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59 [대전투] =========================
싸움은 일방적이었다.
여자의 능력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피와 관련된 능력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헤스티아는 그러한 피를 단숨에 증발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화염을 다루는 불의 정령족이었고 말이다.
“빌어먹을...!”
답답한지 여자의 입에서도 슬슬 거친 단어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여자가 피를 이용해 무언가를 하려하면 헤스티아의 불꽃이 귀신처럼 알아내서 사방에 퍼져 있는 피들을 잡아먹어 증발시켜버리니 그녀로서는 아마 마땅한 수단이 없을 것이다.
“별 거 없네? 언제까지 도망칠 수 있으려나.”
“이 건방진 년이!!”
헤스티아의 무미건조한 중얼거림에 화를 내보지만, 여자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자신을 덮쳐오는 불길을 피해 뒤로 피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었다.
나 또한 그러한 헤스티아의 등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상황이 눈에 들어온다.
‘상성이 최악이네.’
일방적인 이유가 있었다. 심지어 헤스티아의 불꽃은 보이지 않는 곳까지 완벽히 수비해내는 것도 모자라, 공격력까지 뛰어나다.
이대로 간다면 무난하게 여자를 불태워 죽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쉬는데, 돌연 이리저리 도망치던 미친년과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웃어?’
헤스티아의 불꽃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면서 히죽, 웃고 있는 여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나를 향해 손을 쭉 뻗으며 소리친다.
“블러드 봄(Blood Bomb).”
푸화아악!-
여자가 사용한 기술이 뭔지 파악하기도 전에 이제 겨우 출혈이 멈춰가던 내 배에서 다시 한 번 피폭발이 일어나더니, 나에게 상처를 입혔다.
아까처럼 작은 구멍이 아니라, 마치 배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만 같은 느낌과 함께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나는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악... 쿨럭, 쿨러억!!”
피도 입 밖으로 토해져 나왔다. 입과 코로 비릿한 향기가 느껴지며 시야가 흐릿해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나 보다.
“꺄악! 오빠!! 이이...!”
헤스티아가 잠시 뒤돌아봤다 비명을 질렀지만, 바로 나에게 달려오기보다는 입술을 꽉 깨물고 잠시지만 기술을 사용하느라 허점을 보인 여자를 불꽃으로 덮쳤다.
“흐히히히히힛!! 뜨거워어!! 이히힉!! 뜨겁다고오!!”
“미, 미친년...”
자신의 불꽃에 살갗이 생으로 불타 문드러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름끼치는 웃음을 터뜨리는 여자를 보며, 헤스티아는 자기도 모르게 한 발자국 물러섰다.
그리고 여자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재빨리 땅을 박차 불에 휩싸인 상태로 뒤로 돌아, 도망쳤고 헤스티아는 어차피 죽을 거라는 생각을 했는지, 아니면 나부터 챙겨야 한다 생각했는지 입술을 꽉 깨물고 내 쪽으로 급히 다가왔다.
“오빠, 괜찮아? 오빠!”
“쿨럭, 쿨러억... 괘, 괜찮...큭.”
나는 아파서 미칠 것만 같은 정신 줄을 겨우 붙잡으며 대답했다. 헤스티아는 전부 자기 탓이라도 되는 것 마냥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했다.
“흑, 미안해. 오빠... 바로 나가자. 상처가 많이 벌어져서...빨리 치료해야할 것 같아.”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끄으, 안 돼... 안에... 검제가...”
마음 같아서는 헤스티아의 말대로... 아니, 그냥 기절해버려서 이대로 돌아가서 마리아한테 치료나 받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이런 상황이 돼서 그런 걸까. 나도 놀랄 정도로 나 자신보다는 임무를 완수해야한다는 의무감이 더 컸다.
내 말에 헤스티아가 내 손을 꽉 잡더니 말했다.
“그럼! 내가 가서 그 검제란 년을 데려오면 되는 거지? 오빠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금방 갔다 올 테니까.”
이렇듯, 나를 내버려두고 가려는 헤스티아를 보자 문득.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이대로 헤스티아를 혼자서 보내서는 안 된다는 그냥 막연한 느낌이었다. 아니면, 검제만큼은 내 손으로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걸까.
나는 힘겹게 입을 열어 그녀를 붙잡았다.
“큭, 잠시... 헤스티아.”
“왜, 왜? 시간 없잖아!! 나 혼자가면 빨리 끝낼 수 있다고.”
“...후욱, 나도 같이 가자... 좀 업어주라.”
사람이란 게 진짜 신기한 것이. 처음 느꼈을 때만 해도 눈이 부릅떠지고 당장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던 고통도 시간이 지나면 살짝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아드레날린이라도 분포되어서 고통을 반감시켜주는 걸까.
어찌되었던 간에 지금은 이대로 있을 타이밍이 아니었다.
나는 억지를 부리듯이 헤스티아에게 업혔다.
“으, 오빠... 무거워.”
투정을 부리는 헤스티아의 말에 나 또한 피식, 웃으며 답했다.
“헤헷, 미안...하네. 그것보다 다리 끌리는데...”
