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흩날리는 꽃잎
九.
하늘을 뒤덮은 검은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폭우는 마치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쉴새없이 퍼부어지고 있었다.
굵은 나무 뿌리까지 한번에 뽑힐 듯이 거세게 몰아치는 바람과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세차게 내리는 굵은 빗방울들. 격심한 계절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천상계의 날씨로 보기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날씨가 며칠째 계속되자
천상계에 사는 사람들은 이변이라도 생긴 것이 아닐까 걱정하고 있었다.
때아닌 폭우로 거리를 나다니는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을 정
도로 천상계는 거센 빗소리 이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적막에 감싸여
있었다.
" 대체 무엇 때문에 이 정도의 폭우도 멈추지 못하는 것이냐! 그러고도 너
희들이 천상계의 수문장(守門將) 이라고 말할 수 있나!"
싸늘한 노기를 가득 담은 오현의 외침이 대전 안에 울려 퍼졌다.
" 태자전하. 그...그것이 이 폭우는 자연현상이 아닌지라 저희들의 힘으로는
멈출 수 없습니다."
" 그건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명색이 천상계의 수문장인 너희들이 가진
힘으로도 막아낼 수 없다는 것이냐? 단지 한 사람의 힘일 뿐인데도?"
보통사람의 머리 두 개는 더 되어 보이는 키와 단단한 체구를 한 사방(四方)
의 수문장들은 머리를 조아리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떠올렸다.
" 한사람이라고는 해도 그는 용족 중에서도 최강의 힘을 가진 흑룡족입니
다. 게다가 흑룡족 중에서도 근래에 보기 드문 힘을 가진 자라는 소문이 파다
합니다."
" 감히 내 앞에서 변명을 하는 것인가?"
노기가 담긴 오현의 목소리를 듣고 수문장들은 일시에 입을 다물었다.
" 당장에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저자를 멈춰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들의
목을 치겠다."
낮게 울려 퍼진 오현의 말에 수문장들의 얼굴은 하얗게 굳어졌다.
" 지금까지의 일은 눈감아 줄 수도 있으니 당장 폭우를 멈추게 해. 알았
나?"
아직 극소수밖에 모르는 일이지만 자신의 친동생을 직접 죽였을 정도로 태자
오현은 냉혹한 성품을 가진 자였다. 어떤 사실일 지라도 그는 입밖에 낸 말은
반드시 지켰다.
" 꾸물거리지 말고 당장 움직여라!"
" 예. 전하."
수문장들은 입을 맞추어 대답하며 몸을 돌렸다.
" 하. 우스운 우정 놀이인 모양이지. 성휘? 죽어서까지 널 위해 슬퍼해 주
는 친구가 있다는 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군 그래. 어디까지 계속되나 보자
구......."
텅빈 대전 안에서 태사의에 몸을 기댄 채 오현은 싸늘한 비웃음을 떠올리며
내뱉었다.
몇 달 전부터 천상계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업무처리는 오현이 맡아하고
있었다. 이제 서서히 다음 상제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라며 상제가 그에게 일
을 맡긴 것이다.
천상계의 하늘을 뒤덮은 검은 먹구름이 훼이의 힘으로 인한 것이라는 것도.
성휘가 오현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도 상제는 알고 있을 것이 분명했지만
그는 언제나 그랬듯이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그는 그저 상천궁의 깊숙한 곳에
자리한 자신의 방안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철저하게 가리워진 궁의 심처에서
상제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는 그 자신밖에는 모를 것이었다.
* * *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 같은 폭우는 거세게 지면에 떨어지며 빗방울들을 사방
에 뿌려댔다.
반쯤 열린 창 밖으로 거세게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이며 세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숨소리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침묵.
방안에 그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은 단지 그들의 안색이
성휘처럼 새하얗지 않다는 것뿐이었다.
며칠전과 마찬가지로 연화는 성휘가 누워있는 침상 곁에 앉은 채 미동도 보
이지 않고 있었고 붓기가 빠지지 않은 눈을 한 비는 멍한 얼굴로 창밖을 내
다보고 있었다.
그 침묵이 얼마나 이어졌을까. 갑자기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성휘의 감시역으로 배치되었던 천군들이 누군가가 들어서려는 것을 만류하는
소리와 강압적인 몇 마디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바닥이 쿵쿵거
리고 울릴 정도로 커다란 발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방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
고 방안으로 들어선 것은 조금 전 대전 안에서 오현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던
사방의 수문장들이었다.
" 지금 당장 빗줄기를 멈춰 주십시오."
말투는 정중했지만 그들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공격을 할 듯이 위험스럽게 보
였다.
분명히 그들이 들어선 것을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지만 방안에 있는 세 사람
중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서로 비슷한 생김새를 가진 네 명의 수문장 중 길게 수염을 기르고 있는 사
내가 다시 말을 꺼냈다. 관복 겉에 갑옷까지 걸치고 있기 때문인지 몸집이 더
욱 크게 느껴지는 사내였다.
