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휘르곤의 눈물 14 (16/16)

제14장

“오오! 멋진데!”

“그래, 그래! 쭈욱 들이켜, 쭈욱!”

사람들의 환호성에 힘입어, 사내는 맥주잔을 들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잔 가득 차 있던 맥주가 사내의 식도를 타고 꿀꺽꿀꺽 넘어갔다. 채 마시지 못한 맥주가 흘러, 사내의 얼굴과 옷을 적셨다.

잠시 후, 사내가 어찌 됐든 다 비운 맥주잔을 들어 보이자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자네, 대단한데! 이걸 다 마신 사람은 자네가 처음이야! 어때? 한잔 더 할 텐가?”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사내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숨쉬기 버거운 점만 빼면, 맥주통 반 개 분량의 맥주를 단숨에 비운 사내는 비교적 멀쩡해 보였다.

“어때? 우리랑 같이 술이나 한잔하는 게!”

“도전이라면 사나이 된 도리로 받아들이겠지만, 자네 얼굴에 성대하게 한 바탕 게워낼지도 모르니, 그것 하나는 유념해 두게.”

“하하하! 이 친구, 멋진데!”

이 가게의 명물, 폭포 맥주가 생겨난 이래, 처음으로 맥주를 깨끗이 비운 사내는 금세 사람들에게 둘러싸였다. 폭포 맥주라는 이름은 열이면 열, 마시겠다고 덤비다가 반도 마시지 못하고 폭포같이 술을 게워내는 덕에 붙여진 것이었다.

“자네, 여행자인가?”

“여행자라는 거창한 건 못 되고, 그냥저냥 이리저리 싸돌아다니는 걸 좋아해서.”

“자네, 페르티잔?”

얼큰하게 술이 올라 코끝이 새빨갛게 된 사내가 빈 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내 어머니라 믿고 있던 여자가, 친모(親母)라는 가정 하에서.”

사내의 너스레에, 모여 섰던 사람들이 왁자하게 웃어젖혔다.

“라자르 왕이 죽었다는 소문은 들었나?”

“뭐 그 정도야, 귀동냥으로 들었지.”

“뭐, 전쟁도 끝났고 라자르 왕도 콱 뒈져버렸으니 다 좋은데, 솔직히 영 찜찜한 게 아냐. 새 왕이란 놈이 라자르 왕의 핏줄이잖아. 그래도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잘해 나가고 있지만, 그 아비에 그 아들이라고, 그놈도 라자르 놈처럼 되지 않으란 법이 어디 있겠어.”

누군가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사내는 깎지 않아 지저분하게 자란 수염을 만지작대며 약간 입술을 말아올렸다.

“에이. 그래도 설마 자기 아버지 하는 꼴을 다 보고 자랐으면, 반발심이 일어서라도 그렇게까진 안 하겠지.”

“모르는 소리 말게. 자기 아빠가 엄마 때리는 거 보고 자란 애가 나중에 또 자기 부인을 두들겨 팬다잖아.”

“라자르 왕은 스칸데르를 꿀꺽 했으니, 그놈 아들내미는 또 어느 나라를 꿀꺽 해치울라나.”

“생긴 게 계집애처럼 곱상하니, 소심해서 개미 한 마리 죽일 수나 있겠어?”

사내들의 왁자한 웃음소리로 가득 찬 선술집에 여자 하나가 찾아들었다. 그녀는 아무 망설임 없이 남자들로 가득한 선술집에 들어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처진 눈이 멍청해 보이긴 해도, 그녀는 꽤 미인이었다.

전쟁으로 외지에서 유입된 사람들이 많은 탓에 사내들은 그녀를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나 구석자리에 앉은 이 지방 터줏대감들은 그녀를 알아보고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사랑스런 얼굴을 한 여인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곧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걸어왔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달콤한 외모만큼이나 나른한 목소리였다.

그녀가 찾아온 것은, 폭포 맥주를 단숨에 비운 오늘의 스타였다.

