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룡의 숲-60화 (60/130)

제 12장 바램...

마음속 깊은 곳에 잠겨있던

기억의 파편이 녹아든 자리에서

엷은 빛깔의 무지개가 떠오른다.

물안개를 헤치고 피어오른

수선화의 향기와 함께.....

一.

" 형님. 벌써 움직이시면 어떻합니까."

흑룡궁의 정원을 거닐며 신선하게 폐부에  와닿는 아침공기를 들이마시던 훼

이는 걱정이 가득 담긴 라이엔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 괜찮아."

실로 오랜만에 흑룡궁에서 머물고 있는  요즘은 마치 수백년전의 후계자시절

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정도로 편안했다.

형님의 표정이 달라졌어....

게다가 지금까지 어떤 이유로도 오랜동안 머무르지 않던 궁에서 며칠째 시간

을 보내고 계시다니..

대체 무엇이 형님의 마음을 움직인 것일까.

라이엔의 마음속을 가득 채운 의문은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 요즘이 가장 바쁜 시기일텐데 이렇게 나와있어도 괜찮은지 모르겠구나."

이제 계절은 막 겨울로 접어들고 있었다.

겨울은 흑룡족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바빠지는 계절. 그리고 그  모든 업무를

총괄하는 것은 왕인 라이엔의 몫이었다.

" 지금은 그것보다 형님의 몸이 회복되는 걸 보는게 더 중요해요. 제게는."

훼이의 얼굴에는 지금까지 라이엔에게 가끔씩  보여왔던 부드러운 미소가 계

속 떠올라있었다. 마치 원래부터 그가 가진 표정이었던 것 처럼.

훼이는 며칠전의 싸움으로 인해 입은 상처가 반도 낫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보통때처럼 평상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담담한 태도 때문인지 훼이의 모

습을 바라보던 라이엔에게는  훼이가 다쳤다는  사실이 거짓말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자신의 두눈으로 직접 그 모습을 보지 못했더라면  지금은 믿지 못할

터였다

" 형님. 그런데 정말 그들에게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으실 생각이십니까?"

전부터 묻고 싶었지만 계속  미뤄오던 그 질문을  라이엔은 겨우 오늘에서야

꺼냈다.

" 그다지 마음이 내키질 않아서..."

" 하지만 그들은 암묵적인  협의를 깨트린 것과  다를바 없는 일을 했습니

다."

훼이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라이엔이 서 있는 정원의  입구쪽으로 향했다. 두

그루의 버드나무가 길게 가지를 드리우고 있는 돌로 뒤덮힌 소로를 지나치면

서 훼이는 예전에 이 길을 걸었을때를 잠시 회상해 보았다.

" 그들에게도 나름대로의 이유는 있었을테니까."

수백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흑룡궁의 모습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언제나 깔끔

하게 정돈되어 있는 정원의 모습과  화려하면서도 장엄한 아름다움을 자랑하

는 건물들의 모습은 예전과 똑같았다.

" 큰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그들이 벌인  일은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훼이는 피식하고 낮은 웃음을 흘렸다.

" 라이엔. 넌 너무 걱정이 많아서 탈이구나."

" 형님!"

이제 자신을 아이 취급까지 해버리는 훼이를 바라보던 라이엔은 한숨을 내쉬

며 고개를 저었다.

" 요희와 란은 그렇다고 해도  천제와는 담판을 지어두지 않으면 곤란하겠

지."

라이엔의 바로 옆으로 다가선 후 훼이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 이상하게도 천제들은 하나같이 성격이  뒤틀려 있으니까 말로 해서는 끝

나지 않을거야."

훼이는 라이엔의 어깨를 툭하고 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 집무실로 가자."

*            *            *

유에린은 처음으로 기린족을 보았다.

유안을 통해 기린족이 가지고 있는 푸른  눈동자를 대했기에 물처럼 맑고 투

명한 빛을 간직한 미하의 두눈을 대했을 때에도 놀라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

만 햇살같이 밝게 빛나는 그녀의 황금색 머리카락은 시선을 돌릴 수 없을 정

도로 유에린을 잡아 끌었다.

