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룡의 숲-100화 (100/130)

< 흑룡의 숲 제 2부 >

연(緣)...

제 10장. 過(갈림길)

二.

무언가를 요구하는 갈증이 점점 깊어졌다.

처음에는 목이 마른 것으로 생각하고 평소보다 많은 물을 마시곤 했지만 자신

이 느끼고 있는 갈증은 결코 물을 마심으로 해서 해소될만한 성질의 것이 아

니었다.

카이엔은 점점 깊어져 가는 자신의 갈증이 병이라고 생각했다. 겉으로는 나이

를 먹지 않지만 속은 이미 고장날 대로 고장나 있는 것이라고.

' 언젠가는 나도 안식의 땅으로 떠나겠지.....'

자조적인 되뇌임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자기 자신조차 스스로에 대해 알지 못

하면서 그저 망연하게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답답했다.

' 어쩌면 이것은 타인의 삶인지도 모른다. 내가 속한 것이 아닌.......'

카이엔은 고개를 저었다. 어째서 자신은 유수와도 같이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동떨어진 존재가 되어있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쩌면 그것은

자신이 잘못된 삶을. 어울리지 않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망상

이 뇌리를 지배했다.

" 그때 그냥 떠날 것을...."

카이엔의 생각은 입술을 타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도수가 눈을 감았을 때. 그냥 이곳을 떠나 원래의 장소.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으로 떠났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도수가 아니었다면 자

신은 계속 깊은 산속에서 홀로  살았을 것이고 도수가 없는 지금은  이곳에서

머물 이유가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황제의

요구아닌 요구를 받아들여 오랜 세월을 같은 장소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스

스로도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채.

" 황제께서 부르십니다."

궁안 깊은 곳에서 유폐되다시피한 생활을 하던 카이엔은 자신을 향한  두려움

의 시선을 느끼고는 피식하고 웃었다.

황제의 명으로 자신을 부르기 위해 온 병사는 두 눈에 가득 두려움을 담고 있

었다. 카이엔의 존재를 아는 자는  그리 많지 않지만 그를  아는 몇몇 이들은

오랜 시간을 같은 모습으로 살아온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인간이 아니

라는 소문도 무성하게 퍼져있는데다가 외모만을 본다면 아직 약관도 되지  못

한 젊은 청년의 모습에 지나지 않는 그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를.

" 무슨 일이신가. 현 황제께서는 날 꺼려하시고 있는데..."

" 저는 잘 모릅니다. 그저 명을 받아 이곳에 왔을 뿐입니다."

병사는 카이엔이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는 사실조차 두려운 모양이었다.

그 자신은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의 목소리는 작은 떨림을 내

포하고 있었다.

" 곧 갈테니 먼저 가보게."

" 네. 알겠습니다."

카이엔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하자 병사는 깊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

를 숙였다.

' 역시 너무 오랫동안 이곳에 있었던 것 같군.....'

짙은 남색의 관복. 가장 높은 지위의 문관들이 입는 그 옷을 카이엔도 걸치고

있었다. 과거에 자신이 재상의 자리에 있을 때  입던 옷이었던 그것을 카이엔

은 지금도 입고 있었다. 이미 자신은 소수의 몇몇 이외에는 알지 못하는 존재

가 되었음에도.

어쩌면 그때가 가장 편안하고 즐거웠던 시기였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외모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에도 큰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던 그때가.

" 인사 올립니다. 황제폐하."

침상에 앉아 카이엔의 인사를 받은 황제는 막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건만 겉

으로 보기에는 그보다 훨씬  나이가 들어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얼굴에는 누가 보아도 알 수 있을 만큼 완연한 병색이 떠올라 있었다.

" 밖에 나가 있거라."

황제는 카이엔이 모습을 드러내자 곁에서 시중을 들던 시비들과 문 앞을 지키

던 병사를 물렸다. 모든 황제들이 카이엔과 대화를 나눌때면 항상 약속이라도

한 듯이 주위를 물리곤 했다. 처음에는 그 이유를 몰랐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그들이 꺼내는 이야기는 모두 자신들에게 치부에 해당하는 일이었으므로.

" 이걸 받아라."

전대 황제가 그랬듯이 카이엔을 있으되 없는 존재로 받아들인 현 황제는 싸늘

한 은색빛을 토하는 작은 단도를 카이엔에게 내밀었다.

