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장 역린(逆鱗)
十.
" 희생자는?"
" 한명은 청룡족. 그리고 한명은 홍룡족입니다."
챠렌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창백하게 굳어진 소년과 소녀의 사체를 응시
했다.
벌써 몇번째인지 몰랐다. 오늘로 하계로 수행을 내려온 대부분의 어린 용족들
이 생명을 잃었다. 단서를 찾으려 했지만 사체가 있는 곳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분명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이 명계에서 온 교룡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림자 조차 볼 수가 없으니 너무나 답답했다.
대체 무슨 목적으로 어린 용족들의 생명을 빼앗는 것일까.
물론 들은 적은 있었다. 인간의 피를 이은 교룡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용족의
생명력을 얻는 것이 가장 좋다고. 그렇게 한다면 인간의 피가 섞였기에 가지
는 체력의 한계도, 삶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몰라서 불안해 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증명된 것은 아니었다.
이제 더 이상의 소득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챠렌은 잠시 지금 천계로
돌아가야 할 것인지 망설였다.
" 아직까지 하계에 남아있는 어린 용족들이 있나?"
챠렌의 질문에 지금까지 챠렌을 도와온 청년이 정중하게 입을 열었다.
" 없습니다. 오늘의 희생자가 마지막으로 하계에 남아있던 어린 용족이었습
니다."
" 그렇다면 다행이군."
자신이 직접 하계에 내려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도 용족들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사실은 적이 생각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결국은 천계로 되돌아가 다른 이의 도움을 구해야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인지도 모른다. 아니, 그것이 최선책일 것이다. 아무리 자신이 강한 힘을 가
진 백룡족 이라고 해도 명계만큼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상대해 보지 못했다.
명계라는 곳은 천상계의 상제라 해도 손댈 수 없는 불가침의 영역이었다.
" 결국 그의 힘을 빌려야 하나......"
챠렌은 다른이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중얼거렸다.
" 천계로 돌아간다. 사체는 청룡족과 홍룡족에게 전하도록."
" 네. 비전하."
챠렌의 앞에 서 있던 두명의 백룡족 청년들은 두 소년소녀의 사체를 수습하
여 흰 천으로 덮어 씌운 후 안아 들었다.
[ 역궁(逆窮) 개문(開門) ]
낭랑하게 울려퍼진 챠렌의 목소리와 함께 공간이 열렸다.
아무런 소득도 없이 되돌아 가야 하는 챠렌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챠렌은 공간 안으로 들어서기 전 다시 한번 사체를 발견했던 작은 나무 숲으
로 시선을 던졌다.
" .........?"
순간 챠렌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지금까지 나무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던
그곳에 희미하게 푸른빛에 감싸인 누군가의 그림자가 보인 것이다.
" 비전하?"
챠렌이 공간 안으로 들어서지 않고있자 두명의 백룡족 청년들은 의아함을 담
은 목소리로 챠렌을 불렀다.
" 그대들은 먼저 돌아가게."
" 갑자기 무슨...."
" 둘러봐야 할 것이 생각났어. 그대들은 어서 돌아가서 사체를 부모에게 전
해주고 백룡왕께 연락을 취하도록 하게."
그렇게 말을 전하는 순간에도 챠렌은 숲속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는 푸른 그
림자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 비전하. 저희들도 돕겠습니다."
그제서야 챠렌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챈 두
명의 백룡족 청년은 들고 있던 사체를 바닥에 내려 놓으며 말을 꺼냈다. 하지
만 챠렌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 그대들은 돌아가게. 그리고 어서 연락을 취하도록 해. 그게 날 돕는 길이
니. 알겠나?"
강경한 챠렌의 어조에 두 청년은 다시 사체를 안아 들고 공간안으로 들어섰
다.
" 그러면 비전하. 속히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챠렌은 순식간에 닫혀버린 공간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푸른 그림자가 자
리하고 있는 숲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
불안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너무나 불안했다.
화란은 두손을 꽉 쥔채 훼이가 떠나간 그 자리를 응시했다. 벌써 두 시진이
흘러갔건만 사라져버린 비도. 그리고 비를 찾기 위해 떠난 훼이도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불안한 것일까.
