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흑룡의 숲 제 2부 >
연(緣)...
제 10장. 過(갈림길)
시간이 가는 길은
정해져 있지 않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그저... 이름일 뿐.
一.
도수의 얼굴에는 고통을 참는 기색이 역력하게 배어 있었다. 너무 오랜 시간
을 전장에서 보낸 때문인지 도수의 지친 몸은 이제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
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도수의 얼굴에 드리워진 것은 죽음의 회색 그림
자. 이제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된 도수는 주름으로 채워진 얼굴과 사물을
흐릿하게 판단하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눈앞의 카이엔이 지난 수십 년의 시
간 동안 처음 만났던 그때의 어린 얼굴을 가진 것과 대조적으로.
" 말해두고 싶은 것이 있었네..."
카이엔은 조용히 도수의 굳어진 손을 잡은 채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도수의 음성은 작았
다.
" 정말 자네를 알게된 것은 행운이었네... 내 평생 자네처럼 좋은 친구를 얻
은 것은 큰복이었다고 생각하네."
" 나 역시 그래...."
카이엔은 희미하게 웃으며 답했다.
중년의 나이에서 이제는 노년의 나이로 접어든 지금. 자신의 외모는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여러 가지를 얻을 수 있었다. 홀로 살았다면 결코
얻지 못했을 다른 이와의 인연과 여러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삶. 그리고 자신
이 해야할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은 카이엔의 가슴에 깊은 자국을 새겨놓았다.
첫 인연은 호랑이 사냥의 길 안내자였지만 그 다음에는 나이차를 넘어선 친구
로, 그리고 최후의 순간을 함께할 존재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자신은 아직 홀
로 지내고 있지만 카이엔은 도수가 여인과 혼인을 하고 아이를 얻고 그 아이
를 키워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마치 자기 자신이 그러한 것 처럼 느
끼면서.
"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네......."
도수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느끼는 것은 아무도
없었다. 말을 내뱉고 있는 당사자조차 느끼지 못하는 작은 흔들림.
" 진정으로.........진정으로..... 행복했었나....? 내가 괜히 조용히 살아
가길 바라던 자네를 이곳으로 데려온 것은 아닌가..."
도수답지 않은 질문이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이 만들어낸 것. 이끌어온 것에
무엇과도 비견될 수 없다는 자부심을 지니고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카이엔은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대답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그래. 자네 덕분에 홀로되지 않은 시간을 보냈지. 그것 이외에 더한 행복
이 어디 있겠나..."
카이엔은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존재의 의문은 풀어내지 못했지만 적어
도 다른 것은 얻었으므로. 갑작스런 어머니의 부재가 무엇에서 연유한 것인지
는 아직 알지 못하고 있으나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존재와 인연을 맺은 것은
결코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 그랬군... 다행이야..."
마치 잠으로 빠져들 듯이 나직하게 잦아드는 목소리. 카이엔은 그 목소리가
무척이나 가슴아팠다. 그때는 도수의 어조에 담긴 안도의 한숨이 왜 그리 무
겁고 크게 들렸는지, 모든 것이 크게 확대되어 두 눈에 들어왔는지 몰랐지만
카이엔은 시간이 흐른 후에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누군가를 떠나
보내는 가슴을 적시는 감정이라는 것을.
" 아직 해야할 일을 다 마치지 못했는데........"
점점 작아지는 도수의 목소리. 무엇이 그렇게 안타까운지 그는 마지막 순간에
도 계속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렸다. 나중에는 너무 작아서 바로 곁에있던 카
이엔조차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그리고 그렇게 도수는 눈을 감았다.
처음 만났던 때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건네고 자신을 보통의 인간들이 사는 곳
으로 이끌었던. 평생의 소중한 친우는 그렇게 조용히 눈을 감았다.
입버릇 처럼 무관으로 태어난 이상 전장에서 최후를 맞아야 한다고 외치던 그
였지만 마지막을 맞이한 것은 오랜 시간 머물러왔던 자신의 집이었다.
자신처럼 무관이 된 아들은 전장으로 떠나있고, 부인은 자신보다 두 해 먼저
세상을 떠났다. 결국 도수의 마지막을 지킨 것은 가족이 아닌 오래된 친우 카
이엔이었다.