" 이 폭우만 멈춰 주신다면 상천궁의 일부를 파괴하신 것은 눈감아 드리겠
다고 합니다. 큰 일이 될 수도 있는 문제니까 함부로 처신하시지는 않으시리
라 믿습니다."
수문장의 말이 끝나고 난 후에도 훼이는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눈
조차 깜빡이지 않고 있었기에 어찌 보면 인형이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였다.
" 그렇게 거부하시면 저희들도 힘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훼이에게서 아무런 대답이 없자 네명의 수문장은 어깨에 메고 있던 말이라도
한번에 베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칼을 뽑아들었다.
스르릉하는 소리와 함께 검이 검집에서 빠져나오는 소리가 울리자 그때까지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있던 연화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 당장 나가라. 여기는 너희같이 피에 물든 자들이 들어올 곳이 아니다."
그저 나직한 목소리 였지만 연화의 목소리에는 강한 힘이 담겨 있었다.
" 검선님의 명령이라고 하셔도 따를 수 없습니다. 저희는 태자전하의 명령
을 받고 온 것입니다."
대답을 들은 연화는 입술 끝을 살짝 치켜올리며 웃었다.
" 내 앞에서 검을 꺼내드는 자는 누구라도 상관없이 베어 버리겠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 연화는 허리에 끼워두었던 옥소를 빼내들었다. 그리고 그
옥소는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황금색의 용이 휘감겨 있는 손잡이가 달린 투
명한 검신을 가진 검으로 바뀌어 있었다.
연화의 손에 들린 검을 본 수문장들은 몸집에 맞지 않게 흠칫하고 몸을 떨었
다.
그들이 막 공격을 해야할지 어떨지 망설이고 있던 사이.
[ 개문(開門) 풍(風) 수(水) 운(雲) - 폭풍을 부르는 주문 - ]
훼이의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그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폭우가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거세어 졌다.
열려진 창문은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이 삐걱거리며 흔들렸고 창밖으로 보이
는 정원의 나무들은 금세 뿌리가 뽑혀 날아갈 것처럼 거세게 흔들렸다. 그리
고 실제로 작은 나무들은 뿌리가 뽑힌 채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 광경을 목도한 수문장들은 손에 든 검을 휘두르며 훼이를 향해 몸을 움직
였다. 몸집만 보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재빠른 움직임을 보이며 수
문장들이 막 훼이에게 검을 휘두르려던 찰나 챙하는 가벼운 검성(劍聲)이 울
리며 연화가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 내 입에서 같은 말이 나오게 하지 마라."
반대편이 비춰질 정도로 투명한 연화의 검신이 푸른빛으로 물들어 간다고 느
꼈을 때 그녀의 검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유연한 움직임을 보이며 수문장들
의 목을 향해 움직여갔다.
[ 패사령진(覇邪靈陣) 개(開) - 최상급 방어주문 - ]
그리고 비가 방어주문을 외치며 연화의 옆으로 뛰어들었다. 언젠가 훼이에게
서 받았던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검을 손에 든 채.
수문장들이 휘두르는 대검의 영향으로 인해 나무로 지어진 건물의 벽이 조금
씩 파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비가 외친 방어주문 덕택에 잠든 것처럼 조용히
누워있는 성휘의 주위는 흔들림 하나 없을 정도로 고요했다.
검과 검이 마주치는 날카로운 금속음과 윙윙거리며 울리는 바람소리. 그리고
밖에서 들려오는 찢어질 듯이 거센 바람소리와 무언가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
가 서로 섞여서 묘한 흥분을 자아냈다.
그리고 어느새 방안으로 들어선 천군 몇 명도 싸움에 가세해 수문장들을 문
밖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파랗게 선을 그리며 움직이는 연화의 검은 정확하게 수문장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가느다랗게 뿜어져 나오는 붉은 색의 핏줄기가 막 문 밖으로 밀려
나가면서 비춰졌다. 이제 여러 가지 뒤섞인 소리 속에 낮은 침음성이 섞여 들
었다.
그리고 훼이는 그 모든 장면들을 그저 검고 깊은 두 눈에 담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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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오늘은 날씨가 그나마 시원해서 좋았어요...^0^
그래서 그런지 글이 어제보다 잘 써지네요.
요즘은 선배한테 빌린 우타다 히카루 CD를 듣고 있는데 노래 정말 잘 부르더군요.
600만장이나 팔린 이유를 알겠어요. 혼혈이라서 그런지 영어 발음도 정말 좋구
가창력도 좋고 16살 짜리 목소리가 아니에요. 정말 대단해..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0^
번 호 : 688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03일 23:15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44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6장 一.
흑룡의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