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룡의 숲-23화 (23/130)

제 5장  흩날리는 꽃잎

八.

" 아버지. 지금도 어머니를 기억하세요?"

방에 들어선 이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의자에 몸을 파묻고 있던 비가 입

을 열고 물은 것은 조금 의외의 내용이었다.

" 아니, 화연은 언제고 살아있다. 내가 살아있는 한은..."

" 네......."

비는 훼이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는 처음처럼 다시 입을 다물었다.

" 뭐가 알고 싶은거냐. 비."

" 아니에요. 단지.... 제  기억속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어머니가 아버지에겐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었을 뿐이니까."

아무렇지 않게 대답한 비의 말을 듣고서야 훼이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지금까

지 과거에 대한 이야기는 한번도 꺼낸 적이 없던 비가 화연의 이야기를 물은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언제나 어른스러웠기에 비가 무엇을 생각하고 또,  바라고 있는지 훼이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자신이 비에게 해줄수 있는 최상의 일을 하려고 노력하

는 것 밖에는.

비를. 아니, 화연을 만나기 전 까지는  자신도 아버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조차 해본 일이 없었으므로.

" 내가 화연과 함께 보낸 시간은 하계의  시간으로 3년 동안이었다. 천계에

서 지내다보면 우스울 정도로 짧은 시간이지만, 난 결코  그 시간이 짧았다고

는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말  없이도 나눌 수 있는 그런  감정이 있으니

까."

하지만 비는 훼이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직 자신이 어리기 때문일까. 비에게는 기억한다는 말보다 잊는다는 말이 더

가깝게 다가왔다.

훼이의 말에 3년의 시간이 천년을 감싸안을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면 비

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도 이해할 수도 없을 것임이 분명했다.

*            *            *

찾아왔던 때와 마찬가지로 화란은 별다른  인사도 없이 떠나갔다. 아니, 인사

대신 훼이에게 편지를 남기고서.

성년이 되었지만 비의 일상은 바뀐 것이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훼이와 함

께 식사를 하고 그 후에는 여러 가지 주문에 관한 것들을  배운다. 그리고 나

면 이후의 시간은 각자가 하고 싶은 것을 했다. 가끔은 외출을 하기도 했지만

보통은 거의 별궁 밖으로 나가지 않는 생활이었다.

숨막히는 적막.

그것이 지금 비가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무심코 멀리에  자리한 흑룡궁 본궁

을 바라보자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같은 땅에 얼마 떨어지지도 않은 곳에

있는데도 비는 저곳에 발을 들여  놓을 수가 없다. 훼이를 따라  처음 천계로

왔던 그날 이후로 비는 흑룡궁에 들어간 적이 없다.  그저 스쳐지나가듯이 한

번 본 자신의 혈족들. 그 눈에 떠올랐던 명백한 거부. 다른 것은 몰라도 그것

만은 기억하고 있었다.

" 아버지. 저 천상계에 다녀올께요."

수련이 끝난 직후 잠시 동안의 휴식을 취하면서 생각에 잠겨 있던 비는 답답

해져 오는 기분을 털어버리기 위해 도피처로 성휘가 있는 곳을 택했다.

" 아버지는 가실 생각 없으세요?"

" 한 이틀 후에 가마. 지금은 하던 일이 좀 남아있어서."

" 네. 그럼 먼저 가 있을께요."

비는 몸을 일으키고는 별다른 준비없이 바로 천상계로 통하는 공간을 열었다.

[ 역궁(逆窮) 개문(開門) ]

아직은 주문을 필요로 하긴 했지만 비는 나이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힘을 가

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비가 훼이의 피를 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

과도 같았다.

비의 모습이 공간 속으로 사라지고 난 후 훼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어느새 스스럼 없는 사이가 된 자신의 친구와 아들.

그 두 존재를 떠올리면 저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훼이의  마음 속에서 이제는

화연과 동등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비와 성휘.