둘에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 것인지. 아까부터 안절부절 하고 있는 자신을
타일러 보려고 했지만 그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마음을 가라 앉히려고
하면 할수록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화란과 함께 자리를 지고 있던 두명의 홍룡족 청년 역시 화란이 느끼고 있는
이유 모를 불안감에 전염 된 듯 침중하게 가라앉은 표정으로 저물어 가는 숲
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을 보냈을까. 하늘을 온통 별빛이 수놓을 정도로 밤이 깊
어졌다. 하지만 화란과 두 홍룡족 청년은 미동도 없이 한 곳만을 바라보고 있
었다.
무슨 이유때문 인지는 몰랐지만 그들의 시선은 자연히 산 정상으로 통하는
길로 향해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의 움
직임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 화란은 그 길을 통해 훼이가 모습을 드러내기
만을 기다렸다.
" 물을 좀 준비해 주겠습니까...."
거짓말처럼 들려온 훼이의 목소리에 화란은 놀라는 한편 안도했다.
오랜 긴장속에 서 있어서 인지 화란은 훼이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더 작고 낮
게 울려 퍼졌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 비는... 비는 무사한가요?"
한명의 홍룡족 청년이 물을 가지러 샘 쪽으로 향하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화
란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화란의 눈에 비친 훼이의 품에 비가 안겨 있었기에.
검은 밤 공기에 녹아 들 듯이 검은색의 파오를 걸치고 있는 훼이와 비의 모
습은 화란의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이윽고 훼이의 모습이 화란의 눈 앞으로 가까이 다가서고 나서야 화란은 훼
이의 표정이 어딘지 모르게 무겁다는 것을 알았다.
" 무슨 일이........ 생겼나요?"
공터에 다다른 훼이는 아무말 없이 품에 안겨있던 비를 바닥에 눕혔다.
한눈에 보기에도 비의 모습은 정상이 아니었다. 화란은 깜짝 놀라 비의 얼굴
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비의 숨소리는 무척이나 미약했다. 그리고 얼굴색
또한 창백했다.
"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 명계에 다녀왔습니다....."
" 명계요? 명계에 다녀오다니..... 대체 무슨 말이세요?"
하지만 훼이는 아무 말 없이 홍룡족 청년이 떠온 물을 받아 비의 입가에 흘
려 넣었다. 바싹 마른 비의 입술에 물이 닿자 일순 비의 얼굴에 다시 생기가
돌아온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 뿐이었다. 비의 얼굴은 다시 창백해져 있었다.
" 죄송하지만 저는 먼저 천계로 돌아가야 겠습니다."
화란은 평상시처럼 담담한 표정을 떠올리고 있는 훼이를 바라보면서 그가 지
금 느끼고 있을 슬픔을 읽었다.
얼굴 표정은 담담할지 몰라도 훼이의 목소리에는 엷은 침음성이 배어 있었다.
" 그렇게 하세요...... 도움이 되어 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가볍게 화란에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건네고 나서 훼이는 소리없이 공간을
열었다.
어둠과 같은 색을 가진 훼이의 파오가 공간 속으로 사라져 가는 것을 화란은
조용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느끼고 있었던 불안은 이것이었나......
훼이는 화란에게 아무말도 해주지 않았지만 화란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화란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훼이에게 소중한 이를 잃는 슬픔이 찾아오지
않도록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는 것 뿐이었다.
훼이의 친구였던 성휘가 죽음을 맞이했을 때 훼이가 보였던 반응을 화란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제발..........
화란은 또 다시 두손을 꼭 맞잡은 채 훼이가 사라져간 빈 공간을 바라보았다.
=========================================================================
흑흑....감격했어요. 제가 하루에 두편이나 쓰다니.
역시....결심하면 할 수 있구나... 이번 제 7장의 이야기는 아직 몇편 더 남아
있습니다. 명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았지만 차차 나온답니다. 자, 뒷 얘기는 낼 모레 올릴께요.
랄랄라...이제 낼 밤새로 가야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운 여름날씨에 지지 마세요. ^-^
번 호 : 942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17일 01:27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186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7장 十一.
흑룡의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