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3 [심검(心劍)] =========================
채앵!-
날카로운 금속음에 가볍게 검을 휘둘렀던 신하연의 눈이 크게 떠졌다. 마법의 종족이라고 불리는 드래곤이기에 동체능력 또는 신체관련 능력에서만큼은 자신이 우위일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흘흘, 요즘은 보기 힘든 날카로운 검 실력이구나. 아이야.”
“...”
라모네이드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검을 자그마한 실드로 막아내고 있었다. 상대의 움직임을 완전히 꿰뚫고 있지 않고서야 이러한 방어는 불가했다. 살며시 인상을 찌푸린 신하연은 작게 거리를 벌렸다.
팟!-
동시에 보이지 않는 검기, 백섬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그녀의 날카로운 검기(劍氣)가 라모네이드의 여러 사각을 찔러들어갔다. 그러나 라모네이드의 마법이 발동하는 것이 더 빨랐다.
“흠, 에어리어 프로텍션(Area Protection).”
방금 썼던 실드 마법보다 훨씬 광범위하면서도 강도는 더하다. 신하연의 검기는 마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 마냥 라모네이드의 마법에 막혀 사라졌다.
그러나 신하연 또한 이러한 전개를 예상했다.
상대는 전력을 다해도 이길 확률이 1할도 되지 않는 최강의 종족이자, 현 최강자들 중 한 명이었다. 자신이 검제라 불리고, 능력자들 사이에서 최강이라 불린다 해봤자 그 뿐.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고, 나는 놈 위에는 더 높이 나는 놈이 있는 법이다.
신하연은 재빨리 땅을 박찼다. 상대가 방어를 굳건히 한다면 그 굳건한 방어와 함께 베어버리면 그만이다.
“일뢰(一雷).”
백섬이 보이지 않는 검기라면, 일뢰는 검로가 보이지 않는 검이었다. 그만큼 빠르면서도 공격력이 그녀가 가진 기술 중 순위에 꼽혔다.
치잉!-
그러나 라모네이드의 방어를 뚫지 못 했다. 오히려 엄청난 공격력을 자랑하는 만큼 손이 짜릿해질 정도의 반동이 튕겨 나왔다.
‘미친...!’
이때까지 단 한 번도 싸움 중에 이러한 막막함을 느껴본 적이 없는 신하연이다.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욕을 내뱉고는 반동을 역이용해 몸을 뒤로 날렸다.
재차 검을 잡고 자세를 잡은 신하연이 으득, 이빨을 갈며 물었다.
“왜 공격을 하지 않는 거지?”
자신을 조롱하는 것일까, 아니면 공격할 가치도 없다는 걸까. 평소에 약한 자를 깔보고, 강함을 추구하는 그녀로서 라모네이드의 태도는 그야말로 치욕 그 자체였다.
라모네이드는 그러한 신하연을 보며 느긋이 수염을 매만지며 생각했다.
‘크, 이것 참 재밌는 아이구나.’
성격에 문제가 좀 있는 것만 같았지만, 신하연이 가진 힘과 강해지고자 하는 열망은 진짜였다. 거기다가 싸우는 센스 또한 나쁘지 않았고, 재능도 보인다.
그런 상태에서 신이 능력을 부여해주었으니 여기까지 승승장구 했을 것이 눈에 보였다.
귀여운 손녀를 보는 것처럼 라모네이드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흠, 그렇구나. 너랑 좀 더 오래 얘기하고 싶어서...라고 하면 화가 나느냐?”
그의 말은 진심이었지만, 신하연이 듣기로는 조롱으로 밖에 안 들렸다.
“...지랄.”
파팟!-
입술을 꽉 깨문 뒤 다시 몸을 날린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모든 기술을 선보였다.
채챙!-
채애앵!-
고작 수 초 동안 수백에 달하는 그녀의 검격이 라모네이드의 반투명한 보호막을 미친 듯이 두들겼지만 흠집하나 나지 않았다.
“하아...하아...”
제 아무리 신하연이라도 지칠 수밖에 없었다. 힘만이 빠진 것이 아니다. 아무리 두들겨도 부서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벽은 정신적으로도 그녀의 몸을 무겁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라모네이드가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공격하나 하지 않으며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 신하연의 마음을 상처 입혔다.
“왜...!?”
이해할 수 없어 물었다.
“흘흘. 이제라도 차 한 잔 하겠느냐?”