“참으셔... 오빠가 나보다 키가 큰 걸 어떻게 해. 것보다 오빠는 언제 나랑 섹스해줄 거야? 헤스티아 이제 다 자랐어.”
가슴은 다 컸겠지.
키는 아직 멀었잖니.
“.......”
꼭 이 상황에서 그 질문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저런 질문에 잘못 대답했다가 코가 꿰이는 순간, 나는 헤스티아한테 바로 덮쳐질 것이 분명했다.
이런 내 의도를 읽었는지 헤스티아가 지지 않고 물어왔다.
“흐응, 대답 안 해주면 그냥 이대로 버리고 나 혼자 갔다 올 거야. 빨리 말해줘. 언제 나랑 섹스해줄 거냐고. 응?”
“...어, 음.”
잠시 뜸을 들이던 나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솔직히 헤스티아의 도움을 받은 것도 있고, 이프리트도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으니...
“후우, 이번 일 끝나고... 돌아가면 해줄게.”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마더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악! 사용자님... 그 대사, 사망 플래그에 자주 쓰이는...]
그리고 마더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우리의 조금 앞쪽에서부터 여성의 비명이 들려왔다.
-꺄아아아아아악!!
“어?”
“아?”
비명소리를 들은 헤스티아와 내 입에서 한 치 오차도 없이 동시에 헛바람 빠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방금 비명소리... 아까 그 여자의 목소리가 아니었어.”
“...나 저 목소리를 들어본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데.”
잠시 생각하던 헤스티아는 내 엉덩이를 좀 더 꽉 잡더니, 소리쳤다.
“달린다. 오빠!”
“으, 으응.”
그 뒤, 헤스티아가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달리기 시작했는데, 나는 배에서 느껴지는 아픔보다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혔다.
엉덩이를 잡은 헤스티아의 손이 좀 음흉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 내가 변태이기 때문이겠지? 제발 그렇다고 누가 말해줬으면 좋겠다.
*
코너를 세 개. 달리기를 대충 2분 정도 달렸을까.
우리는 좁은 길에서 빠져나와 철창감옥들이 늘어서 있는 조금 넓은 공간에 들어왔다. 그곳에는 총 6개의 감옥들이 존재했는데, 제일 안쪽에 있는 곳에서부터 악취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나는 내 코를 찌르는 냄새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아까 들렸던 비명소리의 주인이라 생각되는 여자의 목소리도 안쪽에서 흘러나왔다.
“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다루아는 그래도... 당신 같은 괴물을 위해!”
“크르르, 더 이상 쓸모가 없으니까 버렸을 뿐인데. 네 년이 화내는 이유를 모르겠군.”
“아아, 아아...!”
나는 들으면 들을수록 어딘가 그리운 느낌이 물씬 풍기는 목소리에 헤스티아한테 속삭였다. 도대체 누구기에 이렇게 내 마음을 흔드는지 궁금했다. 목소리만 들었을 뿐인데, 뭉클하고 저릿저릿해오는 것이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빨리 가보자.”
“응.”
헤스티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어느 정도 다가가자 악취가 더 강해졌다. 그리고 헤스티아가 안쪽 철창의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으려는 순간,
“크르큭, 이제 즐겨볼까 했는데. 건방진 쥐새끼가 한 마리... 아니 두 마리가 여기까지 왔었군.”
“들켰네.”
악의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싶더니, 헤스티아가 냉정하게 중얼거리더니 나를 업은 상태에서 가볍게 백스텝을 밞았다.
헤스티아가 몸을 뒤로 다 빼기도 전에 철창과 벽이 으스러지며 거대한 주먹 하나가 툭 튀어나오더니, 먼지바람과 함께 아슬아슬 헤스티아의 머리카락을 스쳤다.
“우욱, 우에엑... 이 냄새 뭐야!”
코앞을 지나간 주먹에서 심한 악취라도 맡았는지, 헤스티아가 구역질을 해대며 나를 조심스럽게 구석진 곳에 내려놨다.
“으으, 오빠는 이곳에서 보고만 있어. 이번에는 오빠한테 뭔 짓을 하기도 전에 끝낼 테니까.”
“...알았어.”
내키지 않았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 먼지바람이 점점 가라앉으며 드러나는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어딘가 익숙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둥그런 보름달이 두 개가 떠있는 것만 같은 둥글둥글한 실루엣.
보는 것만으로 내 마음을 뒤흔드는 거대한 두 덩어리에 나는 점점 눈을 크게 떴다.
겨우나마 조금씩 잊어가던 여자의 얼굴이 단숨에 기억 깊숙한 속에서 떠올랐다.
‘지혜 누나!’
설마 아니겠지... 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으나, 반대로 혹시... 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리고 먼지가 전부 가라앉고 눈앞에 드러난 장면에 난 눈을 크게 떴다.
그곳에는 꿈에서만 볼 수 있었던 지혜 누나가 알몸인 상태로 땅에 주저앉아 있었고, 검제는 똑같이 알몸인 동시에 사지가 쇠사슬에 묶여 팽팽하게 속박되어 있었다. 그리고 벽에는 아까 도망쳤던 미친년이 피떡이 된 상태로 쓰러져 있었는데,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알기 힘들었다.
