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룡의 숲-78화 (78/130)

제 4장. 靑 (초여름의 바람)

일어설 수 있다면 갈색의 대지 위에

발을 내딛었을 테지...

날아오를 수 있다면 푸른 창공을 향해

날갯짓했을 테지...

一.

카이엔은 약간의 의아함을 담은 시선으로 청년을 응시했다. 일년이 가도 사

람의 그림자조차 보기 드문 깊은 산 속에 수련으로 다듬어진 몸을 한 청년이

와 있다는 것 자체부터 놀랄만한 일이었다. 게다가  그 사람이 자신에게 용

무가 있다면 더더욱. 어떻게 자신이 이곳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찾아왔

을까라는 물음보다 자신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더욱 낯설게 다가왔다.

" 저는 황실 소속의 무반중 한 명인 도수라고 합니다."

카이엔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도수라고 이름을 밝힌 청년의 앞으로  다가섰

다. 그는 멀리서 보았을 때보다 더 선이 뚜렷한  얼굴과 남자다운 강인한 입

매가 시선을 끄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카이엔이  가지지 못한 강인함을 그

에게서 읽어내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 한구석에서 묘한 감응이  일었

다. 하지만 그것은 마음속에서 일어난 감상일 뿐  카이엔의 얼굴에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한치의 흔들림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저 무심하고 방관자적인

향기를 품은 시선을 그에게로 돌렸을 뿐.

또 다시 낮고 굵직한 울림을 담은 목소리가 카이엔에게로 향했다.

" 나흘 후부터 이곳은 황제의 사냥터가  됩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지리에

밝은 자가 누구인지 물으니 이곳에 오래 전부터 은둔생활을 하고 있는  젊은

부부가 있다고 하더군요."

카이엔은 기억할 수 없었다. 자신이 마을에 갔던 것은 아주 어렸을 무렵 부

모님과 함께 마을의 장터에 갔던 몇 번 뿐으로 그 이후에는 단 한번도 산을

내려간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때의 기억은 지금은 그저 희미하게 남아있어

서 다른 이들의 삶이 자신과 다르다는 것만을 알려줄 뿐이었다.

" 이 산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이라면 사냥의 길잡이가 되어도  좋을

듯한데 어떻습니까."

청년의 목소리는 굵었지만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의 것은 아니었다.

젊은 나이에 황실의 무반이 되었다면 지위에 걸맞는 능력을 겸비하고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로 인한 자부심도 대단할 터였다. 그러나 공손한 그의 태도

에서 그의 지위가 무반이라는 것을 내놓고 드러내는 거들먹거림은 전혀  느

껴지지 않았다. 그저 모든 것을 떠나서 눈앞에  있는 카이엔을 개별적인 하

나의 존재로 인정하고 있는 듯한 행동이었다.

카이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특유의 무심한  시선을 청년에게로 던졌다.

황제의 사냥터. 그리고 길잡이. 자신과는 평생 연관이 없을 것 같았던 두 개

의 단어가 카이엔의 주위에 둘러쳐져 있던 현실의 강을 가르며 다가서고 있

었다.

" 저는 카이엔입니다."

느릿한 어조로 말을 꺼내는 카이엔을 직시하면서 도수는 소탈한 미소를  떠

올렸다. 직감적으로 카이엔이 말수가 적은 이라는 것을 알아챈 것이리라. 그

리고 방금의 말에는 자신의 제안에 대한 수락이  담겨 있다는 사실도. 그는

그 동안 자신이 직접 경험해왔던 녹록치 않았던 시간을 통해 외모만을  보고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왔다. 그 이후로 그는 어떤 사람

을 대하던 간에 예의를 지켰다. 자신보다 나이가 적건 많건. 지위가 높건 그

렇지 않건 간에 그의 태도는 항상 같았다. 그리고 그 때문에 그는 어린 나이

에 무반의 자리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주위의 따가운 눈총대신 지위에  걸

맞는 타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 황제의 사냥터가 되면 산의 입구 부근에 막사를 만들고 며칠 동안 머물

게 될 겁니다."

카이엔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누가 와서 무엇을 하던 간에 별 관심은  생기지 않았다. 특별히 그들

이 자신의 삶 속에 끼여들지 않는다면. 그리고 끼여든다 해도 상관  없었다.

어차피 그들은 잠시동안 머물다 떠나갈 바람일  뿐일 테니까. 카이엔은 느릿

한 몸놀림으로 툇마루 앞으로 다가섰다. 도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앉은 채

시선만을 돌려 카이엔이 다가서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감추려하고

있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카이엔에 대한 흥미가 떠올라 있었다. 어려 보이는

외모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에 떠올라있는 관조적인 표정이 무척이나 어울

리지 않는 듯 하면서도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 도수의 흥미를 끌고 있는

것이다. 나이가 어리기로  말하자면 자신도 마찬가지였지만  카이엔은 그런

자신을 가볍게 뛰어넘을 정도로 특이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 다른 분들은 계시지 않습니까?"

