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룡의 숲-3화 (3/130)

제 1장  환(環)

三.

은빛의 실과 같은 가느다란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늘어뜨린  채 책상에 앉아

문서 꾸러미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26대 백룡왕인 파이론이었다.

용족들은 일신에 지닌 마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몸  역시 마력의 속성에 맞추

어 변화한다. 그 때문에 파이론은 백미에 백발을 하고 있었다.

일견하기에는 이십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단정한 생김새 였지만 그의 나이는

652세로 용족으로서는 중년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었다.

천지자연의 질서중 바람을 다스리는 백룡족의  왕으로서 그는 변함없이 각지

에 퍼져나가 있는 백룡족들로부터 보고된 사항들을 검토하고  있었다. 하계에

내려가 있는 백룡족들은 하계의 자연의 질서를 감시하며 또 그것들이 계절에

맞게 찾아오고 가는 가를 살핀다. 또한 백룡족은 천계의 서쪽을  지키는 맹장

중 하나로서 바람과 뇌전의 힘을 사용하는 전투적인 성향이 강한 종족이었다.

대부분의 용왕들이 하는 일은 자신들의 관할 영지에서  보고된 여러 가지 일

들을 확인하고 지시를 내리는 일과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계절의 전환

에 관한일. 그리고 천계의 방비에 관한 일이었다. 대부분의 일들은 문서의 형

태로 정리되어 왕들에게 전해지는데 그것을  읽고 확인하는데만 대부분의 시

간을 소비할 정도로 그 양이 많았다.

파이론역시 용족들의 복장인 파오를 입고  있었는데 그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길다란 파오보다는 활동적인 중간길이의 파오를 즐겨입었다. 그것은  그가 천

계 밖으로 나가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의 천성이 자유분방하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더 옳았다.

벌써 세시진 이상을 문서 더미에 파묻혀 있던  파이론은 손에들고 있던 인장

을 내려놓고 딱딱하게 굳어진 허리를 펴며 몸을 일으켰다. 그가  막 이리저리

로 몸을 돌리고 있을 때  집무실 문이 열리며 간소한  흰 궁장차림의 여인이

들어섰다. 검고 긴 머리카락을 틀어올려  몇 개의 비녀만으로 장식하고  있는

소박한 차림이었지만 그녀의 몸에 서린 기품은 그녀의 신분이 범상치 않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여인의 손에는 술잔 두 개와 도자기로 된 술병이 담긴 소반이 들려 있었다.

" 제가 제때 오긴 했나봐요."

그녀는 막 자리에서 일어선 파이론에게 시선을 던지며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 막 쉬려던 참이었지."

파이론 역시 그녀의 미소에 답하듯 미소를 떠올렸다.

막 집무실 안으로 들어선 여인은 챠렌이라는 이름의 백룡왕 보좌관이자 백룡

왕비라는 두 개의 신분을 가진 여인이었다. 300여년 전 파이론이 26대 황룡왕

의 위(位)에 올랐을 때 그녀는 원로들의 추천으로 보좌관이 되었다. 명망있는

백룡족의 귀족 자제인 그녀는 학문을 비롯해 언변과 훌륭한 싸움실력까지 모

든 것을 갖춘 여인이었다. 그리고 항상 파이론의 곁에서 일을 돕는 사이에 둘

은 사랑에 빠졌고 20년 후 그녀는 백룡왕비가 되었다. 그녀가  비라는 지위에

오르자 이제 보좌관의 자리에서 물러나는게  어떻겠냐는 주위의 권유에도 불

구하고 그녀는 계속 보좌관의 자리에 있기를 원했다. 난초와도 같은 청초하고

갸냘픈 외모와 달리 전투에 임할때의 그녀는 웬만한 장수들도 당해내지 못할

정도로 강인한 힘을 내곤 했다. 보좌관은 비상시에 왕을 대행해야  하는 자리

인 만큼 모든면에서 뛰어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많은 능력을 요구했는데

그녀는 여인으로서는 드물게도 모두에게 인정받을  만큼의 실력을 갖추고 있

었다. 그 때문에 그녀의 이름은  백룡족뿐만 아니라 천계 전체에서도  유명했

다. 그같은 그녀의 모습을 동경해 다른 용족의 여인들도 그녀처럼  되기를 원

할 정도로 챠렌은 자신의 삶을 가치있게 누리고 있었다.

챠렌은 집무실 중앙에 놓인 갈색의 고풍스러운 나무  탁자 위에 술병과 잔을

내려 놓고 의자에 앉았다.  물끄러미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파이론 역시 그

녀의 맞은편에 자리잡고 앉았다.

" 흑룡왕님이 후계자를 선출했다고 식(式)에 와달라더군요. 들으셨나요?"

