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룡의 숲-69화 (69/130)

< 흑룡의 숲 제 2부 >

연(緣)...

제 1장. 廣 (도화)

눈을 뜨고 세상을 봐요.

생각한 것 보다 훨씬 멋지지 않나요.

가려진 진실을 보는 것은 당신의 눈이에요.

그러니까 미소를 보여주지 않을래요?

一.

" 어머니."

시하라는 용족으로서는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한 자신의 딸이 얌전하게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키는 자신과 비슷했지만 리시엔의

얼굴은 앳된 소녀의 그것이었다. 무엇 때문인지 엷은   홍조를 띄운 리시엔의

얼굴을 부드럽게 응시하며 시하라는 딸이 말하기를 기다렸다.

" 어머니 이제 저도 하계로 수행을  떠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아버지는

허락하셨는데 어머니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 그래. 벌써 그럴 나이가 되었구나."

조용히 하늘로 시선을 돌리며  시하라는 옅은 한숨을 내뱉었다.  왜 한숨이

나오는지는 모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훌쩍 자라버린 딸에 대한

아쉬움일까. 아직 성년을 맞이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리시엔이 마

냥 어리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바람을 다스리는 백룡 일족의 아이로서 리시엔은 부족하지 않게 자랐노라고

그녀는 확신할 수 있었다. 활기차고 모든 일에  열심히 매달리며 항상 밝게

웃음 짓는 리시엔을 그녀는 자애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다.

" 그래. 그렇다면 어느 곳으로 가겠다고 생각은 해 두었느냐."

" 네. 장백산으로 가려해요. 요즘  그곳에 일족들이 많이  내려가고 있거든

요. 조용하고 넓은 곳이라 들었어요. 하계에 간다면 가장 먼저 가보아야겠다고

생각한 곳이에요."

"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있다니 당연히 허락을 해야겠구나."

그녀의 대답에 리시엔은 크게 기뻐하며 웃음 지었다.

" 판유님과 함께 가려고 해요."

리시엔은 만면에 가득한 미소를 더욱 진하게 부풀리며 덧붙였다.

" 용케 허락을 얻어낸 모양이구나. 리시엔."

어머니의 말에 그녀는 멋쩍은 듯이 웃었다. 판유는 그녀와는 사촌이지만 이

미 청룡왕의 보좌관이 되기 위한 수업을 쌓는  중이었다. 청룡족 귀족 가문

의 여인과 결혼한 백부님이 청룡족의 영토에서 살고 있기 때문인지  그렇지

않으면 판유가 가진 힘이 청룡족의 성질을 더욱 강하게 띄고 있기 때문인지

는 모르지만 어릴 적부터 판유는 힘의 운용에  있어 놀라운 소질을 보였다.

청룡족이 다스리는 물의 힘은 상당히 능숙하게 다루는 경지에 이르렀고  백

룡족의 힘인 바람 또한 어느 정도 다룰 수  있었다. 보통 두 일족의 혼혈인

경우 어느 한쪽의 힘만을 사용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그의 경우

는 두 가지를 다 다루어 낼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지금  막 200살을 넘긴 나

이에 불과한 판유였지만 청룡왕의 새로운 보좌관으로 내정된 것이다.

" 오라버니...아니, 판유님과 어릴 적부터 약속한 걸요."

예전에는 곧잘 오라버니라는 호칭으로 그를 부르곤 했었는데 어느 정도  철

이 들고나자 리시엔은 오라버니 대신 판유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물론 그

의 앞에서는 여전히 오라버니라고 불렀지만.

앞으로 그가 가지게 될 신분이 약간의 거리를 느끼게 한 것일까.

" 그래. 그렇다면 더욱 한시름 놓을 수 있겠구나. 첫 수행이니  만큼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었는데 말이다."

" 그렇게 말하실 줄 알고 판유님과 약속한 거예요."

또다시 얼굴 가득 피어오르는 리시엔의 미소.

천진함과 특유의 상냥함을 담은 리시엔의 미소는 어린아이의 그것이라고 믿

기 어려울 만큼 부드러웠다.

" 그럼, 전 이만 가볼께요. 여러 가지 준비할 것이 있어요."

" 그래. 그렇게 하려무나."

리시엔은 다시 미소를 던지고는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재빠르게 모습을

감췄다.

"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나."

눈 속에 리시엔의 잔상을 새기며 시하라는 작게 중얼거렸다. 자신에게 있어

서는 언제나 어린아이였던 딸이 어느새 수행을 떠날 정도의 나이가  되었다

는 사실이 마냥 놀랍기만 했다.

시간이라는 것은 정녕 예감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흘러가는 것이었다. 그것

이 아무리 용족이라고 해도 피해갈 수 없고 피해서도 안 되는.

" 그래..."

시하라는 그 말을 내뱉고는 엷게 미소지었다.  아스라하게 사라지는 안개와도

같이 엷고 희미하게.

*            *            *

" 오라버니."

리시엔은 수줍은 기색을 애써 감추며 판유를 불렀다.

다음날이 하계로 떠나는 수행임에도 불구하고 판유는 두터운 서책 하나를  붙

잡고 그것에 매달려 있었다.

" 아.. 리시엔."

