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룡의 숲-40화 (40/130)

제 7장  역린(逆鱗)

十三.

언제나와 같이 밤은 노을이 지기전까지의 밝음과 따스함을 자신의 검은 몸으

로 뒤덮어 휴식으로 잠겨들게 만들었다.

모든 사물들이 한낯의 밝은 빛깔을 잃은  채 어슴프레하게 자신의 색을 드러

내고 있는 깊은 밤. 훼이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그저 한없이 가라앉을 것

만 같은 그의 검은 눈동자에는 주위의 사물들이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끈질길 정도로 훼이를 따라다니며 식사를 하라고 권하던 시비들도 모두 잠들

고 별궁을 지키는 병사 역시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밤의 장막아

래에서 깊이 잠들어 있었다.

가끔씩 불어오는 가벼운 바람소리 이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없는 고요한 정원.

노을이 지기 시작할 때부터 그곳에 앉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던 훼

이는 깊은 밤이 된 지금까지도 계속 한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굳어져 있는 듯한 표정을 제외하면 훼이는 이제까지와 아무것

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슬픔조차 잊은 듯이.

주위를 감싼 적막 속에서 훼이는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지금 자신의 머릿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복잡한 생각을 과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몇날 며칠을

생각해도 도무지 결론이 나오질 않았다.

입가에 맴돌고 있는 명계라는 단어.......

용족인 자신으로서도 섣불리 건드릴 수 없는 불가침의 영역.

천상계에서의 소란은 어느 정도의 처벌을 각오하고 한 것이었지만 명계는 다

르다. 명계에 사는 자들이 어떤 안하무인 격인 행동을 한다고 해도 그것을 막

을 명분은 누구에게도 없었다.

철저하게 서로간에 거리를 두고 있는 곳이니  만큼 명계를 상대할 때 만큼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훼이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는 분노가 용솟음 치려 하고 있었다.

명계가 아무리 손댈 수 없는 불가침의 영역 이라고 하여도. 자신이 명계에 손

을 댐으로 해서 훗날 무슨일이 생긴다고 해도 훼이의 곁에서 비를 데려간 것

은 명계에 사는 자였다.

명계에서 훼이가 비의 기운을 느끼고 그곳으로  달려갔을 때 훼이가 본 것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쓰러져 있던 비와  날카롭고 소름끼치는 느낌을

가진 여인. 그리고 기분나쁜 검은 그림자로 온 몸을 감싸고 있는 성별조차 모

호한 두명의 모습이었다.

" 누구냐! 누가 내 아들에게 손을 댔지?"

분노에 찬 훼이의 음성을 듣자 여인은  그저 차가운 미소를 떠올리며 모습을

감췄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뒤를 쫓고 싶었지만 비의  상태는 너무나도 위

험해 보였다.

자신의 품에 안긴 비가 그토록이나 작아 보였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리고 확실하게 아버지로서의 책임감을 느낀 것도 그때였다.  지금까지의 막연

한 아버지라는 말과는 다른 자신의 피가 흐르는 혈육을 향한 뜨거운 애정.

맹목적이라고 해도 좋았다. 혈육에 대한 정은 누구에게나 가장  진한 것이 분

명했으므로.

" 비야........ 난 대체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이제는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아들에게  훼이는 자신의 귀에도 거의 들리

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마음을 뒤덮고 있는 막막함. 어디서부터 일이 틀어진 것일까.

비가 흑룡왕인 할아버지에게 인정 받지 못해서?

아니면 자신이 후계자의 위를 내던졌기에?

화란의 호의를 받아들인 것이 잘못인가?

그렇지 않으면 하계로 수행을 떠난 자체가, 비를 홀로 내버려둔 것 자체가 잘

못인가.

그 어떤 질문에도 확실한 대답은 없다.

그저 더욱더 깊이 얽혀가는 마음속의 의문들만이 꼬리를 물고 피어오를 뿐.

터질 듯이 답답한 마음을 풀 수 있는 길은 처음부터 단 하나였다.

하지만 그것을 결정하는데 훼이는 많은 시간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러나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뒷 일은 생각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지금 이 순간 마음을  얽어매고 있는 깊

은 올가미를 털어낼 수 있다면.

