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흑룡의 숲 제 2부 >
연(緣)...
제 9장. 朔(초승달)
三.
혼인한지 며칠 되지 않은 유안과 시령을 위해 훼이는 일부러 열흘동안 흑룡왕
이 이끌어야 할 모든 업무를 맡았다. 아직 하계의 계절이 겨울이 아니었기에
흑룡족들의 일에 그다지 바쁜 것은 없었지만 왕의 업무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
다. 흑룡족의 영토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일을 처리해야 하는 것은 물론 북쪽
을 지키는 맹장의 역할 또한 수행 해야했기에 훼이가 처리해야 할 일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런데다 요즘은 가끔씩 흑룡족의 영토를 돌아다니며 자신에
게 도움을 구하는 자들에게 조언을 해주곤 했다.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할 수
없을 일임에 분명한.
그렇게 영토를 돌아다니던 어느 날의 일이었다. 아직 성년식을 한참 앞두고
있을 것으로 보이는 어린 여자 일족 한 명이 거침없이 다가서더니 맹랑한 목
소리로 물었다.
" 어째서 용족은 끊임없이 힘의 수행을 하지 않으면 안되죠? 거대한 적도
없는데 말이에요."
훼이는 어린 소녀에게 어떤 식으로 대답을 해 주어야 할지 잠시 생각했다. 그
러다 문득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났던 봉황족과의 불미스러운 일을 떠
올렸다. 영수족 중 활발한 여인들로 구성된 봉황족이 당대의 홍룡왕과 깊은
관계에 있던 황룡왕을 급습하여 깊은 상처를 입게 만든 일을. 봉황족은 자신
들에게 주어진 강력한 화(火)의 기운을 그저 홍룡족들의 일을 돕는데 사용하
는 것으로 그쳐야 했던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을 살아
가면서 흡족한 무엇하나 얻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대부분인 영수족들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삐뚤어진 마음의 발로를 용
족으로 선택한 것이다. 다섯의 영수족중 별개의 존재로 취급받고 있는 용족.
봉황족들에게 있어 용족에 대한 적대감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마음의 움직임이
었는지도 모른다.
자연의 흐름을 조정하는 일을 가진 용족은 어느 한 철도 쉬지 못한 채 끊임없
이 자신들이 품고 있는 오행(五行)의 힘으로 계절의 순환을 유지시켰다. 그것
은 언제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는 고리와도 같았다. 용
족들에게는 그것이 단순하고 지루한 일상의 한 부분으로 여겨졌는지 몰라도
다른 영수족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오직 용족만이 특별한 무언가라고 여겨
졌기 때문에 그들은 같은 영수족의 범주안에 용족을 포함시키지 않으려 했다.
" 오직 싸움만을 위해 힘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훼이는 대답 대신 소녀에게 질문을 되돌려주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궁금하게
여기는 어린 나이에는 정해진 해답을 듣는 것 보다 자신이 직접 생각하고 무
언가를 깨닫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 하지만 계절을 움직이는 일에는 그렇게 강력한 힘이 필요하지 않잖아요."
훼이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 어느 누구도 각자에게 힘을 기르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모두 스스로 자신
의 힘을 단련하고 키워가는 것이지. 하지만 용족들이 그 힘을 기르지 않는다
면 자연의 균형은 무너지고 만다. 용족은 오대 원소의 힘을 조화롭게 움직이
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소녀의 의문은 아직 다 풀리지 않은 듯 했지만 어느 정도 이해한 듯 한참의
시간이 지나자 고개를 끄덕였다.
" 그렇다면 다른 영수족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나요?"
소녀는 질문의 방향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훼이는 영수족 중에서도 가장 차
분하며 함부로 움직이는 법이 없는 기린족을 떠올렸다. 자신의 동생 라이엔의
비가 기린족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용족에 비한다면 그들이 하는 일은 극히 미미하다. 하지만 그들이 존재하
지 않는다면 균형또한 이룰 수 없다. 세상을 이루고 있는 것은 헤아릴 수 없
을 만큼 많지만 그 중에 어느 하나라도 없어진다면 금새 무너지고 만다. 이해
할 수 있겠니?"
