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장 바램...
五.
유에린은 패했다.
하지만 결코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직접 현무족의 청년과 대결을 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유에린은 그때의 오라
버니가 어떤 심정으로 그 싸움에 임했을지를 알 수 있었다.
오라버니가 늘 열망하던 강한자에 대한 동경.
그것이 그때의 싸움을 부른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유에린 역시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강한자와의 대결을 통
한 즐거움을 알았다. 그것은 훼이와의 대련 때에도 느껴보지 못했던 신선한
감각이었다.
훼이와의 대련에서 그것을 느끼지 못한 것은 어쩌면 힘의 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멋진 대결이었습니다."
현무족의 청년은 강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 결코 흔들리지 않는 자신의 신념
을 가진 그런 눈을.
유에린은 대답없이 고개를 숙였다. 비록 패하긴 했지만 자신을 얽매이게 만들
었던 집착을 벗어던질 수 있었기에 무척이나 홀가분했다.
유에린은 망설임 없이 등을 돌리고 걸어나갔다.
" 저...."
현무족의 청년은 싸움에 임했을때의 무서울 정도로 진지했던 태도와는 반대
로 머뭇거리는 기색을 애써 감추며 유에린을 불러세웠다.
" 무슨 일이시죠?"
걸음을 멈춘 유에린은 고개를 돌려 현무족의 청년을 응시했다.
" 이름을 물어도 될까요......?"
유에린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떠올렸다.
" 청룡족 유에린이에요."
그 말을 남기고 다시 걸음을 옮기는 유에린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현무족 청
년은 작게 중얼거렸다.
" 유에린....."
* * *
" 앞을 방해하는 자는 신속히 물리치고 천제의 집무실을 점거하도록."
천상계에 도착하자마자 흑룡족의 청년들에게 훼이가 내린 명령은 그것이었
다. 예전부터 자신이 생각해오던 것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 신
속한 움직임이 필요했다.
부상을 입은 몸이기는 했지만 훼이가 직접 공간을 여는 술을 써서 천제의 집
무실에 모습을 드러내는 편이 훨씬 수월한 길이었다. 하지만 훼이는 그것을
택하지 않았다.
천제의 의도는 모든 영수족을 내려다 보는 위치에 서는 것. 인간들이 그렇듯
이 그가 원하는 것은 권력이었다. 그리고 그 빌미가 되고 있는 것은 훼이 바
로 자신이었기에.
더 이상은 물러서지 않아....
언제까지고 내가 가진 이름은 용족이라는 두글자다.
용족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태어난 이상 그 이름이 가지는 자긍심을 지키기
위해 살아간다. 그것은 용족이라면 누구나 당연하게 품고 있는 생각이었다.
냉철한 판단력을 가진 푸른 물의 용인 청룡족들도, 흘러가는 자유를 품고 살
아가는 바람의 용인 백룡족도, 산개하는 불꽃처럼 격렬한 불의 용인 홍룡족
도, 중용의 자세로 모든 것을 포용하는 대지의 용인 황룡족들도. 그리고 고요
하고도 격렬한 태풍과도 같은 대기의 용인 흑룡족들도 그러했다. 각기 다른
이 다섯 용족들을 묶는 단 하나의 단어는 바로 세상을 움직이는 다섯가지 질
서를 다스리는 자인 용족이라는 말이었다.
흑룡족의 청년들은 훼이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민첩하고도 신중한 움직임
을 보였다.
공간에서 빠져나가자 마자 천상궁 안으로 하나둘씩 숨어들어갔다. 해질 무렵
이기는 했지만 아직은 햇살이 비치고 있었기 때문에 흑룡족들이 걸치고 있는
검은 색의 파오는 시선을 잡아 끌었다. 그것 때문이라도 그들은 다른 이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재빨리 행동해야 했다.
훼이는 20여명의 흑룡족 청년들이 천상궁 안으로 모습을 감추고 난 후에야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과연 이 선택이 옳은 것인지는 나도 확신할 수 없다.
다만 지금의 내 마음이 이끄는대로 움직이는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지금의 시간.... 현재의 시간을 직시하기로 한 이상 그 시간을 영유하는데 방
해가 되는 것은 없애는 것이 현명한 처사다.
훼이는 그렇게 생각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흑룡족의 누군가가 공격주문을 사용한 듯 검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공격 주문의 여파는 금새 사라지기는 했지만 훼이는 그
것을 놓치지 않았다.
서둘러야겠군.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훼이는 움직였다. 언젠가 들어선 적이 있던 거대한 상
천궁의 문을 지나치고, 수풀처럼 우거진 넓은 정원을 지나쳐 상천궁의 중심
부에 자리한 천제의 집무실이 있는 그곳으로.
[ 패사령진(覇邪靈陣) 개(開)! ]
훼이가 본궁에 도착함과 거의 동시에 방어주문을 외치는 소리가 울려퍼지며
엷은 검은 색의 막이 둘러쳐졌다. 그리고 싸늘한 빛을 토하는 은색의 칼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선들인가..... 과연 빠르군...
훼이는 어느정도의 거리를 둔채 싸움의 양상을 지켜보았다. 이미 훼이와의
대결을 통해 용족들의 방어주문이 어떤 효과를 발휘하는지를 알고 있는 검선
들은 주문의 효력을 유지시키는 체력을 바닥나게 하기위해 현란한 움직임을
보이며 칼을 휘둘렀다. 방어주문으로 몸을 보호하고 있는 흑룡족들이었지만
지금 그들의 상대는 바로 검선들이었다. 천상계의 지배자인 천제의 직속 호
위로 불리는 검선들이 가진 것은 단지 검술만은 아니었다.