훼이는 눈빛을 굳히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신에게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 그렇다면 마음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자.

그리고 자신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최선이라고 훼이는 주문처럼 그 말을 되뇌

었다.

*            *            *

두 번째로 내딛는 명계의 땅은 처음보다 더 생소한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무미건조한 죽음의 향기가 그런 생소함을 자아내는지도 몰랐다.

명계에 사는 자들은 모두 영원한 반복이라는 벌을 받는 자들이었기에.

끝없이 이어질 듯한 숲속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쳐 가며 훼이는 예전에 느낀

적이 있는 싸늘한 미소를 가진 여인의 기척을 찾으려 애썼다.

잊을 수 없는 그  냉소적인 표정과 온 몸에  떠도는 소름끼칠 정도로 싸늘한

분위기.

저건......

훼이는 숲이 끝나는 자리에 들어서 있는 쇄락한 집들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오직 숲만으로 가득 차 있을 것 같았던 명계에도 사람이 살만한 집들이 들어

서 있다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놀라웠다. 비록 사람이 살지 않는 흉가처럼 낡

고 쇄락하긴 했지만 그곳에서는 분명 누군가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하나의 마을이라고 이야기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인 수십채의 집들. 하계의 집

들과도 천계의 집들과도 어딘지 모르게 다른, 지붕이 기와로  덮힌 그 집들은

길게 늘어선 채 그 안으로 들어서는 훼이를 맞이했다.

< 살아있는 자다.... 살아있는자....>

< 용족이로군..... 저 흘러넘치는 강인한 기운은 분명 용족의 것이야.... >

웅얼거리는 것처럼 엷게 퍼지는 목소리들이 훼이의 귓가에 파고들어왔다.

그들의 목소리는 확연하게 살아잇는 자들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생기없는 목소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자들이 쇄락한 집들이 모여서  이룬 마을의 길에서 훼이를 지

켜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살아있는 생명을 지닌자에 대한 강한 욕망이

담겨 있었다.

< 생기......... 저자가 가진 생기만 있다면.......... >

누군가의 외침이 시발점이 되었다.

멀찌감치에서 훼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훼이의 곁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회색빛의 암울한 얼굴을 가진 그들은 불을 향해 뛰어드는 나방처럼

그렇게 훼이의 곁으로 몰려왔다.

[ 경환(鏡幻) - 의식에 작용하는 고급주문 ]

훼이의 입에서 주문 하나가 터져 나오자 훼이에게로 다가서던 사람들은 거짓

말처럼 동작을 멈췄다.

" 이곳의 주인은 누구인가."

누구에게랄 것 없이 훼이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 요희...... 붉은 눈동자를 가진 요희다..... >

쉬고 갈라진 듯한 목소리가 답했다.

훼이는 놀란 듯이 고개를 돌렸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훼이의 주문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있었다.

" 그대는?"

메마른 웃음을 터트리며 상대가 훼이의 앞으로 나섰다.

" 나는 당신의 아들과 같은 교룡이지. 저주스러운 인간과 용족의 혼혈..."

" 날 아나........?"

상대의 말에 의문을 가지며 훼이가 묻자 눈 앞에 있는 겨울의 앙상한 나뭇가

지 처럼 마른 남자는 또 다시 갈라진 목소리로 웃었다.

" 모를 리가 없지.....  아무리 다른 계(界)와  다른 이곳 명계라해도 당신이

누구인지.....그리고 다른 곳이 어떻게 변하며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정도는 알

고 있어."

처음듣는 사실이었다.

명계에서 살아가는 자들이 자신들의 움직임을 알고 있다니.........

" 경고하나 하지... 이곳  명계에서 살아가는 자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

아. 그리고 명계의 지배자인 요희는  강한자에게 흥미를 느끼지. 분명 당신도

그럴거야. 훼이......"

상대방이 자신의 이름을 안다는 사실보다도  지난번에 비에게 죽음을 안겨준

여인이 바로 명계의 주인이라는 사실이 훼이에게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마지막으로 창백한 미소를 떠올린 채 눈을 감은 비의 모습이 또 다시 선연하

게 떠올랐다.

그때였다.

" 천오..... 네가 함부로 나설 자리는 아닐텐데.....?"