도수는 카이엔이 툇마루에 올라서는 것을 바라보며  물었다. 자신이 듣기로

는 분명 이곳에 젊은 부부가 살고 있다고 했었다. 그것이 몇 년전의 일이라

고 하니 분명 젊었던 부부도 어느 정도 나이가 들었을 것이었다. 젊은 부부

라고는 하지만 카이엔이 혼인할 정도의 나이로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는 자연스럽게 부모의 존재를 떠올렸다.

도수의 질문에 카이엔은 잠시 동작을 멈추고 물끄러미 그를 응시했다. 얼굴

에 비해 너무나도 깊고 관조적인 그의 검은 눈동자에는 아무런 감정도 떠올

라 있지 않았다.

" 혼자 뿐입니다."

카이엔은 짧게 답하고 다시 몸을 움직였다. 카이엔의 손에 의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방문이 열렸다. 그 안에는 낡은 서랍장 하나와 작은  반상하나.

그리고 책걸이 속에 담긴 십수권 가량의 책이 놓여 있을 뿐 그 이외의 것은

없었다. 무척이나 검소한 꾸밈새였다. 왜 이런 인적이 드문 곳에서 살고  있

는지 도수는 묻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답지 않은 망설임 이

었지만 카이엔 이라는 소년의 지나치게 관조적인 눈동자가 도수의 자신감을

붙잡아 두고 있었다.

" 오늘 하루 이곳에서 머물러도 되겠습니까."

밖에 있는 도수의 존재를 잊은 듯 방안으로 들어선 후 문을 닫으려던 카이

엔에게 그는 말을 걸었다. 별빛만이 희미하게 길을  비춰주고 있는 깊은 밤

에 산길을 내려가는 것은  아무리 무반인 도수라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곳을 찾는데만 해도 오늘 하루를 거의 다  소진하지 않았던가. 익숙한 길

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곳에서 함부로 움직이는 것은 현명한 행동이 아

니었다.

" 들어오십시오."

그 말을 건네고 나서 카이엔은 문을 열어둔  채로 방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방안에 들어오는 것도 다시 돌아가는 것도 모두 도수의 선택일 뿐이라는 듯

이 일말의 여지조차 남겨놓지 않는 카이엔의 행동에 도수는 다시 한번 깊은

흥미를 느끼며 얼굴에 미소를 떠올렸다.

이런 흥미를 느끼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다. 지금까지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현실 속에 대응하기 위해 얼마나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왔던가. 주위의 것에

눈을 돌릴 여유도. 그렇다고 스스로 한가한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한 적

도 없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렇게 의외의 장소에서 예상도  하지 못했던

존재를 만나게 되었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라고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무언

가가 있는 것 같았다.

끼익.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음에도 불구하고 낡은 문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수는 문고리에서 손을 떼고 방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방안은 문밖

과 별다른 차이가 없을  정도로 희미한 불빛만으로 밝혀져  있었다. 그리고

그 한 구석에 조용히 등을  기대고 앉아 있는 카이엔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오른손으로 턱을 괸 채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도수는  그런 카이엔에게로

시선을 향한 채 조용히 몸을 숙였다. 검소하지만 깔끔한 방안은 초라하다기

보다 고즈넉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전해주었다. 그리고  확실히 방안에서 카

이엔 이외의 누군가가 머물고 있다는 자취는 찾아볼 수 없었다.

" 저는 올해로 스물 다섯입니다만..."

도수는 물끄러미 카이엔에게로 시선을 던지며 물었다.  그러나 카이엔은 여

전히 눈을 감은 자세 그대로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얼핏보면 잠이

든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요한 적막이 이어졌다. 한참동안 카이엔의 대답을  기다리던 도수는 대답

을 듣는 것을 포기한 채 잠자리를 만들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 스무 살입니다."

그리고 대답은 갑작스럽게 들려왔다. 카이엔에게는 다른  이들을 놀라게 만

드는 특이한 재능이 있는 것 같았다. 도수는  속으로 카이엔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며 다시 그를 응시했다. 절대로 스무 살로는 보이지 않는 얼굴. 카이엔

에게서 스무 살의 청년이라는 느낌보다 열  일곱 정도의 소년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며 도수는 눈꺼풀  속에

감추어져 있던 카이엔의 검은 눈동자와 시선을  마주쳤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그 눈동자는 도저히 스무 살의  청년이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 고요하고 한산한 산 속에서. 카이엔의  부모는

대체 어떻게 되었을까. 불과 반시진도 되기 전에  카이엔과 처음 만난 사람

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도수의 마음속에 피어오르는 의문은  점점

그 수를 늘려가고 있었다.

" 이곳에서 주무십시오."

다시 움직일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던 카이엔의 입술이 작게 움직이며 말

을 토해냈다. 그리고 카이엔은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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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도 작업 때문에 밤새워 회사에 있는 불쌍한 인생.,,,ㅠ.ㅠ

하지만 이것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해방의 그 날을 기다리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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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호] 6884 / 7360      [등록일] 2000년 03월 13일 00:56      Page : 1 / 11

[등록자] 까망포키         [조  회] 175 건

[제  목] [흑룡의 숲 2부] 연(緣)... -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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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룡의 숲 제 2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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