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룡의 숲-27화 (27/130)

제 6장  환영(幻影)

三.

" 제 계승식 날짜가 정해졌어요."

화란은 훼이와 비와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말을 꺼냈다.

훼이와 비는 동시에 눈을 돌려 그녀의 얼굴을 응시했다.

" 아....그렇군요.."

" 뭐에요. 그 표정은?

화란은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두 부자를 바라보며 가볍게 웃었다.

" 앞으로 꼭 한달후 군요."

" 계승식이 코 앞인데 이렇게 다른 곳에 머물고 있어도 되는건가요?"

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 물론 안돼지. 금방 돌아가야 해."

" 그러면..."

" 멀리서도 훼이 당신과  비가 일으킨 소란에 대해서  듣고 있었죠. 그리고

둘의 성격상 어떻게 하고 있는지 뻔했기 때문에  이렇게 온거에요. 그리고 하

고 싶은 말도 있었고."

훼이는 덧붙인 그녀의 말에 음식을 먹던 손을 내려놓았다.

" 비와 함께 홍룡궁으로 가지 않을래요. 훼이?"

화란의 말을 듣고 비 역시 굳어진 것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 남자 둘이서 언제까지 이렇게 틀어박혀 살 생각이에요?  용족은 활동적인

걸 가장 큰 장점으로 가지는 종족인데..."

" 말은 고맙지만..."

화란은 싱글 거리는 얼굴로 훼이의 말을 끊었다.

" 아무도 제 결정에 불만을 표할 수 없어요. 그러니 걱정 마세요. 그리고 지

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당신도 비도 절 받아들일 날이 올거라고 믿으니까요.

전 자신있어요."

어떻게 그렇게 자신할 수 있을까.

화란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자기 자신의 생각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인간의 여인과 사랑을 하고 그 여인에게서 아이를  얻은 훼이를. 그리고 긍지

높은 용족으로서 받아들이기 힘든 인간의 피가 섞인 아이를 그녀는 진심으로

자신의 가족으로 만들기를 원하는 것이었다.

비는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진 것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숙였다.

화란과 같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 비. 넌 어떻게 생각하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비에게 화란이 물어왔다.

비는 한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아버지 훼이와

화란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 전.......아버지가 하시는 결정에 따르겠어요. 제가 이곳에 있을 수 있는  것

도 아버지 덕분이니까요."

훼이는 물끄러미 비를 바라보았다. 화연이 그랬듯이....  그리고 비영이 그랬듯

이.

비의 몸속에 흐르는 그 피는 훼이에게 또 다시 배려라는 형태의 사랑을 보여

주고 있었다.

" 지금의 제가 바라는건요. 훼이. 예전의  당신이 가지고 있던 밝음을 보는

거에요. 후계자 시절의 당신은 모든 일에 대해 의욕이 넘칠 정도였잖아요. 전

당신의 그런 모습이 좋았던거에요.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당신이  싫은 건 아

니지만."

화란은 식탁위에 놓여있던 물이  담긴 도자기 잔을  두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덧붙였다.

" 이제 넓은 곳으로 나와요. 아직 당신과 비에게  남은 무수한 시간들을 생

각해봐요. 함께 갈 수 있죠......?"

화란의 저 자신에 찬 당당한 표정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용족중에서도 이단(異端)이라고 할 수 있는 훼이에게 저토록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화란을 보며 훼이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결코 화연 이외의 여인을 마음에 담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자신과 비를 향해

보여준 화란의 배려를 가볍게 대하고 싶지는 않았다.

여인이란 종족을 초월해서 강인함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훼이는 처음으로 깨

달았다.

귀족에서 몰락해버린 인간의 여인 화연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의미있게

받아들이며 살아갔다. 훼이로서는 평생을 가도 깨달을 수 없었을지도 모를 누

군가에 대한 진실한 사랑을 화연은 3년이라는 짧은 시간을 통해. 그리고 그녀

가 남기고 떠난 비를 통해 훼이에게 확인시켜주었다. 외관의 아름다움이 전부

가 아니라는 것을 훼이는 화연과의  짧았던 그렇지만 앞으로도 계속될 3년의

시간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훼이를 밝은 곳으로. 보다 넓은 곳으로 끌어내려는 화란 역시 훼

이에게 어떠한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하지만 결코  자신은 그녀를 받아들

이지는 못할 것이다. 아직도 훼이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화연이 남겼던 편지

의 글귀들이 지워지지 않을 각인처럼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군요..... 화란."

화란의 얼굴에는 환하게 핀 꽃처럼 밝고 아름다운 미소가 떠올랐다.

*            *            *            *

파이론은 집무실 책상에 가득 쌓인 문서들을 검토하느라 분주하게 손과 눈을

놀리고 있었다. 파이론의 옆에 나란히 앉은 챠렌 역시 문서를  정리하고 분류

하느라 부지런히 움직였다.

" 조금 이상하지 않아요?"

보통때처럼 간소한 궁장차림을 하고 자리에 앉아 일을 처리하던 챠렌이 목소

리에 의아함을 담은 채 물었다.

" 뭐가 말이지?"

" 요즘들어 수행을 떠난 어린 일족들의 귀환이  늦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아닌가요?"

" 아....."

