생각을 바로 접고는 예진이한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저... 지금부터... 오늘 하루만, 같이 다닐 수 있을까요?”
지은의 물음에 예진은 망설임없이 다시 한 번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
오로지 라피스만이 어찌된 상황인지 몰라 어리둥절하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주인님은 분명 둘이서 산책이나 하고 오라 했던 거 같은데... 갑자기 왜죠?’
이러한 라피스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예진은 아무도 몰래 히죽 웃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는 지은이를 직접 본 순간 확실히 깨달았다.
‘이 년, 레즈의 향기가 나는 걸?’
주인님인 지우에게서 지은이의 얘기를 들을 때만 해도 얼핏 의심가기는 했다. 미녀인 동시에 당당함을 추구하고, 이때까지 남자라고는 사귀어 본 적도 없으면서 오빠는 죽도록 싫어하는 여동생이라니.
그리고 외국에서 유학 중에 레즈비언을 여러 번 만나봤던 예진은 지은이를 보는 순간 레즈임을 확신했고, 동시에 이 빌어먹을 년에게 빅엿을 먹일 계획을 떠올릴 수 있었다. 주인님은 여동생을 미워하지 말라했지만 지우의 충실한 노예인 그녀는 절대 참을 수 없었다.
‘감히 주인님에게 그딴 말을 지껄여?’
속으로 킬킬거린 예진은 마음과는 다르게 상냥한 미소와 따뜻함으로 지은을 감싸주었다. 그녀와 함께 호텔 밖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얘기를 나눴으며, 나중에는 온천도 같이 들어가 살짝 짙은 스킨십을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지은은 이러한 예진에게 마약을 한 것 마냥 빠져 들어갔다.
‘아아... 언니, 언니랑 여기서 만난 건 운명이에요!’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될 정도로 지은은 눈앞의 예진이 너무나도 마음에 쏙 들었다. 어젯밤 신음을 흘리던 여성 중에 예진이 있을 거란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에 박힌 예진의 이미지는 그 누구에게도 무릎 꿇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걷는 여왕님이었다.
실제로 지우의 노예가 되기 전에 그녀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에, 안하무인한 여성이었으니 지은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전혀 틀린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이러한 그녀가 이미 지우의 노예라는 것일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요. 예진은?’
라피스는 그러한 둘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계속해서 고개를 갸웃했다. 예진은 절대 다른 여성에게 저리 상냥한 인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혹시나 주인님의 새 노예가 늘어날지는 않을까 여자란 여자는 접근조차 하지 못 하게 하는 암사자 중의 암사자였는데 말이다.
‘뭐...저야 상관없지만요.’
라피스는 예진과 지은의 뒤를 따라다니며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온천 호텔의 주변은 산으로 뒤덮여 있어 오랜만에 고향에 온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고, 둘을 따라 들어간 온천 또한 역시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좋았다.
마지막으로 결국에는 주인님과 마주했다는 것이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다.
“주인님!”
라피스는 저 멀리 불곰처럼 생긴 아저씨와 함께 있는 지우를 보자마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달려갔다.
그리고 그 순간, 예진도 기다렸다는 듯이 히죽 웃으며 라피스의 뒤를 따라 몸을 던졌다.
“아...!”
방금까지만 해도 자신이랑 평생 같이 있을 것만 같던 예진이, 자신한테는 절대 지어주지 않던 표정을 지으며 달려가는 모습에 지은의 표정이 와락 찌푸려졌다.
아니, 그 정도만으로 이 상실감을 표현할 수는 없었다. 상실감 다음으로 지은은 자신의 마음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만 같은 충격감을 맛봐야했다.
남자한테 절대 아양을 부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예진이 사르르 녹은 것 마냥 흐물흐물한 표정을 지으며 남자의 품에 얼굴을 비비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 그 비비는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지은은 아찔한 느낌과 함께 현기증을 느껴야만 했다.
그곳에는 ‘사람 좋은 거 빼면 병신인 강지우’가 헤헤 거리면서 예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지은의 주먹이 꽉 쥐어지며,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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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ㅅ=... 시험공부하다가 빡쳐서.
노트북으로 한 편 써봅니다.
아우, 시험공부 진짜... 핵 스트레스네요. 이렇게 공부했는데 또 기말고사 망할까봐 더 불안하고...흐어흐엉...
< 리리플 >
휘텐가르트 / 주인공이 복수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죠 =ㅅ=... 주위 여성들을 믿으세요.
키바Emperor / 인정합니다... 하지만, 전 이상하게 가족한테는 유난히 약한 모습을 하게 되더라고요.
하늘바라기17 / 어우, 코멘트 정말 너무 감사합니다.
니르쪼 / 그렇죠... 과거의 습관이라는 게 정말 무섭습니다.
레이져천공기 / 허나, 거절합니다. 예토전생 따위...!
csi호라시오짱 / 아아... 핫산이라니...
0리아노0 / 가좃요? ㅋㅋ 그나저나 이벤트 때 다시 돌아오신 뒤로 꾸준히 있으시네요 ㅎㅎ 기뻐요.
내코돌려줘용 / 전 제발 저런 소리라도 들어보고 싶어요... 아, 부러울 것 같아요 ㅠ_ㅠ;
냐댄 / 군만두 먹고 무덤 파러 갑니다. OTL
smone / 그렇습니다. 죽창! 죽창이 필요해요! 빌어먹을 주인공!
소드아트 / 함정카드 발동! 마법 무효화!
* 아, 노트북으로 쓰는 거 너무 불편해요...*
* 이런 추천, 코멘트, 쿠폰 항상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