돌아오는 것은 어이없는 호의와 제안.
“제길!”
채앵!-
울컥 짜증이 올라와 검을 휘둘러봤자 들려오는 소리는 단단한 보호막에 막혀 튕겨 나오는 쇳소리뿐이요. 움직이는 것은 반동으로 튕겨져 나오는 자신의 몸뿐이었다.
“허억, 큽.”
무력감에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다. 자신이 무시했던 사람들이랑 똑같은 상황에 처한 것만 같아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신하연은 검을 꽉 움켜쥐고 전방을 응시했다.
아직까지 자신과 얘기를 하고 싶다는 듯 아쉬움을 표하는 할아버지가 보였다.
“쯧,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힘을 추구하는 것이냐. 이미 충분히 강하거늘.”
“뭣...”
라모네이드의 말에 신하연은 순간 끌어올리던 기운에 잡아먹혀 주화입마에 빠질 뻔 했다. 자신보다 훨씬 강한 주제에 저런 말을 하다니.
“당신한테 들을 말은 아닌 거 같네...요.”
“예끼! 이놈. 나랑 너와는 살아온 세월이 다르다 요놈아.”
“저랑은 상관없는 얘기...입니다.”
“에고고, 말이 정말로 안 통하는 여아로구나. 이 정도 했으면 충분하지 않느냐.”
“아뇨.”
신하연은 검을 들어 올렸고,
라모네이드는 여유롭게 차를 따랐다. 허나 라모네이드의 마음까지 여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쯧, 마력이 술술 새는구나. 새어나가.’
신하연의 검이 매서워서가 아니다. 세월이 매섭게 자신의 몸을 좀 먹어가고 있었다. 항상 자신을 든든하게 지켜주던 5729년의 마력이 이제는 독이 되었다. 드래곤 하트가 버텨주고 있었으나, 육체가 따라주지 못 한다.
만약 드래곤으로 폴리모프 한 상태였다면 비늘에 쩍쩍, 금이 갔을 것이다.
‘슬슬 죽을 때가 되었다 생각했지만...’
트로웰의 예언은 틀린 적이 없었다. 라모네이드는 벌써부터 신하연의 검에 드래곤 하트가 깨어지는 미래를 떠올리고 있었다.
‘오래 살기는 했지.’
보통 드래곤이 5000살 전에도 여럿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을 생각하면, 라모네이드는 평균 나이보다 약 700년은 더 살았다.
현 드래곤 로드보다 나이가 많고, 드래곤들 중에서도 최고 연장자의 자리를 꿰차고 있으니 언제 떠나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걱정이구나.’
라모네이드는 아직까지도 포기하지 않고 승부욕을 불태우는 신하연을 아련한 눈으로 바라봤다.
‘조금만 더 일찍 만났었더라면...’
저 아이의 비뚤어진 성격을 바로잡아 용사에 버금가는 정의로운 검사로 만들 수 있었을 텐데. 그러나 이미 늦어버렸다.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신하연과 함께하는 시간을 늘려 마음을 흔드는 게 전부였다.
물론 같이 죽고자하면 충분히 신하연의 목숨을 끊을 수 있었다. 허나, 라모네이드는 그러한 선택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훗, 그러면 재미없지.’
폭풍전야의 평화 속에서 신하연이라는 작은 태풍은 더욱 굳건한 평화를 만들어주는 동시에 지루함에 찌들어있는 존재들에게는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존재였다.
방대한 세월을 살아온 초월자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즐거움은 목숨보다 더욱 소중한 감정이었다.
그렇기에 라모네이드는 이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이어가기 위해 몸이 붕괴되는 순간에도 억지로 마력을 끓어 올리며 신하연과 ‘놀고’있는 것이다.
“흐읍!”
그러나 그것도 끝인 것 같다.
쿠웅!-
신하연이 가볍게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 제법 무거운 기세가 라모네이드의 어깨를 짓눌렀다. 그리고 모여드는 기운을 잠자코 보고 있던 라모네이드의 눈이 크게 떠졌다.
“오오...!”
그의 입에서 자그마한 탄성이 터져 나올 정도다.
신하연이 준비하는 기술은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이 세상에서 그 기술을 보게 될 줄은 몰랐구나.”
“큭! 허세도 거기까지...”