챠렌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매일같이  쏟아져 들어오는 무수한

문서들 틈에는 수행을 나간 일족들에 관한 것들도 있었다.  그들이 어디로 수

행을 떠났으며 얼마간 수행을 할 것인지. 그리고 돌아온  후에도 수행의 성과

를 기록하여 왕에게 보내도록 되어 있었다.

" 이번에 하계로 떠난 일족들은 몇 명이었지?"

" 성년식 이전의 일족이 셋. 성년을 갓  치른 일족이 하나. 그리고 임무 때

문에 내려간 일족이 다섯이에요.  그중에 예정보다 귀환이 늦어지고  있는 건

어린 일족들의 경우이고."

" 흐음... 의심이 가는군. 지난번의 회합때 나왔던 말도 있고 해서."

챠렌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 그렇죠? 저도 의심이  가요. 끈질긴 그들이 그렇게  흐지부지하게 물러날

리가 없어요."

" 맞는 말이야. 아무래도 조사를 위해 몇 명정도를 보내야겠군."

" 새로 몇 명을 보내는 것  보다는 지난번에 임무 때문에 내려간  이들에게

연락을 취하는 것이 좋겠군요."

챠렌의 말에 동감하며 파이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럼 말이 나온김에 당장 하지."

[ 천개(天開) 경(鏡) - 이공간(異空間) 연결 주문 - ]

가볍게 울려퍼진 파이론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 앞의 허

공에 일그러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곧 백색의  기류에 휩싸여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팔 하나 정도의  높이를 가진 투명한 거울로 변했

다. 거울 가장자리에는 은은한 안개와 같은 희뿌연 기운이 서려 있었다.

- 전하. 인사올립니다.

투명하던 거울에 어느새 하계의 풍경과 누군가의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키가

크고 마른 체구를 가진 젊어보이는 남자였다. 그는 파오가  아닌 경장 차림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문인지 특별히 인간들과 다르게 보이지 않았다.

" 원류(洹流) 쪽의 일은 대충 끝마쳤나?"

- 네. 오늘 안으로 끝날 것 같습니다.

" 그렇다면 잘 됐군. 특별한  임무를 맡기려고 하는데 그쪽의  일이 끝나는

대로 다른 일족과 협력해서 조사해주길 바라네."

- 시급을 요하는 일입니까?

" 명계쪽의 동향을 감시하는 일이네. 그리고 어린  일족들의 귀환이 늦어지

고 있으니 혹시라도 명계에서 손을 대지는 않았나 살펴봐주게."

- 네. 전하. 그리고 제가  있는 사막에서 벗어난 지역에  다른 일족 두명이

일을 하고 있으니 함께 조사하도록 하겠습니다.

" 그렇게 하도록 하게."

거울에 비친 경장 차림의 남자는 정중하게 파이론에게 인사를 건넸다.

[ 해제(解制) ]

파이론의 목소리가 울리자 눈 앞에 떠올라 있던 거울은 흩어지듯이 사라졌다.

" 그러면 당분간 지켜보도록 하지."

" 그래요. 이제 좀 쉴까요. 아까부터 계속 일만했으니까."

파이론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장을 내려놓았다.

" 그럼, 제가 차를 내올께요."

챠렌은 가볍게 손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그리고 문을 닫기 전

에 파이론에게 미소를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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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흑룡의 숲의 시간 전개에 관해서 너무 갑작스럽다는 분들이 많아서요.

설명을 드리려 합니다. (사실은 저도 머리아파요..^^)

같은 글 내에서 시간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경우에는 *표 4개로 구분을

했구요.^^ 같은 시간 배경내에서 장면이 바뀌는 경우에는 *표 3개입니다.

좀 우습게 구분을 했지만요. 제가 생각하는 전개  방식이 회상이 아니라 그게

액자식 구성인가요? 암튼 그런식으로 두  개의 줄기가 동시에 진행되는 방식

으로 쓰려고 하는 거랍니다.  현실의 이야기와 과거의 이야기가  섞여 있지만

두 이야기. 현실과 과거역시 마구잡이의 시간전개는 아닙니다. 현실은 현실대

로 과거는 과거대로 순차적으로 진행되는데 그  두 개의 시간대가 섞여 있어

서 무지하게 헷갈리는 겁니다. 저도 잘 알고 있는데 그걸 이해하기 쉽게 쓰지

못하는 건 제 실력이 딸리기 때문이지요. ^^ 죄송합니다.

그리고 설정을 가르쳐 달라는 분도 계셔서 조금씩 여기에다 붙일께요.

< 5대 용족 설정 - 힘 >

용족의 설정은 음양오행에 근거해서 설정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약간 변형된

음양 5행이지요.

木  봄    청룡  동쪽  물

火  여름  홍룡  남쪽  불

土  土用  황룡  중앙  흙(대지와 관련된 모든 것)

金  가을  백룡  서쪽  바람

水  겨울  흑룡  북쪽  날씨 조정(물의 힘을  쓰는 것은 흑룡의 속성에 雨가

관련되어 있기 때문)

그리구요. 제 소설의 용족들은 직접 용으로 변신하지는 않습니다. ^^ 그러니까

약간 색다르게 느끼셨을 거에요. 힘의 형체가 용의  형상을 띄고 있을 뿐이거

든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번 호 : 734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07일 02:49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28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7장 一.

흑룡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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