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룡의 숲-94화 (94/130)

< 흑룡의 숲 제 2부 >

연(緣)...

제 8장. 片(부서지는 향기)

三.

" 자네는 조금도 늙지를 않는군."

도수는 굳은살이 가득 배인 손을 올려 카이엔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모

르는 자가 본다면 그 모습은  마치 아버지가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보일 것이었다. 아무런 의심 없이.

" ....그래..?"

카이엔은 세월의 무게를 몸에 가득 새긴 채 해가 갈수록 늘어가는 주름에 덮

인 수의 얼굴을 응시했다. 나이에 비하면 그리  주름이 많은 것도 아니었지만

카이엔은 그것이 생소했다.

" 알고 있나. 모두들 수군거리고  있어. 일국의 재상을 자네처럼 어린  자가

맡아도 되냐고 말이야. 모두 내막을 모르는 갓  들어온 병사들이나 일반 사람

들이 하는 말이지만."

카이엔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도수와 함께 황궁에서 일한 지 이제는 삼십 년이 되어간다. 처음에는 책을 좋

아한다는 말 때문에 궁정의 기록을 담당하는 사관 중 하나로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 이제는 관록이 쌓여 재상의 자리까지 준 것이다. 재상의 자리에 오른 것

은 작년의 일로 카이엔은 무리 없이 그것을 해  오고 있었다. 다른 이들이 보

기에는 이상하게 비칠지 몰라도.

' 그래... 그럴지도...'

과거로부터 우정이라는 단어로 엮여있던 도수였기에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

과 말투로 카이엔에게 지금의 정황을 말해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자신

도 알고 있었다. 아무리 둔한 자라고 해도 주위의 모든 이들이 자신에게 시선

을 던지며 말을 하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면 그것이 더욱 이상할 것이었다.

어머니를 닮은 갸름한 얼굴 선과 처음부터 나이에 비해 어려 보였던 얼굴. 그

것은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조금도 퇴색하지 않은 채 카이엔을 감

싸고 있었다.

무언가 이상했다.

자신은 분명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다가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과거에 처음 도수와 만났을 때의 얼굴에서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도수의 얼굴은 이제 중년의 무장이  가지고 있는 위엄 있는 것으로  변했지만

자신은 아니다. 여전히 스무 살로도  보이지 않는 어린 얼굴을  한 채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카이엔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기이한 감정을 느꼈다. 어

쩌면 어머니의 실종이 자신의 모습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어디에서도 어머니를 찾을 수 없다. 어느 날  갑자기 모습을 감추었던 것처럼

어머니의 존재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오직 카이엔

단 한 명의 기억 속에서만 살아 숨쉬는 채.

'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지.......?'

*           *            *

" 재상. 황제께서 부르십니다."

언제나의 일과처럼 업무를 마치고 자신의 처소로 돌아온 카이엔은 어제  읽다

가 다 보지 못한 책을 펴들고 의자에 앉아 천천히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이제 자신의 방에도 제법 많은 책들이 꽂혀 있어 눈을 심심하지 않게 만들고

있었기에 카이엔은 흡족함을 느꼈다. 빽빽하게 꽂힌 자신만의 서가를 보는 것

은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포만감을 안겨 주었다.

" 곧 가겠다."

불과 몇 장 밖에 읽지 못한 책을 다시  덮어두고 카이엔은 몸을 일으켰다. 아

직 몸에 걸치고 있던 의관도  벗지 않은 상태였는데 황제가 자신을  불렀다면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황궁의 다른 건물들에 비하면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다섯 채의 건물을 빠져

나가 향기로운 꽃으로 가득 찬 한 개의 화원을 통과하자 수십 명의 사람을 세

워놓아도 닿지 않을 듯이 높은 붉은 색의 기둥이 나타났다. 그것은 황제의 거

처를 떠받치고 있는 너비와 길이 모두가 거대한 기둥이었다. 오래도록 나라를

보존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고 하는데 카이엔의 눈에는 그것이 권력의 과시

이외의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 재상께서 드십니다."

꿈틀거리며 비상하는 여의주를 쥔 용의 모습이 새겨진 커다란 문 앞에 다다르

자 그 앞에 서 있던 네  명의 병사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카이엔의  등장을

알렸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약간의 마찰음을 내며  문이 움직였다. 손질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다면 분명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냈을 것이 분명한 문의 모습에

잠시 시선을 던지고 나서 카이엔은 안으로 들어섰다.  바닥에 깔린 붉은 색의

두터운 천은 발소리를 없애 주었다. 그 천이 끝나는 곳에는 십 수개의 계단이

있고 그 위에 황제가 앉는 태사의가 있다. 보통 때라면 양옆에 곱게 차려입은

여인들이 시중을 들기 위해 자리하고 있었을 테지만 이상하게도 지금은  황제

혼자만이 태사의에 몸을 묻은 채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계단 앞까지 걸음을 옮긴 후 카이엔은 고개를 숙였다.