카이엔은 말 없이 황제가 내민 단도를 받아들고 빛에 반사되는 은색의 광채를

주의깊게 바라보았다. 자신에게는 별다른 인연이 없다고 생각되었던 것이었건

만 이제는 그것을 익숙하게 느낄 정도가 되어버렸다. 처음에는 그저 심심풀이

로 도수에게 배웠던 것이었는데 지금은 황제로 인하여 자신의 몸처럼  여기게

되었던 것이다.

작은 단도를 보자 새삼스레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도수와 함께 검을 교환

하며 보내던 시간들을.

" 알고 있겠지만 내가 얻은 병은 무엇으로도  고칠 수 없다고 하지. 그러나

단 하나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다."

카이엔은 여전히 칼날에 시선을 맞춘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오랜만

에 떠올린 도수와의 추억은 황제의 말보다 더 크게 카이엔에게 와 닿았다. 자

신도 모르게 얼굴에 옅은 미소를 떠올린 카이엔을 보고 황제는 점차 얼굴 표

정을 굳혀가고 있었다. 분명 카이엔이 자신의 말을 무시한다고 여겼기 때문이

리라.

" 나는 그대의 주인이니 그대에게 원하는 것을  요구할 수 있다. 그렇게 생

각하지 않는가?"

병자답지 않은 강한 어조로 황제가 말을 내뱉자 카이엔은 그제서야  황제에게

로 시선을 돌렸다.

무엇이 담겨 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검은 눈동자는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런 카이엔의 시선과 마주치자 황제는 순간적으로 자신이 하려던 말을  삼키

고 말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입술 끝을 비틀어 올리며 말을 꺼냈다.

" 분명. 그대라면..... 그대의 피라면 내 병을 고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소문

대로라면 자네는 인간이 아닐테니까."

황제의 시선은 서서히 카이엔의 얼굴에서 오른손에 쥐고 있는 단도로  옮겨갔

다. 그리고 황제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카이엔은  그 시선의 의미가 무엇

인지 알고 있었다.

싸늘한 은색 칼날은 처음보다 더 음산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            *            *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방으로 돌아온 카이엔은 힘없이 침상위에 주저 앉았다.

분명 조금 전에 몸에서 빠져나간 피의 탓일  것이다. 갑작스레 이유모를 상실

감이 온몸을 지배하는 것은. 가슴속 깊이 묻어두었던  의문이 꼬리를 물고 피

어오르는 것은.

어째서 나는 남들과 다르지?

어째서 나이를 먹지도 않은 채 기이한 열기를 품은 갈증만이 가슴을 가득 채

우고 있는 것이지....?

왜 다른 이들은 내 주위를 떠나가는데 나 혼자만 이곳에 남아있어야 하지?

카이엔은 거울을 바라보며 허무한 미소를 떠올렸다. 자신이 환에 머물러 있는

동안 많은 황제들이 자신을 곁에 두길 원했다. 그것은 처음 그에게 머무를 것

을 요구했던 황제로부터 비롯된 일이었다. 그가 바란대로 카이엔은 황궁에 머

물면서 그의 말대로 움직였다.

생명을 위협하는 억지스러움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카이엔 자신의 의지가

작용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생각해보건데 카이엔은  삶에 애착을 지

니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의 두

눈으로 보고 두 발로 디디고 살아가는 세상임에도 끊질기게 살아야 한다는 그

러한 결심이 서질 않았다. 그저 강물위를 떠가는 나뭇잎처럼 흘러가는대로, 바

람부는대로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향기로운 무언가가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코끝에서 느껴지는 향기가 아닌 본능적인 이끌림. 정신이 지배하지 않아도 스

스로 움직이는 몸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 무언가를 찾아서 걸음을 옮기

고 있었다.

카이엔은 정신없이 아무 것도 모른 채 잠이든 젊은 병사의 머리에 손을 가져

갔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른다. 마치 머릿속에서 끊임없는 외침이 들려오는 것

처럼 카이엔에게 요구하고 있었다. 저 인간의 머리에  손을 대고 무언가를 얻

으라고. 그리고 카이엔은 본능이 명령하는 대로 따랐다.

" 윽......."

들려오는 것은 작은 신음소리.