기분 나쁘다는 듯한 어조의 귀를 긁는 날카로운 음성이 울려퍼졌다.

훼이는 떨려오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요희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에게로 몸을

돌렸다. 일전에 봤던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그녀는 오만하게

훼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뒤에는 그림자처럼 달라붙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옷의 모습이 있었다. 그 수는 모두 네명. 지난번의 두명과 처음 대

하는 두명. 그들은 모두 위험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 해제(解制) ]

훼이의 음성이 울려퍼지자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요희의  모습을 보고 슬금

슬금 자리를 피했다. 그들이  보인 반응으로 훼이는 요희의  성격이 어떤가를

알 수 있었다.

" 환영한다고 말하는 게 좋을까요. 훼이......?"

그녀의 입가에 엷게 피어오른 웃음은 소름끼치도록 기분나쁘게 보였다.

" 말은 필요 없겠지....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그대가 가장 잘 알테니까."

싸늘하게 굳어진 훼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요희는 크게 웃었다.

" 고맙다고 해야하나? 당신의 아들 덕분에  난 지금 너무나도 충만한 기운

을 느끼고 있으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훼이의 눈에는 일렁거리는 기운이 피어올랐다.

" 시작해라."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요희는 자신의 뒤에선 네명에게 손짓했다.

[ 개문(開門) 람(嵐) - 폭풍의 힘을 빌어 공격하는 상위 공격주문 - ]

훼이 역시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주문을 외쳤다.

훼이가 부른 주문에 의해 명계의 하늘 가득 검은 먹구름이 들어차며 거센 비

를 흩뿌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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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잡설은 꼭 읽어주세요!!! >

안녕하세요오 ^-^ 이번이 7장의 마지막편입니다.(그러고 보니 40회!!)

13편이라..... 길군요. 아. 그리구요 이번주 동안은 잠시 연재를 쉬게될 것 같아

요. 스토리 전개가 생각대로 잘  안풀리는 것 같기도 하고 과연  길이를 어느

정도로 해야할지도 잘 생각해 봐야 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연재 재개를 하면

하루에 두편 정도씩 올리겠습니다.(쉬면서 비축분 만들어야지 ^^)

음.... 고정독자이신 40여분(이정도 인 것 같은데....) 정말로 감사해요 ^0^

전 제 소설을 이렇게 까지나 읽어주실 줄은 몰랐으니까요.  여러분 덕에 벌써

40편이나 쓰게 된 거에요. 잠시 쉰다고 안 읽어주셔도 할 수 없지만 ^^

혹시 앞으로 보여줬으면 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제가 생각하

는 것과 독자님들이 생각하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7장에서 명계와의 이야기를 (현실에서) 끝내지 않은 것은 이야기의 전

개 방향이 현재는 일직선으로 계속해서 전개되기 때문이지요.  과거역시 처음

의 시간대에서 점점 더 세월이 변해가지만 섞일 수도 있으니까요.

8장에서도 현재의 이야기는 시간 순서대로 전개되니까 사건의 해결은 8장 정

도에서 보실 수 있을겁니다.

또 하나 ^^ 통쾌한 전투장면을 원하셨던 분들....죄송합니다. ^^

막상 쓰려니 안되네요... 8장 쯤에서 해볼까  생각해요.(과연 잘 될까...나도 내

맘을 알 수 없어...--)

(오늘 봉신연의 소설책을 샀어요. 만화랑은 좀 다르지만 그래도 재밌어 ^0^)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님들 너무 고마워요 ^0^

---  넵! 드뎌 포키가 제 구박에 지쳐버렸나봅니다. 맨날 이상해∼를  연발하

며 포키를 다그친 결과 일주일이라는  공백을 만들고 말았군요. 흑흑흑...저를

주겨주셔요...ㅠ.ㅠ

쉬는 동안 제정비의 시간을 갖게 될 겁니다. 그동안은 구박하지 말아야지..^^

조금만 기다려 주시고, 고정독자 여러분!  글고 그 외 여러분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들 건필하세요. 꾸벅∼   퇴고 담당 화란이었슴당∼     ---

번 호 : 1114 / 3334 등록일 : 1999년 07월 26일 00:02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185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8장 一.

흑룡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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