" 부르심을 받들어 왔습니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리자 화려한 금색의 정복을 입은 젊은 황제의 모습이 보

였다. 건강해 보이는 옅은 황색의 피부와 짙고 검은 눈썹. 단호한 입매를 가진

황제는 아버지의 용모를 그대로 물려받아  무척이나 남성적인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얼굴에 담긴  것은 아버지와 같은 우직함이  아닌 속을 알

수 없는 모호함이었다. 오른 손을 턱에 괸 채  조용히 자신을 향해 시선을 던

지고 있는 황제의 모습에 카이엔은 불연 듯 마음속에서 불안함이 일어나는 것

을 느꼈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황제는 상당히 머리가 좋았다.

" 내가 오늘 이렇게 그대를 청한 것은...."

황제는 잠시 말을 멈추고  카이엔의 표정을 살폈다. 그러나  카이엔은 아무런

표정도 떠올리지 않고 있었다. 어떠한 감정의 자락도 찾을 수 없을 만큼 굳게

단련된 그 표정은 지난 수십 년의 세월동안 카이엔의 얼굴을 따라다닌 그림자

와도 같은 것이었다.

" 그대에게 말해두고 싶은 것이 있어서다."

" 삼가 경청하겠나이다."

황제는 입술을 희미하게 옆으로 당기며 웃음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미미한 것이어서 가까이 다가서서 보지  않으면 웃음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

다.

" 그대의 나이가 올해로..... 마흔 아홉이었지...."

" 그렇습니다."

묻는 자와 답하는 자 모두가 아무렇지 않게 말을 주고받았다.

황제는 자신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재상 카이엔을 응시하며 아버지의 말을 회

상했다.

- 꼭 그를 네 곁에 잡아 두어라. 그 까닭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될 것이

다. -

아버지가 유언으로 남긴 것은 자신이 이루지 못했던 잃어버린 땅을 되찾는 것

도 아니고, 어진 왕이 되라는 것도 아닌. 수십 년의 세월 속에서도 그  시간을

넘겨보낸 존재를 붙잡으라는 것이었다.

" 그대 재상 카이엔. 이 자리에서 내게 약조해주게...."

카이엔은 묻지 않았다.

" 앞으로 나와 내 아들이 이어갈  이 나라를 계속해서 돌봐 주겠다고  말이

야."

"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 이 나라에는 그대 같은 인물이 필요하지.  오래된 자의 눈과 지혜를 갖춘

자가 말이야."

카이엔은 말없이 황제의 눈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열망

이 담긴 눈동자. 하지만 어째서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자신은 그저

오랜 친구 도수가 내민 손을 잡고 세상 속에 발을 디밀었을 뿐이었다. 그랬던

것이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는 이러한 형태가  되어버렸지만. 뒤의 일은 생

각한 적이 없었다.

" 비록 이런 모습이지만 저도 인간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눈을 감을 수도

있습니다."

" 알고 있네. 그러니까 그대의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그렇게 해준다면 고맙

겠네."

" 제게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카이엔은 변화 없는 조용한 음성으로 황제에게 답했다. 과거의 그것처럼 차분

하게 가라앉은 미성. 그러나 그것은 결코 경박한  가벼움을 품은 소리가 아니

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여전히 카이엔은 여유로운  시선으로 주위를 찬찬

히 둘러보고 있었다. 수십 년의 세월을 보아왔기에 익숙해 진. 그러나  아직까

지 그 화려함은 두 눈에 담을 수 없을 듯한 느낌을 주는 금으로 칠해진  벽의

나무장식들. 가장 오래되었으며 가장 넓은 땅을 가진 나라이기 때문인지도 모

르나 궁 안을 채우고 있는 모든 것들은  화려하고 오래된 것들이었다. 카이엔

의 시선은 느릿하게 움직였다. 벽을 따라 굵은 기둥으로, 아스라한 어둠이  내

리 깔리기 시작하는 창으로.

분명 그런 그의 동작이 황제에게는 지루할 정도로 긴 영겁의 시간으로 느껴졌

을 지도 모르는 일이나 카이엔은 그것까지 염려할 마음은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 그렇다면 황제께서는 제게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갑작스레 목소리를 낸 카이엔을 보며 황제는 조금 놀란 듯 했다. 카이엔의 말

이 의외였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단순하게 침묵의 공간 안에 울려 퍼진

말소리의 탓일 수도 있었다.

" 그대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던..."

" 그렇다면 저는 이곳에 있으되 없는 자가 되겠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황제

께서 바라는 바를 어기는 일도 제 마음을 거스르는 일도 없겠지요."

황제의 대답을 기다리며 카이엔은 다시 주위의 장식물들로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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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졸려...=_=

월요일부터 코믹월드에 출근입니다. 이제 전 죽었어요. 회계에다 일찍 나가야

하니... 에잇. 빌딩을 사겠다는 나의 꿈은!

오늘도 횡설수설입니다. 꾸벅.

[번  호] 7256 / 7360      [등록일] 2000년 03월 26일 00:41      Page : 1 / 10

[등록자] 까망포키         [조  회] 99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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