걸음을 옮기는 훼이의 뒤로는 언제나 처럼  작게 보이는 흑룡궁의 본궁이 자

리하고 있었다.

시간. 사계절을 지배하는 자인 용족에게도 공평하게 다가오는  시간은 어느면

에서 보면 잔혹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 같았던 일상의 평화를 시간이라는 이름의 화살은 가볍

게 꿰뚫어 버렸다.

지금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비의 성년식을 축하해주기 위해 찾아왔던 그때의 모습 그대로 성휘는 잠들어

있었다. 천인들에게 주어진 수명을 반도 채우지 못한 채  성휘에게 주어진 유

일한 공간이었던 그 별궁에서  자신을 배웅하는 단  세사람의 시선을 받으며

그렇게 잠들어 있었다.

" ...........대체......"

고요하게 잠든 성휘를 보면서 훼이가 꺼낸 말은 그것 뿐이었다.

" .....저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요.........."

비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 그렇게나 많은  피가 흘렀는데  전 그저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어

요......."

비는 자신의 두 눈에 눈물이 흐르는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저 고개를 숙

인 채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훼이는 연화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연화의 얼굴은 보통때처럼  표정없이 굳어

있었다. 평소와 다른 것이 있다면 창백한 색으로 물든 그녀의 얼굴 뿐.

" 그는 언제나 예상하고 있었어요..........."

훼이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연화가 입을 열었다.

"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해주세요."

두 눈을 가득 채운 창백하게 식어버린  친구의 얼굴은 슬픔보다는 분노를 느

끼게 했다.

" 상제의 명령이었습니까?"

연화에게서는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 그러면, 그 태자의 짓입니까?"

" .......그 누구도 나서서 말리지 않았어요."

잠겨서 갈라진 목소리로 비가 대답했다.

" 전 이해할 수 없어요.... 자신의 혈육에게.....친 동생에게  칼을 꽂을 수 있

다니......도저히........도저히.........."

훼이의 귓가에 파고드는 것은 숨을 죽인채 오열하는 비의 목소리.

머리속에서 무언가 툭하고 끊기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현실........?

피라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것이었나.....?

받아들이지는 못하더라도 그저 놓아줄 수는 없었던 것인가.

대체 그 피라는 게 뭐길래...... 목숨 하나를 무참히 꺽어버릴 수 있는 것인가.

처음부터 끝까지 처연한 미소만을 지어야 했던 친구의 아픔을....

그리고 겨우 찾은 밝은 미소를 자신은 지켜주지 못했다.

수십년이라는 시간동안 몸을 눕혔던 별궁의 침상 위에서 성휘는 그렇게 마지

막 잠을 맞이하고 있었다.

인형처럼 미동조차 없이 성휘의 곁을 지키고  있는 연화는 눈물 한방울 보이

지 않았다. 하지만 훼이는 알 수 있었다.

가장 슬플때는 눈물 조차 흐르지 않는 다는 것을.

친구라는 이름보다 더 깊었을....... 성휘가 가진 아픔을 가장 깊이 이해하고 있

었을 연화는 그렇게 굳어진 인형처럼 성휘의 얼굴만을 내려다 보았다.

한동안 그런 연화와 성휘를 바라보던 훼이는 갑자기 몸을 돌렸다.

" .......아버지?"

훼이의 얼굴에 떠오른 싸늘한 미소를 본 비는 놀라서 입을 열었다.

"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하나뿐이다."

훼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나가 버렸지만 분명 마지막 말은 비와 연화

에게 한 것이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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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을 만들었습니다. ^^

이름하여 왕언니와 떨거지들...^^;;; 구성원은  너희가 판타리아를 아느냐를 쓰

시는 뱀파이어님이 왕언니. 그리고 파색 쓰시는 숟가락님이 둘째언니.

그리고 제가 막내입니다. ^^

오늘 내용도 시간을  막 섞어  놨는데요. 핫..머  맨날 그러니까...이해해 주세

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번 호 : 681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03일 00:43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50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5장 九.

흑룡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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