소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훼이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나름대
로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있던 모양이었지만 아직은 사고의 폭이 넓지 않아
소녀가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은 무리였다.
" ......유란!"
멀리서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듣자 소녀는 깜
짝 놀란 듯이 주위를 두리번 거리더니 훼이에게 말했다.
" 저, 어머니가 찾으세요."
그리고는 깊이 고개를 숙였다. 마음 속으로부터 존경을 품은 자에게 바치는
용족의 예의 표현방법. 소녀는 그 의미를 알고 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그
렇게 인사를 건넸다.
" 정말 감사했어요. 다음에 또 뵐 수 있을까요?"
소녀의 인사말은 어른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정중했다. 훼이는 그런 소
녀의 어조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짓고 있었다.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의 앞에서는 어른으로 비춰지고 싶은 아이들의 심리를 훼이는 잘 알
고 있었다.
훼이는 뒤돌아 달려나간 소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문득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
다. 오랜 과거의 어느날 자신의 아들 비 역시 소녀처럼 많은 것을 묻곤 했었
다. 눈에 비치는 것 하나하나가 모두 신기하고 신기해서 참을 수가 없었던 모
양인지 비의 질문은 끊일 때가 없었다.
그 검은 눈동자에 담긴 끝없는 탐구심과 새로 접한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훼
이의 마음에 작은 울림을 남겼다. 비의 존재로 인해 깨닫게 된 아버지로서의
자신. 부모님의 심정. 그리고 마지막 인사조차 제대로 건네지 못했던 한없이
깊은 시선.
바람에 흩날리는 소녀의 가느다란 머리카락이 자취를 감출때까지 훼이는 시선
을 돌리지 않은 채 자리를 지켰다.
* * *
" 후... 지독히 정신없는 곳이군."
공간의 틈새에서 빠져나오자 마자 남자가 내뱉은 말이었다. 인간들의 세상에
비하면 지극히 한적한 천계의 광경이 남자의 눈에 정신 없게 비치는 것은 그
가 속한 곳이 이보다 더 한산한 곳이기 때문이었다.
" 숙모님은 이런 복잡한 곳의 어디가 좋았던 거지?"
들어주는 이도 대답할 이도 없는데 남자는 끊임없이 마음 속의 말을 내뱉었
다. 자신이 공간을 연 장소는 바로 천계에서 가장 높은 산 정상이었다. 황룡들
의 영지에 속한 그곳은 동서남북의 모든 곳이 한눈에 들어오는 장소로 경치를
음미하기에는 그만인 곳이다. 그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자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아 공간을 열고 움직이는 용족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들의 일족과
는 확연하게 다른 용족들은 활기라고 부를만한 감정에 휩싸여 있는 듯 남자가
이제껏 지내왔던 곳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손톱보다도 더 작아보이는 용족들의 움직임이었건만 남자는 그런 것에 상관없
이 모든 것을 두 눈에 담고 있었다. 용족들의 몸을 감싸고 있는 파오는 자신
이 걸치고 있는 옷과 달리 무척 활동적인 복장이었다. 계절의 순환을 위해 움
직이는 용족들에게 어울리는 복장이 분명하다고 남자는 생각했다.
" 이곳에서 며칠 지내다가 하계로 내려가야겠군..."
남자는 중얼거리듯이 말하고는 길다란 옷자락을 이불삼아 바닥에 드러누웠다.
다른 일족들이 보았다면 분명 경악했을만한 광경이었지만 지금 이곳에는 자신
이외에 어느 누구도 없다.
" 분명 가신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고 분개하고 있을테지......."
오래된 친구이자 자신의 보좌가 될 가신의 엄격한 얼굴을 떠올리며 그는 빙긋
이 웃었다.
" 적수님. 기륭님께서 하문하실 일이 있다고 합니다."
