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룡의 숲-54화 (54/130)

제 11장  흩어지는 기억

二.

엷게 피어오른 희미한 안개가 흑룡궁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아니, 흑룡궁 뿐

만이 아니라 흑룡족들이 살아가는 북쪽의 영토 전체가  점점 짙어져 가는 안

개속에 잠겨가고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짙은 안개가  아닌 그저 희뿌연 안개. 동이  터오면

햇살에 사그러질 안개였지만 안개에 감싸인 숲은 왠지 모르게 음울한 분위기

를 풍기고 있었다.

훼이는 음습한 안개가 차오르기 전부터 깨어나 있었다. 온몸에 피어오르는 이

상한 느낌 때문이기도 했지만 원래 그는 많은 잠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갈색의 매끌거리는 나무 바닥에 손을 올려 놓은 채 훼이는 희뿌연 새벽과 그

새벽을 감싸안은 안개를 응시했다.

어쩌면......

언젠가 일어나야만 할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묻어 두었는지 모르

지...

훼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유안과 유에린이 잠들어 있는 건물에서 벗어났다.

소로를 따라 항상 유에린에게 힘의 운용을 가르치던 얕은 풀숲까지.

예감.... 그것은 예감이었다.

단 한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던 피부를 파고드는 예감.

풀숲에서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서 있기를 반시진 정도. 동이  터오기 시작했

다. 붉고 찬란한 기운을 머금은 태양이 사방에 빛을 뿌리며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렇게 동이 터오는 모습을 바라보던 훼이는 나지막한  한숨과 함께 작게 중

얼거렸다.

" 시작인가........"

*            *            *

" 잘 알고 있겠지만 용족은 강하다. 특히 흑룡족은 더더욱."

특유의 뒤틀린 어조로 말을 꺼내며 그는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  얼마 지나

지 않아 벌어질 일을 생각하면 감추려 해도 저절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 목숨을 잃을 일까지는 없겠지만 조심하는 게 좋겠지. 그들이 어떻게 나올

지 모르니까."

" .....정말로 실행하실 생각이십니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말을 꺼내긴 했지만 돌아온 눈초리는 예상보다 훨씬 불쾌

한 기운이 짙게 배어있었다.

"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 뿐이야. 언제나 그래왔듯이 자연스러운 일인거지."

선대의 천제를 그대로 빼어 닮은 날카로운 눈꼬리에는  엷은 흥분이 배어 있

었다.

" 하지만..... 무모한 일이라 생각지 않으십니까?"

천군 대장인 지인(智寅)은 무슨일이 있어도 명령에 따라야 할 천제에게  반발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일인만큼 마음이 불편하기

도 했지만 지금 천제가 행하려고 하는 일은 결코 정당한 것이 아니었다.

" 무모하다라...."

낮게 읊조리던 천제는 낮은 소리로 웃었다.

" 이래서 천군들은 안된다니까. 정 내 뜻에 따르지 않겠다면  모든 일은 검

선에게만 맡기도록 하지. 언제나 큰 일을 수행해 온 것은 그녀들이었으니까."

" 상제폐하. 제 뜻은 그것이 아니옵고...."

" 됐다."

천제는 손을 내저어 지인의 말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게 했다.

" 가화."

" 네."

천제는 지인에게서 고개를 돌려 현 검선의 장인 가화를 응시했다.

" 그대는 내 뜻에 따르겠지?"

" 분부대로..."

얼굴에 별다른 표정을 떠올리지 않은 채 가화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바로 대답했다.

" 그의 발을 묶어두는  것은 명계에서 온 자들이  할테니까 너희들은 그가

마력을 사용할 틈을 주어서는 안된다."

" 알겠습니다."

맹목적인 충성. 검선들의 천제에 대한 충성은 그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마치 주인의 손에  의해 움직이는 그림자 인형처럼  그녀들은

천제의 명령이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들었다. 단 한명. 벌써 수백년전의 인물

이 된 전전대 검선의 장이었던 한명의 여인을 제외하고는.