카이엔은 온몸에 퍼져 가는 기분 좋은 열기를 느끼면서도 자신의 손에서 퍼져

나온 흰 기운의 정체에 당혹해하고 있었다. 분명 인간으로서는 가질 수도,  가

져서도 안 되는 힘의 움직임.

손끝을 타고 퍼져오는 열류의 움직임은 머지 않아 전신에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 기운이 닿은 순간 카이엔은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혀오던 목마름이  해소되

는 것을 느꼈다.

정신을 차린 것은 온몸에 환희와도 같은 열기가 퍼진 후였다. 그 따스함과 편

안함. 그리고 그리움에 카이엔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 대체....이것은...무슨...."

카이엔은 말도 채 이어가지 못한 채 암담하게 내려앉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 ....이...."

카이엔은 두 눈에 비친 광경에 경악했다.  놀라서 부릅뜬 눈. 하고 싶은  말도

미처 하지 못하고 눈을 감아 원통했는지 벌어진 입. 그리고 목각 인형처럼 아

무렇게나 구겨진 몸.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무런  생각도 걱정도 없이 단잠에 빠져있던  젊은

병사는 그렇게 창백하게 굳어진 시체가 되어 있었다.

" 내가....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카이엔은 너무나도 혼란스러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입에서 무슨

말이 새어나오고 있는지. 이곳이 어디인지 조차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엔가 카이엔은 이마에 손을 올린 채 웃기 시작했다.

" 하하....하하하..."

도저히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 하하.... 그래 맞아..."

카이엔은 미친 듯이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머리속을 스쳐지나가

는 몇 개의 영상들.

" 그래..... 이런 내가 인간일 리가 없지........"

아직도 손끝에는 조금 전의 쾌감이 남아있었다. 문신처럼 뚜렷하게.

" 그럼....... 그럼 나는 누구지....?"

카이엔은 갑자기 방 문을  열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타인과의  만남을 배제한

채 머물러 왔던 궁을 빠져나와 정신없이 달려갔다. 한밤에 궁안을 달려나가는

그를 보고 보초를 서던 병사들이 놀라 검을 꺼내들고 막아섰지만 그들은 카이

엔을 건드릴 수 없었다. 그의 몸에서 퍼져나온  백색의 기운은 그들의 접근조

차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 하아.... 하..."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앞을 향해 달려나가던 카이엔이 멈춰선 것은 자신의 오

랜 고향인 천성산의 초입에  이르러서였다. 한밤의 검은 안개에  휩싸인 산은

빽빽한 나무들을 감싼 채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나뭇잎을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의 스산한 움직임. 옷깃이 바닥을 스치는 소리.

감작스런 적막에 발을 들이민 카이엔은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깊고도 깊은 검은 바다에 박혀있는 노란 달빛과 찬연하게 빛나는 작은 별무리

들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쏟아질 듯이 검은 바다안을 가득 메운 별이 금방이

라도 카이엔의 전신으로 내리 꽂힐 것 같았다.

' 이제......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카이엔은 자신에게 대답을 줄 누군가에게 물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대답은 존

재하지 않았다.

" ..........으아악!"

카이엔의 비통한 목소리가 산  속에 울려퍼졌다. 그리고 그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메아리가 되어 골짜기를 따라 깊이 깊이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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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앗...마감이다.!

이걸로 1권 분량이로군요. 모자르면 어쩌지...T^T

마감에 쫓기고 회사일에 쫓기고...--;;

이제 이번주 토요일과 일요일은 제 7회 코믹월드 행사 때문에 글을 못 올릴것이

확실합니다. 오늘도 정신없이 일했거든요. 내일은 일본 본사에서 사람들이

오고, 전 장난아닙니다. 접대도 해야하고 행사 준비 마무리도 해야하고.

아... 바쁘다. 바뻐... @[email protected]

ps) 엘야의 연중을 보니 마음이 아픕니다. 글을 쓰는 건 정말 좋아서

쓰는 것인데 말이죠. 저같은 경우는 욕심이 너무 많아서 글 뿐만 아니라

통역일이나, 번역일. 그리고 회사일도 다 하면서 하고 싶어하지요.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인데. 욕을 먹어야 한다니...

슬픕니다...

[번  호] 7261 / 7686      [등록일] 2000년 04월 03일 23:45      Page : 1 / 12

[등록자] 까망포키         [조  회] 118 건

[제  목] [흑룡의 숲 2부] 연(緣)... - 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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