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룡의 숲-87화 (87/130)

제 7장. 微(잔향)

당신의 미소는

무엇을 위한...

무엇을 향한...

누구에게 전하는 미소입니까?

一.

리시엔은 망설였다.

굳게 마음을 먹고 찾아오긴 했지만 더 이상 발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과연 자신의 마음을 드러냈을 때 오라버니는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진심

으로 내보인 자신을 알아 줄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난처한 웃음을 떠올릴 것

인가. 리시엔은 후에 나올 결과가 두려워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한참을 망설이다 이제 이런 식으로 청룡궁에 찾아오는 것은 마지막이라고  스

스로를 달래며 리시엔은 걸음을 옮겼다.

" 후.."

판유가 쉬고 있을 다실(茶室) 앞에서 한동안 리시엔은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마음을 정하고 찾아오긴 했지만 막상 문을 열려하자 가슴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두방망이질 쳤다.

다실의 연한 갈색 손잡이를 붙잡은 채 리시엔은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그러

다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 오라버니...."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문을 열자 정교한 난초의 모양이 음각 되어있

는 탁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시선을 약간 위로 올리자 그와 같은 모양이

새겨진 의자에 앉아 탁자  위에 손을 올려놓은 채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판유

의 모습이 있었다.

" 리시엔이로구나."

" 매번 연락도 없이 찾아와서 죄송해요."

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꺼내자 판유는 괜찮다는 듯이 엷게 미소 지으며

리시엔을 반겨주었다. 그 작은 따스함에 리시엔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리시엔은 조심스럽게 의자에 몸을 앉히고 판유를 바라보았다. 처음 보았던 그

때와 별반 달라지지 않은 단정한 얼굴. 선이  뚜렷한 강인한 인상의 오라버니

판유는 과거에도 그랬듯이 한번 보면 잊혀지지 않을 만큼 깊은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 안색이 그리 좋지 않은 듯 한데 그 동안 하계에서 너무 무리한 것이 아니

냐?"

판유는 갑작스레 찾아온 사촌 동생에게 화조차 내지  않았다. 그저 걱정이 담

긴 음성으로 감싸고 다독여줄 뿐.

" 오라버니.... 드릴 말씀이 있어요."

리시엔은 그런 판유의 따뜻함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지금 자신이  마음 속에

품고 있는 말을 한다면 과연 그 따스함이 그대로 남아있게 될 것인지가 궁금

했다.

" 명계에 대한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어도 괜찮다. 내려간 자중 무언가를

찾아낸 자는 아무도 없으니까."

" 그 일이 아니에요."

리시엔이 답하자 판유는 리시엔의 말을 기다리듯 조용한 시선으로 그녀를  응

시했다.

견딜 수 없는 안타까움. 그리고 괴로움. 가슴속을 휘젓는 두 개의 감정은 어느

새 커다란 물결이 되어있었다.

" 저는.... 오라버니가 좋아요."

먼저 다른 말을 하려고 있었는데 어떤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입술이 스

스로의 움직임을 가지고 뱉은 말일 뿐.

판유의 얼굴에서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리시엔이

그런 말을 하리라고 짐작한 것처럼.

그러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판유는 씁쓸함이 담긴 미소를 지으며 리시

엔을 응시했다. 그의 눈동자에 담긴 것은 당혹도  불쾌감도 아닌 동생을 생각

하는 자상한 따스함이었다.

" 글세...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 어째서 그런 표정을 짓는 건가요'

무언가가 달랐다. 자신이 생각한 그 어떤 것과도 달랐다. 저렇게 자신을  배려

해 주는 눈빛을 기대한 것이 아니었다.

" 네가 나를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는 잘 알겠다. 하지만 난.. 과거에도 그리

고 지금도 널 소중한 동생으로 여긴다."

' 그 대답이 아니에요.'

리시엔은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온 한숨을 애써 삼켰다.

" 그리고 리시엔. 나도 마음에  담아둔 누군가가 있다. 무엇보다 내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해왔어. 그 때문 일거야."

판유는 잠시 말을 멈추고 따뜻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 다른 무엇도 생각할 여유가 없었으니까."

그러나 그 미소는 어딘지 모르게 공허함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리시

엔에게 그것을 읽을 여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 알고 있었어....'

지금의 기분을 어떤 말로 표현하면 좋을까. 세상에  태어나 지금껏 단 한번의

슬픔도 고통도 느끼지 못했던 그저 어린 자신에게 다가온 최초의 아픔인 것일

까.

분명 이곳에 와서 오라버니에게 말을 꺼내면 어떤 대답이 나올 것인가는 생각

했었다. 거절을 할 수도 있고 받아 줄 수도  있다고. 그러나 무언가가 달랐다.

아무리 거절을 예상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 말이 가진 의미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깊었다. 오랫동안 판유를 생각해오고 바라보았던 모든 애틋함과 사

모의 감정들이 이제는 혼란을 부추기는 걸림돌이 되었을 뿐.

" 네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받아줄 수는 없구나."

지금의 느낌을 무엇으로 설명하면 좋을까.

상실감이라는 단어만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역류.

" 판유님. 청룡왕께서 찾으십니다."

정중한 목소리가 울리고 곧이어 판유는 몸을 일으켰다.

" 미안하다. 지금은 배웅도 해줄 수 없을 것 같구나."

리시엔은 망연한 시선으로 문을 빠져나가는 판유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그가

걸치고 있는 청룡족을 상징하는 푸른색의 파오가 멀어진 거리처럼 낯설게  다

가왔다. 분명 판유의 몸 속에 흐르는 피의 반은 백룡의 것인데도.

