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흩날리는 꽃잎
五.
" 돌아오셨어요. 비님."
막 별궁 안으로 들어선 비를 향해 별궁에 머무는 시비 중 하나가 인사를 건
넸다. 비보다 두배 정도 나이가 많은 시비들이었지만 언제나 깍듯하게 그를
대했기 때문에 비는 조금 부담스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이제 훼이와 거의 비슷하게 자란 키와 조금 마른 듯해 보이지만 균형잡힌 몸.
그리고 나이에 걸맞지 않는 깊이를 가진 검은 눈동자. 비는 그다지 감정을 잘
드러내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아버지 앞에서는 언제나 어린아이의 모습 그대
로 였다. 이제 성년식을 맞이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지만 훼이에게 있어서 비
는 언제고 아이의 모습으로 비칠 것이기에.
" 아버님은.....?"
비는 아직까지 어떤 호칭을 써야 할지 망설이며 시비에게 물었다.
" 훼이님께서는 내실에 계십니다. 그리고...... 손님이 계십니다."
" 손님?"
" 성년식을 도와주러 오신 분이십니다."
" 아........"
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실로 향했다. 뒤돌아서 걸어가는 비의 뒷모습
을 보며 시비는 작은 한숨을 내뱉었다.
" 아버님. 비입니다."
" 그래. 들어오너라."
가볍게 문을 두드리며 비가 말하자 언제나처럼 차분한 훼이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연한 갈색의 나무로 된 문에는 정교한 초목의 모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오랜동안 익숙하게 잡아온 손잡이에는 희미하게 얼룩이 져 있었다.
거의 아무런 소리도 없이 미끌어 지듯이 문이 열렸고 비는 안으로 들어섰다.
" 다녀왔습니다."
" 그래. 수고했다."
훼이는 흐뭇한 미소를 떠올리며 답했다.
" 그분께서는........"
비는 들어섰을 때부터 시선을 잡아끄는 존재. 화사하게 피어난 꽃과 같은 아
름다움을 간직한 여인. 화란에게 시선을 두고 있었다.
" 아. 소개하마. 28대 홍룡왕 후계자이신 화란님이다."
" 홍룡족의 후계자시군요. 인사올립니다."
비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 아......"
화란은 가벼운 탄성을 내뱉으며 비의 인사를 받았다.
" 정말 훼이를 많이 닮았군요. 예전에 훼이와 처음 만났을 때를 보는 듯 해
요."
" 저도 비를 볼 때마다 놀라곤 하지요."
훼이와 나란히 앉은 화란의 모습을 보며 비는 조금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뭐
라고 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어떤 감정이 마음 속에서부터 떠오르고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향기가 없음에도 꽃의 여왕이라 불리는 모란꽃과 같이 화란은 그저 존재하는
것 만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리고 훼이 역시
마주치면 한번쯤은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여운과도 같은 향기를 지닌 남자였
기에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은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 이틀 후로 다가온 성년식을 위해 화란님이 와주셨단다. 몸속에 잠들어 있
는 힘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노래가 필요하지."
" 아...예. 감사합니다. 화란님."
화란은 엷게 미소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 그렇게 지나치게 감사할 필요 없어요. 그리고 그렇게 높여 부르지 말아요.
둘다..... 전 지나친 격식은 싫어하니까."
" 그건...."
" 비. 너도 와서 앉거라. 막 도착했으니 피곤할테지."
비는 자신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살짝 얼굴을 굳히며 자리에 앉았다.
" 저는 훼이 말고 검은 파오가 이토록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생
각도 못했었는데...."
" 그래요?"
즐거운 듯이 이어지는 둘의 대화를 들으며 비는 조금전부터 느껴지던 알 수
없는 감정이 조금 더 짙어지는 것을 느꼈다.
* * *
비의 성년식이 열리는 것을 축하하듯이 하늘은 보통때보다 좀 더 화창하고
맑게 개여있었다.
초대를 받고 참석한 성휘와 연화는 처음 보게 될 용족의 성년식에 대한 기대
로 가득한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거의 표정의 변화가 전무하다고 말할 수
있는 연화조차 기대감을 품고 있는 듯이 보여 훼이는 속으로 작게 웃었다.