영수족들과는 다른 약한 몸으로 싸워나가기 위해 천인들이 선택한 것은 오랜
수련을 통해 갈고 닦은 도술(道術) 이었다.
훼이와의 싸움때에는 쓰지 않았던 그 힘을 검선들은 다수의 흑룡족들을 상대
하기 위해 쓰고 있었다. 그녀들의 특기인 검술에 그동안 길러온 그 힘을 실
어 검을 휘둘렀다.
탁.탁.
많은 수의 인원들이 싸움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들려오는 소리는 방어주
문의 막에 검선들의 검날이 부딪히며 울려퍼지는 소리. 단지 그것 뿐이었다.
눈에 띄게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검선들은 얼굴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훼이의 힘에 의해 얻은 상처는 그리 간단히 나을 정도의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싸움을 지켜보던 훼이는 어느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모습을 드러냈다.
더 이상 시간을 끄는 것은 자신에게도 그리고 검선들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
될 것이었다.
검선들의 괴로움은 익히 알고 있으니까.....
훼이는 속으로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며 두 손을 들어올렸다.
바로 지난번의 싸움에서 보았던 대로 훼이의 두 손안에는 검은 기운이 둥글
게 뭉쳐들기 시작했다.
" 화선들은 평민 중에서 아름다운 여인들을 골라서 뽑는 자리지만 검선은
달라. 그녀들은 천제의 명에 거역할 수가 없지. 귀족의 신분이긴 하지만 그녀
들의 삶은 화선보다 나을 것이 없어. 검선으로 발탁되는 그 순간 검선의 가족
들은 천제의 볼모가 되는거야. 그리고 가족들중에 여인들은 모두 천제의 여자
가 되는 거지. 항상 그래왔어.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
야."
그것은 언젠가 수백년도 더 된 과거에 친우인 성휘로부터 들은 사실이었다.
성휘의 연인이었던 연화라는 이름의 여인이 바로 그 검선이었기에. 다른이들
에게는 여인으로서 올라설 수 있는 최상의 지위로 여겨지는 그 자리에 있으
면서도 다른 누구보다 냉정하고 감정없는 여인들이 되어야했던. 그리고 결코
행복이라는 단어를 음미하면서 살아갈 수 없었던 그녀들에게 검선이라는 이
름을 안겨준 천제.
자신을 핑계로 용족들을 자신의 아래에 두려고 하는 천제의 태도보다도 그릇
된 지배로 천상계의 모든 이들에게서 행복이라는 단어를 빼앗아가버린 천제
에 대한 분노가 지금의 훼이에게는 더욱 크게 느껴졌다.
친우의 죽음 앞에서도 그리고 그런 친우의 연인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하계로 내려가 버렸을 때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슬픔으로 가득 찬 자신의 마음을.... 끓어 넘치는 그 분노를 천상계에 폭
풍을 부르는 것으로 대신하는 수 밖에는.
지금까지의 검선들 중에서 가장 뛰어났다고 여겨졌던 전전대 천선의 장. 천의
직급을 가졌던 연화.
화선소생의 왕자 성휘와 볼모로 잡힌 가족을 위해 어릴때부터 검 이외의 것
에는 눈길조차 주지않고 자라왔던 연화와의 만남은 어쩌면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훼이 자신이 알 수 없는 인연의 힘에 이끌려 화연을 만나고... 또 화
란을 만났듯이.
" 천상계는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 찬 곳이야. 하지만 그것을 알고 있어도
떠날 수 없는 곳이기도 하지. 누구나 그렇듯 자신을 낳아준 땅은 소중한 법이
니까."
오랜만에 천상계로 되돌아와 익숙한 풍경을 보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장면을 보아서 일까.
지금의 검선들을 보며 이야기 한번 제대로 나누어 보지 못했던 그녀의 기억
이 떠오르는 이유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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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노트북으로 통신을 했는데 무척 힘들었습니다. 자판이 작은데다가 모
여 있어서 치기가 힘들었어요. 독수리 타법인 저는 더더욱...--
지금까지 다섯분이 응모해 주셨는데요. 과연 이중에 맞추시는 분이 계실 것인
가....음... 아직 하루 더 남았으니 이벤트에 참여하실 분들은 참여해 주시길...
오늘 아르바이트 하는 곳에서 아는 언니가 자기 소설을 멋지게 제본해서 가
지고 온 것을 보고 무척이나 부러웠습니다.... 우웃...나도 빨리 돈모으자!
(우흑.......나도 제본하고싶어...할꺼야! 해야지....)
우오옷....오늘 또 추천을 두 개나 받다니...감개가 무량 하옵니다....흑...
썰렁한 결말이 되지 않도록 열심히 쓰겠사옵니다...
그리구요. 외전을 써야 묻힌 이야기가 연결이 되는 것인데 지금 본편 쓰느라
정신이 없으니...원.. 외전도 기다려주시는 분들이 계시면 쓰죠..^^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아... ^-^
번 호 : 2153 / 3334 등록일 : 1999년 08월 30일 01:21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155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12장 六.
흑룡의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