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룡의 숲-7화 (7/130)

제 3장 화살(矢)

二.

" 어서 오십시오. 5대 용왕의 후계자들이여..."

막 천제의 거처인 상천궁(上天宮)에  들어선 다섯 명의 남녀는 자신들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는 천군(千軍)들의 사이를 지나 대전으로 들어섰다.

길게 이어진 대전의 양쪽에도 화선들을 비롯한 귀족들이 길게 늘어서 그들을

맞이했다. 천제가 앉아있는 상석에 자리한 태사의 양옆에는 천상계(天上界)

최고의 두뇌라 일컬어지는 천선들 중 두명이 화려한  궁장 차림으로 서 있었

고, 그 아래로는 한사람한사람의 힘이 영수족과 맞먹을 정도로 강하다는 검선

(劍仙) 몇 명이 소박한 흰 궁장 차림으로 늘어서 있었다.

막 중년에 접어든 듯한 외모의 천제는 목례로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는 다섯

명의 용족들을 바라보며 중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그대들이 4계절의 용인 5대 용왕의 새 후계자가 된 것을 진심으로 경하하

오."

" 감사합니다. 상제전하."

다섯 용족은 일제히 그렇게 답했다.

" 저는 25대 백룡왕 후계자 론입니다."

" 저는 27대 청룡왕 후계자 세류입니다."

" 저는 28대 홍룡왕 후계자 화란입니다."

" 저는 24대 황룡왕 후계자 서린입니다."

" 저는 22대 흑룡왕 후계자 훼이입니다."

용족들의 전통 복식인 파오를 갖춰 입은 5명의  용왕 후계자들은 천제에게 각

자 자신을 소개했다.

5명중 유일한 여성인 홍룡왕 후계자 화란은  아직 후계자 신분임에도 불구하

고 머리카락의 색이 진한 붉은 빛을 띄고 있어 보는 이들에게 그녀의 힘이 얼

마나 강한가를 말해주고 있었다. 붉은 머리카락과 더불어 그녀는 화사하게 피

어난 꽃과도 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어 더욱 눈길을 끌었다.

" 내 그대들에게 다음 천제가 될 태자 오현을 소개하지."

천제의 말이 떨어지자 대전의 입구에서 지적이고 싸늘한 용모의 남자가 들어

섰다. 크고 마른 듯이 보이는 체격에 상대방을 꿰뚫을 듯한 날카로운 눈이 인

상적인 미남이었다. 전신에서 풍겨 나오는 냉기 때문에 호감을  주지는 못했지

만 성격이 무척이나 꼼꼼할 듯이 보였다.

" 태자 오현입니다. 제현..."

무척이나 깍듯한 태도 였지만  멀직이 서서 그를  바라보던 훼이는 그에게서

뜻모를 거부감을 느꼈다. 자신들에게 향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마음속에서

는 분명 천인으로서 가져야 할 감정이 아닌 것이 꿈틀대는 것 같았다.

5대 용왕의 후계자들과 다음 천제가 될 태자 오현은 상견례를 나누었다.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그들이니 만큼 서로가 서로를 알아둘 필요가 있었다.

소위 인간들이 하늘이라고 부르는 세상은 모두  4개의 계(界)로 나뉜다. 먼저

용족들이 살고 있는 천계(天界)와  영수족들이 살고 있는 환계(幻界),  사후의

선한 영들이 환생을 기다리는 영계(靈界), 그리고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수명

을 관리하고 죽은 자들의  영혼을 심판하는 천상계.  즉, 옥황상제가 다스리는

영지의 4계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인간들이 사는 세상을 하계(下界)라 부르며 사후에 윤회를 명받지  못

한 영혼들이 떨어지는 곳이 바로 명계(冥界). 지옥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그 중에서도 세계를 지탱하는 5대 원소의 힘을  가진 용족들은 하계를 비롯하

여 4계 전체의 5대 원소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을 하고 있다.

봄의 용이라 불리는 청룡은 목(木)의 힘을 근본으로 하며 동쪽을 수호한다.