" 흑룡궁에서의 생활은 어때요. 편안한가요?"

차분하면서도 맑은 미하의 목소리는 듣는이의  귀를 즐겁게하는 울림을 가지

고 있었다.

" 네...."

기린족의 황녀라는 신분과 흑룡왕비라는 두 개의 신분을 가진 미하는 왕족이

라는 이름이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그랬다. 유에린 자신과는 너무나도 다른.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말로 해주지 않았

지만 유에린은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훼이를 찾아왔던 본래의 목적. 현무족의 남자를 쓰러뜨리기 위해 이제

는 움직여야 한다.

오라버니가 눈을 감는 광경을  두 눈으로 지켜봤던  그날부터 유에린이 줄곧

바래왔던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 훼이에게 찾아갔던 것이 힘을 얻기 위해서라고 했었죠?"

" 네. 전 너무나 약하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

확신할 수는 없지만 이대로 당하지 않을 자신은 있으니까.

" 싸워서 이기면 그 후엔 어떻게 할 거죠?"

유에린은 미하에게 누군가를 이기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누군가가 현무

족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행동을  알리고 싶지는 않

았기에.

" 솔직히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중요한 건 이기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요."

미하는 잠시 아무말 없이 유에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 그런가요..."

유에린은 그림처럼 아름다운 미하의 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

다. 여인으로 태어난 자라면 누구나 바랄 아름다움과 최상의  지위를 가진 이

를 직접 대하자 저절로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현실에 만족해야 한다.

자신은 자신. 아무리 바래도 다른 누군가가 될 수는 없다.

" 훼이의 가르침을 받은 당신이라면 분명 자신이 가진 최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을거에요."

유에린은 동의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자신의 선택은 옳은 것이었다.

무작정 그를 찾아가 막무가내로 조르기는 했지만 그가 받아들여 줄지는 미지

수 였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훼이의 곁에서 많은 일들을 보고 겪었다.

몇 달에 불과한 짧은 인연이었지만 훼이와  함께 했던 기억은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 그냥 빨리 떠나는 편이 좋겠지요?"

유에린은 미하에게 물었다.

더 이상은 훼이라 할지라도 유에린의 능력을 더 나아지게 할 수는 없을 것이

다. 훼이는 유에린이 발휘할 수 있는 힘의 한도내에서 최대한의 실력을 낼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기 때문에.

" 그건 당신의 자유에요. 선택을 한 것 또한 유에린. 당신의 몫이었으니까."

유에린은 마음을 굳혔다.

" 말씀 감사했습니다. 비전하."

유에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 당신의 바램이 이루어지길 바래요."

뒤돌아선 유에린을 향해 미하는 엷은 미소를 던지며 말을 건네고 있었다.

이제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 가는거야.

하지만 처음의 무기력했던 나 자신이 아니야.

난 내 바램을 이룰 수 있어....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 말이었지만 유에린은  한층 가벼워진 마음으로 걸음

을 옮겼다.

이제는 인사를 건넬 시간이다.

또 다른 자신을 일깨워준 훼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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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로서 60편째군요. 처음 생각보다 길이가 짧아 진 것 같기도.

으음...지금까지 숨가쁘게 달려왔습니다. 이제 완결의  그날도 얼마 남지 않았

는데요. 암튼 열씨미 쓸께요. 그리고 모음집은 완결과 동시에 올리겠습니다.

혹시 끝나기 전에 본 내용에 꼭 나왔으면 좋겠다 하는 것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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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분들이라면 이제 완결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피부로 느끼고 있으시겠

죠. 그래서 작은 이벤트를 하나 준비하려 합니다. 그게 뭐냐면 과연 몇편에서

완결이 될까요...^^ 오늘이 60편이니까 이 이후로 한번 계산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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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추시는 분이 없으시면 가장 근접한 분께 드리죠...^^

음...참여 하시는 분이 딱 한분일 듯...^^

읽어주셔서 감사해용 ^-^

번 호 : 2033 / 3334 등록일 : 1999년 08월 27일 00:13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148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12장 二.

흑룡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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