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룡의 숲-91화 (91/130)

제 7장. 微(잔향)

五.

" 경하 드립니다. 흑룡왕전하."

만면에 미소를 가득 띄운 채  하객들의 인사에 답하는 유안의 얼굴에는  소년

같은 순수한 기쁨이 떠올라 있었다.

아버지였던 전대의 흑룡왕 라이엔이 지금의  나이에 자신을 후계자로 정했던

것을 생각하면 자신의 혼인은 무척 늦은 편이었다.  그러나 유안은 불안을 느

끼지 않았다. 자신이 후계자의 자리에 있던 때부터  곁에는 항상 가장 오래되

었으며 가장 강한 자 훼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훼이의 그림자 때문에 혹여

라도 힘을 단련하거나 왕의 업무를 게을리 하지는 않을까 하고 장로들은 걱정

을 했었지만 오히려 유안은 훼이 덕분에 힘을 키우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

었다.

" 하루 빨리 후계자를 보시기 바랍니다."

장난스럽게 웃으며 31대 홍룡왕 자미가 말했다. 전대 홍룡왕의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왕위를 가장 빨리 계승한  자미는 벌써 두 명의  아이를 낳았다. 또한

여성 용왕들이 많기로 유명한 홍룡족답게 당대의 홍룡왕 자미도 강한 힘을 가

진 당당한 여인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홍룡족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라도 하

듯이 직접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여 왕이 된 이후에도 하계에 자주 내려

가는 편이었다.

" 어떤 후계자가 탄생할지 기대하고 있을 테니까요."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듣고 유안은 피식하고 웃고 말았다. 다른 이들도 말

은 하지 않았지만 처음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같은 것을 떠올리고 있었던 것

이다. 자신처럼 다른 종족과 피가 섞인 자들은 으레 용족과 혼인을 하기 마련

이었다. 아무리 영수족의 피가 강인하다고는 하지만, 용왕의 힘이 계승식을 통

해 전해진다고는 하지만 유안과 경우가 비슷했던 다른 이들은 당연한  것처럼

용족과 혼인을 했었다. 그러나 유안은 달랐다. 자신의 아이에게는 용족의 피가

삼분의 일밖에 흐르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다음대의 흑룡왕이  되기에는

부족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후손

을 문제로 자신의 마음을 차지한 여인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 염려 놓으십시오. 아이가 태어나면 다른 용왕들을 모두 부를 테니."

" 어쩌면 내기를 할 지도 모르겠군요."

자신과 흑룡왕비가 된 시령에게 인사를 건네는 하객들에게 일일이 답을  건네

느라 유안은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하객들의 말에 한마디도 빠짐

없이 대답을 하는 자신과 달리 시령은 고고한 난과도 같은 표정을 지은 채 고

운 하늘빛 궁장의 옷자락을 가만히 움켜쥐고 있었다.  아닌 것 같아도 그녀는

갑작스레 많은 이들의 방문을 접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지도 몰랐다.

" 힘들지는 않은지 모르겠군. 시령."

자신들에게로 다가와 말을 거는 하객이 없어진 틈을 타 유안은 시령에게 고개

를 돌리며 물었다. 놀랄 정도로 차분한 표정을 내보이고 있던 시령은 작게 웃

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 생각했던 것보다는 예식이 간소해서 안심이에요."

유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왕의 계승식이나 성년식이 화려하게 진행되는  것과 달리 혼인식은 하객들을

모아놓고 인사하는 정도에 그친다. 혼인이라는 절차는  힘의 계승이나 개화를

위한 의식이 아니었기에 자신들이 부부가 되었다는 사실을 모든 이들에게  알

리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었다.

" 늦지 않고 온 것 같군."

귓가를 스치는 반가운 목소리에 유안은 함박웃음을 머금고 몸을 돌렸다.

" 오라버니!"

그리고 유안의 옆에서 말없이 미소만을  짓고 있던 시령 역시 크게  소리치며

바람처럼 몸을 날렸다.

눈앞에 선 것은 수십 년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이었다. 온다간다 말도 없이 모

습을 보였다 사라지곤 하는 백호족 세인. 오백년 전에 자신과 처음 인연을 맺

었을 때 그랬던 것처럼 그는 자신의 피가 불러들이는 방랑의 세월을 당연하다

는 듯이 즐기며 지금까지 시간을 보내왔다.

" 정말 오랜만이야. 세인."

" 나도 용족과 혼인하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네게 선수를 빼앗겨 버렸구나."

유안의 반가운 인사에 밝은 웃음으로 답하며 세인은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

다.

" 오라버니가 오시지 않는 줄 알고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아세요?"

" 지금까지 하계에 있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지 뭐냐."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며 웃어  보이는 세인을 시령은 얄밉다는 듯이  흘겨보았

다.

" 천방지축인 시령을 흑룡왕비로 삼을 생각을 다 하다니...."

세인은 유안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리며 안됐다는 듯이 말했다.

" 자네만큼은 아니니 염려하지 않아도 좋아."

