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장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모든 것은 순리대로
시간이라는 이름의 강물속에
녹아든다.
그 강물은 결코
멈추지 않고
뒤돌아보지 않고
오직 앞을 향해.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대지를 통과해 흘러간다.
一.
환계의 땅은 천계와 그다지 다른 느낌을 전해주지는 않았다.
아주 어렸을 때. 어머니의 고향인 환계의 기린족의 영토를 방문한 기억을 가
지고 있긴 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희미한 기억일 뿐이었다.
유안에게는 많은 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던 기억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환계의 땅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 나도 집에 돌아가는 것은 오랜만이라....."
유안을 안내해주고 있는 것은 유안과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은회색 머리카락
을 가진 청년이었다. 흰색의 깔끔한 무복차림을 하고 있는 그 청년은 눈에
띄게 활기찬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 어때? 천계와 다를게 거의 없지?"
" 으....응."
잠시 다른 생각에 빠져있던 유안은 청년의 물음에 정신을 차리며 대답했다.
" 그런데 세인. 30년만에 집으로 돌아간다는게 사실이야?"
세인이라 불린 청년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우리 백호족들은 원래 그래. 집이라 해도 오래 머무는 곳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니까."
" 그래..... 듣긴 했지만 사실이라니 신기한데?"
걸음을 옮길때마다 유안이 걸치고 있는 긴 파오의 소매가 흔들렸다. 유안은
흔들리는 파오 자락을 바라보며 엷게 미소지었다.
백부님이 직접 성년식의 노래를 불러주실 줄은 몰랐었지....
물론 끈질기게 졸라대긴 했지만.
" 그렇다해도 넌 기린족의 피가 섞여 있으니까 환계에 오는게 처음은 아닐
텐데..."
" 아... 그게.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후계자가 되어 버렸거든. 그래서
거의 흑룡궁 안에서 지냈어. 기린족의 영토에 가본 것도 딱 한번 뿐이야."
세인은 알았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계속 걸음을 옮겼다.
" 그건 그렇고 흑룡족에게 푸른 눈이 어울릴 줄은 몰랐어."
세인의 말에 유안은 대답없이 웃어보였을 뿐이었다.
" 나도 다음에 용족 여인하고 혼인할까? 그럼 내 아이는 무적이 될텐데...."
" 그럴지도 모르지."
무척이나 진지한 어조로 말하는 세인에게 맞장구쳐 주면서 유안은 생각에 잠
겼다.
유에린은 잘 지내겠지....
성년식때 보고 그 이후로는 보지 못했는데...
벌써 12년이나 시간이 지났구나.
처음 만났을 때의 유에린은 오직 현무족과 싸워서 이기겠다는 마음만을 가지
고 끈질기게 힘의 운용법을 배우고 있었다. 그녀의 끈기는 실로 감탄할 만
했지만 결국 그녀는 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패배가
오히려 그녀에게 도움을 준 듯했다. 유에린의 얼굴에는 더 이상 굳어진 긴장
감이 떠오르지 않았기에.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유안은 유에린과 함께 지냈던 숲에서의 시간을 마음
속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보통의 일족들과는 다른 특별한 유년기를
그곳에서 보낼 수 있었기 때문에.
천계에 돌아가면 유에린의 소식을 물어야겠다고 유안은 결심하고 있었다.
" 여기야."
세인은 대나무 숲 사이로 길게 나있는 오솔길을 가리켰다.
성년을 맞이한 이후. 유안은 하계로 내려가 수행을 계속했다. 틈틈히 후계자
로서의 공부를 하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았지만 1년의 대부분을 하계에서 보
낸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로 유안은 하계의 매력에 듬뿍 빠져들었다.
그러던 중 마찬가지로 같은 곳에서 수행중이었던 20살 위의 백룡족 청년 세
인을 만났다. 1년전의 그 만남 이후로 둘은 항상 같이 수행을 다녔다. 그리고
혼자 수행을 다니던 때보다 훨씬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기에 둘은 짧은
동안 금새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되었다.
유안의 나이 112세. 지금의 유안은 애띤 소년의 티를 벗어버린 어엿한 청년
이었다. 엉덩이 까지 길게 내려오는 검은 머리카락과 흑룡족 특유의 흰 피부.