“후후, 허세라고 말하니 이 할애비의 마음이 다 아프구나. 어디보자... 분명 내가 듣기로는 그래, 심검(心劍)이라 불리는 기술이 아니더냐.”
“...!”
자신이 준비하는 기술을 단번에 들킨 신하연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에, 라모네이드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심·기·체가 전부 조화를 이루고 동시에 그 전부를 쏟아 부어야만 쓸 수 있는 기술이거늘... 쯧쯧, 내가 봤을 때는 너무 무리하는 것 같구나.”
그리 말하는 라모네이드의 이마와 등에서는 작지만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것을 눈치 챈 신하연은 울컥, 하고 피를 흘러대면서도 히죽 웃었다.
“흐흐...”
라모네이드의 말대로 심검이란 기술은 현재 자신의 수준에서 사용하는 것은 자살과도 마찬가지인 위험한 기술이었다. 애초에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지만, 그녀의 재능과 뛰어난 전투 감각이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죽어.”
신하연이 가볍게 중얼거리는 순간, 빛이 번쩍하고 세상이 멈추더니 그녀의 손에 들려있던 검은 이미 라모네이드의 심장에 꽂혀있었다.
“커윽, 쿨러억!”
그러나 엄청난 양의 피를 토해낸 것은 심장을 찔린 라모네이드가 아닌 신하연 본인이었다. 재능을 이용해 억지로 기술을 시전 한 탓에 그에 상응하는 반동이 몰려온 것이다.
“...흘흘, 너무 그리 조급해하지 말거라. 여아야. 그리 달려가다가는 결국...크, 하나도 남는 것은 없을 것이야.”
“닥...쿨럭, 쿨럭!”
분명 심장이 찔리고,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은 라모네이드인데 여유롭게 입을 여는 것 또한 그였으니... 정말 아이러니 한 상황일 수밖에 없었다.
“뭐...신께서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다만... 하여튼 그 분도 장난꾸러...기...라서...문제...”
털썩!-
결국 라모네이드의 입이 다물어지고, 눈이 감기는 것을 본 신하연 또한 그대로 탈진해 쓰러졌다.
“...라모네이드 님!”
그리고 뒤늦게 등장해 라모네이드의 죽음을 확인한 능력자들이 범인인, 신하연이라도 신원이라도 확보하기 위해 포박하려는 순간.
피핏!-
신하연의 입과 라모네이드의 심장에서 흘러내린 피가 날카로운 암기가 되어 능력자들을 전부 사살시켰고, 자그마했던 피는 금세 크기를 불려가더니 이내 신하연을 집어삼킨 뒤, 모습을 감췄다.
그 자리에는 섬뜩한 웃음만이 남았다.
[이히힛, 히히히히힛!!]
============================ 작품 후기 ============================
...아, 다음편에도 지우가 등장 안 하는구나... 흐어 =ㅅ=...
아직 회의가 남았었네요. 으아... 1인칭 쓸 때 3인칭 편 많은 거 딱 질색이에요 ㅠㅠ.
< 리리플 >
후훈훈 / 이 정도면 정신병 이상이죠 ㅋㅋ
휘텐가르트 / 그것보다 더하지 않을까요 =ㅅ= ㅋㅋ
니알라토텝 / 어, 음... 제가 생각했던 설정이랑은 조금 다르네요 ㅠㅠ...
알테니아 / 700화 라니요... 흐으, 이 소설은 슬슬 우려먹을만큼 우려먹은 것 같은 느낌인데...
내코돌려줘용 / ㅇㅃㅇ? 결과는 바뀌지 않는답니다.
뭘할지모르겠어 / 에이, 라모네이드는 약하지 않아요 =ㅅ=...
운명이란... / 검제를 노예로... 만들려나... 모르겠네요.
니르쪼 / 의외로 힘을 가진 존재들 중에는 이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걸로 알아요 ㅋㅋ.
레이져천공기 / 크으, 그럼 개쩔겠는데요? 하지만 자기가 무릎을 꿇을지도 ㅋㅋ
Bathin / 그렇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년이죠.
마녀서윤 / 아아... 밉상 캐릭터도 작가한테는 딸과 같은데... 흑흑.
보랏빛날개 / 크, 그분도 강해지기 위해 조급해했었죠.
* 추천, 코멘트, 쿠폰 항상 감사합니다. *
* 다가오는 완결까지 달려봐요... 얼마 정도면 되려나... 한 100편?... 50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