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룡의 숲-56화 (56/130)

제 11장  흩어지는 기억

四.

" 알고 있어요. 당신이 날 받아들이지 않으리라는 것은."

당신은 그런 남자니까요.

뒷말은 이어지지 않고 그녀 혼자만의 마음속에 머물렀다.

하지만 알면서도 이렇게 잊지 못하는 저는.....

화란의 입가에는 씀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내가 참을성이 부족했던 것일까?

조금만 더 기다렸더라면 그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어째서....난 더 기다리지 못했던 것일까.

300여년을 한결같이 기다려 왔었는데....

왜 단 한순간의 격한 감정을 참지 못하고 지금 이렇게 괴로워 하고 있지?

난 이렇게 나약한 여자가 아니었어.

마음속을 휘젓는 기억 때문에 화란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생겨나  있었다.

다른때에는 아무리 깊이 생각에 잠겨도 이런 표정을 떠올리지 않던 그녀였지

만 훼이에 대한 생각을 떠올릴 때 마다 주름이  지는 것은 자신도 어쩔 수가

없었다.

" 어머니... 무얼 생각하고 계세요..?"

얼굴 가득 걱정스러운 표정을 떠올린 채 다가선 아들 란을 보며 화란은 희미

하게 미소지었다.

" 아무것도 아니란다...."

화란은 애써 마음의 혼란을 수습하며 아들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훼이의 곁에서 그렇게 떠난 이후 화란은 바로 장로들의 권유에 따라 한 귀족

청년과 혼인을 했다. 그리고 란을 낳았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순진무구한 아들의 얼굴을 볼때마다 화란은 가슴이 아

파왔다. 이미 한 남자의 아내가. 그리고 어머니가  된 자신이 마음 속에 진정

으로 품고 있는 상대는 지금의 남편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말로 할  수는

없었지만 항상 걱정스러운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는 어린 아들에게 만큼은

너무나 미안했다.

" 후계자 수업은 재미있니?"

" 네. 어머니. 열심히 하고 있어요."

언제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었냐는 듯 란은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 아버지를 따라 하계 시찰이라도 나가지 그랬니... 궁에서만 지내면 답답할

텐데...."

란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 아니에요. 하루빨리 후계자  수업을 끝마치고 어머니의  일을 도와드리고

싶어요."

화란의 섬세한 얼굴선에 남편의 모습을 합쳐놓은 듯한  외모를 가진 란은 주

어진 재능보다 노력을 더욱 중요시 하는 아이였다.

아직 성년식도 치루지 않은  상태에서 후계자 수업을  받으면서도 힘든 기색

하나없이 모든 일을 하곤했던 성실한 아이. 란은 그런 아이였다.

" 어머니는 언제나 힘들어보여요."

란의 말을 듣고 화란은 가슴 한구석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이 어린 아이의 눈에 내가 그렇게 비쳤나...?

그럴 정도로 나는 고심하고 있었나....?

" 그래서 저는 빨리 어머니의 일을 도와드리고 싶어요."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화란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눈물을 삼켰다.

*            *            *            *

" 날 무척이나 높이 평가해 주는군."

고개를 돌리지 않았지만 훼이는 지금 자신에게 적대감을 품은 다수의 사람들

이 다가서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풍기는 느낌이 그다지 낯설지 않다는 것도.

하지만 상관 없는 일이다. 언제든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은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예상했다고 해도 이번만은 확실히 그냥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마력만을 사용한  싸움이라면 훼이에게

승산이 있겠지만 오늘은 다르다.

천상계에서도 최고의 실력자로  불려지는 검선들의  날카로운 검끝이 훼이를

향해 휘둘러지고 있었기에. 천제는 아예 자신의 정체를 감추지 않을 모양이었

다. 감춘다고 해서 알아보지 못할 훼이도 아니었지만.

험한 산속을 뛰어 다니는  노루의 날렵한 움직임처럼  소리조차 내지 않은채

숲의 중앙으로 들어선 검선들은 오래된 자에  대한 예의로 검을 휘두르기 전

에 정중한 인사를 건넸다.

자신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 온자들에게 인사를 받는다는 것이 우습기도 했지

만 그것은 그녀들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예의였을 것이다.

검선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드는 광경은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무척 아름다웠

다. 가느다란 칼날이 빛에 반사되어 뿌리는 은빛  광채는 춤사위의 시작을 알

리는 것 처럼 보였다.

훼이는 방어주문을 풀기전에 공간을 열고 이제는 눈을 감고도 생김새를 떠올

릴 수 있을 정도가 된  검을 꺼냈다. 자신의 소중한  친구와 아들에게 주었던

검. 검을 잡을때마다 둘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감

상에 빠져있어서는 안된다.

훼이는 손안에 차가운 감촉을 전하는 검의  손잡이를 굳게 쥐며 주위를 둘러

보았다. 검선들의 등장과 동시에 요희와 그녀의 호위는  검은 안개 속으로 사

라져버렸다. 그리고 훼이를 둥글게 둘러싸고 있는  검선들의 표정에는 하나같

이 감정이 배재되어 있었다.

공간이 닫힘과 동시에 은은한 검은 빛으로  훼이의 주위를 감싸고 있던 방어

주문도 사라졌다.

