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장 범람(氾濫)
二.
" 천제(天帝)의 사자(使者)......?"
라이엔은 보좌관이 전한 말을 듣고 의문을 떠올렸다. 훼이의 친우였던 성휘의
죽음에 얽힌 소란 이후로 천계와 천상계의 관계는 서먹서먹해져 있었다. 그리
고 그때 이후로 용왕들은 그런 훼이의 행동에 동조를 한 것인지, 후계자들을
천제에게 보내 인사를 시키는 일은 없어졌다.
아무리 천제가 모든 계(界)에서 살아가는 자들의 수명을 관장하는 자리에 있
다고는 해도 세상을 구성하고 유지시키기 위한 5대원소의 힘을 가진 용족들
에게 있어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인다는 것은 과히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들은 오래전부터 그것을 바꿀 수 있는 작은 계기를 바라고 있었는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라이엔에게 더 큰 의문으로 다가오는 것은 지금까지의 천제들은 다른
곳으로 사자를 보내는 일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때문인지 모르지만 라
이엔은 자꾸만 피어오르는 의문들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 사자는 지금 어디에 있지?"
" 가장 가까운 사실(私室)로 모셨습니다."
라이엔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좌관의 뒤를 따라 조용히 걸음을 옮기던 라이엔은 문득 생각난 듯이 물었
다.
" 사자가 무엇 때문에 왔다고 하던가?"
" 저...그것이 천제로부터의 서신을 가져왔다고 하옵니다."
서신...서신이라.... 그렇다면 개인적인 일인가....
라이엔은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생각은 쉴새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천제는 왜 하필이면 흑룡왕인 자신에게 사자를 보냈을까.
훼이를 형으로 가진 라이엔으로서는 마음속으로부터 걱정이 치밀어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비록 지금의 천제가 그 일이 일어났던 당시에
황태자였던 오현의 아들이긴 했지만 라이엔은 혹시라도 훼이가 문제에 얽혀
들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본궁의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사실은 궁안에 있는 여러개의 사
실중 하나였지만 다른 곳에 비해 손님을 맞이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에 훨씬
화려하고 넓은 곳이었다.
라이엔은 문을 열고 한쪽으로 비켜선 보좌관을 스쳐지나 사실 안으로 들어섰
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서자마자 정중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며 고개를 숙
이는 한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인사드립니다. 흑룡왕 전하."
무척이나 예의바른 태도를 갖춘 남자의 인사에 라이엔은 가벼운 목례로 답하
며 상대를 바라보았다.
예상과는 달리 사신은 흰색의 간소한 무복 차림을 하고 있었다. 복장을 보아
하니 그는 상천궁 소속의 천군(天軍)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천제의 사자로 올
정도라면 보통의 천군이 아닌 대장 정도의 지위를 가진 자일 것이었다.
천제의 사자는 청년이라기엔 너무 나이가 많고 그렇다고 중년이라기엔 젊어
보이는 외모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마도 용족을 비롯한 영수족과
천상인과는 수명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나이를 쉽게 짐작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몰랐다.
" 그나저나 이곳엔 무슨일로....."
라이엔은 사자가 온 목적을 알고 있었지만 사자의 진심을 확인하기 위해 마
치 모르는 것 처럼 넌지시 물었다.
" 천제께서 흑룡왕님께 서신을 보내셨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사자는 품안에서 붉은 비단에 감싸인 두루마기를 꺼냈다. 라이
엔은 아무말 없이 사자가 내민 두루마기를 건네 받았다.
" 서신을 읽어보시고 확답을 해주시길 바라신다고 천제께서 말씀하셨습니
다."
대체 이 서신안에 무슨 말이 담겨 있을지 생각을 해 보며 라이엔은 천천히
두루마기를 펼쳐 들었다.
* * *
훼이는 유에린에게 설명을 하다말고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훼이의 시선이 향
한 곳은 아무것도 없는 공터였기 때문에 유에린은 잠시 의아해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 공간의 일그러짐이 생겨나는 것을 보고 또다시 훼
이의 능력에 감탄했다.
훼이도 유에린도 어느 순간 부터인가 동작을 멈추고 공간을 열고 나타날 자
를 기다렸다. 대개 숲에 누군가가 들어서면 훼이가 어디론가 떠나는 일이 거
의 대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기 때문에 유에린은 이번에도 그렇게
되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자신은 이 숲에서 무엇을 해야할지 생
각해 보아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공간을 열고 가쁜 숨을 내쉬며 나타난 것은
유에린으로서는 처음 대하는 푸른 눈을 가진 소년이었다.
" 백부님!"