리시엔의 미소에 답하며 판유는  책을 덮었다. 어깨에 닿을  정도로 늘어뜨린

검고 윤기 나는 머리카락과 곧게 뻗은 눈썹.  그리고 조금이지만 날카롭게 느

껴지는 검은 눈동자. 리시엔은 윤곽이 뚜렷한 판유의   얼굴을 보며 떨려오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켰다.

오랜 시간 그를 향해온 자신의 시선.

동경에 불과할지 모르는 감정이지만 그를  볼 때마다 리시엔의 마음은 주체할

수 없는 떨림을 보였다.

" 어머니께서도 흔쾌히 허락  하셨어요. 역시 판유라는  이름은 대단한가봐요."

" 다행이로구나."

대답대신 리시엔은 부드러워 보이는 미소를 머금었다. 결코 그녀의 나이로 보

이지 않을 만큼 깊은.

" 첫 수행이니 가보고 싶은 곳도 많을 테지?"

" 물론이죠. 오라버니가 늘 말씀해 주셨던  산들과 강. 그리고 들판. 모든곳

에 가보고 싶어요. 그리고 인간들의 마을도."

판유의 시선은 지극히 부드러웠다.

그것은 그녀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표정이었다. 리시엔이 태어

나던 순간부터 그는 리시엔을 보아왔고  그녀의 사촌 오라버니로써 존재했던

것이다.

" 다른 곳은 괜찮지만 인간들의 마을은 멀리서 바라보는 것  이외에는 용납

할 수 없다. 이유는 잘 알고 있겠지?"

" 네. 오라버니. 하지만..."

판유의 얼굴에 엄한 표정이 드리워졌다.

" 인간과 우리는 서로 다르다. 우리는  그들의  세상을 이끌어 가는 존재지

만 인간과 우리 용족은 다른 길을 걸어가는 자들이다.   결코 그들의 삶에 관

여해서도 그들을 끌어들여서도 안 된다."

" 네. 명심할게요."

꼭 인간들의 모습을 가까운 곳에서 보고 직접 경험해 보고 싶다는 소망을 품

고 있었던 만큼 리시엔의 실망은 큰 것이었다.  그러나 판유의 말을 어기고서

까지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더욱 싫었다.

리시엔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 그리고 명심해라. 리시엔."

자신의 엄한 말투에 리시엔이 풀이 죽었다는 것을 알았는지 판유는 금새 표정

을 바꾸어 리시엔을 불렀다.

" 수행은 수행이다. 첫 수행이라 설레는 점도 있겠지만 수행을 위해 내려

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 물론이에요. 오라버니."

조금 전까지의 가라앉은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 리시엔은 금새 환한 얼굴이 되었다.

" 저도 오라버니를 이길 만큼 강해질 테니까요!"

허세를 부리듯 일부러 소리를 높이는  리시엔을 향해 판유는 오라버니로서의

자애로운 시선을 보냈다.

" 그래. 기대하고 있겠다."

언제부터인가 소리 없이 싹트기 시작한 작은 감정의 조각.

아직 어리기 때문에 진실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한다해

도 흘러 넘치는 감정의 격류는 스스로의  힘으로 조절할 수 없을 만큼  거세

고 거세게 움직였다.

*            *             *

환한 햇살이 대지를 비추며 창공위로 솟아올랐다.

보통 때와 마찬가지인 그 광경이 처음으로 천계를 떠나는 리시엔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설레는 광경으로 비치는 것은 결코 그녀의  착각만은아닐

것이다. 새로운 무언가를 만난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이 지금과는 달라질 것이

라는 사실이 리시엔에게 두근거림을 동반한 설레임을 안겨주는 것이다.

이제껏 알지 못했던 무언가와의 조우(遭遇). 그것은 우연이 될 수도 있고 어쩌

면 오래 전부터 내정되어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 하...."

리시엔은 거대하게 타오르는 불덩이와 시선을 마주한 채 크게 숨을 내뱉었다.

" 이제 출발하도록 하자."

뒤에서 조용히 리시엔을 지켜보던 판유가 입을 열었다. 판유의 나지막한 음성

이 들리자 리시엔은 마음속 가득히 퍼져가던 설레임을 어느 정도  가라앉히고

고개를 돌렸다.

환한 햇살 속에서 더욱 빛나 보이는 오라버니 판유의 모습이 그 속에서 자신

을 향하고 있었다. 리시엔은 발걸음을 옮겨 그의 곁으로 다가섰다. 그의  손에

서 펼쳐진 공간을 여는 주문을 통해 허공에 생겨난 일그러짐이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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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다시 돌아온 포키입니다. ^^

요새는 직장다니랴 글 쓰랴 정말 바빴는데요.(사실은 지금도 바쁩니다) 앞으로

더욱 바빠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

이번 이야기. 연(緣)은 흑룡의 숲 시대에서 몇 백년 후의 이야기 입니다.

뭐,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열심히 쓸 수 있도록 마구마구 닥달해 주세요.

원래는 흑룡의 숲 2권이 나온 다음부터 연재 하려고 했는데 빨리 하게 될 일

이 생겨서 ^^;

빨리 쓰라고 돌 던지세요. 그러면 시작합니다.

[번  호] 6991 / 7153      [등록일] 2000년 03월 08일 22:40      Page : 1 / 11

[등록자] 까망포키         [조  회] 141 건

[제  목] [흑룡의 숲 2부] 연(緣)...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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