언제 어디서 요희의 공격이 날아올지 알  수 없었지만 검선들을 상대로 자신

의 마력을 쓸 수는 없었다.

방어주문이 사라지자 검선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일제히 검을 움직여

훼이의 몸을 공격했다. 그녀들의 움직임은 한  마리의 나비처럼 아름다웠지만

칼은 날카로웠다.

쌔액.

날카로운 검의 파공성과함께 훼이의 옷자락이 베어졌다.

하지만 옷자락을 베인 훼이도 그것을 벤  검선들도 얼굴 표정에는 변함이 없

었다. 어쩌면 닮았다고 까지 여겨질 수 있는  굳어진 냉막함이 그들의 얼굴을

채우고 있었다.

칼의 움직임으로 인해 불어오는 인공적인  바람때문에 훼이를 비롯한 검선들

의 옷자락과 머리카락은 심하게 흔들렸다.

언제 어디서 날아올 지 모르는 열 다섯 개의 칼날을 막아내기에 훼이가 들고

있는 두 개의 검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지만 훼이는 아직까지 검선들을 상대

로도 밀리지 않는 검술 실력을 보여 주었다.  훼이가 몸을 움직이는 열다섯개

의 방향에서 날카로운 검날이 쉬지않고 파고들어왔다. 마치 잘 짜여진 옷감을

보는 것처럼 그녀들의 공격은 매끄럽고 완벽했다.

숲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오직 검이 맞부딪히는 날카로운 파공음 뿐이었다. 하

지만 어느 순간인가 훼이는 소리로는 감지할  수 없는 꿈틀거리는 무형의 기

운을 느꼈다. 그것은 날카로운 감각을 가진  자만이 느낄 수 있는. 마력의 파

동이었다.

훼이는 그답지 않게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곧 처음 생각했던  방향으로 마음을 굳혔다. 그것은  어쩌면 마음속에

남아있는 오랜 친구의 잔영 때문인지도 몰랐다.

공격은 의외의 방향에서 시작되었다.

요희가 사라진 검은 안개속에서가 아닌 숲의 입구 부근과 연결된 소로에서.

[ 폭염장벽(暴炎障壁) 전(展) ]

숲을 태워버릴 듯이 거대한  붉은색의 기둥이 훼이가  있던 자리를 중심으로

피어올랐다. 기둥이라기 보다는 얇은 벽과 같이 사방을  태우는 붉은 빛의 파

동.

재빨리 펼친 방어주문에도 불구하고 훼이의 몸은 중심을 잃고 약간이지만 흔

들렸다. 그리고 그틈을 넘기지않고 훼이의 방어주문 안에 있던 검선들의 칼날

이 파고들어왔다.

찌르는 듯한 통증과 함께 훼이는 수백년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피를 보았다.

어깨를 타고 떨어져 내리는 붉은 색의  핏방울은 무척이나 선명한 빛깔을 띄

고 있었다.

통증에도 불구하고 훼이는 웃음이 나왔다.

" 그렇게 웃을 수 있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 될거에요."

언제 모습을 드러냈는지 훼이가 펼친 방어주문의 공간 밖에서 요희가 미소짓

고 있었다.

퉁퉁.

듣기 거북한 둔탁한 마찰음이  방어주문으로 인해 생성된  투명한 검은 막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훼이는 더욱 더 날카롭게 파고드는 검선들의  칼날을 피해 움직이며 또 다시

방어주문을 썼다. 검선들과 자신을 감싸고 있던 커다란 방어주문 사이에 훼이

만을 감싼 작은 막이 생겨났다. 이번에 만들어진 작은 막은 만져보면 그 감촉

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딱딱했다. 그 때문에 검선들의  칼날은 더 이상 훼이의

근처로 다가서지 못했다.

[ 강뇌파탄(鋼雷破彈) 전(展) ]

조금아까 훼이의 몸을 흔들리게  만들었던 강력한 마력의  주인공이 또 다시

공격을 가했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붉은 덩어리들이 훼이의 방어주문

을 와해시킬 목적으로 떨어져내렸다. 그리고 그것은 확실히 효력이 있었다.

검선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방어주문이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었다.

훼이는 아예 자신의 몸 주위에 쳐져있던 방어주문을 제외하고 다른 방어주문

을 거두어 들였다.

이정도로 강력한 주문을 쓸 수 있는 것은 몇되지 않는다.

훼이는 또다시 웃었다.

자신에게 이토록이나 적이 많았었는지 생각하며.

또 다시 공격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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쯧쯧. 어릴때의 란은 저다지도 착한 녀석이었는데...

역시 성격 파탄자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인가...^^

오옷...드뎌 훼이와 세가지 세력간의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과연 주인공 훼이는

모든 적을 물리치고 승리의 미소를 지을 수 있을 것인가....

(우웃...무슨 3류 영화 광고하냐...--) 하핫..그리고 전 여전히  전투장면이 형편

없군요... (자랑이 아니얏!)

오늘도 즐거운 하루 맞이하시길.... ^-^

번 호 : 1866 / 3334 등록일 : 1999년 08월 22일 01:06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148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11장 五.

흑룡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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