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룡의 숲-34화 (34/130)

제 7장  역린(逆鱗)

七.

" 그쪽은 어떻지?"

조급한 화란의 음성에 두명의 홍룡족 수행원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 어디에도 흔적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미세한  기운조차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미 예상한 대답이긴 했지만 화란은 자신도 모르게 온몸에서 힘이 빠져버려

바닥에 주저않고 싶은 듯한 기분이었다.

훼이는 공간을 열고 비를 찾으러 떠난 후 아직 돌아오지 않은 채였다. 그렇게

까지 심각하게 굳어진 훼이의 얼굴은 처음 대하는 것이었기에 화란은 조금전

의 훼이의 모습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비는 말없이 사라질 아이가 아닌데......분명 무슨일이 생긴 것이 틀림없어...

하지만..... 강한 힘을 가졌지만 비의 몸에 흐르는 인간의 피는 언제 어디서 어

떤 일이 생길지 모르게 만들고 있으니.....

설마......

화란은 방금 머릿속에 떠오른 불길한 생각을 지우듯이 세차게 고개를 내저었

다.

" 전하. 다른 곳을 더 둘러볼까요?"

" 아니. 여기서 기다리도록. 지금까지 찾지  못했다는 건 우리 힘으로는 찾

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니까. 여기서 훼이를 기다리도록 하지."

그렇게 말하고 난후 화란은 턱에 한 손을 가져다 댄 채 생각에 잠겼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두명의 홍룡족  청년들 역시 자세를 풀고 바닥

에 주저 앉았다.

*            *            *

훼이는 자신도 모르게 떨려오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주의깊게 주위를 둘러보

았다. 아직까지 어디에서도 비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훼이는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있었다.

하지만 가슴 한구석에서 치밀어 오르는 불안은  그대로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훼이는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한 작은 기운 하나라도 느껴지면 재빨

리 공간을 열고 그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번번히 실패할 때 마다 훼이의 얼

굴은 점점 더 굳어져 갔다.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분명 며칠전에 지나치게 힘을  썼기 때문에 아직까

지 체력이 회복되지 않았을 것이 틀림없었다. 만약 그  상태로 위험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면 비는 별다른 힘을 쓸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본연의 마력만으로도 평생 손끝하나 다칠 일  없는 용족인 훼이가 자신의 아

들 비에게는 친구를 통해 검을  가르친 것도 바로 그때문 이었다.  항상 마음

한구석에 앙금처럼 남아있는 자신의 아들에 대한 걱정. 반쪽짜리 용이라는 비

난 속에 비를 내던지지 않기 위해 훼이는 후계자의 위까지도 버린 것이다.

비가 자라는 동안 하계의  모든 것들은 변해버리고  비가 훼이의 아들이라는

증거는 자신 밖에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화연이 살아 있었다는 증거 역시 훼

이의 가슴 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었다. 아직 훼이의 방 한쪽에 귀중하게 보관

되어 있는 화연이 남긴 편지와 반지 이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훼이가 화연을 떠올릴 수 있는 유일한 매개가 되어 주는 것은 자신과 떠나간

그녀가 남긴 유일한 혈육. 비 뿐이었다.

혹자는 지나가 버린 추억 속에서 사는 것 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고 말하기

도 한다. 하지만 가장 아름다웠고 간직하고 싶은 기억을  강물에 흘려 보내듯

이 잊는다는 것 또한 어리석은 일인지 모른다.

망각이 주는 것은 안식이지만 안식이란 또  다른 슬픔의 이름이기도 한 것이

다.

훼이의 온몸의 감각은 끊임없이 자신과 같은  기운을 가진 비를 찾는데 집중

되어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넓은  조산 전체를 다 뒤지고 나서 조

산이 자리잡고 있는 한 지역 전체를 다 돌아다녔지만 어디에도 비는 없었다.

훼이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 앉았다.

그리고 바로 그때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훼이의 눈 앞에 작은 공간의

일그러짐이 보였다.

누군가가 들어설 수 있을 정도의 넓이가 아닌  팔 하나가 들어갈 수 있을 정

도의 아주 작은 공간. 그리고 그 일그러진 공간을 통해서 느껴지는 것은 훼이

도 익히 알고 있는 감각이었다.

그것은 바로 죽은자들을 부르는 곳.

영혼의 안식 없이 영겁의 세월을 살아가는  자들이 가지는 깊고도 깊게 가라

앉은 빨려들어갈 듯한 어둠의  향기. 음울한 회색빛으로 가라  앉은 버림받은

영혼들의 땅 명계의 기운이었다.

소리없이 그 일그러진 공간을 주시하고 있던 훼이는 무엇에 이끌리기라도 한

것처럼 몸을 일으켜 공간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희미하긴 하지만 그곳에서 훼이는 익숙한 비의 기운을 느꼈다.