성년식을 위해 참석해준 손님은 성휘와 연화. 그리고 화란 뿐이었지만, 별궁에
서 생활하는 다섯명의 식솔들 역시 비의 성년식을 축하해주기 위해 함께 자
리했다.
" 자, 그러면 시작하도록 합시다."
훼이가 말을 꺼내자 별궁 정원으로 통하는 입구에서 은색실로 용의 모습이
수놓인 파오를 입은 비가 들어섰다. 오늘의 성년식을 위해 세명의 시비들이
정성을 들여 만든 파오는 비에게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훼이에게 가르침을 받은 대로 비는 훼이의 바로 앞까지 걸어온 후 걸음을 멈
췄다. 그러자 훼이는 비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 그대. 흑룡의 피를 이은 그대가 세상에 태어난 지 백년을 맞이한 오늘. 몸
속에 잠자고 있는 힘을 일깨워 완전한 성년으로의 탈바꿈을 명한다."
훼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비의 뒤쪽에 자리하고 있던 화란이 노래를 시작
했다. 아무런 악기의 소리도 없이 그저 그녀의 목소리만의 울림을 담은 그 노
래는 그 노래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성휘와 화연에게 있어서
도 신비하게 느껴질만큼 특별한 울림을 담고 있었다.
오랜 옛날부터 이어져 내려온 용족의 힘을 깨우는 노래. 그 노래가 울려퍼지
는 동안 비의 온몸은 희미한 검은 빛으로 감싸였다. 어둠처럼 가라앉을 듯이
검은 색이 아닌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투명한 검은 빛이 비의 온몸을 감싸
안았다.
바람도 불지 않는데 투명한 검은 빛에 감싸인 비의 머리카락은 미풍에 흔들
리는 것처럼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비의 눈은 잠든 것처럼 스르르 감겼다.
화란의 노래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투명한 검은 빛에 감싸인 이후 비의 몸에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
었다.
여전히 비의 이마에 손을 대고 있던 훼이는 비의 온몸을 감싼 검은 빛이 처
음 보다 조금 더 짙어졌을 때 다시 입을 열었다.
귀에 들리는 분명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의미를 알 수 없는 어떤 말이
훼이의 목소리에 실려 나왔다. 마음을 격동시키는 울림을 가진 북의 소리처럼
강하게 훼이의 목소리는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순간. 비의 몸을 감싸고 있던 검은 빛이 완전한 암흑의 빛처럼 검
게 변했다. 비의 이마에 손을 대고 있던 그제서야 검은 빛에 잠겨있던 손을
빼내며 말을 멈췄다. 그리고 때를 맞추어 화란의 노래소리 역시 멈췄다.
" 어떻게 되는 거지?"
중앙에 검은 빛에 감싸인 비만을 남겨두고 훼이와 화란이 물러서자 성휘는
그때까지 참고 있던 물음을 던졌다.
" 조금만 기다리면 이제 비는 완전히 새로 태어나게 되지."
" 새로 태어난다면. 설마 모습이 바뀌기라도 한다는 건가?"
훼이는 고개를 저었다.
" 용족에게 있어 새로 태어난다는 말은 새로운 힘을 얻는 다는 뜻이지. 새
로운 힘이라기 보다는 그동안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던 힘을 끌어내는 것이지
만."
" 위험은 없는 것입니까...."
청량한 물소리 처럼 맑게 울리는 목소리로 연화가 물었다. 훼이는 짧은 인사
가 아닌 그녀의 말은 처음 듣는 것이어서 조금은 놀라고 있었다. 성휘의 가장
친한 친구가 훼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연화는 인사 이외의 그 어떤말
도 그에게 하지 않았었다.
" 그건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 아무일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죠.."
비의 몸에 흐르는 인간의 피가 과연 성년식을 맞이한 이후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 그것은 훼이로서도 걱정하고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믿고 싶었다. 비
가 무사히 성년식을 치를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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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졸려...요즘들어 괜시리 피곤하네요. 여름이라 그런가.
여름은 너무 더워서 싫어요.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어요...특히 저희집은 미치도록
더워요... 여러분도 더위에 지지않는여름을 보내시길.....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번 호 : 660 / 3334 등록일 : 1999년 06월 30일 00:17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51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5장 六.
흑룡의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