마지막으로 그 앞에는 보는 것만으로 사람의 인상을 찌푸리게 만드는 ‘괴물’이 시익, 웃으며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크르륵, 심심했는데 잘 됐군. 아직 덜 자란 것 같은 꼬맹이가 가슴 하나는 크군. 만질 맛이 있겠어.”
“뭐야. 돼지 새끼였잖아. 괜히 긴장했네. 단숨에 노릇노릇한 돼지 통구이로 만들어 줄게.”
괴물과 헤스티아는 양쪽 다 여유만만하게 중얼거리며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헤스티아가 불꽃을 뿜어내며 선공을 가하려는 순간, 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도저히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헤스티아... 미안한데, 나 좀 일으켜주라. 내가 해결할게.”
“응... 뭐?! 미쳤어?!!”
내 요청에 헤스티아가 화들짝 놀라 소리쳤지만, 나는 진지한 눈으로 바라보며 다시 한 번 말했다.
“일으켜 줘.”
어딘가 날이 선 것만 같은 목소리에 헤스티아가 주춤했다.
“오빠, 화, 화났어?”
“화 안 났으니까... 좀 일으켜주라.”
거듭 된 요청에 별 수 없다는 듯이 헤스티아가 한숨을 쉬며 나를 일으켜줬다. 그러면서도 내 눈치를 본다.
“정말로 오빠가 할 수... 있겠어?”
믿고 싶지만, 솔직히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헤스티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준 내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직도 배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대고, 헤스티아가 일으켜 세워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리가 후들후들 거린다. 그러나 저 ‘괴물’ 새끼가 지혜 누나한테 혹시 몹쓸 짓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배에 난 상처보다 백만 배는 아팠고, 속이 뒤집힐 것만 같았다.
괴물 새끼는 비틀거리는 날 보더니 입가를 이죽이다 이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크, 크하하하하하하핫!! 웃기는 군. 아주 웃겨!!”
저 자식이 웃든 말든 나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입을 떠억 벌리고 있는 지혜 누나를 불렀다.
“누나... 맞지?”
“...”
내 물음에도 답하지 못 하는 누나를 보며 나는 바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솔직히 지혜 누나랑 헤어지고 얼마 되지 않아, 이 여자, 저 여자 다 건드렸던 내가 이렇게 웃는 것 자체가 쓰레기 같았지만... 적어도 지혜 누나 앞에서는 웃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금방 끝낼게.”
내 중얼거림을 지혜 누나가 들었는지 두 눈을 크게 뜨며, 입을 두 손으로 막으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응?”
그리고 괴물도 들었나 보다. 괴물은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런 괴물을 보며 나는 방금까지 계속 이미지 했던 것을 자기 암시로 사용했다.
“한 방, 나는 주먹 한 방으로 눈앞의 괴물 따위는 먼지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엘퀴네스’가 된다.”
내가 떠올린 것은 바로.
딸을 미친 듯이 사랑하는 물의 깡패왕, 엘퀴네스였다.
============================ 작품 후기 ============================
( 수정 및 퇴고 중) - 사실은 노란색 타이즈에 , 머리가 반짝반짝 빛나는 인물을 상상했지만요.
(어우, 생략을 너무 많이 했더니... 오글거림 그 자체의 편이 만들어졌네.)
리리플은 한 타임 쉬고...
아아, 작가가 요즘 고민이 많습니다.
완결은 미리 생각해놨는데... 거기까지 가려는 길을 생각 안 해놨다보니...
벌려 놓은 건 많고 (여자는 더럽게 많이 나왔죠. 히로인이 너무 많아 감당이 안 됌. 남자 캐릭터랑 비율이 거의 10 : 1, 세상에 여자만 사는 줄 알겠음. 심지어 도토리묵 이제 5밖에 안 나왔어요.)
거기다 까먹고 다롱이랑 용용이는 이번 챕터에 등장조차 시키지 않았어요. (레알 작가가 까먹음. 등장 인물이 너무 많아서... 후우. 다 끝나갈 때쯤이야 떠올렸어요.)
어쨌든 사실... 완결까지 가는 길은 두 갈래 길이 있었는데...
후, 만약 첫 번째 길로 가면... 금방 완결이 날 것 같고... (앞으로 한 3편에서 5편정도...?)
두 번째 길(이건 언제 완결날지도 몰라요.)로 가면 또 질질 끌리고 발암물의 끝을 볼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어찌해야 할 지 고민이네요.
...이런 걸 물어본다는 것 자체가 실례일지 모르지만, 과연 깔끔하게 완결을 내는 것이 좋을까요... 조금 더 이어가 보는 게 좋을까... 고민이 됩니다.
1. 작가님 마음대로 해주세요.
2. 작가님 뜻대로 따를게요.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해주세요.(?)
어쨌든 고민 좀 해보고(스토리보드를 좀 더 생각해보고)... 다음편을 집필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꾸벅)
그리고... ㅇ<-< (털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