*            *            *

수행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하계에 내려온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저 마음이 내키는 대로 움직이다 보니 도착한 곳이 하계였을 뿐 장

소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하다못해 명계라고 해도 천계에 있는 것보다는 마

음이 편할 것이다.

지금의 리시엔에게는 오라버니 판유와 같은 하늘 아래서 숨을 쉬고 있다는 것

자체가 괴롭고 힘들었다.

도착한 곳은 처음 밟아보는 땅이었다. 아직 어렴풋하게 봄의 기운이 남아있었

지만 이제 곧 홍룡들이 가져올 여름이 코앞에 다가왔다는 것이 느껴지는 따스

한 날씨. 그리고 온통 푸르게 들어찬 초목과 꽃들. 싱그러운 풀의 향기가 공기

에 묻어나고 있었지만 리시엔은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리시엔의 마음은 황량한 겨울 산의 모습처럼 식어 있었다.

처음으로 마음을 주었고 지금도 잊혀지지 않을 만큼 깊이 담아두고 있는데 어

째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도망치듯이 아무도 없는 청룡궁의 다실에서 빠져 나온 그 순간부터  리시엔은

보통 때처럼 아무렇지 않게 웃을 수 없었다.  그때 오라버니가 보여주었던 따

스한 미소가 자신의 미소를 가져가 버린 것 같았다.

항상 변함없이 아름다운 푸른색의 하늘과 한가로이 흘러가는 구름조차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지는 못했다. 주위의  어느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어떤

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예상했던 일을 겪었을  뿐인데도 마음은 전혀 나아

지지 않았다.

[ 개문(開門) 풍(風) ! ]

어느 순간 굳어져 있는 것처럼 아무런 움직임조차 보이지 않던 리시엔의 몸에

서 폭발적인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것은 곧 바람을 부르는 힘이 되

었다. 리시엔은 눈앞에 보이는 나무숲을 향해 방금  불러낸 바람의 힘을 내보

냈다. 그러자 금방이라도 휘어질 듯이 굵은 나무 기둥이 흔들렸다. 자신도  의

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리시엔은 자신이 가진 마력을 모두 담아내어 바람을 불

러낸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을 깨달았지만 리시엔은 바람을 거두지

않았다. 답답함으로 가득 찬 마음을 털어 버리려는 듯이.

" 이건......."

두 번째였다. 리시엔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어째서 유약 조차 바르지  않은

나무에 불과한데 자신의 눈에는 마치 반짝이는 보석처럼 금방 눈에 띄는 것일

까. 그것도 풀로 가득한 숲 속에서.

리시엔은 허리를 굽혀 바닥에 떨어져 있는 나무 조각을 집어들었다. 느껴지는

것은 지난번과 같은 매끈함.

이상한 일이었다.

시선이 닿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는 기괴한 형상의 조각이었음에도 불구하

고 그것을 손에 쥐는 순간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리시엔은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던 나무 조각을  조심스레 들여다보았다. 그렇

게 하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몸을 꿈틀거리며 달아나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

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기괴한 조각은 섬세하고  소름끼칠 정도로 아름다웠

다. 여섯 개의 다리와 두 쌍의 날개를 단 뱀의 모습. 그리고 금새 독기를 뿜어

낼 듯이 날카롭게 찢어진 눈동자. 색을 칠했다면  실물로 착각했을 만큼의 정

교함이었다.

리시엔은 조각을 이리저리 돌려보면서 생각했다. 과연  이것이 실재하는 동물

의 형상일까. 그렇지 않다면 어느 누가 상상해서 조각을 한 것일까. 하지만 조

각을 보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을 만든 자가 모습을 드러내

지 않는 한 의문은 풀리지 않을 것이다.

리시엔은 자신에게 주어진 두 번째의 기이한 선물을 가만히 손에 쥔 채 나무

에서 퍼져나오는 매끈함을 느꼈다.

주) 개문(開門) 풍(風) - 백룡족들에게  가장 기본적으로 많이 쓰이는  바람을

부르는 주문으로 각자가 가진 마력의  크기에 따라 작은 산들바람이 될  수도

태풍처럼 거센 바람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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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울님과 제이슨님을 뱀파 언니와 함께  만났습니다. 제이슨님은 가정

을 지키기 위해 빨리 돌아가셨지만 저랑 뱀파 언니, 어울님은 함께 식사도 하

고 술도 마시고 했어요. 그러면서 우리도 작가 대전을 하자고 마구 졸랐죠. 어

울님은 이제 곧 오마이갓 완결 이기 때문에 완결 빨리 하는 사람도 상 주자고

하시네요 ^^ 빨리 모시도 꼬셔서 소울러드라딘 완결까지 쓰라고 해야지.

드레이안때부터 항상 꾸준히 써오시던 제이슨님도 이번 스페이스(역시 매일연

재 하고 계시지만..)로 같이 하자고 조를 생각입니다. 우리는 술 내기 말고 돈

걸고 상금 내기로 하자는 의견이 있군요. 후후후.. 돈 *_*

뱀파 언니도 빨리 판타리아 쓰라고 독촉을 해야하는데... 우리 집에 머물고 있

으니 제가 또 발목을 잡은 셈입니다. ^^;

웃..며칠째 계속 배가 아픈 것이 장이 꼬인 것 같아요... -_-;

[번  호] 7082 / 7360      [등록일] 2000년 03월 20일 00:08      Page : 1 / 11

[등록자] 까망포키         [조  회] 149 건

[제  목] [흑룡의 숲 2부] 연(緣)... - 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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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룡의 숲 제 2부 >

연(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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