의자에 기대앉은 채로 사내는 그녀를 쳐다보며 빙긋 미소지었다.

“여어. 카이라~”

사내의 유들유들한 인사에, 여인은 대답도 없이 사내의 뺨을 후려갈겼다. 벌겋게 부어오른 뺨을 슬슬 문지르면서도 사내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카이라, 삐쳤어?”

“바보......”

아래로 축 처진 여인의 커다란 눈에 금세 눈물이 고였다.

여인은 화를 내지도, 그렇다고 격한 감정을 보이지도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바보. 기다렸는데, 내내 유그가 돌아오길 기다렸는데.”

“그래그래.”

“얼마나 울었는데. 혼자서, 유그를 생각하면서 얼마나 슬퍼했는데.”

“응응. 나도 그랬어. 나도 그랬어.”

사내는 여인의 어깨를 감싸 안고서 몇 번이고 그녀의 사랑스런 얼굴에 입을 맞추었다. 여인은 눈물 젖은 커다란 눈으로 사내를 바라보더니, 이내 느려터진 동작으로 눈물을 닦았다.

“돌아온 거야?”

“응.”

“이제 안 가?”

“안 가. 나 이젠 카이라한테 콱 붙들려 살 거야.”

이번에도 역시 감동하는 기색도 없이, 환장할 정도로 느려터진 동작으로 여인이 사내에게 매달렸다. 안긴 형상이 아닌, 팔로 사내의 목을 감아 대롱대롱 매달린 형태였다.

얼굴은 예쁘지만 참 이상한 여자다,라고 사내들은 생각했다.

그래도 사내는 대롱대롱 매달린 여인을 안고는 아주 좋아 죽겠단다.

“그럼, 난 갑니다. 맥주 잘 마셨어요!”

원숭이처럼 매달린 여인을 안은 채로, 사내는 가게 밖으로 빠져나갔다. 여자도 이상하지만, 저걸 다 받아주는 남자도 정상은 아닌 듯하다.

사내와 여자가 가게를 빠져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에는 젊은 청년이 가게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유그 니이이임―!”

일단 기세 좋게 이름은 불러보았지만, 가게 안에 찾는 이가 없다는 것을 깨닫자 청년은 쳇! 하고 혀를 찼다.

“유그라는 녀석은 방금 전에, 얼굴은 예쁘지만 정신 상태 안 좋아 보이는 여자랑 같이 나갔는데.”

“카이라랑 같이 나갔다면, 뭐 얼마간은 좀 봐줘야겠군.”

청년은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며 빈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여기 맥주 좀 줘요!”

“그런데 유그 님이라니. 아까 그 남자, 귀족이었나?”

“귀족은 귀족이죠. 어찌 됐든 아직 가문에서 추방당하진 않았으니까. 뭐, 추방당하기는커녕 가문의 당주 자린 떡 하니 꿰어차게 생겼으니. 으이그! 내 주인이지만, 정말 한심합니다, 한심해요!”

주인이 가져온 맥주를 들이키고는, 청년은 주먹으로 테이블을 탕탕 내리쳤다.

“가문의 후계자로 떠억 하니 지명된 사람이 전쟁통에 뾰옹 하니 사라져버리질 않나, 이제야 나타나서 허허거리며 웃질 않나! 전쟁통에 뒈진 건 아닌지, 걱정한 사람들 마음은 알아주지도 않고... 에잇!”

청년은 그동안 참아왔던 감정이 복받쳐 올랐는지, 비어져 나온 눈물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닦았다.

“돌아와서는 제일 먼저 한다는 말이, 맥주가 마시고 싶어,라질 않나. 오시예크 님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사람을 후계자로 지목하고 돌아가셨는지.”

“자... 잠깐... 지금 자네, 오시예크라고 했나?”

“네.”

“혹시, 오시예크라는 게 그 오시예크를 말하는 게......”

“아마 맞을걸요.”