여름의 용이라 불리는 홍룡은 화(火)의 힘을 근본으로 하며 남쪽을 수호한다.

조화의 용이라 불리는 황룡은 토(土)의 힘을 근본으로 하며 중앙을 수호한다.

가을의 용이라 불리는 백룡은 금(金)의 힘을 근본으로 하며 서쪽을 수호한다.

겨울의 용이라 불리는 흑룡은 수(水)의 힘을 근본으로 하며 북쪽을 수호한다.

이처럼 세상의 균형이라는 가장 중요한 일을 맡고  있는 만큼 천제로서도 용

족들을 무시하지 못할 만큼 용족들은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가장 우

위에 서서 모든 것을 관리하는 상제였지만 자신의  지위가 높다고 해서 용족

을 비롯한 영수족들을 마음대로 부릴 수는 없다. 지위는 천제가  가장 높지만

그들은 주군관계가 아니었다. 그저 그가  가진 천제라는 지위를 다른  이들이

존중해 주는 것뿐이었다.

천제로서도 그들을 소홀히 대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천제는 5대 용왕의 후계자들을 천상계로 초대한 것이었다.

천제가 5대 용왕의 후계자들을 위해 베푼 연회는 밤늦도록 계속 이어졌다.

잠시 연회장에 있던 훼이는 소란스러움에  환멸을 느끼며 연회석에서 빠져나

왔다. 훼이는 소란스러운 것이 싫었다. 연회를 즐기는 다른 용왕 후계자들 사

이에서 빠져나오자 가슴속이 후련해지는 것 같았다.

상천궁의 정원은 천계 못지 않게 잘 가꾸어져 있었다.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

움을 가진 수풀과 나무, 꽃들은 누가 일부러 심어 놓기라도 한 것처럼 어울리

는 장소에서 자라나고 있었고 곳곳에 자리잡은 누각과  정자 역시 풍광을 더

욱 운치 있게 만들어 주었다.

훼이는 상천궁의 정원을 거닐면서 이제 멀게 느껴지는 상천궁의 거대한 건물

을 응시했다. 한눈에 다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의  궁에는 곳곳

에 연등이 걸려있어 밤임에도 불구하고 환하게 빛나며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

다.

검게 펼쳐진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과  커다랗게 떠오른 보름달은 상천궁에서

울려 퍼지는 비파소리와 어울려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광으로 훼이의 눈에 비

쳐왔다.

정원을 거닐며 미풍에 흔들리는 초목들을 바라보던 훼이는 문득 그리운 얼굴

을 떠올렸다. 벌써 1년이 다 되어가건만 그녀를 만나기 위해 하계로 내려가지

못하고 있다.

그녀는 얼마나 변해있을까.

천계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미녀들에 비하면  빛을 발하지도 못할 그녀였지

만 훼이에게 있어 그녀는 아침이슬을 머금은 풀잎처럼 신선하게 다가왔다.

흑룡왕의 후계자가 된 지금. 머지않아  그에겐 비를 맞아들이라는 말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어떤 여인도 화연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에게 다가오는 여인은 많았지만 그가 먼저 다가선  여인은 오직 화연 뿐이

었다. 화연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계속  걸음을 옮기던 훼이는 어느새  널찍한

연못가에 도착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밤임에도 불구하고 속이  비칠 정

도로 투명한 연못 위에는 커다란 연꽃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멀리 상천궁에서

비쳐오는 빛을 받아 어렴풋이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연꽃들.

연못 중앙에는 돌로 만들어진  다리가 걸려 있었는데  어떤 명공의 솜씨인지

난간에 새겨진 십장생의 무늬들은 실로 감탄을 자아내게 할만큼 정교하고 아

름다웠다. 그리고 다리의 끝이 닿는 곳에는 정자(亭子)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정자 역시 칠 하나하나에 정성을 기울인 듯  밤임에도 불구하고 아스라한 달

빛 속에서 훼이의 시선을 잡아끌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훼이는 부드러운 미풍에 몸을 맡긴 채 다리 위를 걸었다. 끝부분에 닿자 정자

의 굵은 기둥에 기댄 채 밤 풍경 속에  녹아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흰색의 장포를 걸치고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은 유약한 분위기를 풍기는

한 남자.

