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룡의 숲-76화 (76/130)

제 3장. 花(만개)

二.

막 자라난 풀이 타오르는 매캐한 향.

리시엔은 가라앉은 눈동자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벌판을 응시했다.

인간이라는 이름이 남긴 상처. 푸른빛으로 모든 것을  뒤덮고 있던 봄의 상징

은 붉은 일렁임에 의해 검게 변모했다.

처음 그들이 들판을 태우는  것을 보고 리시엔은 경악했었다.  어째서 저토록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없애려는 것일까.

그러나 오라버니 판유는 놀란 리시엔을 보고 엷게 웃으며 답해주었다.

" 인간에게는 그리 많은 것들이 주어지지 않았다. 시간의 길을 제대로 걸을

수 있을 만큼의 긴 시간도, 살아가기 위해 필연적으로 얻어야할 몇 가지를 가

질 힘도, 질병이라는 천형을 피해갈 능력도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이  가

지고 있는 것. 그것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겠니?"

리시엔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판유의 말을  곱씹으며 고민했지만 도무지

인간이 가졌다는 그것이 무엇인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보통 때의

자신은 인간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무엇을 하던 어

떻게 살아 가던지는 리시엔의 흥미를 끌지 못했었다. 단지 하계라는 이름만이

리시엔의 관심을 끌었을 뿐.

" 그것은 바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앞을 향해 나아가는 힘이다. 우리 같이

강한 힘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인간들은 자신들이 가진 의지로 모든 것을 만들

어나간다. 지금 네가 보고 있는 것도 그 일부이지."

하지만 어째서 새로 자라난 풀들을 태우는 것일까.  리시엔의 눈에 떠오른 의

문은 아직 사라지지 않은 채였다.

" 아직 모르겠니? 저건 바로 곡식을 키우기 위해 땅을 일구는 바탕을  만드

는 일이다. 저렇게 풀을 태우고 풀이 타고남은 재가 쌓인 땅을 개간해서 곡식

을 심고 키워서 인간들은 그것을 먹으며 일년을  보낸다. 그것이 인간들의 삶

이지."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계절을 다스리는

용족들이 사계의 흐름을 조정하기 위해 각자의 힘을 쏟아 붓고 모든 것을 관

리하듯이 인간들도 살아가기 위해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또 무언가를 지워  가

는 것이다.

만약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인간의 여인들은 억눌린 삶을 살고 있다

고 들었다. 무언가를 하고 싶어도 자유롭게 그것을 할 수 없다고 했었다. 직접

인간의 삶을 엿보지는 못했지만 리시엔은 그  소리만으로도 거부감이 들었다.

분명 자신이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쳤을지도 모르

는 일이다.

이제 풀을 다 태운 연기는 점점 희미하게 변하고 있었다. 몇 번이나 보아왔던

광경. 인간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쇠붙이로 땅을 파헤친다. 그러나 그것은 땅

을 망가트리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생명을 싹트게 하기 위한 그들만의 방식.

" 후...."

리시엔은 한숨을 쉬었다.

어째서 자신은 이렇게 인간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는 것일까. 다른 용족들은

모두 자신이 맡은 일을 하느라 바빠서 눈을 돌릴 시간도 없다고 하는데.

조금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과의 인연이 남기는 것은 상처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 않은가. 가장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자도 그것만큼

은 막아내지 못했었다. 그런데도 어째서 인간들의 삶을 엿보고 싶다는 생각은

사라지지 않고 있는지. 리시엔의 한숨은 더욱 깊어져만 갔다.

*            *            *

손가락을 타고 전해지는 약간의 싸늘함.

" 이건 뭐지...?"

자신의 말을 들어줄 이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렇게 입 밖으로 말을 내

뱉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었다.

찰나의 순간에 햇살에 반사된 무언가를 발견하고 수풀 속으로 허리를  굽히자

눈에 들어온 것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낯선 동물의 조각상이었다. 색은 입혀

져 있지 않았지만 충분히 아름다운, 그러나 기괴한 모양의 조각상.

손에 닿는 감촉은 매끄러움. 유약을 칠하지는 않은  듯 한데도 손바닥만한 크

기의 나무 조각상은 부드러운 빛을 품고 있었다.

' 학인가...?'

그러나 무언가 이상했다. 생김새는 학인데 다리가 하나뿐인 것이다.  처음에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것을 보고 떨어지면서 다리 하나가 부러진 것은 아닌가하

는 생각을 떠올렸지만 다리가 있었을  자리에는 매끈하게 조각된 흔적뿐이었

다. 마치 처음부터 이런 모습을 만들어내기 위해 조각을 한 것처럼.

리시엔은 손바닥에 올려놓은 기괴한 모양의 학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떤 나

무로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보통의 나무보다는 무게감이  있었다. 한동안 조각

상을 만지작거리던 리시엔은 문득 자신의 행동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 괜한 일을 자처한 게 아닐까...."