사내들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왕족에 버금가는 지위를 가진 오시예크 가문. 왕족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대가문의 새 당주 앞에서, 자신들은 새 왕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았던가. 요 방정맞은 주둥이로!

“에에이, 긴장이 풀리니까 목이 마르네. 여기 맥주 한 잔 더 줘요!”

사내들이 혼란에 빠져 있든 말든, 청년은 빈 잔을 달랑달랑 흔들어 보이며 소리쳤다.

그리고 사내들을 혼돈에 빠지게 한 장본인은 아직도 여인을 애완동물처럼 매단 채로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라자르 왕의 혈육이 새 왕에 등극한 지도 일 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전쟁의 상흔은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도시는 다시금 활기를 되찾았고, 사람들의 얼굴은 밝아졌다.

“내가 왔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

“칙이 말해 줬어.”

하여튼 그 방정맞은 녀석.

주변 정리가 되고 그녀에게 정식으로 청혼하기 전까지, 카이라에겐 말하지 말라고 했더니 대번에 쪼르르 달려가서 고해 바치냐.

“나... 무서웠어.”

“미안, 카이라.”

아기처럼 엉겨붙는 카이라의 등을 유그는 손으로 슬슬 문질러주었다.

카이라는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카이라가 보는 유그는 많이 변해 있었다. 장난꾸러기 소년 같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유그는 성숙한 남자가 되어 있었다.

“카이라.”

“응?”

“나랑 결혼하자.”

카이라가 슬쩍 얼굴을 떼고 특유의 멍청한 표정으로 유그를 바라보았다.

“나 바보야, 유그.”

“괜찮아, 바보라도 좋아. 카이라니까, 다 좋아.”

카이라는 유그의 싱글싱글 웃는 입술에 쪼옥 하고 소리 내 뽀뽀했다. 그것이 프로포즈에 대한 승낙의 표현이었다.

유그는 앞으로 안긴 카이라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애들처럼 카이라의 손을 꼬옥 잡았다. 쳐다보는 카이라의 멍청한 얼굴을 향해, 유그는 먼지가 켜켜이 쌓인 더러운 얼굴로 웃어 보였다.

“나, 유그가 정말 좋아.”

표정 없이 그렇게 말하는 카이라의 금빛 머리칼을, 유그는 상냥하게 쓰다듬었다.

하지만 곧 앞을 향한 유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사라져 있었다.

네프, 그를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그는 이 나라의 왕이 되어 있었다.

그토록 증오했던 아버지의 자리에, 그는 올라 있었다.

“많이 변했구나, 유그.”

그렇게 말하는 그도 많이 변해 있었다. 손을 대면 베일 것 같은 냉기 대신, 잘 다듬어진 위압적인 독기가 그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나이가 들고 성숙해지면서 그의 미모는 화사함과 중후함이 섞여 더욱 빛을 발했다.

그는 그 누구보다도 왕의 모습이 잘 어울리는 사내였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

“당신한테 그딴 식으로 버림받고 뛰쳐나갔으니 별로 잘 지냈을 리는 없겠지요.”

“너의 그 독설은 여전하구나.”

일부러 퉁명스럽게 쏘아붙이자 그는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얼음을 깎아놓은 것 같은 무표정한 얼굴만을 기억하던 유그는 적잖이 놀랬다. 네프, 그가 웃고 있었다. 하지만 가시 돋친 미소였다. 왕으로서 남에게 보여지는 표정을 배운 대신, 위압감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아무도 이 젊고 아름다운 사내를 만만하게 보지 못할 것이다.

그와 얼굴을 마주한 순간 모두들 그의 발밑에 무릎을 꿇게 될 것이다. 그에게는 그런 종류의 카리스마가 존재했다. 불행히도, 그것은 그의 아버지 라자르 왕이 가진 최고의 무기였다.

“이제는 완전히 돌아온 게냐? 네가 와주어서 든든하구나.”

유그가 알던 네프는 결코 이런 말을 할 사내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이 빈말이든 아니든 간에, 유그는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져 옴을 느꼈다. 어릴 적, 친형제보다도 더 믿고 따랐던 그에 대한 애정이 다시금 싹터 올랐다.

