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룡의 숲-33화 (33/130)

제 7장  역린(逆鱗)

六.

비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고 있었다.

생소한 이질감에 호기심을 느껴  들어선 이계(異界)의 땅은 무척이나  신비한

것들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곳곳에 돋아난 풀들과 나무들. 그리고 가끔가다 눈에 띄는  동물들은 보통 천

계나 하계에서 볼 수 있는 동물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끼릿.

공기를 날카로운 칼로 베는 듯한 높고 가느다란 울림에 비는 한쪽 귀를 손으

로 막으며 고개를 돌렸다.

분명 그것은 학과 같은 생김새를 하고 있었지만 어딘가가 달랐다. 온 몸의 깃

이 흰색이 아닌 푸른빛을 띄고 있는데다가 부리는 흰색이었다. 그리고 무엇보

다 그 동물의 다리는 한 개였다. 어떻게 한 개의 다리로  몸을 지탱하고 움직

이는지 비는 무척이나 궁금했다. 막  그 생각을 떠올린 순간 그  동물은 비의

궁금증을 풀어 주기라도 하듯 흔들림 없이 재빠르게 한 발로 움직였다. 그 새

가 목표로 삼은 것은 근처에 있는 나뭇가지를 기어  올라가던 작은 벌레였다.

나뭇 가지와 같은 빛깔을 띄고 있어서 눈에 띄지도 않았지만 그 새는 하늘에

서 지상에 있는 먹이를 노리는 매의  움직임처럼 날렵하게 그 벌레를 부리로

낚아챘다.

" 필방(畢方)."

" .........?"

비는 갑작스레 들려온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흠칫하며 놀랐다. 분명히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주위에는 그 이상한  생김새의 푸른새 밖에 없었건만 비에게

말을 건네온 그 목소리는 마치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

웠다.

" 저 새의 이름은 필방이지. 화재를 불러오는 재난의 새."

고개를 돌린 비의 눈에 들어온 것은 침울하게 가라앉은 표정을 떠올린 비 또

래의 청년이었다.

아랫쪽을 향해 쳐져 있는  눈꼬리와 금빛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밝은 갈색의

눈이 인상적이었다. 몸에 걸치고 있는 의복은 비로서는 처음보는 형태의 것이

었는데 상의와 하의의 폭이 무척이나 넓은 데다가 여밈이 많은 옷이었다.

" .........누구지.....?"

" 그것보다 여긴 어떻게 들어왔지? 이곳은 생명을 가진 자가 올 곳이 아닌

데."

비는 자신의 앞에 선 침울한 인상의 청년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생명을 가진 자가 올 곳이 아니라니. 그렇다면 지금 말을 거는  그 자신은 죽

어있기라도 하다는 말인가?

" 몸에서 풍기는  기운으로 보아하니 용족인  모양이군......아니야, 용족과는

조금 다른데?"

어깨까지 닿는 검은 머리카락을 자연스럽게  늘어뜨린 청년은 주의깊게 비를

바라보더니 그렇게 말했다.

비는 청년이 자신의 정체를 한번에 꿰뚫어  보는 것에 놀라며 조심스럽게 물

었다.

" 여긴......어디지?"

청년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며 비를 응시했다. 그리고  천천히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

" 버림받은 자들의 땅. 명계(冥界). 그것이 바로 이 땅의 이름이지........"

비는 놀란 눈으로 청년을 쳐다본 후 다시 자신이 서 있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어디를 둘러보아도 비에게 익숙한 풍경은 없었다.

*            *            *            *

" 저쪽이다."

챠렌의 목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두명의 젊은 백룡족은  재빠른 동작으로 풀

숲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잠시후. 침음성을 삼키며 한 남자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 찾았습니다. 비 전하......하오나 이미 사체입니다."

차분한 얼굴로 풀숲을 응시하고  있던 챠렌의 눈에  수풀을 헤치며 걸어나온

일족에게 들려있는 어린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한눈에도 이미 목숨이 끊어졌

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푸르게 굳어진 피부와 축 늘어진 몸. 소년의 사

체를 대한 챠렌의 눈은 순간 싸늘하고 예리한 빛을 발했다.

" 누구인지 알 수 있겠느냐?"

챠렌의 질문에 소년의 사체를 안고 있던 일족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 뒤

를 따라 나온 다른 일족이 말을 꺼냈다.

" 제가 알고 있습니다... 분명 류라는 이름이었습니다."

" 어떤 아이지?"

" 평소에 무척이나 수행을 즐기는  아이로 아직 성년은 맞이하지 못했지만

무척이나 경험이 풍부한 아이였습니다."