천상계의 역대의 천제들 중에서도 가장 냉혹한 자로 통하는 전대  천제 오현.

비록 반밖에 피가 섞이지 않았지만 친 동생을 자신의 손으로 죽인자.

일 처리에서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오현의 아버지가 여

성 편력이 심한 자였듯이 오현 또한 냉혹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천

상계의 황족들은 대대로 한가지씩의 결함을 가지고 태어나는 지도 몰랐다.

지금의 천제가 뒤틀린 성품을 가졌듯이.

" 천군들은 이 일에서 손을 떼도록."

천제는 더 이상 볼일이 없다는 듯이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건넸다. 지인은 대답

을 하려 했지만 곧 생각을 바꾸고 고개를 숙였다.

천제는 한번 꺼낸 말은 번복하지 않는 다는 것을  오랜 경험을 통해 알고 있

었기 때문에.

그의 그런 태도는 바로 절대자가 가지는 여유였다.

" 알겠습니다. 상제 폐하."

지인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넨 후 천제의 집무실에서  나섰다. 분

명 자신이 나선 후에도  상제는 가화에게 이번일의  진행에 대한 이야기들을

건넬 것이 분명했다.

오래된 자. 숙명에서 벗어난 자의 말살이라.....

과연 천제라고 해서 그런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단지 수명의 관조자일 뿐인 천상인들의 왕인 그가.

" 하지만 그렇다고 바꿀 수 있는 일도 아니지...."

자신도 모르게 생각이 말이 되어 나왔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그저 지인. 자신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천상계에 속한 모든  천군들을 지

휘하며 천상계의 방비를 하면 되는 것이다.

지인은 걸음을 옮기며 피식 하고  웃었다. 걸음을 옮길때마다 흩날리는  짙은

푸른색의 길다란 무복자락은 자신의 지위를 다시 한번 되새겨 주었다.

*            *            *

" 직접 가시겠습니까?"

레이샤는 옷차림을 정돈하다 말고  자신에게 말을 건넨  보좌관 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 알고 있잖아. 내가 어떤 성격인지."

" 하지만 전하."

레이샤는 단호한 목소리로 셴의 말을 끊었다.

"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테니까."

셴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 정 그렇게 하신다고 해도 호위병 정도는 데려가십시오. 자신의 몸을 소중

히 하는 것은 왕으로서 가져야할 당연한 마음가짐입니다."

" 알았어."

마지못해 하는 대답이긴 했지만 레이샤는 셴의 말에 따랐다.

이번일은 어쩐지 그냥 끝날일은 아닐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번에는 친

언니를 방문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위험할지도 모르는 곳으로 발을 내딛

는 것이기에.

하지만 이대로 농락 당할 수는 없다.

그자는 믿을 수 없어.

봉황족은 그리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지.

" 지금 당장 호위들을 집합시켜. 난 시간이 지체되는 것은 질색이니까."

" 알겠습니다. 전하."

셴은 입가에 엷은 미소를 머금은 채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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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맨날 남의 소설 읽느라고 제 소설엔 손도 안대고 있군요...--

오늘은 창연란에서 찾아낸 보석같은 소설들을 읽었습니자. ^-^

창연란 담당자 이면서 맨날 감시(?)만 하다니....그래서 요즘엔 15편 이상 되는

것 중에 골라서 읽고 있답니다.

요즘들어 흑룡의 분위기가 맘에 안들어서 계속 피튀기는 이야기가 쓰고 싶습

니다. 하지만 동시 다작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하나에만 매달

릴래요.

자...완결까지 스파트닷!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오늘 추천 해주신 dae012님 감사드려요 ^-^*

맘에 안드는 게 뭔지는 저도 대충 짐작이 갑니다. ^^;

번 호 : 1781 / 3334 등록일 : 1999년 08월 20일 00:15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155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11장 三.

흑룡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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