눈에 띄는 푸른색의 눈동자. 그리고 흑룡족의 후계자로서 가진 강한 힘.
지금의 유안에게는 자신의 몸 하나만큼은 충분히 지킬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과거에는 반항도 하지 못한채 쓰러져야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명계에 끌려갔었던 그리 좋지만은 않은 과거의 기억은 유안에게 더욱 강한 힘
을 구하게 만들었지만 그것은 결국 좋은 방향으로 유안을 바뀌게 했다.
" 가자."
생각에 빠진탓에 걸음이 느려진 유안을 재촉하며 세인은 손을 내밀었다.
* * *
" 함께 갈까?"
그녀의 얼굴에는 옅은 망설임의 기색이 배어 있었다.
" 지금까지 늘 혼자 갔었던건 아직 날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여겨
야 하는건가....."
한숨섞인 남자의 말을 듣고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 아니에요.... 전 단지..."
" 후.... 그래. 당신이 원하지 않는 일은 하지 않을테니까. 그냥 여기서 기다
리겠어."
그녀는 곧 자신이 방금전에 보인 태도를 후회했다. 왜 자신이 다른이에게 그
의 모습을 보여주길 꺼려하 하는가.
" 미안해요. 조금전에 한 말은...."
그리고 나서 그녀는 입가에 따스한 미소를 떠올렸다. 처음의 그녀에게선 볼
수 없었던 향기가 느껴지는 미소.
" 같이가요. 당신을 소개해주고 싶어요."
그녀는 남자의 손을 잡고 환하게 웃었다.
망설일 필요같은 건 없잖아. 그때도 지금도 내 선택이었는 걸....
" 오랜만에 돌아가는 거라 많이 달라져 있을거에요. 하지만 그곳은 지금까
지의 날 품어준 곳이에요. 꼭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비로소 남자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이제야 그녀가 진정으로 자신을 받아주었다는 생각에.
처음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자기 자신의 무모함을 얼마나 원망했던가. 만약
그때 도를 지나친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분명 그녀와의 만남은 좀 더 따뜻한
것이 될 수 있었을텐데....
하지만 후회를 하기 보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그녀에게 보여줄 것을 결심하
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겼다.
처음의 그녀는 자신을 받아주지 않았지만 끈질기게 그녀의 곁을 맴돈 끝에
지금은 그녀에게 남자로서. 그녀의 마음 깊숙이 자리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내가 그녀의 슬픔을 만든 장본인이긴 하지만 난 내 행동을 옳지 않다고
여기지 않아. 오히려 그녀를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된 그 일에 감사하고 싶을
정도야. 하지만 이 것은 그녀에게는 비밀로 해야겠지......
조용히 그녀의 곁에서 나란히 걸음을 옮기던 남자는 오직 자신만이 알고 있
는 그 생각을 지우며 여인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 빨리 가는 편이 좋겠지? 당신이 내게 보여줄 것들이 너무나 기대가 되어
서 견딜 수가 없어."
여인은 자신에게 전해지는 남자의 체온을 느끼며 엷게 미소지었다.
" 그렇다면 천계로 가는 공간을 열어줘요. 할 수 있잖아요."
남자는 잠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 그리 간단히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당신이 원한다면 해야지."
그렇게 말하며 남자는 그녀에게서 손을 풀고 공간을 여는 주문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하계에 갈때마다 사용해 오긴 했지만 그녀의 앞에서 직접
주문을 사용해야하는 기분은 왠지 보통때와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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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있으신 분들이라면 위의 남녀가 누구인지 아시겠지요..^^
이제 진짜 결말이 다가옵니다..
이번 13장 안에서 끝이 날거에요.
끝남과 동시에 모음집을 올리려고 지금 준비중입니다. 그리고 소장판 제본용
편집도 진행중입니다. 아마 9월 안에 제본을 할 듯. 제가 제본해서 드리고 싶
은 분들 아이디를 적어 놓았거든요. 다음에 메일을 보낼테니까 주소좀 알려주
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상쾌한 하루 되시길...
번 호 : 2202 / 3334 등록일 : 1999년 09월 01일 01:29
등록자 : 까망포키 이 름 : 포키 조 회 : 171 건
제 목 : [연재] 흑룡의 숲 제 13장 二. < 終 >
흑룡의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