망설일 필요 같은 건 없었다. 훼이는 곧바로 일그러진  공간을 통해 보여지는

명계를 향해 다시 한번 공간을 여는 술(術)을 행했다. 그리고 나서 크게 열려

진 공간 사이로 훼이는 발을 들여 놓았다.

*            *            *

" 그렇게까지 놀랄 필요는 없다고 보는데... 못 볼 것  이라도 본 듯한 표정

이군."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는 눈 앞의 청년을 보면서 비는 대체 그의 정체가 무엇

인지 궁금해졌다.

주위에서 들은 바로는 사후의 심판 이후  윤회조차 주어지지 않을 정도로 악

업을 쌓은 자들이 세상이 끝날때까지 영원토록  그 삶을 이어가는 곳이 바로

명계라고 했다. 언제까지고 끝나지 않을 영겁의 시간속에서 살아가는 것 만큼

큰 형벌은 없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 대체........ 누구지.......?"

비는 조심스럽게 청년에게 물었다. 그러자 무심한 시선으로 비에게 시선을 돌

리며 청년은 손을 내밀었다.

" 이 손이 보이나? 시간의 그림자에  감싸인 이 손이..... 알고 있을텐데. 명

계에는 어떤 존재가 살고 있는지."

" 그럼... 죽은....자....?"

비는 마치 금기시된 말을 꺼내는 것 처럼 기분이 이상해졌다. 분명 지금도 자

신의 눈 앞에 형체를 가지고 서 있는  청년이 죽은 자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

다.

" 나도 한때는 용족이었지......."

청년이 내뱉은 말에 놀라 비는 눈을 크게 떴다.

" 왜? 놀랍나... 어떤 죄를 지었길래 이곳에서 영겁의 형벌을 받고 있는지?"

청년의 어조에는 경멸이 담겨 있었다.

" 분명 이곳에서도 죽음은 있다. 하지만... 그 죽음은 영원히 반복되는 죽음

이지. 육신의 죽음을 몇번이고 반복하면서 또 다른 내일을 맞이하는 거다. 지

금 이 몸도 몇번째 다시 태어난 몸인지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비는 청년의 눈에 떠오른 싸늘함을 대하고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마치 보이

지 않는 주박에라도 걸린 것처럼 비는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 그대가 가진 것은 용족과  인간의 피. 그리고 내가 가진  것 역시 그대와

같은 것이지........ 우습지 않나? 내 부모  이외에 그런 바보같은 짓을 하는 자

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야."

" 바보같은 짓.............?"

비는 자신의 속에 그런 격렬한 감정이 숨어있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방금전에 청년이 내뱉은 것은 그의 정체를  말해줌과 동시에 비의 존재 자체

를 부정하는 말이기도 했다.

아직 그리 오랜 시간을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비는 한번도 자신의 존

재 가치를 의심해 본 적은 없었다.

" 당연히 우스운 일이지. 인간과 용족의 사이에서 무엇이 남기라도 할 거라

고 믿었단 말인가? 아니지. 남는 게 있다면 단 하나 뿐이야. 하계에도 천계에

도 속할 수 없는 괴리(乖離). 그대는 그렇지 않은가?"

비는 주먹을 세게 쥐었다. 손톱이 살을 찌르는 감촉이 느껴질 정도로 세게.

" 적어도 내게는 날 인정해주는 이들이 있어. 당신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

군."

청년의 입가에는 비웃음이 떠올랐다.

" 과연 그럴까..... 아직 새파랗게 젊은 애송이가 무엇을 알겠나. 처음엔 나도

그렇게 여겼었지. 하지만 지금의 나를 봐.  내게 흐르고 있던 용족의 피가 준

것은 지겹도록 이어지는 삶의 반복 뿐이야."

비는 조금씩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청년의 얼굴에 떠오른  싸늘함과 우울함의

정체를 이제서야 깨달았기에. 그것은 바로 자신의 눈 앞의  것 이외에는 보지

도 되돌아 보지도 않는 광기였다.

비는 천천히 몸을 돌려세워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말을 해봤자 통하지

않을 상대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몇걸음 걸어나가던 비의 귀에 신음성과도 같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오

래된 문이 삐걱거리는 듯이 음산한 웃음소리가.

" 잊은 모양인데 이 곳은  명계다. 살아있는 자가 들어오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건 아니겠지......"

비는 뒤돌아 보고 싶은 것을 참으며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

오옷.... 분위기 죽인다!! ^^;;;

저는 제 소설 설정이 이해가 잘 안갑니다.  바보라서... 제가 대체 먼 말을 하

고 싶은 걸까요...^^

7장은 좀 긴데요. 10편이 넘어갈 것은  확실합니다. 제가 한편 쓰는데 걸리는

시간이 거의 한시간 30분인 것 같군요. 그치만 막히면 3시까지도 씁니다.

음... 명계... 복잡한 곳이구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상쾌하고 즐거운 하루를...

번 호 : 869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14일 00:34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210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7장 八.

흑룡의 숲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