유안의 대답을 듣고 무척이나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 보인 세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저었다.

" 확실히 세월이 약이로군. 고지식하던 자네가 이런 말을 다 할 줄이야."

" 지금과 같은 말은 자네에게도 어울리지 않아."

오랜만의 재회에 한동안 선 채로 이야기를 나누던  세인과 유안. 그리고 시령

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자리를 옮겼다.  오전부터 이어진 흑룡왕의 혼인

식은 이제 연회로 이어지고 있었다.

*            *            *

두 번의 천년을 지내는 동안 단 한번도 그의 몸에서 벗어난 적이 없던 아무런

무늬도 없는 검은색의 파오는 푸르게 빛나는 물살을 뒤로한 채 발걸음을 옮기

고 있는 훼이의 몸에 언제나처럼 자연스럽게 걸쳐져 있었다.

푸르고 맑은 호수는 그 속에 잠겨 있는 작은 돌들과 유유히 물살을 가르며 헤

엄치는 물고기들의 모습까지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훼이의 눈에 비치

는 것은 그것이 아닌 수면에 투영된 하늘이었다.

청룡족들의 영토에 존재하는 거대한 호수는 잔잔하게 물결치며 그 속에  하늘

을 담아냈다. 물의 빛깔과는 다른 빨려 들어갈 듯한 몽롱한 푸른빛. 그리고 하

얗게 피어오른 구름의 조각들.

더 이상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훼이는 점점

다른 이들의 생활 속에서 겉돌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어쩌면 그것은 집착이라는 단어로 얽어맬 수 있는 무언가가 사라졌기  때문인

지도 모른다. 자신의 몸은 이미 용족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단계에 다

다라있다. 허나 그것이 전부가 될 수는 없는 법. 마음의 빈 구멍을 메꿀 수 있

는 것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 비........."

그 때문일까.

오래고 오랜 과거에 자신의 곁을 떠난 아들의 이름이 자신도 모르게 입술 사

이로 흘러나온 것은.

자신의 피를 이은 유일한 존재. 짧은 생을 살았기에 더욱 그립게 다가오는 작

은.... 아들의 이름.

지난 오백년 동안 마치 아들처럼 자신의 곁에 머물러 있던 유안에게 깊은 정

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것만으로 훼이의 마음을 채울 수는 없었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혈육이라는 이름의.  깊은 혈연으로 이어진 관계는  결코

세월로도 끊을 수 없을 만큼 길고 끈질긴 것이라고. 또한 진정한 부모의 역할

을 채 완수하지도 못한 채 아들을 떠나보냈기에 안타까움은 더욱  깊어졌는지

도 모른다.

' 아버지!'

금방이라도 아들의 목소리가 자신을 부를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검고 맑은 눈

동자로 자신을 응시하며 큰 소리로.

그랬다. 기억 속의 비는 언제나 자신을 향해 환하게 웃음 짓는 그런 아이였다.

할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사실에 절망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는 훼이를 위로하려는 듯이.

벌써 그때로부터 천년이라는 시간조차 넘어선 긴  시간이 흘렀다. 용족에게도

기나 길다고 여겨지는 천년의 시간. 그 오랜 과거의 그림자 속에 남아있는 아

들의 얼굴은 결코 지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선명하게

빛을 발하며 되살아날 뿐.

어째서일까? 어째서 이토록 강하게 자신을 붙잡는 것일까.

정녕 시간은 모든 것을 지우지 않는 것일까. 세월이 모든 것을 치유해주는 약

이라는 것은 거짓인지도 모른다.

훼이는 씁쓸하게 웃었다.

비의 존재를 잊기 위해 다른 누군가와 혼인을 하고 아이를 얻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훼이는 단 한번도 그런 방법을 생각하지  않았다. 마음 한구석이 무거

운 돌로 짓눌린 것처럼 아래를  향해 곤두박질 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

다. 그랬기 때문에 동생의 아들 유안에게서 만족을  얻지 못하고 이렇게 과거

를 되새기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나 훼이의 기억에 남아있는 아들 비는 작은 어린아이였다. 성년식

을 치르고 난 후에도 항상 아들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던 그저 어리기만 한 비

의 모습. 그것이 과거였다.

" 비.........."

훼이는 또 다시 아들의 이름을 내뱉었다.

물살을 퍼트리던 옅은 바람이 그 소리를 싣고 어디론가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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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들어갈 회사(코믹월드)의 인수를 받고 있는데... 회계라. 정말 어렵군요.

전 숫자가 제일 싫다구요..T^T

앞으로 그 엄청난 돈을 만질 생각을 하니... 우앗..머리아퍼.

에잇. 빨리 뒷 얘기나 쓰자..

모두들 안녕히 주무시와요. 꾸벅.

[번  호] 7197 / 7360      [등록일] 2000년 03월 24일 10:40      Page : 1 / 10

[등록자] 까망포키         [조  회] 99 건

[제  목] [흑룡의 숲 2부] 연(緣)... - 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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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룡의 숲 제 2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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