두손을 가지런히 모아 탁자위에 올려놓으며 챠렌이 묻자 파이론은 고개를 끄

덕였다.

" 집무실로 서신이 왔더군."

" 그러보 보니 흑룡왕비는 기린족의 황녀 였지요. 그녀를 닮아 후계자가 될

아이도 눈이 푸른색이라고 하던데....."

" 맞아. 유안이라는 이름이었지..."

차렌은 술병을 집어들어 파이론의 술잔에 술을 따랐다.  술병에서 흘러나오는

맑은 액체와 엷게  퍼져나가는 천화주(泉花酒)의 향기.  천계에서만 피어나는

다섯가지의 꽃잎으로 담근 천화주는 그리  독하지도 않을뿐더러 피로를 푸는

데 효험이 있어 많은이들이 즐겨 마시는 술이었다.

파이론은 향기로운 술이 담긴 잔을 들고 한입에 술을 털어넣었다.

" 기린족이 용족과 혼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  영수족들은 자존심이 강

하니까 말이야."

챠렌역시 술잔을 집어들며 말을 받았다.

" 하지만 용족중에서도 흑룡족은 영수족들 조차 감히 함부로 대할 수 없는

힘을 지니고 있잖아요. 이렇게 제입으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흑룡족은 강하니

까요."

입안에 화하게 퍼져나가는 천화주의 맛은 독특했다. 달콤한 듯 하면서도 어딘

지 모르게 쏘는 듯한 느낌. 파이론은 다시 한번 천화주의 맛과 향을 음미하며

잔을 비웠다.

" 흑룡궁에 들린 후 오랜만에 수행이라도 갈까? 하계로 말이야."

" 업무는 어찌하시려구요. 왕과 보좌관이 동시에 자리를  비우면 일이 밀릴

게 뻔하잖아요."

챠렌이 가볍게 질책하자 파이론은 걱정말라는 듯이 웃어보였다.

" 당신은 보좌관이기 이전에 내 비야.  일은 장로들에게 맡기면 되겠지. 이

런일도 한두번은 아니었으니까 그들도 충분히 이해할테고 말이야."

그리고 나서 파이론은 챠렌의 가느다란 손을 잡으며 덧붙였다.

" 이제 우리도 후계자를 가져야 할 때도 됐고 말이야."

페이론의 말을 듣는 순간 챠렌의 얼굴에는 새초롬한 미소가 피어오르고 있었

다.

*             *            *

" 저.........훼이..."

유에린은 굵은 나무 기둥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있는 훼이를 불렀다.  하지만

훼이에게서는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혹시  자고 있는지도 모른다.

해가 떠오른지 한시진 정도 지난 아침. 그다지 이른 시간은  아니었지만 흑룡

의 숲 안으로 들어오는 햇빛은 울창한 나무들에 가리워져 얼마 되지 않았다.

" 훼이......"

유에린이 다시한번 훼이의 이름을 부르자 그제서야 훼이는 눈을 떴다.

깊은 어둠. 매일같이 보는 그의 눈이었지만 훼이의 검은 눈은  볼때마다 새롭

게 다가왔다. 새하얗고 무표정한 얼굴에서 유일하게 감정의 빛을 지니고 있는

검은 눈. 과연 그는 저 두눈에 무엇을 담고 앞을 바라보는 것일까.

잠시 훼이의 두 눈을 보며 생각을 떠올리던 유에린은 곧 고개를 저었다. 지금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힘을 키우는 것이다. 그 때문에 두달 동안이나 이

흑룡의 숲에 머물지 않았던가. 그를 찾고 나서도 또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유에린은 자신이 원하던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천계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 훼이. 그의  도움을 얻고

자 이곳에 오는 이는 많았지만 실제로 그를  만났다거나 도움을 받았다는 자

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기적과도 같이 유에린은 훼이를 찾아냈고 그의  도움을 받고 있는 것

이었다.

" 주무시고 계셨나요?"

별 생각없이 내뱉은 질문에 훼이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 나도 너와 같은 용족이다."

유에린의 얼굴에 어떤 표정이 떠올라 있었는지 훼이는 그렇게 말했다.

" 아...아니에요. 그냥 조금 신기해보여서...."

유에린은 당황해서 말을 더듬거렸다.

" 오늘은 방어 주문을 가르쳐주지. 때로는 공격주문  보다 방어주문을 사용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공격이 될 때도 있다."

훼이는 여전히 별다른 표정이 떠오르지  않은 무심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그런 훼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유에린은  자신의 표정에 다른 무엇이

끼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

누가 이름 좀 지어줘요..... T.T

번 호 : 478 / 3334 등록일 : 1999년 06월 12일 22:29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346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2장 一.

흑룡의 숲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