유그는 그렇게 믿으려 했다.

네프가 진심으로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진심으로 자신을 신뢰하고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자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유그는 다 식은 차를 들이켰다.

“잠깐 들어가도 될까?”

노크도 없이 문을 열어젖힌 존재에 유그는 마시던 찻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왕이 귀한 손님을 접견하는 자리에, 예의 없이 끼어들고도 용서받을 수 있는 자는 별로 없다. 설령 그게 왕의 혈육이라고 해도 무례한 짓이다.

“아, 마침 잘 왔네.”

하지만 네프는 언짢아하는 기색 없이 무례한 침입자를 불러들였다. 그러자 그는 소리 없이 문을 열고 응접실 안으로 들어섰다.

눈앞에 선 존재에, 유그는 기절할 듯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

“너도 잘 알게다, 유그. 인사하게, 예르네이. 난 앞으로 이 아이를 행정 대신으로 임명할 생각이네.”

그는 새까만 색으로 머리칼을 물들이고 있었다.

한쪽 눈에 화려한 문양이 수놓아진 안대를 하고, 그럴듯하게 차려입은 그는 그림 속의 용맹한 전사같이 보였다.

반가워하는 기색도 없었다. 그저 그는 하나뿐인 눈으로 유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온몸이 덜덜 떨려올 정도로 슬펐다.

“네프, 아니 전하.”

“우리들끼리 있을 땐 원하는 대로 불러도 좋아.”

“당신...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겁니까?”

네프는 푹신한 소파에서 일어서며, 유그에게 등을 보였다. 그는 소파 뒤에 버티고 선 예르네이의 어깨를 친근하게 치고는 창가로 걸어갔다. 그 모습에서 유그는 라자르 왕의 모습을 보았다. 온몸의 털이 쭈뼛 일어설 정도로, 섬뜩한 오버랩 현상이었다.

유그는 참지 못하고 응접실을 빠져나왔다.

토기가 치밀어 올라 더 이상은 왕궁에 있을 수 없었다. 햇살이 내리쬐는 정원으로 뛰쳐나와 유그는 바닥에 그대로 쓰러져, 소리 죽여 울었다. 왜 그렇게 눈물이 쏟아져 나오는지는 몰랐지만, 온몸을 떨며 유그는 서럽게도 울었다.

“유그?”

곁에 서 있던 카이라가 생각에 잠긴 유그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카이라에게 향한 얼굴이 일그러져 있어, 그녀는 느릿느릿 눈을 깜빡이며 유그를 쳐다보았다. 유그는 그런 그녀의 가는 몸을 꼬옥 껴안았다.

“카이라.”

“왜에?”

“평생 내 곁에 있어줄 거지?”

“유그가 또 날 버려두고 떠나지 않으면.”

유그는 그녀의 젖비린내 나는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한번 으스러지도록 그녀를 껴안은 뒤에, 유그는 그녀를 놔주었다. 그녀는 한동안 고개를 갸웃거리며 유그의 얼굴을 살피다가, 이내 마티 아줌마네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아줌마, 아줌마! 유그가 왔어요!”

“뭐어! 그 몹쓸 놈, 아니 유그 님이!”

가게 안에서 들려오는 마티 아줌마의 우렁찬 고함소리에 유그는 실소를 터뜨렸다.

올려다본 하늘은 눈물이 비어져 나올 정도로 맑았다.

스칸데르라는 나라를 멸족시킨 남자의 아들과, 유일한 스칸데르의 생존자.

그들 둘이 점령한 페르티잔의 왕궁.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커져, 네프는 페르티잔이란 나라 자체를 증오했다. 예르네이의 페르티잔에 대한 증오는 말해 봤자 입만 아프다.

-라자르 왕은 스칸데르를 꿀꺽 했으니, 그놈 아들내미는 또 어느 나라를 꿀꺽 해치울라나.