정오가 되고나서도 한참이 지날때까지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오는 자신의 방
안에 앉아 서책에 매달려 있던 적수는 느긋하고 깊은 어조의 가신의 음성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
" 아. 갑자기 또 무슨 일이시지... 난 아버님이 날 부를때마다 가슴이 내려앉
을 것 같아."
자신과 동년배인 그는 태어나던 그 순간부터 자신의 곁에서 함께 자랐다. 보
통 자신의 일족들이 생각하기로 홍용족의 피를 이은 가신의 성격은 그 피가
이끄는 성질대로 무척 활동적이고 공격적일 것이라고 여기기 마련이었지만 그
는 달랐다. 어느 누구도 그의 외모만을 보고는 순수한 기린족이 아니라는 사
실을 깨닫지 못할 정도로 가신은 조용하고 차분했다. 오히려 가장 순수한 혈
통의 적수가 오히려 용족의 피가 섞인 것처럼 활발함을 품고 있었다. 다른 이
들의 앞에서는 지극히 부드러운 기린족 황자의 모습을 보이지만 가신의 앞에
서는 아니었다.
" 심려하실 일은 없을 듯 합니다."
작게 웃으며 답하는 가신의 얼굴을 적수는 천천히 바라보았다. 용족의 피가
섞여있다는 것을 드러나게 하는 강인해 보이는 인상. 그러나 그 강인함은 육
제적인 것이 아니라 그의 눈빛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외모는 적수와 마찬가지
로 지극히 차분해 보였고 기린족 특유의 흰 살결과 늘 고정되어 있는 절도있
는 표정이 메우고 있었다. 붉은 기운이 도는 머리카락 때문에 조금 호전적으
로 보이기는 하지만 가신의 표정은 그 모든 것을 지워 버리기에 충분했다.
그에 반해 적수는 기린족 황가의 피가 진하게 흐르기 때문인지 밝은 황금의
머리칼과 심해와 같은 푸른 눈동자를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적수가 어떤 표
정을 짓더라도 그를 부드럽게 만드는 작은 요인이었다. 그리고 가신의 얼굴이
굵은 선을 가졌다면 적수의 얼굴선은 엷고 날카롭게 내리뻗은 생김이었다.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내왔기 때문인지 둘은 형제와도 같이 닮았지만 완전히 달
랐다.
" 지나치게 정중한 것은 싫다고 말했던 기억이 있는데....."
" 습관입니다. 그리고 황자를 대하는 예우로는 당연한 예의겠지요."
막 무슨 말을 내뱉으려던 적수는 가신의 얼굴에 맺힌 미소를 보고 목까지 치
밀어 오른 말을 삼켜버렸다.
" 좋아. 그렇다면 아버님의 집무실까지 그대와 함께 가고싶네만..?"
"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가볍게 고개를 숙여보이는 가신의 뒤를 따라 적수는 걸음을 옮겼다.
" 서두르지."
몇겹이나 되는데다 바닥에 닿을 정도로 긴 옷자락을 휘날리며 적수는 걸음을
빨리했다. 달리듯이 속도를 올리는 적수의 뒤를 따르며 가신은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황자라는 신분에 걸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그를 친구로서는 이해하지
만 보좌로서는 용납할 수 없었다.
" 적수님...!"
가신은 그답지 않게 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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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웅... 하루종일 숫자와 씨름했더니 머리가 아파요[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행사 시작하기 전에 1권은 다 써야할텐데... 파워 업..-_-
빨리 낮은 지대로 이사갔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높은 집은 정말 싫어.
언덕 때문에 같은 시에 있는데도 나가는데 30분이 더 걸리다니..슬프다.
푸념하는 포키였습니다.
[번 호] 7358 / 7360 [등록일] 2000년 03월 29일 01:56 Page : 1 / 10
[등록자] 까망포키 [조 회] 17 건
[제 목] [흑룡의 숲 2부] 연(緣)... - 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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