" 잘 가게......."
카이엔은 도수가 눈을 감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한마디를 내뱉을 수 있었
다. 마지막 인사로는 너무 부족한 말이라고 생각되었지만 더 이상의 말은 떠
오르지도 할 수도 없었다.
* * *
" 하늘이 그대에게 약속을 지킬 것을 바라는 모양이로군."
도수의 죽음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황궁으로 돌아온 카이엔에게 자신의 사
실(私室)로 들 것을 명령한 황제는 인사조차 건네지 않은 채 말했다.
" 무슨 의미입니까."
아무런 감정도 담겨있지 않은 카이엔의 얼굴을 보며 황제는 의미 심장하게 미
소지었다.
" 이제 그대의 명(命)이 보통의 인간과 다르다는 것은 스스로도 깨달았을
거라 여겼네만... 내 짐작이 틀린 것인가?"
" 저는 약속을 어긴 일이 없습니다. 황제께서 바라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저
는 과거에 요구하신 대로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머물렀습니다."
"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그것이 아니야. 먹을 만큼 나이를 먹었으니
이해하리아 여겼네만. 그것은 나의 착각에 지나지 않았던 모양이군. 그렇지 않
으면 그대가 일부러 모르는 척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곁에서 수십년을 지냈지만 드러난 적이 없던 황제의 마음이 서서히 드러나려
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가 마음속에 무언가 다른 것을 품고 있다는 것은 눈
치채고 있었지만 지난 세월은 그 감각을 무디게 만들어 버렸다. 카이엔은 과
거에 황제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을 후회했다.
" 알고 있겠지만 다시 언질을 받아두려는 것 뿐이네. 난 그대가 태어난 그
리고 지금도 속해있는 나라의 황제이고, 황제에게는 그 나라에서 살아가는 모
든이의 목숨을 취할 권리가 있지."
은유적인 황제의 협박에 카이엔은 허탈한 웃음만을 떠올렸다.
죽음. 죽음이라는 단어. 그중에서도 타인에 의한 죽음은 떠올려 본 적이 없었
다. 자신의 수명을 다해 눈을 감은 도수의 모습을 보면서도 카이엔은 죽음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하지는 않았다. 자신도 언젠가는 그처럼 죽음의 안식을 맞
이하게 될 테지만 이상하게도 죽음이라는 단어가 무척이나 낯설었다. 이미 아
버지의 죽음과 친우의 죽음을 경험했음에도.
" 자네는 오랜동안 무반이었던 도수와 함께 지냈지. 그리고 그로부터 많은
무예를 배운 것으로 알고있네. 내 말이 틀린가?"
카이엔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황제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가 대체 어떤
말을 꺼낼 것인지. 그리고 자신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결정이 서질 않았
기 때문이었다.
" 다른 이들은 그대가 문관의 일만을 해왔기 때문에 무치라고 여길지 모르
나 난 다르지. 계속 그대를 주시해왔어."
" 저는 돌려서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카이엔이 다시 입을 열자 황제는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 하하. 과연 그대다운 말이로군. 그렇다면 원하는 대로 말하도록 하지."
황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이엔을 내려다 보았다. 그의 눈에 담긴 것은 지배
자가 가지는 오만한 욕망. 그리고 지나칠 정도의 자신감이었다.
" 난 그대가 나의 그림자가 되어 주기를 원하네."
카이엔은 그의 말을 듣고 순간 멈칫했다.
황제가 말하는 그림자라는 것은 분명 단어 그대로의 의미가 아닐 것이 분명했
으므로. 수십년의 세월을 보내며 어느정도 세상에 익숙해졌다고 자부하는 카
이엔이었지만 지금만은 자신보다 어린 황제의 속을 읽어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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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마감이 내일인데 아직 두편을 못썼군...T^T
하루종일 회사에서 일이 장난 아닌데.... 하지만 어떻게든 해보는 거야...
잠 좀 덜자면 어때..-_-
사람의 마음이란건 너무 간사해서 꼭 해야할 일이 있는데도 다른 곳으로
눈이 돌아가니...원..
[번 호] 7146 / 7686 [등록일] 2000년 03월 31일 01:08 Page : 1 / 13
[등록자] 까망포키 [조 회] 162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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