선술집에서 사내들이 나누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순간 차가운 식은땀이 유그의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맨눈으로 햇빛을 올려다본 탓에 눈알이 뻑뻑해져 유그는 손으로 눈가를 문질러 닦았다. 그때 때마침 짧은 팔다리를 허우적대며 뛰던 계집아이 하나가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 벌렁 나동그라졌다.

계집아이는 목을 놓아 울었지만, 주위에 아이의 엄마가 없는지 아무도 와주질 않았다.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

곁에서 빽빽 울고 있는 계집아이를 난감한 듯 바라보고 있자, 가는 체구의 소녀 하나가 아이에게 다가왔다.

소녀는 무릎을 굽혀 아이를 일으켜주고는 더러워진 아이의 옷을 탁탁 털어주었다.

작은 동물을 연상시키는 사랑스러운 소녀였다.

“괜찮아, 괜찮아. 이제 하나도 안 아파.”

상냥한 소녀의 말에, 계집아이는 히끅거리며 우는 걸 멈추었다. 소녀는 아이를 다루는 데 능숙한 모양이었다.

“으이그, 내가 못 살아! 또 어딜 갔나 했더니, 여기서 이러고 있냐!”

뒤이어 다가온 것은, 소녀와는 완전히 다른 타입의 거친 여자였다. 그녀도 꽤 예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여전사를 연상시키는 그녀는 유그의 취향은 아니었다. 취향으로 따지자면 아이를 어르고 달래던 소녀 쪽이 좀더 유그의 취향에 맞았다.

“하지만, 아이 엄마가......”

“맞고 일어날래, 그냥 일어날래!”

여자는 소녀의 팔을 붙잡고 거의 질질 끌다시피 해서 데려가려 했다. 결국 보다 못한 유그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아이 엄마는 아마 애를 찾고 있을 겁니다. 아이 엄마가 찾아올 때까지 제가 보살피고 있을 게요.”

그 말에 소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아, 고맙습니다.”

허리를 깍듯이 숙여 인사하는 소녀를 내버려 두고, 여자는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여행 오신 분들입니까?”

“아뇨, 그냥 누굴 좀 찾으러 왔어요.”

“아직 묵을 곳을 정하지 않았다면 저쪽 시장 구석의 모퉁이 여관에 가보세요. 값에 비해 방이 꽤 괜찮으니까.”

“레이루―!”

“네, 페리! 지금 가요!”

소녀는 웃는 낯으로 고개를 까딱여 보이더니 재촉하는 여자에게로 뛰어갔다.

여자의 곁에는 덩치 좋은 사내가 하나 서 있었는데, 그는 소녀가 다가서자 소녀를 보호하듯 어깨를 감싸 안았다.

졸지에 미아를 보호하게 된 유그는 물끄러미 계집애를 바라보았다. 여자애는 눈물 자국이 남은 얼굴로 멀뚱멀뚱 유그를 바라보았다. 통통한 볼을 손가락으로 꾹 누르자, 여자애는 꺄르륵 웃으며 유그의 손가락을 잡으려 했다.

“유그, 아니 유그 님! 거기서 뭐 하시는 겁니까! 들어오셔서 차라도 한잔하세요!”

가게 안에서 마티 아줌마가 그 육중한 몸을 불쑥 내밀고 소리쳤다. 카이라도 가게 문에 기대 빨리 들어오라고 손짓을 해댔다.

마침 여자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급하게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아이의 엄마는 몇 번이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아이를 데려갔다.

“아찌, 안녀엉~”

아이는 통통한 손을 흔들어 인사했고, 유그도 웃는 낯으로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모든 것이 평화로운 오후였다.

내리쬐는 햇살에, 우뚝 선 왕궁이 금빛으로 물들었다.

왕궁을 가늘게 뜬 눈으로 쳐다보던 유그는 곧 고개를 돌려 사랑하는 여인과 장모가 기다리고 있는 가게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콧속을 파고드는 향긋한 차 향기에,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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