머리를 짧게 자른 건장한 체격의 청년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잠시 소년의 얼

굴을 내려다 보았다.

" 기억하기로는 좀 젊은 부부의 독자였던 것 같습니다."

챠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 죽음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아무래도 몸을 제압당한 상태에서 생명력 자체를 빼앗긴 것 같습니다. 명

계에서 자주 사용하는 수법이지요."

그의 말을 듣지 않고서도 챠렌은 소년이 어떻게  목숨을 잃었는 지 알 수 있

었지만 그녀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소년의 사체를 응시

했다.

" 그대는 류를 데리고 천계로 돌아가서 부모에게 알려주도록 하게."

" 네. 비전하."

소년의 사체를 안고 있던 일족은 깍듯이  고개를 숙여 챠렌에게 인사를 하고

나서 공간을 여는 주문을 외쳤다.

챠렌이 여는 것에 비해 상당한 시간이 지나서야 공간의 문이 열렸다. 젊은 일

족의 청년은 다시 한번 챠렌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이고 나서 공간 안으로

들어섰다.

" 그대는 나와 함께 이 주위를 더 살펴보도록 하지."

막 공간이 닫히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챠렌은 남아있는 한 명의 일족에게 말

을 건넸다.

" 비전하. 류라는 소년이 쓰러져 있던 곳 주위의  풀들은 아무런 손상을 입

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으로 보아 소년이 죽음을 맞이한  곳은 이곳이 아닌

듯 합니다."

" 그건 나도 알고 있어."

청년이 의문이 담긴 시선을 던지자 챠렌은 손을 들어 방금 전 소년의 사체를

발견했던 풀숲을 가리켰다.

" 분명 어떤 흔적이 남아있을거야. 명계의 자들이 가진 특별한 기운은 그리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니까."

그렇게 말을 하고나서 챠렌은 걸음을 옮겼다.

" 죽은자들이 산 자의 땅에 들어서면  반드시 그 주위엔 죽음의 기운이 남

기 마련이지."

활동에 편한 흰색의 치파오를 걸친 챠렌은 서슴없이 풀 숲에 발을 들여 놓았

다.

- 다행이군. 역시 챠렌 답다고 해야 하나?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이공간(異空間) 연결 주문을 통해 챠렌은 파이론에게

자신이 오늘 찾아낸 것에 대해 이야기를 전했다.

" 작은 증거를 찾기는 했지만 조금 힘들지 몰라요.  명계에서 온 자가 남긴

것은 아주 미세한 것에 불과하니까. 분명 다른 무언가가 있어요...."

- 당신의 직감은 언제나 틀리는 적이 없었지.

" 죽은 아이의 부모에게는 위로의 말을 전하도록 하세요. 어린 일족의 죽음

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것은 분명 왕의 책임이에요."

- 아아. 잘 알고있어. 이럴 때 만큼은 정말 보좌관답다니까.

고개를 내저으며 말하는 파이론의 모습을 보며 챠렌은 빙긋이 미소지었다.

" 돌아가는게 조금 늦어질지도 모르겠군요. 발견된 것은  한명 뿐이지만 또

다른 희생자가 있을지 몰라요. 백룡족이 아니더라도 다른 용족들도 하계에 많

이 내려와 있을테니."

거울에 비친 파이론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 다른 용왕들에게도 소식을 알려야겠군.

" 그렇게 하도록 하세요. 그럼..."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건네며 챠렌이  막 해제의 주문을 내뱉으려 하

자 파이론은 손을 내저어 잠시 그녀의 움직임을 만류했다.

- 그대의 빠른 귀환을 위해 다른 용족들의 도움을 구하도록 하지.

" 제 능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겠지요?"

- 그럴 리가. 언제나 말하는 것이지만 그대는 보좌관이기 이전에 나의 비니

까.

부드럽게 미소짓는 파이론의 모습은 해제의  주문이 외쳐짐과 동시에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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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새벽까지 안 썼습니다. 하지만 12시는 넘었네요.

아직까지 동아리 밤샘작업은 시작되지 않았지만 이제 곧이네요.  하루종일 작

업하는 곳에 있다보니 글 쓸 시간도 없고...아...비축분. 비축분이 필요해..

이제 뭔가 이야기가 시작되려는 듯한 조짐이 보이는 것 같지요? ^^

흑룡의 숲에 등장하는 다른 계(界)들도  가벼운 위치는 아닙니다. 지금까지는

명계나 천상계 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다음에는 다른 곳들도 나온답니다. 이게

의외로 스케일이 좀 커서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를 맞이하시길 빌어요.

번 호 : 849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13일 00:38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14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7장 七.

흑룡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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