명계의 흔적은 어느 곳에서도 보이질 않고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자

신이 하계에 내려 온지도 상당히 시일이 지나있었다. 아무리 혈연관계로 이어

져 있다고는 하지만. 그리고 다른 이들이 아무런 말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백

룡족인 자신이 청룡궁에 출입하면서 그들의 일을 돕는 것은 조금 어폐가 있는

행동이었다. 지금은 아무 말도 들려오지 않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사실 마음속에는 명계의 흔적을 찾는다는 생각보다는 오라버니 판유가 자신을

한번쯤 돌아봐 줄 만한 일이 어떤 것인지를 찾고 싶다는 바램이 더 강했으니

까. 이번 일도 그저 오기를 부린 것에 불과했다. 성년식을 치루고 났어도 자신

의 힘은 그다지 커지지 않았다. 물론 성년전의  힘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가

나지만 판유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라는 힘에 불과했다. 그는 언젠가 리시엔의

앞에서 말한 것처럼 청룡왕의 보좌관으로서 조금의 부족함도 없는 힘을  가지

게 되었다. 자신은 그리 만족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 그냥 돌아가는 편이 좋을지도 몰라...'

언제까지 청룡궁에 출입하면서 판유의  옆에 있을 수는 없다.  지금은 아무말

없이 자신의 방문을 환영해주는 오라버니였지만  언제 그것이 뒤집어 질지는

모른다. 그냥 이번 일을 마지막으로 백룡 일족으로서 그에 걸 맞는 일을 찾아

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 전혀 알아주지 않으니까...'

그랬다. 자신의 시선에 담긴 마음을  오라버니는 단 한번도 읽어내지  못했다.

벌써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는데도.

" 그래. 이번이 마지막이야."

리시엔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심했다. 이제 더 이상은 오라버니의 곁에 함부

로 다가서지 않겠다고. 물론 판유에 대한 마음을  지운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멀리서 바라보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그가  가진 청룡왕의 보좌관이라는 자

리와 자신과의 거리는 더욱 넓어질 것임이 틀림없었지만.

' 한두 번도 아닌데...뭘..'

리시엔은 신발 사이로 전해지는 발을 감싸는 풀의  감촉을. 소리를 느끼며 풀

숲에서 걸어나왔다. 오른손에 쥐고 있는 기이한 동물의 조각은 그녀의 온기로

달아올라 처음의 차가움은 사라져있었다.

문득 천계로 돌아가면 오랜만에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어보아야 겠다는 생각

이 들었다. 예전에는 작은 일이라도 어머니에게 말하는 것이 일과였는데 지금

은 아니다. 혼인을 해서 다른 곳에서 살게 된  것도 아닌데 성년 이후로 자신

이 집으로 돌아간 날은 손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어졌다. 그렇다고 특별히 어

떤 일을 한 것도 아니었기에 리시엔의 마음은 조금 무거워졌다.

온 몸이 무언가에 짓눌린 것처럼 무거운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느껴

지는 싸늘한 한기. 그것은 마치 누군가가 적의를  품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자

신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눈을 뜨려고 했지만 눈꺼풀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같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 네 미래는 암담한 푸른빛으로 물들 것이다.... >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리시엔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 때문

에 몸을 흠칫하고 떨었다.

꿈인지 현실인지 조차도 분간할 수 없게 만드는 모호한 울림.

그러나 기분이 나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자신의 미래를 언급했다는

사실보다도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불길함이 리시엔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꿈이

라면 빨리 벗어나고 싶을 정도로.

< 두 번다시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

또 다시 들려오는 불길한 음성.

리시엔은 눈을 뜨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을 정도의 압

박감이 전신을 짓누르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리시엔은 눈을 뜰 수 있었다.

주위는 아직 아스라한 어둠에 잠겨있었지만 그것은 곧 새벽의 빛으로 물들 것

임을 드러내 듯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 하아....."

리시엔은 거친 숨을 내쉬며  천천히 눈동자를 움직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전신을 감싸고 있던 이유 모를 중압감도 기분 나쁜 느낌도 이미 사라져 버렸

지만 아직도 떨쳐버릴 수 없는 무언가가 남아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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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랜만에 집에 돌아왔다.. T^T

오늘은 정말 잠이 부족합니다.  빨리 비축분 만들어야 하는데..

오늘만 한잠 푹 자고 낼 회사가서(일요일인데..T^T) 밤새워서 써야지. 불끈!

즐거운,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

추천해주신 라니안58님께 감사의 절을. 꾸벅.

[번  호] 7078 / 7153      [등록일] 2000년 03월 12일 00:01      Page : 1 / 11

[등록자] 까망포키         [조  회] 96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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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룡의 숲 제 2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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