소년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다가 훼이를 보자마자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떠
올리며 곁으로 달려갔다. 그 소년을 보자마자 훼이 역시 부드러운 미소를 머
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유에린은 그들의 몸에 같은 피가 흐른다는 사실을 재
차 확인할 수 있었다. 소년의 입에서 백부라는 말이 나온 것을 듣고 조금은
어색하다고 느꼈던 유에린도 그 놀랍도록 닮아있는 둘의 미소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훼이에게 인사를 하고 몇마디를 건넨 후 소년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유에린에
게로 옮겨졌다.
" 안녕하세요. 유에린 맞죠?"
소년은 붙임성 있는 태도로 유에린에게 인사했다.
" 전 유안이라고 해요."
맑고 투명하게 느껴지는 유안의 푸른 눈을 직접 마주대하고 나서야 유에린은
겨우 유안이 누구였는지 떠올렸다. 기린족의 황녀를 비로 맞이한 흑룡왕과 그
두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푸른 눈을 가진 후계자의 이야기가. 그리고 그 어린
소년은 용족들에게 있어서는 경외의 대상이 되어 온 훼이의 혈연이기도 했다.
" 안녕. 만나서 반갑구나."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상대와 대화를 해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
에 유에린에게는 인사를 건네는 자신의 목소리가 무척이나 어색하게 들려왔
다.
인사를 건네긴 했지만 자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유안을 향해 어떤 말을
해야할지 난감해 하고 있던 유에린에게는 막 울려퍼진 훼이의 목소리가 구원
처럼 느껴졌다.
" 유안. 갑자기 혼자 찾아올 생각을 다 하다니. 무슨 일이라도 생겼느냐?"
훼이의 물음에 유안은 생글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은 영락없이 어린
소년의 그것이었기에 무척이나 천진하게 느껴졌다.
" 백부님께서는 저와의 약속은 잊으신 건가요? 분명 제게 힘을 이끌어내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겠다고 하셨잖아요."
" 그것 때문에 홀로 이곳까지 왔다는 건 아니겠지?"
" 걱정마세요. 아버지 허락은 얻었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유안의 표정에는 허락을 얻기 전까지는 절대로 돌아가지 않겠
다는 의지가 배어 있었다. 유에린이 그런 표정을 읽었다는 것은 훼이 역시 그
렇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훼이가 어떤 대답을 할지 궁금해진 유에린이
고개를 돌렸을 때 훼이의 얼굴에서는 순간적으로 떠올랐던 숙연한 기색이 막
사라진 후였다.
훼이는 잠시 유안을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 그래. 배운다는 의지는 좋지만 넌 지금도 충분히 강한 힘을 사용하고 있
다. 아무리 왕족이라지만 성년식도 치르기 전에 공간을 여는 주문을 사용하다
니 솔직히 감탄스럽구나."
훼이의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유안은 얼굴에 떠올렸던 환한 표
정을 지웠다.
" 하지만 백부님은 훨씬 강하잖아요. 어떤 주문 없이도 힘을 쓸 수 있는건
백부님 뿐이라고 알고 있어요. 그리고 저도 그렇게 되고 싶어요."
" 유안...."
훼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지만 유안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 왜 유에린에게는 힘의 운용에 대해 가르쳐 주시면서 제 부탁은 거절하려
고 하세요?"
훼이는 눈치채기 힘들 정도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유에린은 난감한 표정의 훼이를 보며 훼이도 그런 표정을 지을때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왠지 요즘의 훼이는 말로만 전해듣던 저 높은 곳의 존
재가 아닌 언제나 곁에서 유에린을 돌보아 주었던 오라버니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
훼이는 한참동안이나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훼이를 유안은 푸른 눈동자로
가만히 응시했다.
" .......좋다."
조금은 무거운 어조로 말을 내뱉은 훼이를 보면서도 유안은 그 대답이 나온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어떨때는 나이 또래의 어린 치기를 드러내면서도 또 어떤때는 심해와도 같은
푸른 눈동자에 깊이 있는 표정을 떠올리는 것이 바로 다음 흑룡왕의 위(位)를
이을 유안이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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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흑.....피곤하고 괴로워라...
어제 소설파일을 날려먹은 데다가 이틀 내내 잠도 제대로 못자고 아르바이트
를 했더니만 지금은 마구마구 눈이 감깁니다. 무슨 내용을 썼는지도 모르겠어
요. 우흑...그래도 어제 파일 날려먹기 전에 썼을때는 괜찮은 내용이었던 것 같
았는데.....흑.... 괴로워..
그런데.... 읽어주시는 여러분... 알고 계세요? 이번 편이 49회라는 것을요. ^^
으음.....아직 쓰진 않았지만 쓴다면 내일 올릴 것이 50편이 되는 겁니다..
감회가 새롭군요.(아, 미리 김칫국부터 마시지 말아야지....)
그럼, 폭우에 쓸려가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하옵니다.
번 호 : 1317 / 3334 등록일 : 1999년 08월 03일 00:39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172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10장 三.
흑룡의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