훼이는 말벗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남자에게 다가섰다. 훼이가  바로 곁에

다가설 때까지도 남자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자세도 바꾸지 않은 채 하염없

이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 연회를 싫어하시나 보군요."

훼이가 말을 걸자 남자는 그때서야 조금 놀란 듯한 기색으로 고개를 돌렸다.

" 아..... 별로......"

남자의 얼굴을 본 훼이는 속으로 감탄했다. 장포를 걸치고 있는 것을 보고 남

자라고 짐작은 했지만 그가 가진 용모는 훼이 조차  한번도 본 적이 없을 정

도로 실로 절세적인 것이었다. 갸름하고 섬세한 얼굴 선에 부드럽게 가라앉은

한 쌍의 눈과 한번 마주친 사람의 시선을 다시  돌리게 할만큼 깍은 듯이 단

정한 오관. 그리고 온몸을 감싼 기품.

그의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는데 그  미소에는 왠지 모를 처연함

이 담겨 있었다.

" 그 파오...... 용족이시군요."

남자는 얼굴만큼이나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 네. 22대 흑룡왕 후계자인 훼이입니다."

" 그러셨군요. 23대 흑룡왕이 되실 분..... 오늘은 연회에 참석하시러 오셨군

요."

훼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 그런데 왜 이곳에 계십니까. 보통 신분은 아닌 것 같은데...."

훼이의 물음에 남자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자세히 보니 훼이보다도 훨씬 어려보였다. 하지만 어려보이는 외모에 비해 그

가 가진 분위기는 무거웠다.

" 전...... 옥황상제님의 아들인 성휘(星煇)입니다..."

성휘라고 이름을 밝히며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덧붙였다.

" .....화선 소생의...."

" 아....."

이제 왜 성휘가 홀로 떨어져 있었는지 이해가 갔다.

다른 모든 면에 있어서는 실로 뛰어나게 일을 처리하는 천제 였지만 여성 편

력에 있어서는 모든 이가 혀를 내두를 정도의 후문을 가진 그였다. 그의 여성

편력 때문이 아니더라도 전통적으로 상천궁에는 천군과 왕족,  귀족들을 제외

한 모든 이들이 여인이었다.

천제의 업무를 보좌하는 12명의 천선(天仙)들과,  그 수가 알려지지 않았다는

전투 선녀인 검선(劍仙). 그리고 상천궁을 돌보는 화선(花仙)들이 상천궁의 대

부분을 차지하는 선녀들이었다.

귀족이나 왕족 출신인 천선이나  검선과 달리 화선들은  평민 중에서 선발된

선녀들이었기에 피를 무엇보다 중하게 생각하는 그들로서는 화선출생의 아이

를 왕족으로 인정하려들지 않았다.

하지만 성휘는 화선 소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왕자라는 지위를 받은 것을 보

니 그에게 왕자의 지위를 내릴 때 얼마나 말이 많았을지 짐작이 갈 정도였다.

영수족이나 용족역시 피의 이어짐을 중하게 여겼지만 신분의 차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기에 훼이는 더욱 천계인들의 사고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 한가하시다면 말벗을 해드리고 싶은데요."

미소를 지어 보이며 건넨 훼이의 말은 어둡게 가라앉아 있던 성휘의 눈에 생

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날의 인연으로 천제의 유일한 왕자 성휘와 훼이는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천상계의 천인들은 용족이나 영수족에 비해  수명이 짧았기에 성휘역시 훼이

보다 한참 어렸지만 나이는 그 둘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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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오늘건 내용이 좀 길죠? 설정으로 가득 차 가지고...^^

매일매일 한편씩을 쓰려니 힘들지만 그래도 쓰고 나면 보람을 느낍니다.

오늘도 흑룡의 숲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번 호 : 503 / 3334 등록일 : 1999년 06월 16일 22:41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308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3장 三.

흑룡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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